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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이 경숙아버지] 01 - 낙동강 조절구가 니 아부지라꼬?
S# 1. 시골 장터, 찐빵 좌판 앞(1950년 6월/ 낮)
좌판 앞에 놓인 걸상을 차지하고 앉은 경숙(경미 업은)과 은비, 꿀꺽 군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가운데
나란히 앉은 만근이 양손에 찐빵을 쥐고 허겁지겁 먹고 있다.
어디선가 모여든 아이들 서넛, 만근의 턱 밑에 앉아 역시 군침을 흘리고...
경숙과 은비는 물론, 아이들마다 꿀꺽! 꼬르륵~ 합주곡을 울려대지만,
아랑곳없이 먹어대는 만근.
어느새 그릇에는 찐빵이 달랑 하나 남았다.
초조해진 은비, 슬그머니 손을 뻗어 찐빵을 집으려는데
경숙 (찰싹 손등을 때리며) 어데?! (아이들에게) 느그들도 침 좀 고마 흘리고 절로 가라마, 걸기적대지 말고! 퍼뜩 절로 안 가나?!
아이1 (일어나며 툴툴) 구경도 몬하나... 아니꼽구로...
아이2 배나 빵 터져 디져뿌라!
경숙 (불끈 일어나며) 머라꼬? 니야말로 배터지게 함 맞아볼래?!
아이들, 방구탄 뿜는 시늉을 해대며 도망가고
은비 언니야... 내도 딱 한 입만 묵어보믄 안 되나?
경숙 (쥐어박듯) 쓰흡~ 가스나! 내가 돈 감촤놓고 만근이만 사주는 기가? 내도 꾹꾹 참고 있는데...
은비 (시무룩)
경숙 (달래듯) 야가 오늘 천하장사만 돼바라, 쌀이 한가마이다! 그라믄 이깟 찐빵이 문제가. 맨날 흰 쌀밥에, 떡 해묵고, 쌀튀밥도 해묵고, 오만가지 다 해묵을 수 있다 아이가.
은비 그그는 그기고 이그는 이거제... (다시 군침 꼴깍) 맛있나, 오빠야?
만근 (우적우적 먹으며 끄덕이고) 내는 지금 칵 죽어도 원이 엄따.
경숙 (으름장으로) 죽기 전에 쌀가마이는 꼭 타 놓고 가라이~! 안글캤다간 낙동강물에 팍 빠자삘끼다.
만근 (상관없이 천연스레) 한 개만 더 묵으면 안 되나?
경숙 또오~? (못 마땅하지만) 한 개만 더 묵으면 학실히 이기는 기가?
만근 아이다, 두 개! 세 개!
경숙 (못마땅하지만 돈주머니 슬쩍 열어보고... 걱정스럽지만 짐짓 호기롭게) 아주무이 여 세 개만 더 주이소. (만근에게) 니 내 이 찐빵, 우예 번 돈으로 사주는 긴지 알제? 맨날천날 쌔빠지게 산으로 들로 돌아댕기믄서 나물 뜯어다 판 돈이다. 아침에 니도 봤제? 밥 구경 한 기 언젠지 모른다꼬, 할무이가 우리어무일 을매나 달달 볶아대드노. 그케도 내가 꽁꽁 숨콰놓고 안내놨던 돈이라 말이다.
만근 (새로 받은 찐빵 먹으며 성가신 듯) 다 아는 얘기 와 자꾸 하는데?
경숙 (다짐하듯) 이따 니 일등해서 쌀 한가마이 타믄, 학실하게 식구 수대로 논구는기대이. (손가락으로 꼽으며) 우리 집은 할무이, 아부지, 어무이, 내, 글고 (등에 업은) 경미 야까지 다섯이니끼네, 오! 느그 집은 아제캉 니캉 둘뿐이끼네, 이!
만근 내는 원래 묵을 때는 두 몫이다. 그카고 니 할무이 껀 와 챙기노? 좋아하지도 않으문서.
경숙 글타고 우리 묵을 때 할무이는 손꾸락 빨고 있으라 말이가?
은비 내는?
만근 은비 니는 머 한 게 있는데?
경숙 사내자슥이 의리 없이... 친구 아이가! 그라믄 좋다. 니 두 몫하고, 야는 기냥 하나만 쳐서, 5대 3대 1! 됐나? 니 냉중에 딴말하믄 죽는대이.
진빵댁 야들이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시고 있네. 씨름대회 일등이 아무나 하는 중 아나?
경숙 모르는 소리 하지 마이소. 야가 이케도 전번 대회 때 이등 묵었다 아입이꺼. 그날 아침에 밥만 한 그릇 묵었어도 일등했을끼라예.
때마침 장터 저편에서 씨름대회를 알리는 풍물소리가 들려온다.
(이하 소리 계속되며)
경숙 야야야 시작하는 갑다. 니들 퍼뜩 가서 맨 앞자리 잡그라.
남은 찐빵을 챙겨든 만근과 은비, 달려가고
장보던 사람들도 너도나도 구경하러 몰려가는데
슬그머니 돈주머니 열어보며 새삼 걱정스런 경숙, 엉덩이를 들썩이며 내다보는 찐빵댁의 눈치를 살피다
경숙 아주무이, 여 있어예. (돈 주고, 나름 애교로) 쪼매 모자랄끼라예. 깍아주이소.
찐빵댁 머라카노? 이기 얼만데? (돈 헤아리고)
경숙 (마음이 급해 씨름판 쪽 보는)
찐빵댁 한두 푼도 아이고 5원이나 깍아달라꼬? 택도 없데이!
경숙 그라지말고 쫌 봐주이소. 그거 뺏끼없어예.
찐빵댁 다 묵고 이제 와서 배 째라 말이가? 돈도 없으믄서 와 자꾸 먹어댔노? 쪼매난 게 순 배짱이네.
경숙 배짱이 아이고예, 정 그카마 우리 만근이가 쌀가마 타믄 그때 주께예.
찐빵댁 고목남구에 꽃피길 바래라!
경숙 (못마땅해) 길고 짧은 거는 대봐야 알지예. (기분상해 되레 불퉁) 그라마 우얍니꺼, 갖고 있는 기 그거 뿌인데?
S# 2. 장터 씨름대회
상품으로 준비된 쌀가마니 보이며
시작을 알리는 꽹과리 소리, 빙 둘러앉은 구경꾼들의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심판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두 장정이 씨름을 시작하고.
한쪽에선 벌써부터 웃통을 벗어젖히고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장정들과 만근이 제각각 몸을 푼다.
만근의 웃옷을 깔아 경숙의 자리까지 잡아두고 맨 앞줄에 앉아 구경하던 은비, 경숙을 찾아 돌아보면
뒤에 둘러선 구경꾼들 틈에서 안 그래도 자리를 찾아 둘러보던 찐빵댁이 번쩍 손을 들어 알은체를 한다.
사람들 틈을 헤집으며 성큼 다가온 찐빵댁.
찐빵댁 내 앉으라꼬 이래 옷까지 깔아놨나? (철퍽 앉고) 하이고 자리 좋다~.
은비 ?
S# 3. 다시 찐빵 좌판 앞
씨름판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 이어지며
좌판을 지키고 앉은 경숙, 채반마다 먹음직스럽게 담긴 찐빵을 보며 꿀꺽 군침을 삼킨다.
주위 둘러보면,
상점을 지키는 장사꾼들 뿐, 다들 씨름을 보러 몰려가버린 장거리가 한산하다.
새삼 군침을 삼키는 경숙, 밀려오는 유혹과 싸우는데
성가시게 날아다니던 파리 한 마리가 찐빵 위에 앉는다.
얼른 부채로 내리치고 보면, 하얀 찐빵 위에 파리가 납작 붙어버렸다.
조심조심 손가락으로 죽은 파리를 떼어 내는 경숙.
그 바람에 빵껍질이 같이 떨어져 빵에 흠집이 생긴다.
경숙 우짜꼬? (꿀꺽 침 삼키고) ... 확 묵어뿌까? ...
흠집이 난 빵을 집어 드는 경숙.
그러나 차마 못 먹고 그것을 성한 빵 밑에 슬쩍 감춰둔다.
이를 칭찬이라도 하듯, 때마침 씨름판에서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들려온다.
얼른 일어나는 경숙, 궁금한 듯 목을 뺀 채 내다보고
S# 4. 씨름대회와 경숙 몽타주
-씨름하다 중요한 부분을 채인 장정이 아픈 데를 감싸 쥐고 절절매고, 상대는 난감, 구경꾼들 배꼽을 쥐며 웃고
-좌판을 뒤로 한 채 멀찍이 나와선 경숙, 그러나 불안해 오도 가도 못하고 양쪽을 번갈아 보며 애가 탄다.
-열세에 몰려있던 씨름꾼이 고난도 기술을 선보이며 역전승을 거두자, 구경꾼들의 환호와 탄성 엇갈리고
-간절히 승리를 기원하며 씨름판 쪽을 향해 연신 선절을 하는 경숙.
-씨름판으로 나와 서는 만근, 나이는 많지만 자기보다 빈약해 보이는 상대의 체구에 자신만만, 이리저리 목 꺾고 허리를 비트는 등 몸 풀고...
S# 5. 다시 찐빵 좌판
좌판을 멀찍이 뒤로 한 채 벽돌 위에 쪼그리고 앉은 경숙, 답답하고 초조해 두 발을 부딪쳐 털어대는데
은비 (E) 언니야~
경숙 (벌떡 일어나며 소리쳐) 우예 됐노? 이?나?
은비 (달려오며) 아이다!
경숙 (철렁 놀라 오만상으로) ?나?
은비 (와서 숨 헐떡이며) 오빠야는 인자 시작이대이. 안 볼 끼가?
경숙 (놀라 주먹퉁으로) 아이구 가스나~ (하다 순간 다급해져 힐끗 좌판 돌아보고) 은비 니 여 잠깐 지키고 있그라.
은비 (뜨악) 그라믄 내는?
