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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환 목사 / 예수 믿는 자의 권세 (민 14:26-35/요 1:12)
설교:
서울 강남에서 목회하던 어느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20여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봄을 맞아 춘계대심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 가정을 대심방하던 중에 신림동 난곡에 달동네 판자집에 혼자 사는 한 할머니 집사님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아시지만 80년대 당시만 해도 대부분 집들이 연탄으로 난방을 하며 살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너무도 가난하여 연탄도 못 때 냉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방 도배지도 낡아서 우중충했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그 집안에 들어가서 심방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님을 대접한다고 집사님이 부엌으로 나간 사이 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랄만한 것을 봤습니다. 벽 한쪽에 가계 수표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짜인가 해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가짜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자세히 보았더니 당시 돈으로 어마어마한 돈인 5,000만원짜리 수표였습니다. 오늘날 가치로 따지면 5억정도 되는 돈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집도 한 채 사고 나머지를 은행에 예치하면 이자만 가지고도 생활이 가능한 돈이었습니다.
음식을 가지고 들어온 집사님께 물었습니다.
“집사님 이 수표를 왜 여기에 붙여 두었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그거요? 그거 별거 아니예요. 목사님 이거부터 드세요.” 하며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거였습니다.
목사님이 재차 안달이 나서 물었습니다.
“집사님! 음식은 좀 있다 먹기로 하고 이거부터 말해보세요. 어디서 났어요?” 그러자 그 할머니 집사는 말을 했습니다.
“아 그거요. 지난해에 파출부로 일을 나갔는데 할멈도 없고 자식들도 모두 바빠서 병간호를 못하는 한 할아버지가 있어서 제가 그분 병간호를 해주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양반이 나를 부르더니 제 손에 이것을 쥐어 주었어요. 정말 고맙다고 하며 주기에 뭔가 보니 종이 쪽지였어요. 그리고 며칠 후 그 양반이 세상을 떠났지요. 그 양반이 준거라 버리기도 뭐하고 그래서 기념으로 벽에 붙여 놓은 거예요.” 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놀라며 말했습니다. “집사님! 이거 돈이에요. 그것도 엄청나게 큰 돈이랍니다.” 그러자 집사님 하는 말 “아이고 그게 뭔 돈이예요. 종이 쪼가리지요.”
그 집사님은 어마어마한 돈을 그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무지해서 그 수표가 돈인 줄 몰랐습니다. 결국 추운 겨울 연탄도 못 때고 추위에 떨며 살았고 매일 끼니를 걱정하며 약한 몸을 이끌고 파출부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이 집사님은 자신이 갖고 있는 수표가 아무짝에도 못쓰는 딱지인줄 알고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뭐가 문제입니까? 無知, 수표를 돈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그 무지, 그것이 그 할머니를 그토록 고생스럽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할머니 이야기가 사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 우리 이야기란 사실을 아십니까? 그 할머니 집사님에게 거액의 돈을 준 할아버지가 있다면 오늘 우리에게는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한 하나님 아버지가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 1장 12절을 살펴보세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이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그 권세를 사용할 줄 몰라 그 권세를 벽지에 붙여두고 거지같이 한숨쉬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요? 오늘 우리요.
만약 그 벽에 붙어 있던 수표의 가치를 발견하듯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녀의 권세를 알면 우리는 놀라운 기쁨과 감격을 체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권세가 주어졌을까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란 어떤 것일까요?
1.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권세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경은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이 풍랑으로 고생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환경입니다. 이렇게 해봐도 안 되고 저래 해봐도 안 되는 안타까운 환경입니다.
그럴 때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셔서 해결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셔서 우리 문제, 우리 환경을 해결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물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베드로가 물위로 걷게 해달라하여 물위를 걷습니다. 그런데 그는 물위를 걷다가 곧바로 빠져들었을까요? 예수님의 믿음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었으나 베드로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는 환경을 지배하고 정복할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책망할 때 뭐라 하셨습니까?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느냐”
그 말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었던 것은 믿음으로 한 것인데 의심하면서 빠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민수기 14장의 말씀은 다 잘 아실 것입니다. 모세가 12명의 가나안땅 정탐꾼을 보내 40일을 정탐하고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10명의 보고를 듣고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밤새 哭을 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 땅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하며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가” 하고 난리가 벌어졌습니다.
