[천생천년초] 성공다이어트 천생천년초 생식건강 비만탈출 !!
아스라한 추억을 따라 오래된 길목, 다방, 빵집에 간다. 부디 이 공간들이 오늘의 모습을 잊지 않길 바란다. 흐르는 시간과 상관없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전주 동물원 / from. 1978
지방에 위치한 동물원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전주 동물원은 32년전 그 시절 사람들의 신장에 맞춰서인지 모든 게 작고 낮고 귀엽다. 코끼리, 기린, 얼룩말까지 좋아하는 동물만 골라 보곤 너른 잔디밭에 앉아 하릴없이 음악을 듣는다. 우리 밖을 돌아다니고 있는 흑염소는 좀 무섭지만 괜히 삐그덕거릴 것 같은 회전목마와 꼭대기에서 멈추면 어쩌나 싶은 대관람차는 제법 운치 있다. 80년대 오락실에서 들릴 법한뿅뿅대는 소리가 낡은 동물원과 의외로 잘 어울리는 ‘키츠네 메종’을 듣다 홀로 전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탄 일이 생각난다. 비 오기 직전의 흐릿한 날씨에 여자 혼자 동물원에 가는 게 이상했는지행선지를 재차 확인하던 택시 기사. 15분 남짓한 거리니까 다음엔 터미널 앞 시장에서 살구 한 봉지를 사들고, 165번 버스를 타야겠다. 기린 앞에서 함께 수다를 떨 좋은 친구와 함께. <보그 걸> 피처 디렉터 정윤주
이성당 /from. 1920
군산 터미널에서 택시로 기본 요금 거리에 있는 이성당은 1920년에 일본인이 처음 양과점으로 개업한 곳을 해방이 되던 1945년에 한국인이 인수한, 우리나라 최초의 제과점이다. 지금은 외관을 온통 신식으로 개조했기에 옛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건 생김새는 다소 촌스럽지만 거칠고 투박해 더 정감이가는 빵들뿐. 그중 빵보다 단팥이 더 많은 단팥빵, 샐러드가 듬뿍 들어 있는 야채빵, 보슬보슬한 소보루, 짭조름한 당면이 들어 있는 고로케 등 ‘이성당 4대천황’은 겉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기본에 충실한 맛이기에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빛의 속도로 팔려 나간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달콤하고 귀여운 상투 과자를 하나 사 빵집을 나선다. 간판에 영어로 ‘빠띠쓰리’, ‘블랑 제리’ 이런 말을 적어 놓은 것도 사실 별로다. 그냥 이 성당, 그 세 글자만으로 아름다운 곳인데,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보그 걸> 피처 디렉터 정윤주
학림다방 /from. 1956
학림다방은 1956년 동숭동 서울대학교 문리대 건너편에서 ‘제25강의실’이라고 불렸다. 54년이라는 세월 동안 파트너이던 서울대는 자리를 옮겼고 세상도 변했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림다방은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여전히 대학로의 젊은 피를 기꺼이 흡수한다. 입구에 들어서보니 혼자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구석 자리도 탐이 나고, 다방 안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복층 자리도 좋아 보인다. 고민 끝에 대학로 거리를 구경할 수 있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4천5백원짜리 핸드 드립 커피와 푸딩처럼 동그란 몸매에 귀여운 토끼가 그려진 5천원짜리 크림 치즈 케이크를 주문했다. 한때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대학생들의 토론 장소가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20대 대학생의 또 다른 토론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보그걸> 어시스턴트 황지명
이화여자고등학교/from. 1886
이화여자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시청역에서 내렸다. 졸업생에게 미리 물어 알아본 결과 꼭 들러봐야 할 곳은 노천 강단, 노목이 있는 운동장, 그리고 학교 동문(東文)에 있는정동길. 여자들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던 시절, 미국 북감리교회의 스크랜톤 여사에 의해 한국 최초로 만들어진 여성 교육 기관에 다니는 기분은 어떤지 궁금한 마음에 “학교의 어디가 제일 좋아요?”라고운동장에서 쉬고 있는 학생에게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명랑하게도 “학생 식당.”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다 큰 남자가 여자고등학교에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사진을 찍는 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말간 풍경을 찍고 서둘러 나와 근처 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포토그래퍼 표기식