경숙 니는 여태 봤잖아. 찐빵 단디 지키그라이. (뛰어가다) 아주무이가 ?갠지 다 시놨다카이까네, 니 절대 손대믄 안 된대이. (다시 가고)
은비 (부루퉁 좌판 보는)
S# 6. 씨름판
뒷줄에 둘러선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경숙, 보면
만근이 상대를 붙잡고 제법 힘을 쓰고 있다.
경숙 (소리쳐) 머째이 머째이, 만근이 머째이! 고마 칵 한 방에 끝내뿌라마! 쌀 타가 떡 해묵자!
구경꾼들 (여기저기서 웃음으로 덩달아) 만근이 머째이~ / 천하장사 만근~이~ / 떡 해묵자 만그~이~!
필 받아 힘쓰던 만근, 돌연 똥마려운 얼굴이 되는가싶더니... 아뿔싸~! 급기야 요란한 파열음을 뿜어낸다.
만근상대 으이? 니 똥쌌나? 아이구 냄~시~ (하며 코를 싸쥐자)
만근이 바지 뒤춤을 부여잡고 급히 내빼고,
구경꾼들은 요절복통, 경숙은 붉으락푸르락 열통 터진다.
S# 7. 개울가 언덕
만근의 윗도리를 앞뒤로 내두르며, (경미는 은비에게 떼놓고) 열나 씩씩 걸어오는 경숙.
경숙 얼빵한 놈! 똥싸개! 잡히기만 해봐, 똥통에 팍 빠자뿔끼다! (하다 보면)
언덕 밑 개울 가운데 발가벗은 아랫도리를 담그고 선 만근, 속상해 손등으로 눈물 훔치며 바지를 빤답시고 물 위에 퍽퍽 패대기를 치고 있다.
경숙, 냅다 쫓아내려가려다 참고
경숙 (허리에 손 올려 짚고 버티고 서서) 내 찐빵값 우얄 끼고?!
만근 (흠칫 보고, 할 말 없어 외면)
경숙 엥가이 묵지 돼지마냥 욕심낼 때 내 알아봤다. 힘내서 자빠뜨리라 캤더이만 누가 똥 싸는데 쓰라카드나. 일등 할 자신 있다고 큰소리 뻥뻥 치드만 꼴좋~다. 이제 동네 챙피시러버서 우째 다닐래? 인자부터 니는 똥싸개다, 똥싸개!
만근 (울컥) 내는 그라고 싶어 그란 줄 아나?! (속상해 다시 바지를 퍽퍽 패대기치다) 일등하믄 쌀가마 돈으로 바까서, 우리어무이 찾으러 갈라캤는데... 에이씨~ (눈물 뻑 쓴다)
경숙 도망간 어무이는 머하러 찾노?! (꽥 질러놓고, 안됐고 속상해 덩달아 찔끔 눈물 난다) 고뿔 걸리겠다, 퍼뜩 나온나!
소리치고 만근의 윗도리를 둘둘 뭉쳐 아래로 던져주는 경숙, 돌아서면
경미 등에 업고, 손수건에 무언가 싸들고 오는 은비.
경숙 그긴 머꼬?
S# 8. 동 개울가 언덕
개울가 뒤편, 길 쪽에서 보이는 언덕에 쪼그리고 앉은 은비와 경숙.
은비 (손수건 펼쳐 찐빵 보여주며, 거리낌 없이) 내가 몰래 한 개 쌔비왔다.
경숙 (뜨악) 은비 니 또~? 면서기도 공무원이다. 공무원 딸이 (찐빵 집어 들며) 이래 자꾸 도둑질하는 거 알믄 니 아부지 잡혀간대이.
은비 (천연스레) 아무도 몬봤다. 그카믄 언닌 안 묵을끼가?
경숙 그그는 그기고, 내가 와 안 묵노? (빵 자르려는데)
만근 (E) 어 찐빵이네! (젖은 바지에 윗옷 꿰며, 눈이 휘둥그레져 다가오고)
경숙 (일어나며) 와? 혼자 그래 배터지게 묵고도 모지라나?
만근 그긴 아까 다 내려갔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내도 줄끼제?
경숙 일을 그래 맹글어 놓고도 또 묵고 싶다꼬? (불끈 내밀며) 아나 여 있다. (하다 찐빵 떨어뜨리며) 옴마야!
풀밭 위를 굴러 내려간 찐빵이 언덕 밑 황톳길 위에 떨어지고
때마침 윤섭의 자전거가 달려온다.
아이들 (놀라 일제히) 우야꼬?!
아슬아슬 찐빵 바로 앞에 끽- 자전거를 세우는 윤섭.
윤섭 (상황 모른 채/ 표준말로) 야 똥싸개. 씨름하다 똥 쌌다며?
만근 (주춤 벌게지고)
윤섭 찐빵을 얼마나 먹었는데 아무데서나 똥을 싸냐? (배꼽 쥐고 웃고)
경숙 (얄미워) 그래 재밌나? 서울 물 쫌 무긋다고 가시나처럼 서울말은... 심뽀를 고따구로 쓰이까네 울아부지가 니한테 장구를 안 갈켜준다 카는 기라.
윤섭 (웃음 뚝 멈추고, 반색으로) 너희 아버지 오셨구나?! 좋았어! (서둘러 출발하고)
기어이 바퀴에 깔린 찐빵이 납작하게 뭉개진다.
은비 엄마야, 내 빵! 우야꼬~ (달려내려 가고)
경숙 (열나 윤섭에게 소리친다) 오긴 누가 왔다캤노!
윤섭 (다시 서며) 뭐라고?
경숙 (열나 내처) 백날천날 쫄라봐라. 느그 아부지 허락 없으믄 못 갈켜준다 안캤나. 와 말귀를 팔아묵고 사람을 귀찮게 하노? 장구는 아무나 배우는 중 아나? 일본놈 맨쿠로 나비넥타이 매구, 머리지름만 바르믄 다가? 우리아부지가 갈쳐준다캐도 내가 몬하게 할끼다, 이 문디자슥아!
윤섭 (엉겹결에 사투리로) 머라꼬, 일본 놈? 니 내 손에 죽어볼래? (자전거 팽개치고 씩씩대고 쫓아올라온다)
만근 (당황해 경계로) 어, 저 기(게)?
은비 (뭉개진 찐빵을 주워 흙 털다 놀라 보고)
경숙 (역시 당황해 우물쭈물하다... 돌연 화들짝 놀란 척) 엄마야, 저기 뱀이다!
윤섭 으아악~ (놀라 소스라쳐 도망치려다 넘어지고)
아이들 (통쾌해 웃는)
경숙 순 겁재이 자슥이 큰소리는... 꼬시다!
윤섭 (그제야 알고 불끈 일어나다, 발목 감싸 쥐며 아픈 시늉하고)
S# 9. 장터 잡화상 앞
돈 손에 쥐고 뛰어오는 경숙, 잡화상으로 들어가고
경숙 (E) 흑연필 주이소. 파랑으로 세 개요.
잠시 후,
연필 손에 쥐고 나오는 경숙, 오던 길로 도로 뛰어가고
S# 10. 다시 개울가 언덕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물대접 들고 종종 걸음으로 오는 만근, 흘리는 게 반이다.
경미 업고 언덕 위에서 지켜보던 은비.
은비 오빠야 물 다 쏟는다.
윤섭 (다리 뻗고 앉아 노래 흥얼거리던)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목말라 죽겠는데.
만근 샘이 멀다 아이가. 개울물도 깨끗하다이까... (와서 물대접 주면)
윤섭 (받아들고) 에게~ (홀짝 마시고, 다시 주며) 다시 많이 좀 떠와. 간에 기별도 안가잖아.
연필 들고 올라오던 경숙, 대접 들고 내려가는 만근에게
경숙 아예 한 동이 팍 퍼다가 안기라마. 물배 차가 배 빵 터져뿌게. (윤섭에게 연필 주며) 자 됐나?
윤섭 색깔이 왜 이래? 서울에서 파는 건 이렇게 안 칙칙한데...
경숙 그라마 서울까지 갔다 오까?
윤섭 (무시하고) 촌스러워서 안 되겠다. 빨강으로 바꿔와.
경숙 사내자슥이 무슨 빨강?
윤섭 내 맘이지. 얼른 갔다 와.
경숙 (못마땅해 보는)
윤섭 (엄살로) 어우 내 다리... 아까 보다 더 아프네. 집에 가서 뭐라 그러지?
은비 (펄쩍) 오빠야 집에 가서 이르믄 안된대이. 그라마 경숙언니야 아부지한테 다리몽댕이 뿌라진다.
윤섭 (약 올리듯) 그렇겠지? 어우 다리야~
경숙 사내자슥이 엄살은... 갔다 오믄 될 거 아이가. 빨갱이 색이 뭐가 좋다꼬... (끙 가고)
S# 11. 골탕 몽타주
-다른 색 연필들을 쥐고 장터거리를 달려오는 경숙.
-연필 내미는 경숙에게 그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 젖는 윤섭. 만근이 그 옆에 정말 큰 물동이를 내려놓는다. 그러다 철렁 물이 넘쳐 윤섭 물벼락 맞고
-개울가에서 윤섭의 양말과 웃옷을 빠는 경숙. 만근은 그 옆에서 윤섭의 구두 닦고.
-윤섭의 옷가지들 나뭇가지에 걸쳐져 있고, 윤섭의 자전거 닦는 경숙과 만근
등 흐르고
S# 12. 윤섭이네 근처 길
땀을 뻘뻘 흘리며 윤섭을 업고 걸어오는 경숙.
은비는 경미 업고, 만근은 자전거 끌고 뒤따라오며
만근 내한테 업히라카이. 여자가 뭔 힘이 있다꼬 그카노?
윤섭 (돌아보며 놀리듯 사투리로) 니 똥 싼 바지에 내가 와 업힐끼~고? 냄새나가 싫대~이.
경숙 (얄미워서 일부러 흔들고)
윤섭 (어어~매달리며) 야 조심해. 떨어질 뻔 했잖아!