그러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오늘 봉독한 민수기 14장 28절에 무서운 선언을 하십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맹세 하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무슨 말입니까? 그들의 말대로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을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구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니”
애굽 백성들에게는 이 말이 무서운 저주의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엄청난 축복의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을 기적으로 만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한대로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I can do it, I can walk on the water 라고 외쳐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물위로 갈을 수 있다" 이 말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최목사의 생애는 이 말 때문에 이루어진 생애입니다. 태어 난지 한살도 안 되어 소아마비의 장애가 있어 그야말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나는 안돼, 나는 할 수 없어,” 내 주변의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너는 할 수 있어 너도 하면 돼”라고 말해 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생각이 바뀌었고 예수님을 믿고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면 나는 할 수 있다” 하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할 수 있는 것 다 하려고 노렸습니다. 운전도 하고 탁구도 김수용 목사를 이기고요, 한손가락으로 컴퓨터도 합니다. 잘 안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기를 부리고 죽기 살기를 하다보니 고집도 쎄졌고 남들에게 본의든 아니든 상처도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뭔 줄 아십니까? 부정적인 소리입니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 어렵다, 해보나 마나다. 안되면 어떻게 하냐? 하는 소립니다. 저는 그런 소리 지겹도록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게 그런 소리는 마귀의 소리입니다.
여러분 이 말을 명심하세요.
“하나님은 내 입에서 나온 말대로 일을 하신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하십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면 안 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이제 말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내말을 하나님이 듣고 계십니다. 내말을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그러기에 “하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라고 말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남편은 안돼, 우리 구역은 안돼, 우리나라는 안돼 소리 하지 맙시다.
믿음의 사람은 자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 권세로 환경을 이기시고 그 권세로 사단을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말을 해야 합니다. I can walk on the water! “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2. 믿음으로 명령하는 것은 이루어지는 권세입니다.
우리 성도가 가진 권세 중에 가장 중요한 권세는 하나님의 자녀로 명령 할 수 있는 권세입니다. 귀신들린 자에게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실 때도 기도하신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 성도에게 말의 권세를 주셔서 말로 명령하면 이루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왕자가 신하에게 부탁하지 않습니다. “김상궁 밥좀 주면 안될까요?” 하지 않습니다. 또 왕에게 “아바마마! 김상궁에게 명령하여 내게 밤 좀 주라고 해 주시옵소서”하지 않습니다. 밥 가져 오거라, 이것 하라, 명령합니다.
마가복음11장에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열매 맺을 때가 아닌 나무를 향해 열매가 없다고 영원토록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저주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저주받은 나무가 죽었습니다. 기가 막힌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때도 아닌데 나무를 저주하여 죽게 했을까요?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들에게 말의 권세를 보여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알수 있나요? 그 다음 구절에 보면 주님이 뭐라 하셨나요?
마가복음 11장 22절 이하를 보세요. 1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뭔 소립니까?
“하나님을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산을 향해 명령하면 산도 바다에 던져지는 말의 권세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성도는 말에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니 명령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도 있으나 어지간한 것은 명령으로 하면 이루어집니다.
경부고속도로를 누가 만들었나요? 박정히 대통령입니다. 거북선은 누가 만들었나요? 이순신 장군입니다. 한글은 누가 만들었나요? 세종대왕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은 만들어 보라고 명령한 사람입니다. 실상은 남들이 다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나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나가라 명령했습니다. 또 병자에게도 “네 믿음대로 되라”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명령하셨습니다.
달리다쿰 “소녀야 일어나라” 명령입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명령입니다. 믿음으로 명령하니 이루어 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믿음으로, 그리고 자녀의 권세로 명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놀라운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대통령에게 권세를 주었기에 대통령의 말에 군대가 움직이고 비행기가 날고 세상이 움직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자녀의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의 말은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향해 명령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질병은 떠날 지어다.” “나를 괴롭히는 원수 마귀는 떠날지어다.”
3. 모든 것을 소유하고 살 수 있는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는 대단한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권세도 있고 하나님의 소유를 상속받을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달라고 기도하면 받을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는 빈손이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염려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채우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실 것을 누릴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에 이런 약속이 있습니다.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믿습니까? 문제는 왜 나는 누리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네게는 안 되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자녀 권세를 사용하는데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도 내용도 바뀌어야 하고 기도의 자세도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여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내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 기도해 놓고 근심 걱정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을 때 후회하거나 원망치 말아야 합니다.
2) 절대로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온 것은 특별한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습니다. 세월이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약속도 변치 않습니다.
당장 안 된다고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려야 하고 믿음으로 내 마음을 꽉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이루어집니다.
