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한국(부여)을 정통으로 계승한 고구려
고구려의 장식에 많이 등장하는 삼족오
광개토태왕비문을 보면 고구려인들은 스스로 맥인이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있었다. 맥족은 중국 동북방에 분포한 수렵민으로 훗날 예족과 함께 만주의 여러 국가들의 등장에 참여한것 같다.
기원전 37년 북부여 출신의 주몽(=추모왕)이 졸본을 중심으로 건국하였다. 그의 건국설화는 동한 초엽의 왕충이 지은 《논형》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중국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광개토태왕비문에 기록된 17세손 광개토태왕 부분은 고추모에서 광개토태왕까지 13세손임이 분명하다면 고추모이전까지 고구려역사는 올라가게 된다. 즉, 광개토태왕비문에서 고구려의 기원을 북부여로 설정한바, 북부여 해모수까지 올라가야 광개토태왕까지 17세손이 정확이 맞다. 따라서 고구려는 시조를 해모수로 삼았고, 추모왕을 국조로 삼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의 역사는 고추모 이전의 200년을 합하여 900년이 되는 것이다. 기원전에 동부여에서 탈출한 고추모가 환인을 수도로 삼고 있던 부여(골본부여)로 망명하여 소서노 공주와 혼인하고 후계자가 되어 부여 단군천왕에 즉위한 후에 국호를 단군한국시대의 봉후국이였던 선조나라인 고리(고려=고구려)로 바꾸고 지금의 오녀산성을 수도성으로 삼았다.
당시 서쪽에는 번한국 땅을 강탈한 지나국의 한군현이 버티고 있는 고로 쉽사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크고 작은 충돌만 반복하는 대신 동쪽으로 쭉쭉 뻗어 나가 당시 동부여 지역인 현재의 간도 일대와 함경도 일대를 일찍이 장악한다. 태조왕 시기에 잠시 회복했던 요서지역의 전한군현이 모용선비족에 의해 장악되는 4세기 초 미천왕대에 이르러서는 후한의 군현인 낙랑군과 대방군을 몰아내고 현재의 북한 지역을 완전히 장악. 5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후연을 몰아내며 요동까지 장악한다. 또한 백제를 몰아내며 현재의 충청도 중원 일대까지 진출하고 신라에 침입한 왜구를 몰아내며 신라를 100여년간 속국화한다.
나당연합군의 공격과 연개소문의 자식들의 권력내분으로 멸망한 고구려는 고구려인 대조영에 의해 대진국 발해로 계승되고, 고구려를 회복하겠다는 왕건의 고려가 세워지고, 고려와 무역했던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오늘날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국제적 국호의 근거가 된다. 아무튼 이러한 고구려의 성장에 자극받은 징기즈칸의 선조인 말갈(말골=몽골)족이 힘을 모아 고구려를 견제하나 6세기 중반에 이르러 고구려에 의해 무너지고, 훗날 말갈족은 고구려의 후계국인 대진국 발해를 건국하는 기반이 되고, 초원을 통합하여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징기즈칸을 배출하게 된다. 고구려는 요동을 장악한 국가인 만큼 서쪽의 선비족과 거란족도 통제하여 용병집단으로 활용했다. 오나라 왕인 손권이 고구려를 보고 선우(초원민족의 상국)라고 치켜 세운 배경이다.
한국어고구려(高句麗)
지나어가오리(高麗)
일본어코쿠리(高句麗)
티베트어케우리(Ke'u-li)
페르시아어모크란(Mokraan)
터키어뵈클리(Bökli)
그리스어모클리(mokli)
산스크리트어무크리(Mukuri)
희한하게도 동아시아쪽 언어들은 발음이 '고구려'와 비슷하고 서역쪽 언어들은 '말갈'과 비슷하다. 모크란,뵈클리,모클리의 원음을 '맥구려'로 추정하는게 일반적이고 이를 바탕으로 고구려로 보는게 통설이다. 당나라때 편찬된 <범어잡명>에 의하면 고구려는 범어(산스크리트어)로 Mukuri라 하고, 한자로는 무구리(畝俱理)라 명시해놨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더라도, 모크란,뵈클리,모클리는 고구려가 맞을 가능성이 높다.
티베트는 서역에 위치했지만 '고구려'와 발음이 비슷한데 이는 티베트인들이 고구려를 케우리라고 불렀다기 보다는 중국어 발음이 티베트에 전해저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때의 중국어 발음은 현대 중국어 발음인 가우리가 아니다. 참고로 Baxter-Sagart가 재구성한 발음에 의하면 커카우(cə.kˤaw) 르에(rˤe)다. 이외에도 다른 재구성 방식도 있는데, 중국고대발음은 현대중국어발음과 많이 다르다.
