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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카트만두 계곡에는 푸른 호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바시불이 이곳에 내려와 나가르준 언덕에 자리를 잡은 후, 그곳의 아름다움과 고요함 속에서 명상을 했습니다. 그는 석가모니 이전에 출현한 일곱 명의 부처 중 첫 번째였습니다.
명상 후 흡족해진 그는 호수 속에 연꽃 씨앗을 심었고, 6개월 뒤 보름달이 뜨던 날 연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호수에 피어난 이 기적의 연꽃은 계곡을 가득 채울 정도로 찬란한 빛을 내뿜었고, ‘스스로 창조된 존재’라는 뜻을 지닌 스와얌부 언덕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이 눈부신 푸른빛이 하늘로 올라가자 멀리 티베트에서 이를 본 문수보살이 무슨 일인지를 살펴보려고 카트만두로 향했습니다. 나가르코트 언덕 위에서 잠시 멈춰 선 문수보살은 연꽃을 보면서 사흘 밤낮을 명상에 들었고, 이 연꽃을 좀 더 가까이 경배하기 위해 계곡 남쪽의 가장자리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초바르 계곡을 지혜의 칼로 한 번 내리치니, 물이 빠지면서 현재의 카트만두 분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뒤 연꽃이 있던 자리는 스와얌부 언덕이 되었고, 이곳에 문수보살은 사원을 지었습니다.
저희 동네에 새로 생긴 과학도서관에서 큐리어스 시리즈 ‘네팔’ 편을 찾아봤습니다. 존 버뱅크라는 사람이 정리한 카트만두의 전설이예요.(네팔 p.22-23, 존 버뱅크, 휘슬러 2005) 아마 문수보살이 지은 그 사원이 스와얌부나트겠지요. 오른 손에는 일체 번뇌와 무명을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지혜의 칼을 들고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든 문수보살, 용맹과 위엄을 상징하는 사자를 탄 문수보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지난 여름 오대산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면 문수보살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들을 더욱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불교를 알면서, 관세음보살은 늘 제 마음에 따뜻하게 일렁이는 불빛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수보살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문수법공양회’에서 푸른 보자기에 싼 책 선물을 받은 날, 얼마나 기뻤던지요.
‘문수선원’의 푸른 글자들을 사진으로 보고, 제가 호주에서 사온 푸른 물고기 목걸이를 화장대 서랍에서 찾아서 며칠간 목에 걸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곧 잊었는데 책에서 다시 카트만두와 문수보살의 이야기를 들으니, 문수보살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내친김에 ‘문수’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니 큰스님의 명구 선집 ‘진흙소가 물위를 걸어간다’ 116쪽에 문수보살의 시자인 균제동자의 게송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얼굴에 화가 없는 그것이 공양이요
입에 화가 없으면 미묘한 향기를 토한다.
마음에 화가 없는 것이 귀한 보배요,
때도 없고 오염도 없는 이것이 참되고 영원한 것일세.
이 게송은 제가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중학교 때, 무진장 떨리는 마음으로 받았던 새해 카드 속의 바로 그 구절이었습니다. 카드에 생략된 다음 구절은 ‘깨끗이 티가 없는 진실한 그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이겠지요.
친구 어머니를 따라 산사에 갔다가 그곳에서 정진하시던 스님의 편지 심부름을 하고 심부름 잘 했다고 보고편지를 썼었습니다. 그리고 한 참을 지났을 때 답장이 왔었지요.
그 후 다음해 첫 번째 받은 새해 카드였습니다.
제가 며칠동안 서울 친척집에 갔다가 왔더니 책상위에 눈처럼 하얀 연하장이 있었습니다. 한겨울의 싸한 바람과 예쁜 카드와 멋진 글씨, 그리고 방안의 따뜻함.
저는 이 글귀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새해는 이렇게 살겠다는 각오로 그 문구를 일기장에 베껴 적었습니다. 그런데 공양구가 어쩐지 ‘공양이구요’중에 이자가 빠진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봤지만 공양구라는 불교 용어가 나올 리가 없지요. 그 때 살짝 실망했던 마음과 그래도 한편 노트에는 카드에 있던 원문을 만년필로 그대로 적고 ‘양’과 ‘구’ 사이에 브이(v)표시를 하고 ‘이’라고 연필로 슬쩍 적어 넣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구요 부드러운 말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항주의 무착 문희 선사가 소를 모는 노인으로 화신한 문수보살에게서 차와 소락을 대접받아 실컷 문답을 해놓고도 노인이 문수보살인 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일화는 사실은 저와 같이 까마득한 이에게 위안을 줍니다. 더구나 문수보살의 시자인 균제동자가 매정하게 그를 저버리지 않고 이렇게 따뜻한 게송을 설해주었다는 것은 크나큰 위로입니다.
이 문수보살이 네팔의 전설 속에는 티베트에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흥미롭습니다.