신학교를 시작하면서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학교 학생들을 관리하고 강의를 통역할 사람이 필요한데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고 기도했습니다. 시작케 하신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필요한 사람을 채우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기도했더니 연변에서 집회 요청이 들어왔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3) 끝까지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해 보여도 이루어지고 채워지고 누려짐을 믿어야 합니다. 문제는 의심입니다. 그리고 불신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써 있는데 실제 안 되면 어쩌냐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의심이고 불신입니다. 그런 것이 여러분의 삶에 기적을 막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자녀의 권세를 소유한 자입니다. 이미 엄청난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할머니 집사님처럼 내게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고 또 그런 권세와 특권을 의심하고 불신하고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이 권세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최일환 목사 / 말대로 됩니다. (민 14:26-38)
사람은 言語를 사용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많은 인기를 갖고 있습니다. 한참 날리던 황수관 博士가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요? 의사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재미있게 듣도록 말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쉽게 이해되도록 말하고 재미있도록 말하니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을 한번 모시려고 하니 500만원을 주어야 한답니다. 기독교적 시각에서는 정신 나간 사람 같은 김용옥 박사도 동서양의 철학을 드나들면서 괴변이지만 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모든 삶의 영향이 말과 함께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은 우리에게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 하셨지요.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모든 하늘에 메시지를 말씀을 통하여 전해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정치 지도자들과 지도층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말을 잘못해 국무총리에서 서리 꼬리를 떼지 못하고 물러나고 말 한마디 잘못해서 언론에 시달리기도 하고 술 먹고 말 한마디 잘못해서 온 나라가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나라에 어려움을 주기도 하고, 이회창씨 아들의 병역문제로 온 나라가 분명 누군가의 거짓말에 놀아나는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또한 말은 힘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전쟁이 일어나고 말 한마디에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말이 열리면 다 열리고, 말이 닫히면 다 닫히는 것입니다. 幸福도 말에 있습니다. 發展도 말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성경은 말을 내 뱉는 혀는 큰 배의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배를 움직이는 것이 키(key)예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은 말하는 대로 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도 그 말하는 대로 그 앞날이 좋은 길로 가느냐. 나쁜 길로 가느냐 말에 달려 있고, 국가도, 그 국가의 지도자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天國을 가는 분도 말로 가는 것이고, 地獄을 가는 분도 말로 가는 것입니다.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시인하야 구원을 얻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말로 천국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을 가졌어도 말이 바뀌지 않으면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연구소에서 설문 조사를 한 바에 의하면 자녀를 성공시키는 것도 좋은 의복이나, 좋은 음식이나 부유함으로 자녀들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 말에 있다고 합니다. 言語에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자녀 길러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힘 있는 말하면 그 자녀는 힘 있는 자녀가 되고 자녀에게 신앙을 심어 주는 말을 하면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힘이 되는 말, 다섯 가지가 있는데,
1)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소중하다 이것이 73% 차지
2) 나는 너를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
3) 아빠, 엄마는 너를 언제나 사랑한다.
4) 나는 너를 믿는다.
5) 네가 자랑스럽다. 는 표현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그렇게 자녀들에게 인삼 녹용보다 더 큰 약입니다. 더 큰 용기를 주고 힘을 주고, 앞날의 길을 열어주는 자녀의 앞날을 우리가 닦을 수 없지만 말로는 닦을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이 자녀들에게 큰 꿈을 심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독이 되는 詛呪가 되는 말 다섯 가지가 있어요.
1) 네가 잘하는 게 뭐 있는? 43%. 이것이 아주 결정타예요.
2) 이 멍청한 놈아, 이, 바보야,
3) 너 때문에 지겨워 못살겠다.
4) 마음에 드는 것이 한 가지도 없다.
5) 꺼져 버려라.
이런 말들은 아이들을 망치는 거예요.
말 한마디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려서부터 말은 배울 때도 잘 배워야 되고, 사귀는 친구들도 잘 만나야 되는 거예요. 좋은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도록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교회의 宣敎院이나 유치원 같은 곳에 가서 선생님 말을 듣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제가 참 부끄러운 고백을 할 것이 있는데, 제가 저도 모르게 나쁜 말을 써먹는 경우가 있어요. 언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자기 사모님께 "이 여편네야"하기에 귀에 거슬렸는데 나도 모르게 그 말을 제 아내에게 쓰고는 제 자신이 스스로 내가 왜 이럴까 하며 놀래는 거예요. 문제는 그 말은 어디서 들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속에 쏙 들어가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늘 긍정적인 말, 신앙적인 말, 적극적인 말, 칭찬하는 말, 존경하는 말, 은혜로운 말, 용기를 주는 말, 소망의 말, 감사의 말, 덕이 되는 말, 남에게 힘을 주는 말들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이런 말을 하도록 그냥 두지 않습니다. 인간이 罪性이 있어서 못된 말은 쉽게 배우고 좋은 말은 잘 배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찌르고, 상처를 주어 살인까지 합니다.