경숙 그라이 와 자꾸 버둥대쌌노, 무거버죽겠구만.
윤섭 힘들면 좀 쉬었다 가.
경숙 됐다마. 니하고 길바닥에서 날 샐 일 있나. 모가지 붙잡고 가만 붙어있기나 하그라.
윤섭 (목 감싸고 찰싹 붙으며) 너희 아버지 오면 나한테 바로 알려. 안 그러면 알지?
경숙 머스마가 치사하구로. 내를 일케까지 부려먹고도 일러받쳤다 카믄 니는 남자도 아이끼네, 그땐 꼬추 떼라마.
윤섭 뭐라구? 넌 무슨 기집애가... 야 내려! (기우뚱 내려 나무 잡고)
경숙 인자부터 쪼매 걸어갈래? 내가 잡아주꾸마.
윤섭 무슨~! 이따 다시 업어.
상필 (E) 만근아~
일동 보면,
한눈에도 부실해 보이는 늙고 마른 소에 꽹과리와 여장 싣고 오는 상필.
만근 아부지~ (달려가고)
상필 우리 천하장사 잘 있었나?
만근 (우거지상으로) 안즉 천하장사 아이다.
윤섭 (톡) 씨름하다 똥 쌌~(대요~)
경숙 (오엘로) 니 좀 닥치그라?! 조동아리를 쫑쫑쫑 꼬매삘라.
상필 (오며 난색으로) 경숙아, 니 도련님한테 뭔 소릴 그래 심하게 하노? 그라믄 몬쓴대이. 그라고 아는 와 자꾸 이 쪼맨한 은비한테 떼?기노. 엉가가 돼갖고 동생을 애끼주야제.
경숙 그기 아이구요 (하다 답답해 말 못하고)
은비 내사 괘안타.
상필 (머리 쓰다듬어 주고, 윤섭에게) 오다보이 사장님 운짱(운전기사)이 도련님 찾아댕겨쌌던데. 사장님 또 서울 댕기왔다카대요. 서울서 도련님 준다꼬 새 구두캉 시계캉 선물 사왔다카더만.
윤섭 진짜? (신나서 자전거에 올라탄다)
경숙 어, 니 안 아프나? 순 공갈친기가?
윤섭 또 보자. (자전거 타고 달려가고)
경숙 윤섭이 니 잡히모 직이뿐다이~! (씩씩) 뭐 저런 놈이 다 있노.
상필 야가 직이기는 누구를 직인다카노. 말이라도 그래 하믄 큰일난대이. 이 동네에 쟈네 제분공장 덕분에 묵고 사는 집이 어데 한둘이가? 니아부지캉 내캉 저집에서 한번씩 큰판 벌여줘가 묵고 안 사나.
경숙 (짜증) 내도 압니더.
상필 뭔 일인지 몰라도 경숙이 니가 쪼매 참그라.
경숙 (불퉁) 울아부지는요?
상필 어? 어어... 그기 그라이끼네...
S# 13. 경숙네 마당(저녁)
평상에 둘러앉아 감자로 저녁 먹으며
할머니 오데서 뭘 하느라 몬온다꼬? 하이고 엥가이 둘러댈 말이 없었던 모양이대이. 이 오뉴월에 당산굿 벌이는 인사가 오데 있다 카드노?
경숙모 어무이, 아도 있는데...
경숙 거짓부렁인 거 내도 다 안다. 내가 뭐 얼라가.
할머니 니는 여직도 니 딸을 그래 모르나? 어른 찜 쪄 묵을 아다 쟈가.
경숙 닭찜 묵고 싶다.
할머니 내도.
경숙 내는 백숙도 좋다.
할머니 내도.
경숙 닭강정도 맛있다 카던데...
경숙모 (경숙의 입에 감자 팍 물려주고) 닭다리라 생각하고 묵으라.
경숙 (우적우적 먹고) 이 닭은 우째 뼈가 엄따.
경숙모 에미가 다 발라냈다. (할머니에게) 이기 참 만근아베가 주고 간 깁니더.
할머니 ? 날 메칠 아 재우고 묵였구만 게우 감자가?
경숙모 머 멕인 거나 벨루 있으예. 따지고 들자믄 나무하고 물 긷고 만근이가 한 게 더 많다 아입니꺼.
할머니 (장탄식에 타령조로) 같은 일을 해묵고 살아도 어느 놈은 일 끝나마 바로바로 엽전 싸들고 오는데~ 이집 화상은 우예 떠돌아 댕길 중만 알고 기어들어올 중은 모르나~그 물건을 아들이라고 믿고 살아야 카다이~
경숙/모 (익숙한 팔자타령에 별 감흥 없이 먹고)
할머니 (타령 계속) 지가 몬오믄 돈이라도 챙겨 보낼 일이재, 내일이 에미 생일인 중은 아나 모리나~
경숙모 (그제야 생각나) 옴마야, 내일이 생신이네예
할머니 (흘겨 더 한탄조로) 생일이믄 머 할 끼고 감자밥에 감자국~
경숙모 감자도 이기 전분데예.
할머니 (와락) 머라꼬? 그라마 생일날부터 굶으라 말이가, 재수없구로!
경숙모 (경숙이 새로 집어든 감자 뺏으며) 고마 묵으라. 남?다 낼 묵게.
경숙 (아쉬워 쩝) 세 개뿌이 몬 묵었다.
경숙모 (막 입에 넣었던 감자 빼서 경숙에게 넣어주면)
경숙 (좋아라 먹고)
경숙 (돌아앉으며 다시 타령으로) 하이고하이고 앓느이 죽지, 앞일이 캄캄하이 심청애비 눈깔이대이~ 일정 때도 이카고는 안 살았꾸마~ 친에미 아이라꼬 이래 천대를 하이, 어데 서러버 살겠나~~~
잦아드는 할머니의 타령과 함께 그 광경 점점 어두워지며
S# 14. 경숙네 전경(다음 날 새벽)
어스름 새벽 전경 위로
경숙모 (속삭이듯 낮춰/ E) 경숙아, 경숙아 쫌 일나바라.
S# 15. 동 안방
달빛만 비쳐드는 방안
경숙 (눈 못 뜨고 상체만 일으킨 채) 와? 졸리죽겠꾸마...
경숙모 (뭔가 코 가까이 들이대며) 이기 먼 냄시까이? 아무캐도 우리경숙이 좋아하는 거 같은데...
경숙 (코 킁킁거리며 냄새 맡다가, 눈 번쩍 뜨면)
경숙모 (말린 명태대가리를 들어 보인다)
경숙 명태대가리 아이가?!
경숙모 쉿!
경숙 (꿀꺽 침 삼키고, 낮춰) 내 줄끼가?
경숙모 하모. 심부름 잘하고 오믄 주꾸마.
경숙 이 밤에? 무섭다~아!
경숙모 (명태대가리 흔들며) 갔다오믄 이거 줄낀데.
S# 16. 산길
골짜기를 돌아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소리, 흔들리는 나무그림자, 풀벌레소리, 짐승들 울음소리가 어우러진 캄캄한 산길.
경숙, 호롱불을 들고 걸어오며
경숙 (무서움을 떨치기 위해) 명태대가리... ... 명태대가리... ... 명태대가리... (중얼거리며 걷는데 무언가 휙 지나간다) 옴마야! ... (질끈 감았던 눈 을 다시 뜨고 보면, 아무 것도 없다) ... 명태대가리... (중얼중얼 주위 살피며 다시 걷는데)
E (적막을 깨는 부엉이 울음소리)
경숙 (소스라쳐 놀라) 명태대가리~~~ (외치며 내달리고)
S# 17. 요정 일각/ 방(다음 날 아침)
장구와 장구채, 술상과 옷가지들 어수선하게 흩어져있고,
드렁드렁 코 골며 대자로 누워 자는 재수.
마담 (반기듯/ E) 니가 낙동강 조절구 딸이가! 이름이 머꼬?
경숙 (E) 경숙이라예. 조경숙!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은 재수, 비몽사몽 보면
열린 방문 틈으로 보이는 마담과 경숙.
마담 아부지하고 생긴 기 영 딴판이네. 아부지 찾아 혼자 여까지 왔나?
경숙 어데예! 울아부지는 지금 집에 있고, 심부름 왔다 아입니꺼.
재수 얼씨구, 저게 지금 머시라카노?
S# 18. 동 마당
마담 (어리둥절) 아부지 심부름?
경숙 (모르고 청산유수로) 야. 우리아부지가 지금 억수로 아파가 집에서 끙끙 앓고 있다 아입니꺼. 그라이 지가 대신 온 기라예. 여까지 지를 보낸 거는 딴 기 아이고, 몸이 낫는 대로 열 일 제끼놓고 회춘옥부터 달려와 일할테이끼네, 돈을 쪼매만 미리 땡기달라 그기라예.
마담 (어이없어 입 딱 벌어져 보고)
역시 하던 일 놓고 어리둥절 보던 화자와 기생 두엇,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고
S# 19. 다시 방
방에서 지켜보던 재수.
재수 저기 미?나. 어데 와서 멀쩡한 지 애빌 팔아묵고 있노. (서둘러 옷 주워 꿰며) 쪽팔려가 내 몬산다. 이 챙피를 우짜믄 좋노.
S# 20. 다시 마당
화자 (웃음으로) 니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대뽀 잘 깐대이.
경숙 (펄쩍) 아이라예. (내심 초조해 마담에게) 내 말을 몬믿는 깁니꺼?
마담 (키 맞춰 쪼그려 앉고) 니 아부지가 아푸다 그 말이제? 그 무건 장구를 메고도 사흘 낮 사흘 밤을 펄펄 나는 양반이, 어데가 을매나 아푼데?
경숙 (당황) 그기 그라이끼네... 열이 펄펄 나고예, 머리도 지끈지끈 하고, 온 몸이 다 쑤신다꼬 일나지도 몬하고 끙끙 앓고 있으예.