초기에는 국명이 매우 여러가지로 나타나서, 高離(고리), 高駒驪(고구려), 句麗(구려), 駒驪(구려) 등으로 서사되었는데 주로 고구려의 빈도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장수왕 때 고려(高麗)로 고정되어 멸망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고구려의 기원과 관련되어 졸본부여나 맥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왕망의 듣보잡흑역사[12]라에서는 왕망이 흉노를 토벌하기 위해 고구려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고구려가 무시한 것에 분노해서 고구려를 하구려라고 불렀다고 하는건데 여기서 말하는 고구려는 고구려현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麗(려) 자가 나라 이름으로 사용될 때는 '리'라고 읽힌다는 점을 들어 고구려를 고구리, 고려를 고리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고구려가 최초로 음차표기된 단어인 高離(고리)의 離(리)는 음차표기 되었던 전한시대 당시에는 rje(례)에 가까운 발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보여주는 예로 '한서'에서는 '알렉산드리아'가 烏弋山離(아익산리)라고 적혀 있다. ria를 離로 적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래서 고구려인들이 자신을 뭐라고 불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단은 고려시대 후기, 조선시대에도 고려라고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한자음은 중국 중고음과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이 한자음은 수,당 무렵에 불렀던 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구려발해학회에서 발표했던 서길수 교수의 高句麗 소리값 연구. 이 연구에 따르면 高句의 소리값은 '고구'가 맞지만 麗의 소리값은 '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중국의 경우. 중국에서는 '려'를 '리' 라고 발음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까지 '리' 라고 발음하진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려' 라고 발음한다. 중국발음이 어떻던간에 고구려는 우리 역사이니 고구려라고 부르자. 고구리가 아니라 고구려라니까! '麗'는 대체로 중고음에서는 '려'에 가까웠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이다. 발음이야 당연히 현재에 재구하기 힘들지만, 그냥 한자 공식표기는 몇몇 금석문에 남아있다. 가령 5세기 장수왕대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원고구려비에는 고려라는 두글자가 떡하니 박혀있고, 고구려 땅이였던 요녕성 의현에서 발굴된 불상에는 대고구려라는 명칭이 적혀 있다.
이 불상은 아직 시기나 국적 등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게 없는고로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고구려가 세워지기 전이나 망한 후에 대고려도 아니고 대고구려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도 않았을테니 고구려 시기에 쓰인 불상임은 확실해 보이고 대고구려는 고구려에서 만든 불상으로 보는게 자연스럽다. 고추모가 단군한국을 모두 회복하겠다는 다물을 국시로 삼은 고구려는 광개토태왕에서 손자되는 문자태왕 시기가 최강성기라고 할 수가 있는데, 당시 고구려를 대적할 나라가 없어 고구려의 제후국에 불과했던 북위 역사서인 [위사]에서 고구려를 사해의 상장, 즉 세계의 중심국가라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고구려 신성지역의 철생산지는 세계 최다의 매장지로서 세계 최강의 찰갑 기마군을 탄생시킨 기반이 된다. 찰갑 기마군으로 무장한 광개토태왕은 고구려를 침략하여 선대인 고국원왕을 죽이고, 미천왕의 시신까지 도굴해 가고, 고구려 왕후와 5만의 백성을 끌고간 모용선비(후연)와 백제(왜 포함)를 궤멸시키고 굴복시켰다.
초원길과 초원무역을 장악하기 위하여 북위를 제압하고 감숙성 지역의 토욕을 정벌하였다. 북위 수도에 고구려 54만을 이주시켜 북위를 인구수로 제압하여 북위가 수도를 남부로 천도할 정도였다, 초원무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광개토태왕의 국가전략이였다.
39세에 붕어했다고 하는데, 아들 장수왕이 100세까지 살았다고 할 때 39세 붕어는 받아 들일 수가 없는 내용이다. 고구려 400년 황도인 집안 국내성의 태왕릉은 그래서 가묘라고 본다. 백제.예인으로 구성된 300명으로 묘를 지키게 했다면 묘의 비밀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신은 안치하지 않고 유물만 넣은 가묘이기 때문에 무덤을 단단히 지키라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장수왕에게 왕위를 물려 준 광개토태왕은 북위수도에 이주시킨 54만 중에서 지원자로 구성된 기마군으로 서진하여 유럽에 나타났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광개토태왕의 이름(안=아틸라)과 동일하며 동시대 인물인 한(훈)민족의 위대한 왕인 아틸라다. 아틸라는 로마제국을 굴복시키고, 연회 중에 급사하였는데, 아틸라 무덤에 안장된 유물은 찰갑. 철검이였다. 아틸라 백성들은 한민족의 위대한 임금이라고 장송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한다. 한민족의 위대한 임금이 아틸라 백성들에게 광개토태왕 말고 누가 있다는 말인가? 아틸라 사후 한민족 고구려족은 한-고리라는 국가를 세웠는데, 지금의 헝가리다. 헝가리는 한고리로 한민족 고구려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