사람의 손에 들린 칼은 하나지만 입에서 나오는 비수는 열 개라고 합니다. 칼이야 마음까지 찌르지는 못하지요,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음까지도, 모든 영혼까지 찌르는 거예요. 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말 한마디로, 나의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나도 살고, 남도 살리지 만은, 잘못하면 다른 사람도, 국가도, 말 한마디로, 말미암아 수난과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말을 잘해야 될, 중요한 자리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는 목사님, 구역강사, 교사입니다. 또 세상에서는 의사나. 학교 선생님이나, 이런 분들은 정말 말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늘 피곤하여 X레이 사진을 찍었는데 간에 물혹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은 죽을병이 아니랍니다. 그런데 의사가 그것을 설명을 안 해주었답니다. 환자는 간에 물혹이 있다는 것으로, 그날부터 잠을 못 자고, 물혹이 터져서 곧 죽을 것 같은 거예요. 고민하고, 불안에 떨고, 입맛이 딱 떨어지고, 나는 끝났다. 라는 생각으로 지내니까, 온갖 병이 다 찾아오는 거예요. 일주 일만에 다 죽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병원에 찾아 온 거예요. 그제서 의사가 "괜찮습니다. 물 혹은 암이 아닙니다. 병도 아닙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하루 만에 밥맛이 돌아오고, 아픈 것이 싹없어지고, 잠이 잘 오고 하니까 화장발도 살아나고 하더랍니다.
사람은 神秘한 被造物입니다. 동물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많은 피조물가운데 사람에게는 언어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우리는 들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 한마디 한마디 잘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12명 정탐꾼이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그 12명의 보고가 둘로 나뉩니다. 10명은 한마디로 우리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불평하며 하나님 앞에 말로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말을 하든지. 그 말은 성경에 보면 다 하나님 앞에 직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들으시는 거예요. 시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이다.
하나님 안 들으시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다 듣고 계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실해야 되고, 그러므로 어디서든지 바로 살아야지 하나님 모르신다고 우리가 살아갈 수는 없는 거예요. 항상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든지 하나님이 내 말도 들으시고, 내 모든 행위도 달아보시는 하나님이 신줄 알고 새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말이 중요합니다. 다른 것 보다 우선 말을 잘해야 합니다. 영적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말 잘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들어 갈수 없다" "들어갈 수 있다. 능히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은 몸은 애굽에서 나왔지만은 말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결국 계속해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하는 거예요. 가나안 땅에 다녀온 10명의 정탐꾼, 그들의 말은 전체가 부정적이고 절망적입니다. 남에게 덕을 세우지도 못하고 용기를 꺾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말대로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말대로 그대로 施行합니다. 그래서 그 10명의 정탐꾼들과 함께 낙망하며 絶望속에 不評했던 사람들을 다 광야에서 죽게 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을 잘해 야합니다. 불신앙의 말, 비난의 말, 원망의 말, 상처 주는 말, 의심의 말, 마귀가 역사 하는 부정적인 불평불만의 말을 하면 어떤 결과가 찾아올까요?
1. 자기가 안 됩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읽어보세요. 하나님이 누차 수 백 번도 더 강조하는 것은 "내 말을 듣고 지켜 행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을 잘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하십니다. 그래서 혹자는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는 필기시험이 없다는 거예요. 면접시험만 있는 거예요. 천국에 가서도 면접, 땅에서도 面接이예요. 예수님도 은혜 주실 때 다른 것을 달아 보셨나요? 예수님은 당신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입의 말만 들어보고, 다 결정하는 거예요. 그러기에 말을 부정적으로 하면 될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미치겠네, 힘들어 죽겠네, 환장하겠네, 이렇게 말하는데 될 일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조심해야 합니다. 시험 들었네, 안 돼 해 보나마나야, 큰일 났네,
2. 가정도 안 됩니다.
내가 복을 받지 못하면 나만이 아닌 가족 모두가 안 됩니다. 12명중 10명 때문에 이스라엘 많은 가정이 그들의 말대로 멸망했습니다. 나하나 망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을 잘못하면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함께 망합니다. 부정적인 남편 한사람으로 아내가 불행해지고 자식들이 탈선하는 것입니다. 아내도 말을 잘해야 합니다. 힘이 되는 말, 용기를 주는 말, 그리고 평안을 가져다주는 말을 할 수 있을 때 잘되는 것입니다.