S# 21. 다시 방
바깥 동태를 살피던 재수
재수 (과장스레 주저앉으며) 어이쿠야! 저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지 애비를 묻어뿌네. (서둘러 장구 메며) 어데서 저린 기 나온 기고? 내가 니 땜시 실제로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푸다. 집에 가서 보재이. (주위 살피고, 깨금발로 살금살금 마당에서 가려진 툇마루로 나가고)
S# 22. 다시 마당
마담 우야노, 느그 아부지가 억수로 아푼 모양이대이. 그라다 죽어뿌믄 돈을 못 받을 낀데 내는 우짜노?
기생들 (키득거리고)
경숙 (황급히) 글타고 죽을 병은 아이고예 기냥... 고뿔이라예, 고뿔. 그라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더. 몸만 나으믄 눈썹 휘날리믄서 여부터 달려온다캤어예.
마담 참말이가? 내는 암케도 니 말이 믿기지가 않는데 우짜믄 좋노?
경숙 (내심 찔리지만) 지가 와 이 먼데까지 와서 거짓부렁을 합니꺼.
마담 그라믄 좋다. 만일 손톱 맨키라도 거짓부렁이 있으마, 니 집에도 몬가고 여서 늙어죽도록 저 언니야들 시중 들믄서 일할끼가?
경숙 (무섭고 난감하지만) 그래 꼭 해야 된다카믄 머 그라야지예...
마담 니 약속했대이. 화자야. 안에 주무시는 양반 좀 나오라캐라.
화자 니는 인자 클났대이. (하고 가려다 보면)
저만치 재수가 살금살금 뒷문께로 가고 있다.
화자 조절구 어른, 우데 가시는 깁니꺼?
재수 (허걱 놀라 엉거주춤 서고)
경숙 (난색으로) 아부지...
마담 저 양반이 집에 누워있다는 느그 아부지 맞나?
경숙 ... (큰일 났다 싶고)
재수 (역시 난감해 안절부절)
마담 조절구 일루 좀 와 보그라. 야가 니 딸내미라 카는데 맞나?
재수 (별 수 없이 몇 걸음 오는 척, 멀찍이 서서 난감히) 니가 내... 딸...? (짐짓 호통으로) 떽! 우예 그런 거짓부렁을 하고 다니노? 그라믄 몬쓴대이.
경숙 (충격으로 뻥보고)
재수 (외면해) 아가 엥가이 배가 고픈 모양이니까이 밥이나 먹여 보내소. 내는 바빠가 이만... (얼렁뚱땅 가는데)
화자 아침도 안 묵고 어델 그리 꽁지 빠지게 갑니꺼?
재수 (주춤) 꿈자리가 원캉 뒤숭숭해가 집에 퍼뜩 가볼라꼬...
화자 (은근짜로) 마누라 도망가삐고 없으마 일로 다시 오소. 내 받아주꾸마.
기생들 (키득거리고)
재수 하하 (난감하게 웃고, 경숙 힐끗 외면하고, 엉거주춤 내빼면)
경숙 (실망으로) 아부지...
화자 쟈가 그래도 아부지라카네.
마담 (호통으로) 내가 물장사로 반평생이다. 어데 와서 거짓말이고?!
경숙 (이래저래 서러워 훌쩍훌쩍 울고)
마담 치아뿌라!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거짓부렁 할 땐 언제고 와 찔찔 짜노? 어데 다시 말해보그라. 낙동강 조절구가 니 아부지라꼬?
경숙 (왈칵) 내도 그런 아부지 필요엄따! (서럽게 울고)
일동 (의아, 난감해 서로 보고)
S# 23. 경숙이네 전경
울음소리 연결
경숙, 툇마루에 앉아 울고 있고
S# 24. 동 안방
재수 (버선 벗으며) 고마 씨끄럽다! 뭘 잘했다고 울어쌌노. 아예 칵 죽여서 초상 치라뿌지, 와 게우 고뿔이고.
경숙모 (경미 업은) 그 생각을 몬했네예. 다음엔 그카라 하께예.
재수 (버선 던지며) 멀 잘했다꼬 큰소리고? 명색이 에미가 돼갖고, 천지 팔아물 게 없어가 딸내미 시켜 아부지 팔아무라 카노?
경숙모 그라마 우얍니꺼. 오늘이 어무이 생신인데 밥은 한 그릇 해드려야 안 되겠는교. 그렇다고 청득까지 찾아가 그카고 있는 아를, 모른 척 한다는 기 말이 됩니꺼. 명색이 아부지가.
재수 시끄럽다 고마! 밥상이나 채리온나.
경숙모 (외면한 채 멀뚱 앉았고)
재수 (끙 보고, 주머니에서 돈 꺼내 휙 주면)
경숙모 (좋아라 받고) 어무이 생신인데 닭 한 마리 잡으까예?
재수 먼 닭? 내일은 손꾸락 빨든 우짜든 오늘 다 먹고 치울끼가? 우째 니는 내일이 없노?
경숙모 (일어나며) 부창부수 아입니꺼. 닮아 그러지예.
재수 아무거나 따라하지 말고 좋은 거만 따라 해라, 쫌!
경숙모 머가 있는 데예? (갸우뚱 나가고)
재수 저 기 근데... (하다 갸우뚱) ... 그래 없나?
명랑 (E) 재수 왔다카든데 안에 있는교?
S# 25. 마당
재수 (방에서 나오며) 앗따 소식 빠르네. 우째 알고 왔노?
명랑 (평상에 앉아 부채질하며) 재수 니는 내 손바닥이다. 안즉도 그거를 모르나.
재수 (지레 떨떠름) 그래 청득에선 뭐라 카드노?
명랑 청득? 와, 회춘각에서 뭔 일 있었나?
재수 내는 또... (꼬듯) 그놈의 손바닥 억수로 크대이. 그라믄 근무시간에 일 안하고 와 돌아댕기노? 면서기 좋네. 내도 한자리 주그라.
명랑 면서기는 아무나 한다 카드노? 오강 타고 앉아 이응자도 모르는 놈이.
재수 (꼬여) 장구재비가 그거는 알아서 머할 낀데. 글 마이 읽은 놈 치고 똥창 안무건 놈 있는 중 아나. (순간 선장구 치듯 날듯이 돌아 보이고) 장구는 몸이 날아야지 그래가 못 친대이. 면서기 하는 누구처럼.
명랑 (짜증) 제수씨, 물 좀 주이소~ (소리치고, 명랑 꺼내 봉투 뜯고)
재수 꼭 지가 먼저 시작하고 승질은... 니 그라다 명랑 중독 된대이.
명랑 메칠 후에 합천 군수 온다카이끼네 한판 놀 준비나 하그라. 내도 오랜만에 니 가락 쪼매 듣고 한 수 배워보제이.
재수 합천 군수? 치아뿌라! 그놈하고 놀아주고 놀음채 제대로 챙긴 놈 있다카드나? 도로 다 지주머니에 넣고 갈 돈을 뿌려대긴 와 뿌려대믄서 지랄을 치노. 천금을 준대도 취미 엄따. (찢어진 장구 가죽 꿰매고)
명랑 니가 지금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부엌에서 온 경숙에게 물그릇 받으며) 느그 딸래미, 얼굴 누러이 뜬 거 안보이나?
경숙 내는 인자부터 낙동강 조절구 딸 아니라예. (팽 부엌으로)
명랑 먼 소리고?
재수 (딴청으로) 사람이라는 기 밥만 묵고 사는 거 아이다. 아나?
명랑 하모. 내 말이 그 말 아이가. 떡도 묵어야 하고 괴기도 묵어야 하고, 그라이 눈 딱 감고 한판 놀아주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 참에 장구도 하나 새로 개비하고.
경숙 (부엌에서 톡 나와서며) 장구는 무신 장구?! 배고프다카이!
경숙모 (얼른 뒷목덜미 잡아끌고 안으로 사라지고)
재수 (내심 미안, 쩝)... 배고프다는 가시나가 뭐 저래 목청이 크노...
S# 26. 동네 산자락 (다른 날 낮)
만근네 늙은 소 풀 뜯고 있고
(이번에는 만근이 경미 업었다)
경숙과 만근, 은비, 제각각 나물 캐며
은비 언니야, 이거 또 팔아가 찐빵 사줄끼가?
경숙 찐빵 찐 자 소리도 하지 말그라. 화딱지 난다.
은비 그라믄 와 캐노? 놀자. 만근오빠야 놀자.
저만치 자전거 세워놓고 다가오는 윤섭
윤섭 뭐하고 놀 건데? 나도 같이 놀자.
일제히 돌아보는 경숙과 은비, 만근.
일제히 흥! 콧방귀를 뀌어주고,
다시 일제히 고개 돌려 나물 뜯는다.
윤섭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고, 미제 과자깡통에서 과자 꺼내며) 이거 같이 나눠먹을라 그랬는데, 니들 삐져서 안 먹겠지?
일제히 돌아보는 경숙과 은비, 만근.
동시에 침 꿀꺽 삼키고
은비와 만근, 동시에 간절히 경숙을 돌아본다.
경숙 (시선 느끼지만) 그깟 양과자에 우덜이 얼렁덜렁 넘어갈 줄 알았다믄 오산이대이. 니나 혼자 마이 묵그라.
은비 (절박하게) 언니야 저거 억수로 맛있을 낀데.
경숙 (눌러 막듯) 쓰흡~
은비/만근 (하는 수 없이 다시 나물 뜯고)
윤섭 니들이 안 먹으면 할 수 없다. 만근네 소나 줘야지.
알아듣기라도 한 듯 소가 반갑게 울고
소에게 다가가 과자를 하나씩 던져 주는 윤섭. 하나... 둘... 셋...
은비 (징징) 언니야, 소가 벌써 세 개나 묵어뿌다.
만근 (부러워서) 오늘은 쟈가 만그이고 내가 소믄 좋을 낀데...
경숙 (갈등으로 괴로운)
윤섭 (돌아보며) 니네 정말 안 먹을 거야? 이제 몇 개 안 남았는데.
