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지난 2003년 경주 양동마을 경주손씨(慶州孫氏) 종가 고문서 뭉치에서 발견된 '지정조격'(至正條格)은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원대(元代) 법전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국내외 관련 학계는 흥분했다.
일본의 저명한
동양학 연구센터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는 영인본 출간을 제의했으며, 몽고사 전공 국내 A대학 B교수는 "자료 좀 보자"며 각 요로를 동원해 집요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법전 발견자이자 위탁관리기관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을 한동안 궁지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중연은 "보존처리 중이라 공개가 곤란하며, 나아가 국내에서도 충분히 연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외국이나 외부에 먼저 자료를 공개할 수는 없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몽고사 전공자들인
김호동(서울대), 이개석(
경북대) 교수와 자료 발굴자이자 고문서 전공인 안승준 한중연 전문위원 등으로 지정조격 연구팀을 꾸려 교주본(校注本)과 영인본 발간 작업에 박차를 가해 왔다.
몽고사의 본토격이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사라진 세계 유일의 원대 법전 지정조격이 마침내 원문을 교감하고 각종 해설을 가한 교주본과 더불어 영인본이 동시에 최근 발간됐다. 출판은 도서출판
휴머니스트가 맡았다.
지정조격은 원나라 순제(順帝) 지정(至正) 6년, 고려 충목왕(忠穆王) 2년인 서기 1346년에 완성된 법전이다. 지정조격이란 명칭은 편찬된 시대가 '지정'이란 연호를 사용하던 시기이며, 각종 성문법과 불문법 조항들을 모으고 배열했다는 뜻에서 나왔다.
성문법이란 역대 제왕이 수시로 내린 교지(敎旨) 등으로 구성되는 반면, 불문법은 몽고 특유의 관습률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형사법이라 할 수 있는 단례(斷例)와 일반법률인 조격(條格)으로 대별되며 완질본은 각각 2책씩 총 4책이었다고 추정된다.
원본 완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2책으로 구성된 경주손씨 종가 소장 지정조격 또한 완전한 원본인지, 원본 중 일부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안승준 전문위원은 "조선왕조 초기인 세종 시대에 이를 조선적인 풍토에 맞게 재편집한 결과물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말했다.
지정조격은 원 왕조가 몽고 관습률과 중국의 율령(律令)을 세계국가의 율령에 맞게 재정비해
세조 28년(1291)에 반포한 법률인 지원신격(至元新格)이 뿌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 지원신격은 같은 원대 순제 4년(1338)에
대원통제(大元通制)라는 새로운 법률로 개정 보완되고 이것이 다시 개정된 법률이 지정조격이라는 것이다.
완본은 사라졌으나 각종 기록을 종합할 때 지정조격 원본은 조제(詔制.황제의 명령 등)가 150조(條), 조격(條格)이 1천700조, 단례(斷例)가 1천59조로 구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안 위원은 지정조격이 고려말에 도입되었다가 조선왕조에서 들어와서도 각종 예제(특히 외교문서 작성) 혹은 형사법을 만드는 데 참고자료가 되었으며 특히 세종은 재위 5년에 승문원(承文院)에 명해 지정조격 50부를 인쇄해 배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교주본에는 지정조격 연구논문 4편이 수록됐다.
한편 교주본과 영인본 발간을 기념해 16-17일 한중연에서는 국내외 관련 학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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