3. 교회도 국가 어렵게 됩니다.
이상하게 원망불평의 말은 전염속도가 급속합니다. 그래서 누가 알리라고 안 해도 다 알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눈덩이처럼 부풀려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교회가 한바탕 난리가 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국민이 어떤 면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세요. 우리의 언어문화, 많이 뒤떨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많은 축복을 받으면서도 말은 우리가 바꾸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다른 면으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말을 바꾸기를 바랍니다. 좋은 교인이 되려면 말을 바꾸어야 좋은 교인이 됩니다. 가정이 좋은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까. 다른 것 바꾸지 마세요. 말 바꾸세요.
행복의 말을 바꾸세요. 사랑의 말로 바꾸세요. 감사의 말로 바꾸세요. 그러면 가정은 바꾸어 질줄 믿습니다.
말은 온갖 우리에게 오는 저주를 물리치고, 질병도 물리칩니다. 성경에 수많은 기적이 우리의 믿음의 말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역사 하셨습니다. 사탄도 말로 물리칩니다. 하나님의 모든 기적이 말이 실어다 주는 거예요. 내 말하는 대로, 내 믿음대로, 우리의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로써 말 잘하는 사람은 누굴까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과 祈禱와 聖靈은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좋은 말을 하려고 해도 믿음이 없는 사람은 좋은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또 믿음은 기도하지 않으면 생기지를 않아요, 성령이 역사 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성령이 역사 할 때 기도도 하게 되고, 성령이 역사 할 때, 믿음도 생기게 되고, 또 믿음이 있어야 성령이 역사하고, 믿음이 있어야 기도도 하는 거예요. 또 기도하면 성령 받고, 믿음이 생기는 거예요. 어느 것이 먼저 인지 학자들도 찾아 내지 못하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내가 성령이 역사해서 믿었느냐. 믿고 난 다음에 성령이 역사 했느냐. 어느 것이 먼저 인지 많은 학자들이 견해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이 세 가지가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두 가지가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기도해 봐요. 믿음도 생기고, 말이 달라져요. 새벽 기도 왜 나와요. 말 달라지려고, 말 바꾸면, 바뀌어 지는 거예요 할렐루야!
믿음의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榮華롭게 해요. 讚頌을 통해서? 찬송도 말이잖아요. 祈禱도 말입니다. 전부 말이지요.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신앙을 가지고 말을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른 것 볼 것이 없습니다. 말하는 것 들어보시고 은혜 주십니다.
말은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하는 대로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다고 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어요. 원망, 불평하는 사람 땅이 입을 벌리든지 독사가 와서 물든지 전부가 그 들을 파괴하는 일에 자연들이 일어나 그들의 길을 막았어요. 믿음의 말은 남에게도 유익을 줍니다. 좋은 믿음의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나아만이 문둥병이 들었을 때 누가 나아만을 고쳤어요. 옆에 소녀가 믿음의 말을 합니다. 우리나라에 가면 고칠 수 있습니다. 주인님, 우리나라에 가서 선지자를 찾아가면 나을 수 있습니다. 마 8장에 보면 종을 살린 백부장이 있는데 "주여, 내 종을 고쳐 주세요.". 말씀 한 마디로 내 종을 고쳐 주세요. 우리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합니다. 말씀만 하세요. 주님이 그 종을 고쳐 주셨어요. 믿음이 있는 말을 하는 분이 곁에 있으면 남편도 덕보고 아내도 덕보고 주인도 덕보고 종에 덕도 보고 그런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은 친구도 덕이요, 모두에게 덕인 것입니다.
루터도 그 아내가 믿음이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고 시험이 들어서 患亂을 당하면서 문을 걸어 잠그고 밥도 먹지 않고 있으니까 하루는 루터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고 소리 내어 울고 있었어요. 그 통곡 소리에 루터가 문을 열고 누가 죽었느냐고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으니까 아내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돌아 가셔서 웁니다. 루터가 당신 정신이 나갔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돌아가실 수가 있어요? 살아 계신 하나님,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어떻게 돌아가시냐고, 그때 그 부인이 루터를 향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당신이 그렇게 낙심할 수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루터가 힘을 얻어서 종교개혁을 성공하고 잘 살았대요. 우리도 부인들이 남편 어려울 때, 용기 주는 부인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 있는 부인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천국의 寶貨는 입술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입에서 나오는 대로 됨을 믿고 이제는 부정적인 말을 쓰지 말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말을 하고 덕이 되는 말, 힘이 되는 말을 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는 대로 되게 하십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