은/만/경 (제각각 침 삼키고)
은비 (절박) 언니야...
윤섭 싫으면 관둬. (다시 돌아서는데)
경숙 (오엘로) 니가 자꾸 그라이끼네 좋대이. 먹어주꾸마. 인 도.
윤섭 그럴래? 좋아. 근데 그전에 물 좀 떠와. 과자 먹었더니 목마르다.
경숙 (불끈) 머라꼬?
은비 (얼른 나서며) 언니야 내가 갔다오꾸마. 내 없는데 묵으면 안 된대이. (가려는데)
윤섭 그런 게 어딨어. 언니가 가야지 동생을 보내냐. (상필 흉내로) 엉가가 돼갖고 동생을 애끼주야제.
만근 그라믄 내가(하는데)
경숙 치아라마! 정 그기 소원이라카믄, 갔다오꾸마. (끙 돌아서서 가는데)
윤섭 (픽 웃고) 진작에 그럴 것이지. 어차피 갈 거였으면서.
경숙 (우뚝 서고, 양 주먹을 불끈 감아준다)
돌연 윤섭을 향해 머리를 내밀고 황소처럼 달려드는 경숙, 그대로 윤섭을 깔고 앉은 채 주먹으로 흠씬 두들겨 팬다.
그 위로 경숙의 울음소리 선행되며
S# 27. 경숙이네 마당 (저녁)
재수, 빗자루로 경숙을 후드려 패며
재수 갸가 누군지 몰라 이카나, 가스나야! 어디 팰 놈이 없어서 갸를 패노? 니가 깡패가? 도대체 나이가 ?인데 천지분간 몬하고 철딱서이 없이 구노?
경숙 (울며불며) 윤섭이 갸가 내를 을매나 몬살게 굴었는데. 아부지는 와 알도 몬하믄서 갸 편만 드노?
재수 그래도 참으라 캤나 안 캤나? 우리가 누 집 때매 먹고 사는가 몰라서 이카나. 인자 그 집에서 내한테 철마다 굿판을 ?길라 카겠나 말이다? 으이? (다시 때리고)
할머니 와중에도 평상에서 솥단지 끌어안고 닭뼈 쪽쪽 빨아먹으며
할머니 지집애 맞나, 빤스 좀 홀딱 뱃기보그라. 가스나가 우예 머스마를 깔고 앉아 쌔리 패노?
경숙모 (부엌에서 온/ 뺏듯 솥단지 끌어당기며) 고마 좀 드이소. 어무이만 입입니꺼?
재수 가스나가 우째 하는 짓마다 지 애비 앞길을 막는 기고. (하며 씩씩 와서 앉다) 니 기어이 닭 잡았나?
경숙모 아이라예. 어무이가 사온 깁니더. 지는 기냥 삶기만 했으예. (경숙에게) 니도 고마 뚝 그치고 얼른 이리 오그라.
경숙 (재수 눈치 보며 주춤주춤 오고)
재수 어무이가 뭔 돈으로 닭을 사온 깁니꺼?
할머니 시렁에 얹어둔 장구 팔아 사왔다. 안 쓰고 굴리믄 뭐하노.
경숙/경숙모 (닭 먹으려다 기막혀 입 딱 벌어지고)
재수 (목청껏) 어무이~!!!
할머니 (놀라 먹던 닭 떨어뜨리며) 에구 깜짝야.
경숙모 그거는 애비가 애끼는 기라 모셔둔 긴데...
할머니 (되레 성깔로) 그카이끼네 모셔놓고 제사 지내믄 뭐하노! 잔치날 묵자고 열흘 굶는 기나 똑같제. 오늘 내 생일이다카이. 건드리지 말그라.
재수 내가 미친다 진짜! 마누라는 내를 골병탱이 맹글어 팔아묵고, 어무이는 애끼는 장구를 갖다 팔아먹고, 딸년은 (하다) 으아아아~~~ (머리 싸쥐고 괴로워하다) 으이? (놀라 평상에 털퍼덕 앉는다)
운짱 (싸립문으로 들어오며) 와 그리 놀랍니꺼.
재수 그라믄 이 판국에 운짱 니보다 더 무서븐 사람이 누가 있겠노.
할머니 (역시 놀라) 사장님이 부르드나?
운짱 (큰일 났다는 듯 끄덕이면)
재수 이 가스나 (새삼 열나 허리춤에 꽂아둔 궁글채 뽑아들고 경숙 쫓으며)내 오늘 이년을 고마 쌔리 팍 요절을 내뿌끼다.
경숙 (평상을 사이에 두고 빙빙 돌며) 그거로 맞으믄 내는 죽는다.
그 사이 운짱은 닭이네!하며 평상에 올라앉아 먹고
재수 죽는 기 그래 무서븐 가스나가 최사장 아들은 와 건드리노, 와? (하며 평상을 가로질러 궁글채 휘두르면)
할머니 (옆으로 피해 먹으며) 작신 패뿌라. 어데서 저런 기 나왔노. 집안 말아묵을 년이다.
경숙모 지가 낙동강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아입니꺼.
할머니 하이고 그래도 딸년이라꼬 편들기는.
재수 니 이리 퍼뜩 몬온나? 뭘 잘했다고 뺀질뺀질 도망을 치노?
경숙모 인자 고마해라, 쫌!!!
재수 머라꼬? 하늘 같은 서방한테 고마해라?
경숙모 아 잡을 일 있으예. 매타작도 먹은 기 있어야 견디지. (닭을 뜯어 내밀며) 묵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꼬, 죽을 때 죽디라도 퍼뜩 드이소.
재수 나더러 내 장구를 묵으라꼬?
경숙모 안묵는다꼬 장구가 돌아옵니꺼.
재수 (체념하고 닭 받고, 풀썩 앉아 뜯으면)
경숙모 (경숙에게 닭 내밀며) 자 니도.
경숙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역시 닭 뜯고)
S# 28. 윤섭네 앞마당(밤)
흥분해서 마루에서 오락가락 서성이던 최사장, 대문소리에 돌아보고 다짜고짜
최사장 (고함으로) 야- 낙동강 조절구!
경숙을 잡아끌고 들어오던 재수, 흠칫 서며
재수 아이구 사장님, 아 떨어지겠십니더.
최사장 니 자식교육을 대체 우째 시키는 기고!
재수 (납작 엎드리며) 지송합니더, 사장님. 지가 누구 때리라고 가르친 적은 없는데 아가 와 저모양인지 모르겠십니더 참말로.
최사장 모르긴 멀 모르노? 니도 뻑하믄 내 막내아우 패삐리고 안캤나? 쟈가 니 를 똑 빼닮아 그러는 기라?!
재수 뻑하믄은 아이고예...
최사장 시끄럽다 마! 우리아부지는 사람이 물러가 기냥 넘어가고 넘어가고 캤지만 내는 그래 몬한다. 우얄끼고?!
재수 지송합니더, 사장님.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엄십니더. (경숙에게) 경숙아 니 뭐하고 있노? 퍼뜩 와서 납작 엎드리그라.
경숙 (뚱 선 채 억울한데)
잔뜩 쥐어터진 얼굴을 하고 열린 방문 사이로 내다보던 윤섭,
윤섭 (불끈 주먹 쥐어 먹이며, 입모양으로) 넌 이제 죽었어~
경숙 (새삼 분해 노려보고)
재수 저 가스나가 (황망히 경숙을 끌어다 꿇어앉히고) 참말로 지송하게 됐십니더 사장님. 처분대로 하이소.
최사장 경숙이라 캤나? 니 대체 와그라노? 내한테 먼 불만있노?!
경숙 (펄쩍) 아이라예.
최사장 우리 윤섭일 팬 건 내한테 그러는 기나 마찬가지야. (점점 흥분하며) 불만이 엄으믄 와 그래? 윤섭이가 양과자까지 갔다주믄서 놀자캤는데 뭐가 불만야, 대체?!
경숙 (억울해서 보면)
최사장 (호통으로 왁) 어디서 눈깔을 똑바로 뜨고 보노?! 니?게 어디 감히 내 아들한테 손을 대! 옛날 같으마, 낼로 니를 멍석말이를 해도 끽소리 몬해!
윤섭모 (방에서 황망히 나오며) 아니 당신, 애한테 무슨 그런 심한 말을 하세요. 그리고 지금 세상이 어느 땐데... 제발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세요. 진정, 진정...
재수 (기분 더럽지만... 이 악물고 경숙에게 낮춰) 퍼뜩 빌그라. 고마 끝내고 가자아.
경숙 (무섭고 억울해 눈물만 뚝뚝 떨구고)
최사장 (진정하려고 심호흡하다 제풀에 도로 흥분) 아니 우리 윤섭이가 놀자 카믄 감지덕지할 일이지, 왜 맥없이 패삐리냐 말이야. 양과자까지 갖다 주믄서 그캤다는데.
윤섭모 (마음 졸이며 제지로) 여보~
경숙 (눈물 뚝뚝 떨구며 왈칵) 그그는요 순전히 윤섭이 말이구요, 사실은 그기 아입니더!
최/윤섭모 ??
재수 (미치겠고)
최사장 (더 흥분해서) 저,저,저,저 당돌한 걸 봤나. 그기 아이믄 먼데?!
경숙 윤섭이가 양과자 갖고 온 거는 맞는데예, 그 전에 갸가 내를 을매나 괴롭혔는지 모릅니더!
이어지는 지난날의 면면들이 당시의 경숙의 심정을 말해주듯 때론 빨리, 때론 느리게 과장된 속도로 흐른다.
그에 따라 최사장과 윤섭모, 재수의 반응도 시시각각 달라지고.
-달려오는 윤섭의 자전거 바퀴에(빠르게) 납작 뭉개지는 찐빵(느리게)
-연필 들고 숨차게 뛰어온 경숙에게(빠르게)
다시 바꿔오라며 고개 젖는 윤섭(느리게)
-연필 색깔 별로 바꿔들고 장거리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경숙(빠르게)...