티베트와 인도사이에 네팔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제 중국이라고 해야겠지만, 티베트를 중국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아픕니다. 어쨌든 네팔의 문화는 수많은 소수 부족의 문화가 있고, 그중에 히말라야를 넘어온 티베트 계통의 몽골문화와 남방에서 온 인도계통의 아리안 문화가 많은 퍼센테이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가 살고 있던 원래의 터에서 강제로 쫓겨나온 ‘침략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에 서로의 문화에 대해 배척하지 않고 잘 융합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존이고, 완전한 동화는 아니라고 합니다. 네팔에 수없이 많은 종족과 부족이 자기 나름의 문화를 가지고 지금까지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융합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정면대결보다는 ‘인내심’을 발휘한 결과라고 ‘네팔’이라는 책에는 나와 있습니다. ‘평화’를 유지하되 ‘동화’되지는 않기에 네팔의 문화는 다양합니다.
스와얌부나트를 참배하고 우리는 네팔 국립 박물관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박물관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맞은편의 군사박물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전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야크존(trek.pe.kr)
보드나트 불탑
탑은 원래 성스러운 유품을 보관하는 집으로 또는 불교의 신앙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지어졌다. 탑 안은 비어있지 않다.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도 한다.
탑의 기단부는 땅을 상징하는 만달라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만달라 위 4층에 있는 돔은 물을 상징한다. 그리고 뽀죡한 탑은 불을, 우산(산개)은 공기를, 맨 위의 첨탑은 에테르(에너지)를 상징한다. 뾰족탑의 사면에는 사방을 응시하는 붓다의 눈이 있다. 두 눈 사이 약간 위에는 제3의 눈이 있다. 그리고 '코'는 코가 아니라 네팔 숫자 1로 모든 존재의 하나됨을 의미한다. 뾰족탑은 13층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열반에 이르는 13단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불탑의 둘레에는 108위의 선정에 잠긴 아미타부처님이 있다. 또 불탑 아래 전체 둘레에는 147개의 감실이 있는데 그곳에는 영원한 만트라 <옴마니밧메훔>이 새겨져 있는 4~5개의 마니차(기원 바퀴)가 들어 있다. 불탑의 북쪽에는 천연두의 여신인 아지마(Ajima)가 봉안된 작은 신전이 있다.
야크존(trek.pe.kr), buddhaeye의 2003 룸비니 순례中 부록
멀리서도 하얗게 빛나는 둥근 탑, 그리고 어디서나 또렷이 보이는 부처님의 눈! 봉고차가 보드나트 앞에 당도하자 마음이 설레입니다. 이곳은 차가 북적거리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시내의 한복판이고, 평지입니다.
티베트가 중국에게 침략을 당했을 때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네팔로 이주를 해왔고, 고산지대에 터를 잡은 사람도 있었지만 카트만두에 터를 잡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카트만두에 이주해 준 티베트 사람들은 여기 보드나트 큰 탑을 중심으로 촌락을 이루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쫓겨나온 티베트 사람들에게 이 거대한 탑과 부처님의 눈은 언제나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탑이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5세기일 거라는 자료도 있고, 7세기이후일 거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네팔에서 가장 높으며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탑들 중에 하나라는 이 보드나트의 뜻은 ‘깨달음의 사찰’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네팔과 라싸를 잇는 무역로의 관문이어서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꼭 이 탑에 와서 참배를 한다고 합니다. 트레킹을 하러온 여행자들 역시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우리 트레킹이 성공할지 안할지 오늘 기도한 거에 달렸으니까 각자 기도 잘 하고 오세요.’
대원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탑 아래 티베트 사람들이 운영하는 기념품 가게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티베트산 돌로 만들었다는 염주를 하나 골랐습니다. 활기찬 티베트 아주머니가 연신 구슬을 꿰며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해주고 물건을 팝니다. 티베트 아주머니들은 언제 어디서나 활기가 넘칩니다.
나중에 책에서 읽으니, 여성을 억압하는 힌두교에 비해 티베트계통의 불교에서는 여성의 발언권이 강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초록과 검정이 섞인 멋진 염주를 하나 손목에 차고 저도 마니차를 굴리며 저 거대한 탑주위를 도는데 꽤 오래 걸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작은 문으로 들어가니, 한 아주머니가 열심히 흥정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일인가 봤더니, 말을 못알아 들어도, 아주머니는 횟가루를 더 많이 담으려고 하고, 가루를 담는 사람은 그것을 조금 덜어보려고 옥신각신하는 것인 줄을 알겠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만족하는 수준에서 횟가루의 양이 낙찰되고, 그 광경을 빙그레 웃으며 보던 티베트 스님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지불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횟가루가 통속에 들어가 반죽이 되는 광경을 보면서 쾌활한 목소리로 빠른 이야기를 나눕니다.