라칸티나 /from. 1966
한국 최초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라칸티나에 가기 위해지하철 2호선 을지로 입구역 1번 출구로 나와 롯데호텔 맞은편 삼성 빌딩 지하로 갔다. 앤티크한 입구를 지나 파란 테이블보에 빵을 싼 핑크색 헝겊까지 정갈하게 세팅된 테이블에 앉아 ‘링귀네 라 칸티나’를 주문했다. 클래식이나 재즈 음악이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보며 지난43년 동안 이 공간에서 식사했을 수많은 사람들의모습과 이야기를 상상한다. 치즈가 무엇이고 파스타가먹는 음식인지도 모르던 시절, 외국인 단골손님들의 입소문으로 알려진 라칸티나에는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웨이터와 셰프가 있다. 직접 뽑아낸 면발에 조개와 새우, 와인과 마늘이 조화로운 1만1천원짜리 링귀네는 다시 찾아와 맛보고 싶을 만큼 맛있다. <보그걸> 어시스턴트 황지명
중림동 성당 / from. 1892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4번 출구에서 분주한 재래시장을 지나 성당에 들어섰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고요한 성당과 마주하자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때묻지 않은 조용한 공간의 소리를 들을기회도 많지 않겠다 싶어 아이팟을 가방에 집어넣고, 성당을 둘러봤다. 1886년 종교 선택이 자유로워지고 천주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자 당시 명동성당의 주임 신부였던 두세(Doucet)가 대지를마련해 만든 성당의 예전 이름은 ‘약현(藥峴)’. 입구 오르막 옆의 작은 오솔길을 지나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 건물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성당의 지붕과 1998년 화재로 훼손되었다 2000년복원된 내부를 감상한다. 날씨가 맑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성당 뒤 벤치에 앉아 햇살을 쬐다 보니 다음엔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한 권 가지고 와야겠다 싶었다. 포토그래퍼 표기식
북촌 한옥 마을 /from. 1930
고즈넉한 한옥 풍경이 담긴 길을 찍고 싶어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가회동 31번지 오르막길로 향했다. 그러나 현실은 차를 끌고 구경 온 사람들 덕에 골목골목이 주차장 신세. 아쉬운 대로 1930년도를 전후해 생기기 시작한 골목길에 어깨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집마다 제 각각인 대문의 장식과 경첩을 구경하며 마음을 달래고, 삼청동과 멀리 경복궁 일대의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진 오르막끝자락에 올랐다. 아파트가 생기면서 한옥들이 멸실되고 다세대 주택이 그 자리를 대신하다 1999년 이후에는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조성되며 전통 한옥을 보존하자는 물결이 일어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 들고나는 사람들이나 한옥 보전에만 치우친 어리석은 정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북촌 한옥 마을이 박제된 민속촌이 아닌 사람이 사는 생기 넘치는 ‘동네’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포토그래퍼 김진호
낙원 악기 상가 /from. 1968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와 낙원 악기상가의 파란색 간판을 확인하는 순간, 어딘가에서 들리는 멋진 통기타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린다.1960년대 지상 15층짜리 주상복합 건물로 세워진 낙원상가는 예술가들을 배출하던 곳인 동시에 떠돌이들의 안식처였다. 곳곳을 누비며 악기를 구경하고, 흘러간영화를 보고, 가게 주인이 연주하는 아코디언과 기타소리를 감상한다. 복잡한 구조를 따라 돌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문득, 영화 <중경삼림>의 주제곡인 ‘캘리포니아 드림’이 이곳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현대 미술 작가 류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