최사장 (믿기지 않고)
윤섭모 (어머나!)
-물대접 들고 오는 만근(빠르게)
-개울에서 만근 구두 닦고(빠르게),
윤섭의 옷 빠는 경숙(느리게)
-윤섭의 자전거 닦는 만근(빠르게)과 경숙(느리게)
최/윤섭모 (난감해 서로 보고)
재수 (일어서서 구겨진 기분을 털어내듯 바지의 흙 털고)
-버둥거리는 윤섭(빠르게)을 업고 힘들게 걸어가는 경숙(느리게)
-과자 먹는 소(빠르게)
-소에게 과자 주며 약올리던 윤섭(느리게)
최사장 (붉으락푸르락 윤섭의 방으로 쫓아 들어가고)
윤섭모 (쫓아 내려와 경숙의 눈물 닦아주고)
재수 (내심 측은하지만 뻘쭘해 외면하고)
S# 29. 근처 동네 길
논밭 사이로 길게 뻗은 어두운 밤길.
재수와 경숙, 걸어오며
재수 (미안해 되레 퉁으로) 가스나 니 땜에 이 먼 난리고?
경숙 (불만스레 보면)
재수 와? 마님이 눈물콧물 닦아주이까네 니가 잘한 중 아나? (으르듯) 심심하믄 또 패그라.
경숙 그카는 아부지는 윤섭이 아제 와 팼는데?
재수 니하고 내하고 같나?
경숙 뭐가 다른데?
재수 그때만 해도 그놈아는 양반이고 내는 상놈아이가. 양반이라고 을매나 사람 무시하고 재는지 눈꼴시러버서 봐줄 수가 없었다카이. 그때 대믄 세상 참 마이 좋아졌제...
경숙 (따지듯) 그라이 내하고 뭐가 다른데?
재수 (끙 할 말 없어) 가시나 누굴 닮았는고 승질은...
경숙 아부지 승질은 뭐 좋고? (혼잣말로) 치! 세상이 뭐가 좋아졌다는 기고?
재수 가스나 한마디도 안지제.
경숙 (뭐라고 하려는데)
재수 그것도 내 때문이가?
경숙 아부진 윤섭이 아부지 어무이가 그래 무섭나?
재수 무섭긴 내가 와?
경숙 그라믄 와 그렇게 슬슬 기는데?
재수 (펄쩍) 슬슬 기긴 누가 슬슬 ?다는 기고? 쪼맨한 기 뭘 안다꼬... 니는 똥이 무서버서 피하나, 더러버서 피하제...
경숙 (피~)
재수 (쥐어박으려다 참고) 그라믄, 누부고 행이고 공부한다고 다 일본 가뿔고, 윤섭이 갸가 외로버서 그캤을 끼라는데, 것따대고 그래도 그러는 기아이라고 따져야 옳나?
경숙 누가 지금 그 얘기고?
재수 그래 니 똥 굵다, 가스나야. 우찌됐든 지 아부지가 장구는 절대 안 된다캤으이끼네, 인자는 더 이상 윤섭이가 귀찮게 안할끼다.
경숙 (부루퉁) 두고봐야 알제... (꼬르륵 배 울리고)
재수 뱃속에 걸뱅이가 들어앉았나, 귀한 거 멕이바야 소용도 없구... (역시 꼬르륵)
경숙 (거보라는 듯 보면)
재수 (얼렁뚱땅) 아부지가 전국팔도 길이란 길을 다 댕기 봐서 잘 아는데, 배고프믄 해도 징그럽게 길어지고 길도 오뉴월 엿가락처럼 찍 늘어나뿐다.
경숙 맨날 그 얘기...
재수 (끙) 니 올해 ? 살이제?
경숙 (짜증) 모른다! 아부지가 모르는 걸 내가 우찌 아노? (씩씩 가버리고)
재수 저 기 어데서 성질이고? 니 윤섭이네 갈 끼가?
경숙 (가며 소리쳐) 만다꼬?!
재수 가시나 드릅게 팅가쌌네. (가며) 마님이 미안타꼬 일부러 오라캤구만. 가믄 맛있는 것도 마이 줄낀데...
두 사람 멀어지며...(F.O)
S# 30. 악기점 (다른 날 낮)
(F.I)
햇빛에 비춰진 수캐가죽으로 만든 장구 북편 C.U.
(가죽을 잘 말려 만든 장구는 수캐 거시기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함)
장구를 들고 햇빛에 비춰보던 재수와 상필
재수/상필 (서로 보며 감탄으로) 어~!
이번에는 장구를 돌려 암캐로 만든 채편을 햇빛에 비춰보면
암캐의 젖꼭지 윤곽들이 선명하다.
재수/상필 (제각각 흡족해 끄덕이고) 흠!
재수 (짐짓 해보는 뻥으로) 까짓! 사입시다. (주인에게) 얼만교?
상필 (걱정스레) 니 돈 있나?
악기상 000원.
재수/상필 (놀라 돌아서고)
재수 (조심스레 장구 제자리에 도로 놓고, 사뭇 아쉽다)
상필 뭐가 이래 비싼교? 오동통이도 아이구만.
악기상 오동통이 좋기사 좋지만 비만 오믄 물러버려서 우데 소리가 나드노? (부위마다 손으로 짚어가며) 장구가 잘 나기는 양지에서 자란 이 홍송통에, 북편에 수캐 한 마리, 채편에 암캐 한 마리, 이기 지대로 맞춰 맹근 놈이라카이. 오죽하믄 신장구도 박 맹장이 맹근 요놈만 목 빼고 지다린다 칼끼고.
재수 (귀가 번쩍해서) 이기 바로 신장구가 쓴다는 그 장군교?
악기상 낙동강 조절구 니도 인자 또랑광대 그만하고, 이기 메고 대한민국 조절구 함 돼보그라. 내 잘 해주꾸마.
재수 게우 낙동강에서 노는 놈이 먼 돈이 있는교. (하면서도 새삼 탐나는데)
상필 재수야, 합천 군수 오늘 놀자 카는데, 같이 가자.
재수 만다꼬? 한번 빙신짓 했으마 됐지, 그 짓을 와 또 할라꼬? 행님도 가지 마이소.
상필 그캐도 티끌 모아 태산 아이가. 애끼던 오동통이도 느 어무이가 팔아묵어 뿌다믄서? 저래 잘 생긴 놈을 찜도 안 하고, 아깝구로 기냥 두고 갈끼가?
재수 (새삼 장구 보며) 흠... 신장구도 이거를 쓰는 기 학실한교?
S# 31. 윤섭이네 응접실 (다른 날 낮)
하늘하늘 하얀 레이스 커튼, 피아노, 축음기, 장식장, 서양식 소파 등으로 호화롭게 꾸며져 있는 응접실.
윤섭 (E) 여기는 우리 응접실이야. 들어와. (문 열고 들어오고)
문 열며 윤섭(상채기 얼추 다 가셨다) 앞서 들어오고
뒤따라 들어오는 경숙과 은비와 만근, 나름 때 벗고 챙겨 입었다.
신기하고 호화로운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져 둘러보고
경숙 으,응접실이라꼬? 그,그란데 여가 뭐하는 방이고?
윤섭 (무식에 짜증) 손님들 오면 차 마시고, 음악 들으면서 얘기하는 방.
경숙 그라이끼네 평상이구마... 쓸데없이 뭘 그래 어렵게 말하노?
윤섭 (기막혀 보고, 놀리듯) 평상이 뭔데?
경숙 니 자꾸 크카마 우리 가뿔끼다.
윤섭 (끙! 하고 보면)
은비는 소파에 앉아 쿠션 튕겨보고,
만근은 신기한 듯 바이올린을 집어든다.
윤섭 (펄쩍) 야 만지지마. 그렇게 만지면 망가진단 말야. (바이올린 뺏고)
경숙 앵꼬바서 몬보겠네. 안되겠꾸마. 우리 고만 가뿌자 (앞서고)
만근/은비 (아쉬운 듯 따르면)
윤섭 (망설이다) 미,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니네 이거 들어볼래? (얼른 바이올린 켜면)
은비 와~ (홀린 듯 보고)
경숙/만근 (역시 신기해 듣는다)
바이올린 연주 이어지며
S# 32. 윤섭이네 집구경 몽타주
-후원 연못/수목과 정원석이 어우러진 제법 넓고 아름다운 후원. 아이들이 너도나도 윤섭이 건네준 물고기 밥을 떨구자 커다란 잉어들 몰려오고...
-윤섭이 누나 방/ 침대가 놓인 아담한 방. 윤섭이 옷장에서 꺼내 보인 서양식 레이스 원피스에 입을 못 다물고 보는 경숙
-곳간 앞/ 윤섭을 따라 마침 쌀을 내고 있던 곳간 앞을 지나던 아이들, 천정까지 빼꼭히 쌓인 쌀가마니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만근은 놀라 딸꾹질까지 하는 등... 집안을 구경하는 아이들 면면들 흐르고
S# 33. 윤섭이네 부엌(저녁)
은비모, 잡채며 전 등 음식 만들고
은비 (E) 어무이, 우리 구경 다했다. (들어오다 음식 보고) 야 맛있겠다. 우리 줄끼가?
은비모 (바깥 의식하며) 나가서 기다리그라. 어련히 알아서 차리주꾸마.
윤섭모 (E) 은비네~
은비모 야~ (소리치고) 니들 밥 차리주라는 갑다.
윤섭모 (E) 나 좀 봐요.
은비모 니는 퍼뜩 가서 엉아들 불러오그라. (은비와 좋아라 나가고)
S# 34. 동 마당
윤섭모, 마루에서 부랴부랴 새 치마로 바꿔 두르고
은비모 (다가가며) 아~들 놀러왔는데 밥은 미기가 보내야지예? 잡채랑 찌짐 쪼매 부?는데예.
윤섭모 (반색으로) 그래요? 마침 잘됐네. 난 아무것도 없을 줄 알고 걱정했는데. (마당으로 내려서며) 지금 사장님 손님들 모시고 온다니까 얼른 상 좀 준비 좀 해줘요.
