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귀신 잡는 해병
요즘 장마 현상이 심상치 않다지만, 기습적이고 국지적인 폭우 등 예전에도 장맛비는 늘 예상 밖이었다. 엊그제 내린 엄청난 양의 비가 경기 북부 지역과 강화도 인근에 내렸다는 뉴스를 듣고 옛 기억이 떠올랐다. 특히 김포시 월곶면에 쏟아진 물 폭탄 소식에 눈길이 쏠렸다. 여러 해 그냥 지나갔던 문수산성교회 지하실에도 물이 종아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도서관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보니 비 피해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다.
월곶면 포내리는 지명에 담긴 ‘월곶’(月串)과 ‘포내’(浦內)란 이름에서 보듯 한강 하구의 바다와 잇닿아 있는 곳인데, 김포 반도와 강화섬 사이 바다를 염하(鹽河)라고 부른다. 자연조건이 큰비가 내리면 쉽게 바다로 흘러 내려갈 수 있지만, 행여 조수의 차가 커서 자칫 물길이 막힐 수도 있었다. 물론 그동안 경지정리와 수리시설의 확장으로 여간해서는 포내 들판이 물에 잠길 일은 없을 것이다.
1986년만 해도 사정은 완전히 달랐다. 그렇게 엄청난 양의 비는 난생처음이었다. 오죽하면 23만 평에 달하는 포내 들이 바다처럼 물에 잠겼다. 여러 날 계속된 홍수로 동네 사람들은 애를 태웠다. 한층 자란 모들은 한동안 숨을 쉬지 못하였는데, 바라보는 사람들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강화도를 향해 통진휴게소를 넘어온 차들은 너무 가까워진 바다 풍경에 놀랐을 것이다. 평소 해안선에서 밤새 근무하던 졸린 해병들은 어디로 대피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여름 행사 중인 문수산성교회는 전날 오후, 월곶면 쇄암리로 1박 2일 하룻밤 야영을 떠났다. 지금 생각하면 스무 명 남짓 아이들을 데리고 어떤 교통편으로 그 산골로 갔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38년 전에는 자가 교통수단이 전혀 없었다. 늘 그랬듯 경운기 여러 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줄줄이 쇄암리로 간 배경에는 오래 전 고인이 되신 신 장로님 부부의 초대가 있었다. 동그란 바가지 모양의 야산에 온통 향나무를 키운, 당시로는 고급 정원수 농장인 셈이다.
깨끗하게 정리된 향나무 사이를 걷는 일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동산 아래 녘에 장로님 댁이 있어 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루 프로그램을 기분좋게 마치고, 선생님과 아이들 그리고 밥을 해주러 올라온 엄마들이 모두 천막에서 곤히 잠들었다.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빛났다. 이제 돌아보니 지금과 전혀 비교 못할만큼 불편한 환경에서 용케 준비한 행사였구나 싶다.
한밤중이었다.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하늘을 쪼갠 듯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렸다. 모두 놀라 잠에서 깨어나 신나게 비 구경을 했다. 그것도 잠시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왔다. 더 이상 천막에서 잠을 자는 것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에 모두 짐을 천막에 두고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우산이 있을 리 없다. 천막을 쓰러뜨린 후 모두 서로 허리를 껴안고 차례차례 이동해 장로님 댁으로 피난하였다. 흠씬 비에 젖은 아이들은 세상모르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 후 문소리가 요란하더니 다급히 전도사를 찾았다. 선잠을 깨어 부랴사랴 현관으로 나서니 군인들이 웅성거렸다. 그들 뒤에는 우리 동네 부대에서 보았던 수륙양용차 여러 대가 시동을 켠 채 부르릉거렸다. 군인들은 교회가 있는 동네의 해병들이었다. 한밤중에 심상치 않은 장대비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야영 간 아이들을 염려하여 인근 해병부대에 긴급하게 요청하였고, 군인들이 우리를 구하려고 비상출동한 것이다.
참 놀라운 사건이었다. 군인들은 안전하게 대피한 우리를 보고 즉각 귀대했지만, 38년 전 뜻밖의 비상사태는 애틋한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군인이라면 경원시하던 군사독재 시절 일이지만, 그때도 안전과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었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다음 날, 비가 그친 오후, 마을로 돌아오니 길 건너 포내리 벌판은 흙탕물로 그득하였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듯 해맑게 푸르렀다.
이런저런 뉴스에 뒤섞여 해마다 반복되는 장맛비, 물 폭탄, 안전사고 그리고 1년 전 내성천에서 희생된 해병대원 사건 소식이 쟁쟁하다. 문수산성교회 주일예배 오던 해병들은 평소 포내리 논둑길을 따라 걸어서 왔다. 아주 앳띤 얼굴들은 예배 시간에 졸기 일쑤였지만, 국수 한 그릇에도 몹시 반가워하던 순진한 젊은이들이었다. 오죽하면 30여 년 만에 색동교회로 찾아온 옛 해병이 두 사람이나 된다. 의리를 챙기며 살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추억을 좋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 채수근, 선량한 부모의 든든한 외아들인 이 젊은이를 어찌하면 좋으랴. 요즘 돌아가는 사태를 무심히 지나칠 수는 없었다. 권력을 쥔 이들이든, 귀신 잡는 해병이든 그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