만족한 두 사람이 제가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저는 문득 횟가루를 뜨는 사람에게 ‘텐루피?’하고 물었습니다. 그가 ‘오케이’하더니 플라스틱 바가지로 횟가루를 뜹니다. 제가 보기에 아주머니가 산 양보다 비용대비 총량이 많습니다. 외국인이라 그가 듬뿍 선심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땡큐’하자 가루는 통속에 들어가 아까 그 가루들과 섞였습니다.
저 역시 흡족한 마음으로 계단을 오르자 열심히 회반죽을 칠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아, 내가 산 횟가루가 여기 이렇게 탑의 한 귀퉁이를 하얗게 메우겠구나.’
새삼스럽게 대견하여 유심히 구경을 하였습니다.
너무나 진지하게 횟가루를 흥정하던 아주머니, 더군다나 그 돈을 자기가 지불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지만 그것이야말로 순수한 믿음이 아닐까, 탑 위에 올라서 탑 주위를 돌며 마니차를 돌리는 티베트 사람들을 보면서도 저는 그 생각에 골똘했습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유통되고 어떤 관계로 그 일이 진행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횟가루는 반죽이 되고, 그리고 그 큰 탑을 하얗게 칠할 것입니다. 그러면 멀리서도 탑은 희고 선명하게 빛날 것입니다.
아주머니와 티베트 스님은 그 가루를 산 것입니다. 그 양이 많던 적던 박시시를 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양이 많아야지만이 복을 더 많이 얻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아주머니는 조금이라도 횟가루를 더 얻고 싶었을 것입니다.
문득, 그런 믿음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손목에 찬 백루피짜리 염주를 한 번 더 들여다 보았습니다. 모두를 위해 쓰여진 10루피와 저 자신을 위해 쓰여진 100루피와.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우리는 큰 탑 아래 작은 절을 찾아서 거기에 각자 100루피씩의 도네이션을 했습니다. 그렇게 보시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사람이 부처님이다 그 외에는 없다’ 그토록 고통스럽던 저의 억센 무지는 이제 이 단순한 믿음으로 모두가 다 해결될 수 있음을 알았을 때 저는 얼마나 후련했는지요.
이제 더 이상은 두려울 것 없으며 깊은 믿음과 행이 필요할 뿐이지만, 그래도 어쩐지 그 아름다운 보드나트 탑 어느 한 귀퉁이가 연하장 한 장 만큼이라도 제가 사서 공양한 횟가루로 하얗게 빛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마음이 환해집니다.
또 한편 <관삼륜청정(觀三輪淸淨)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물건도 본래 공하다고 보는 것이 수행자의 인식>임을 이제 저도 들어 알지만, 횟가루를 흥정하던 티베트 아주머니의 순정한 믿음은 기억선반에 오래 두고 꺼내보고 싶습니다. (계속)
첫댓글 아침에 컴을 열자 이런 훌륭한 법공양이... 며칠 기다렸던 보람이상입니다.
그렇군요,,, 慧明華 보살님이 아주 참 훌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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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가고 싶다. 그처럼 느끼고 나도 텐루피 어치의 횟가루를 사고 그리고 바르고 싶다 나도... _()()()_
慧明華 이름처럼 아름다운 마음씨, 그리고 글귀입니다. 보살님, 고마와요..^^* _()()()_
여행후기에 언제 다음 이야기 올라오나 기다리더라구요 제가...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보는 것... 혜명화님의 마음이 보는 것을 저도 같이 느낄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_()()()_
慧明華님 아주 잘 읽었습니다. _()()()_
慧明華님, 정말 대단해요^^* 잘보고 느끼고 갑니다._()()()_
慧明華님, 글을 통해...마음만큼 본다는 거^^
또 한번 느끼고,칭창 열차타고 티벳으로 가는 상상도 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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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간이었어요.고마워요,또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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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 혜명화님...숨소리가 잦아들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_()()()_
잼나게 잘봣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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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명화님 _()_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정리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혜명화님 덕분에 알찬 공부를 편히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감사~~_()_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지를 잘 보여 주는군요..내가 보고 느낀 그대로의 慧明華 님! 여행 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_()()()_
상세한 설명과 사진 고맙습니다.마음먹은걸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이 부럽습니다._()()()_
여행으로 얻는 기쁨을 나누어 주는 慧明華님 고맙습니다.^^*
慧明華님! 고맙습니다..._()()()_
함께 데려가 주심에 감사를 ...^^*
여행의 소중함을 함께 나눠 주시니 참으로 고맙습니다._()()()_
보드나드 탑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정말이지 네팔은 자신만의 독특한 향기를 제대로 지니고 또 뿜어내는 것 같습니다. 글솜씨가 좋으신 혜명화님의 여행기를 읽으니 사진 속의 인물들이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나올 것 같습니다. ^^ 티벳의 횟가루 이야기도 재미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