은비모 (실망으로) 야?
윤섭모 (마침 후원에서 나온 아이들에게) 얘들아 미안한데, 니들은 내가 나중에 더 맛있는 거 해줄게.
때마침 손님들 몰고 들어오는 최사장.
손님 중에는 외국인도 보이고
윤섭모 (최사장에게) 오셨어요? (손님들에게 인사로) 어서 오세요.
최사장 제 안사람입니더. (외국손님에게) 마이 와이프.
외국손님 오~ 안녕하세요. 뷰티플, 뷰티플! 유아 럭키 맨.
최사장, 기분 좋게 웃으며 후원 쪽으로 안내하고
윤섭모 (은비네에게) 뭐하고 있어요, 얼른 상 좀 보라니까. (아이들에게) 다음에 또 놀러 오거라. (서둘러 부엌으로 가고)
실망한 얼굴로 돌아서는 경숙과 은비와 만근, 터덜터덜 대문으로 걸어가고
S# 35. 읍내 요정 큰방 앞
방에서 흥겨운 남도타령 흘러나오고
음식 쟁반 든 채, 엉거주춤 방문 잡고 기대서서, 양말에 밥풀떼기를 바르느라 바쁜 뽀이들 서넛.
바닥에 밥풀 안 묻게 비틀비틀 깨금발로 서서, 서로 눈짓 주고받고
S# 36. 동 큰방
소리기생의 창에 맞춰 재수(장구)와 상필(징) 등 악사들 서넛 풍악을 울리고..
옆에 끼고 앉은 기생들을 희롱하며, 타령에 추임새 넣어가며, 술 마시는 군수와 지방관리 두엇.
상 끝에 명랑도 앉아있다.
무르익은 취흥을 말해주듯 방바닥에는 여기저기 돈 뿌려져 있고...
방문 열며 차례로 들어오는 뽀이들.
저마다 발바닥에 한 장이라도 돈을 더 붙여보겠다는 일념에 비틀비틀 요상한 걸음새로 들어오는 모양이, 한창 울려대는 가락과 어우러져 우스꽝스럽다.
재수, 장구 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상필 (낮춰 으르듯) 풀방구리에 쥐가? 엥가이 들락거리그라이.
뽀이들 (다 알면서 그러냐는 듯 웃음으로 굽신거리고)
어느덧 신명나게 휘몰아치는 가락에
온몸을 떨어대며 두 팔을 점점 위로 치켜들던 군수, 돌연 상 위에 올려둔 커다란 단지에서 손을 팍! 넣는다.
일순 서로 눈짓을 교환하는 소리기생과 재수, 상필.
더 신명나게 휘몰아치면
단지에서 한 움큼 돈을 집어든 군수, 음악에 온몸을 맡긴 채 그 손을 다시 치켜든다.
명랑, 그런 군수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선풍기를 받쳐 든 채 따르고
흥이 절정에 오른 군수, 마침내 돈을 쥔 손을 펴자
선풍기 바람에 날려 방안 가득 풀풀 떠다니는 돈, 돈, 돈...
군수 (감탄에 차서) 을매나 이쁘고. 돈꽃 보다 더 이쁜 기 있드나? (은근한 투로) 이쁘다고 미리 따지 말고 제자리에 가만 두그라이.
저마다 탄성을 터뜨리며 좋아하던 기생들 제각각 김새서 돌아앉고,
상필과 악사들도 기운 빠져 시들한데,
회심의 미소를 띈 재수, 오히려 더 신나서 장구 쳐대고...
S# 37. 경숙이네 마당
경숙과 은비, 만근.
경숙 어무이~ 배고프다. 밥 도! (부엌으로 가며) 어무이~
할머니 (방에서 경미 업고 나오며) 와 잘 얻어먹고 와서 밥타령이고? 할매꺼 쫌 챙기왔나?
경숙 (배고파 평상에 털퍼덕 앉으며) 어데! 쌀가마이만 실컷 보고 밥은 구경도 몬했다.
할머니 먼 소리고? 일껏 부르더이 그 부잣집서 밥도 안주드나?
경숙 손님들 몰려와서 우덜은 찬밥 됐다카이.
만근 맛난 거 마이 묵을라꼬 아침도 쪼매 밖에 안 묵었는데...
은비 내도.
할머니 가시나야 그칸다고 빈손으로 오믄 우짜노? 내는 니 오기만 목 빼고 지다?다아이가.
경숙 그라믄 우야라꼬. 내도 몬 묵었는데.
할머니 니는 니고, 할매 집이서 기다린다꼬 싸달래가 왔어야제. 그래 요령이 없어가 우째 살끼고? 아-나 받으라!
경숙 (경미 업으며) 배고픈데 어무이는 어디 갔는교?
할머니 초상집 일 거들러 갔다. 하이고~ 진종일 아까지 업고 있었더이 배탱지가 쪼글탱인데, 니 어메는 은제 올끼고?
S# 38. 마을 입구 정자나무 밑
경미 업고 큰 길을 내다보던 경숙, 달려오는 만근과 은비의 발소리에 돌아보고
경숙 뭐 쫌 있드나?
만근 (감자 반 알) 우덜 집엔 이거 밖에 엄따.
경숙 한 개도 아이고 반쪽뿐이가?
만근 (내심 찔려) 오다보이 자꾸 쪼만해졌다 아이가.
경숙 이게 얼음이가, 지절로 녹아뿌게? 머스마가 와 그리 의리가 없노? 느그도 암것도 없나?
은비 묵을 건 없고, (명랑봉투 꺼내며) 언니야 이거 묵어볼래?
경숙 그기는 느그 아부지 약 아이가.
은비 울아부지는 이거만 묵으믄 머리도 안 아프고, 알딸딸하이 기분이 좋다 카이. 배도 한개도 안고프고.
경숙 니 그러다 느그 아부지한테 들키믄 우얄라꼬?
은비 마이 있어서 안들킨다. 따 보까 언니야?
경숙/만근 (망설임으로 서로 보고)
S# 39. 다시 요정 큰방(밤)
방바닥에 흩뿌려진 돈이 제법 두툼하다.
군수 (제지로 손을 뻗으며) 잠깐!
기생/악사들 (제각각 고개 돌리며, 으유 저 화상...)
기생1 (애교로) 와 또 그러시는교? 신명나게 잘 놀았는데 오늘은 마, 기냥 기분 좋~게 끝내입시더.
군수 흠... (하다 선뜻) 그라까?
기생/악사들 (반색으로 보고)
S# 40. 동 큰방
그러나 제각각 등 뒤로 손 묶인 기생들과 악사들.
명랑, 마지막으로 재수의 손을 묶으며
명랑 (헐겁게 묶으며, 낮춰) 괘않제? 잘 하그래이.
재수 (따분한 얼굴로 한숨만)
군수 봐주지 말고 단디 묶그라.
명랑 (흠칫 놀라) 야~ (다시 꽉 잡아매며) 미안타.
재수 (씩- 웃어 보이고)
군수 자 그라믄 시작해 보까? 인자부터 재주껏, 마~음껏 가져들 가그라.
제각각 돈을 집으려 몸부림치기 시작하는 기생과 악사들.
앉은 채 뒤로 묶인 손으로, 일어서서 발로, 엎드려서 어깨와 입으로 밀고 긁어대며 어떻게든 많이 끌어 모아 집으려다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엎어져 코 깨고, 자빠지며 촌극을 연출하는데...
여유 있게 입으로 대님 풀고, 엄지발가락이 튀어나온 구멍 난 버선을 당겨 벗은 재수. 가볍게 일어나 이번에는 발로 장구를 세워놓고, 안 그래도 찢어져 기웠던 가죽을 지그시 발로 밟으며
재수 얍~! (짐짓 요란한 기합을 넣으며 누르자, 가죽이 뿌지직 찢어진다)
군수 아니 지 밥그릇을 발로 뭉개는 놈을 봤나?
재수 빈 밥그릇이 뭔 소용이겠는교? 밥을 가뜩 채워야 안 되겠는교.
다시 앉아 발가락으로 돈을 집어 드는 재수, 여유 있게 장구에 담으면
군수 (낭패로) 으잉?
재수 그동안 마이 배고팠제? 오늘 팍팍 멕이주꾸마.
일동 (제각각 부러워 탄식하고)
재수 (상필에게) 행님도 징밥 좀 멕이야 안되겠는교?
상필 (그제야 알아듣고 버둥버둥 일어나 징 끌고 오고)
군수 (못마땅해 앵 돌아앉으면)
재수 감~사합니더, 군수님! 우하하하~ (파안대소하고)
S# 41. 마을 입구
군수 얼굴이 사과 묵다 벌레 씹은 얼굴이었다카이~등등 떠들며
왁자지껄 웃으며 걸어오는 새장구를 멘 재수와 만근과 상필.
상필 재수야 고맙대이. 니는 우째 그래 머리가 좋노? 으이?
재수 그라이 말입이더. 낙동강에서 썩기는 느므 아깝다 아입니꺼~우하하하
명랑 그란다꼬 니는 자는 아지바이까지 깨워 가믄서, 야밤에 꼭 고놈을 사겠다고 난리직일 일이냐.
재수/상필 난리직일 일이제! (소리치고 같이 웃다)
상필 아니 저 기 누구여? 우리 만근이하고 느그 아-들아녀?
재수/명랑 (보고) ?
세 사람, 서둘러 다가가 보면,
제각각 정자나무에 기대 누운 경숙과 만근, 은비.
경미도 그 틈바구니에 누워 기분이 좋은지 다리를 버둥대며 옹알대고 있다.
명랑 느그들 여서 뭐하는기고?
경숙 (그제야 힘겹게 눈 뜨고) 어... 명랑아제...?
만근 (역시 맥 못 추고) 아부지...
은비 (헤실헤실 웃으며) 힘이 한 개도 엄고... 기분이 이상타...
상필 (놀라) 느그들 와 그라노? 뭐 잘못 묵었나?
아이들 (동시에 손 내저으며) 아, 아이다.
경숙 (와중에도 주섬주섬 명랑봉투 감추며) 뭘 묵은 기 아이고... 어무이 초상집 갔다케서, 배고파가 여서 기다리는 기다.
재/상/명 (서로 보며 미안해 쩝)
상필 뭐 쪼매 싸오는 긴데... 니 좀 안 싸왔나?
재수 (생각도 못했다...되레 퉁) 어데. 사내가 무슨 그런 걸 들고다니는교?
명랑 내가 쪼매 챙기긴 했는데... (꺼내 보면 전 몇 조각이다)
재수 손도 참 크대이. 기왕 싸는 거 마이 좀 싸지, 우째 지 아만 생각하노.
명랑 그러는 니는 생각이나 했냐?
상필 (음식 주며) 퍼뜩 일나서 이거라도 먹그라.
만근 힘 엄어서 몬 일어난다.
상필 멕이주까?
아이들 (기대 누운 채 입 벌리면)
경숙이 은비 차례로 하나씩 입에 넣어주는 상필, 와중에도 만근에겐 남은 하나까지 두 개를 넣어주고
상필 아부지 오늘 돈 마이 벌었으니까네 낼 흰 쌀 밥 해주꾸마.
만근 그때까지 우째 기다리노...? 쪼매 묵었더이 배만 더 고프다...
상필 (난감해 돌아보면)
재수 (불현듯 허리춤에서 장구채 꺼내며) 자 이기 무신 소리고? 눈 감고 잘 들어보그라이. (달래듯 살살 장구 치면)
아이들 (눈 감고 듣고)
-인서트/ 기름솥에서 자글자글 끓는 기름
경숙 기름이 끓는대이.
재수 (계속 장구치며) 맞대이! 멀 튀겨 묵을까나?
경숙 닭튀김!
은비 까재미!
재수 만근이는 안 묵나? 퍼뜩 말하그라. 기름 너무 끓으면 다 타뿐대이.
만근 내는 밥 도!
재수 바~압?
경/은/만 (차례로 계속) 떡도 묵고싶다. / 찌짐! / 산적! / 유과!
재수 알았다, 알았대이. 기름 타기 전에 튀김부터 해묵고 다 맹글어 주꾸마. 자 우리 경숙이 좋아하는 닭부터 튀겨보자~ (하며 장구로 닭이 넣어진 듯 요란하게 기름 끓어오르는 소리를 내면)
상필 (덩달아 눈감고 듣고)
명랑 (열등감에 뒷골이 땡겨 명랑을 뜯어 입에 털어 넣는다)
이미 명랑에 취한 아이들, 재수의 장구 소리로 재현되는 갖가지 음식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지 눈 감은 채 벙긋거리는 얼굴 위로 떠다니는
-기름솥에서 노랗게 튀겨지는 닭튀김.
-물에 씻기는 흰 쌀
-가마솥에서 보글보글 뜸 드는 밥
-토끼들이 떡방아를 찧고
-노릇노릇 구워져 뒤집어지는 녹두전
-칼등으로 다져지는 고기
-기름솥에서 숟가락으로 늘려져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는 유과
등이 장구로 소리를 재현하는 재수의 모습과 함께 흐르고
(상필도 징으로 소리재현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재수와 같이 해도 좋을 듯)
어느덧 제각각 상상 속으로 빠져드는 아이들...
S# 42. 아이들의 상상
-경숙의 상상/
윤섭이네서 본 하얀드레스에 고무신을 신고 앉아 닭튀김 먹는 경숙
-만근의 상상
윤섭이네 창고 가득 쌓여있던 쌀가마 위에 올라앉아 고봉으로 퍼진 흰쌀밥을 퍼먹는 만근
-은비의 상상
윤섭이 바이올린을 켜주는 가운데, 소파에 앉아 빈대떡을 빵처럼 뜯어먹고 있는 은비
S# 43. 다시 정자나무 밑
정자나무에 기대 누워 제각각 상상의 나래를 펴는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에서 F.O
S# 44. 마을 전경(다른 날 낮)
F.I
산 너머 구름 낀 회색 하늘 위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포성 들리고...
S# 45. 윤섭이네 마당
간간이 포성 들리며
귀중한 가재도구들 마당에 쌓여있고
운짱과 일꾼 서넛이 열린 대문 밖에 세워진 달구지와 트럭에 짐을 옮겨 싣느라 분주하다.
최사장 퍼뜩 퍼뜩 실으라. 이러고 꾸물대다 해 다 져뿐다.
윤섭 (연 들고 나오며) 아버지, 이것도.
최사장 (답답) 그기는 머하러. 짐만 된다카이. 가서 새로 사주꾸마.
윤섭 이건 딴 거하곤 다르단 말야. 이렇게 씽씽 나는 연 잘 없어요.
최사장 알았다, 알았다. 챙기라 고마.
은비모 (부엌에서 제기 하나 들고 나오며) 제기도 싹 다 실어야지예?
최사장 그기를 나한테 물으믄 우짜라꼬? 윤섭아 여 좀 나와 봐. 여보~ 아니 안에서 뭐하는 기고? (성큼 마루로 올라가고)
S# 46. 동 안방
방안 가득 한복과 옷감들 펼쳐놓고 목하 고민 중인 윤섭모
최사장 (서둘러 방으로 들어오며) 이기 다 뭐꼬?
윤섭모 여보 이거 다 실을 자리 없어요?
최사장 귀중한 패물만 챙기라카이. 집을 떼메고 갈끼가? 지금 시국이 어느 땐데... 쪼깨난 배하나 게우 빌렸다카이.
윤섭모 피난 꼭 가야 되는 거예요? 낙동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유엔군이 꼭 지켜줄 거라고 오늘도 라디오에서 그러던데. 신문에서도 안심하라 그러고.
최사장 그라믄 이승만은 와 대전에서 부산으로 꽁무니를 뺏겠노? 기냥 대전에 있제.
윤섭모 이거 다 아까워서 어떻게 두고 가.
최사장 지금 그기 문제가? 정신 차리그라. 전쟁 났대이, 전쟁!
S# 47. 경숙이네 안방
재수 (소리쳐) 장구채 어딨노? (다시 찾으며) 전쟁이 여서 터?나, 집구석이 와 이래 어수선 하노. (다시 소리쳐) 주먹밥은 안즉 멀었나? 밴댕이젖갈 빼묵지 말고! 퍼뜩 퍼뜩 좀 하그라~.
새 장구를 챙겨 맨 재수, 여기저기 들춰보고
이미 피난 채비 끝낸 경숙, 장구채 들고 들어오며
경숙 아부지 장구채 여 있다.
재수 내 장구채 건들지 말라고 ? 번을 말하드노?
경숙 안 건드?다. 내 장구채가 머가 좋다고 만지노. 그거로 하도 맞아싸서 보기만 해도 징글맞구만.
재수 시끄럽다 가스나야. 근데 니 어디 가나?
경숙 어데는? 다 같이 피난가야재!
재수 (때릴 듯 장구채 쳐들며) 다 같이는 먼 (다같이)
경숙모 (E) 주먹밥 다 쌌으예. 퍼뜩 나오소.
재수 야들이 지금 머시라카노. (문으로 가고)
S# 48. 동 마당
방에서 나오던 재수, 주춤 서고
뒤따라 나온 경숙, 얼른 신 신고 내려선다.
보면(재수의 시선)
피난 보따리 이고 지고 선 경숙모와 할머니, 경숙의 모습이 보기에도 심란스럽다.
재수 (기막혀 뭐라 할 말을 못 찾고 벙긋거리고)
경숙모 퍼뜩 가입시더.
재수 (꽥) 느그들끼리 가그라!
할머니 느그들? 인자 맞묵짜 이기가?
재수 아 어무이,.. 그기 아이고... 하도 기가 멕혀 말이 헛 나왔심더.
할머니 조심하그래이. 빨갱이들 쳐들어오기 전에 퍼뜩 가자. (앞장서는데)
재수 어디 가는교? 이러고 우르르 떼로 댕기믄 피해 갈 총알도 쫓아온다카이. 피난이 무슨 꽃놀인 중 아나? 다같이 손잡고 떼로 댕기게.
경숙모 그라믄 뿔뿔히 가는교? (얼른 머리에 인 짐 내리고) 퍼뜩 주먹밥 논과야겠구마... (하며 손에 든 보따리 펼치려는데)
재수 (내려와 주먹밥 보따리 낚아채고) 앞대가리 뒤꽁따리 다 떼뿌고 간따이 말하꾸마. 피난은 내만 간다. 그라고 이 집을 지키는 기 여러분 할 일이다 이깁니다.
할머니 (뭐라 말하려는데)
재수 우리한테 이 집이 전 재산인거 모두 다 알제? 우리 없는 동안 누가 차지 해뿌면, 우리는 돌아와도 갈 데가 없는 기라. (세 사람에게 차례로) 그라믄 좋나? 아이제? 아이지요?
일동 (저마다 뭐라 말하려는데)
재수 그라고
할머니 (오엘로 꽥) 치아뿌라마! 그라이 뭐꼬? 우리는 여서 죽고, 니 혼자 살겠다고 부모캉 처자식캉 다 내삐리고 가겠다 그말이가?
재수 죽기는 와 죽는교? 전쟁통에 죽고 사는 건 다 내같은 사내들한테나 해당되지, 여자들은 아무 해당 없다 아입니꺼.
경숙 그라믄 아부지도 총들고 싸우러 갈라꼬예?
재수 니 미?나. 내가 와 싸우러 가노? 싸움은 군인이 하는 기지. (슬슬 뒷걸음질 치며) 그라믄 전쟁 끝날 때까지 자기의 안전은 자기가 지키고, 전쟁 끝나고 보재이. (그대로 내빼고)
할/모/경숙 (다급히 따라 나가며) 재수야-! / 경숙아베요-! /아부지-!
동시에 소리치는 데서-<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