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으로 돌아가라(딤후3:16-17)-2016.12.11.(성서주일)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역사를 말씀하시고 반드시 말씀으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이 한권으로 묶여져있지만 사실은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6절은 ‘모든 성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구약 66권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 진 정확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정통한 권위를 갖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가감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또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는 것은 이단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듯이 성경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이른바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지침서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의 원리와 행함의 원리를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과연 우리가 성경을 어느 정도 사랑하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성도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친밀한 성경이 과연 그만큼의 존귀함을 받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혹시 성도들로부터 가장 사랑받고 인정받아야 할 성경이 가장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할 교회에서 성경이 푸대접을 받고 있지는 않는지요? 한 주간동안 예배당 의자에서 주인도 모른 체 자리만 지키던 성경책이 주일날 누군가의 손에 의해 예배드리는 도구로 잠간 사용되었다가 다시 이 자리 저 자리로 옮겨 다녀야 하는 주인 없는 성경책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물론 성경이 없는 초신자들의 예배를 돕기 위하여 교회가 일부러 비치한 성경은 어쩔 수 없다할지라도 여전히 수많은 성경책들이 주인 없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며 놓여 있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항상 독점해 온 책입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온 인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책입니다. 아마 믿음의 여부를 떠나서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한권의 성경책은 갖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집에는 한두 권 이상의 성경책을 다 가지고 있을 것이구요. 아니 우리들의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통해서라도 아무 때나 접촉할 수 있는 책이 성경입니다. 그만큼 만인의 사랑을 받는 성경이지만 과연 우리가 그만큼 사랑하고 그만큼 존귀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아니 성경의 권위를 그만큼 인정하고 있는지는 더욱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핍박과 수난을 받은 책입니다. 아무나 성경을 볼 수 없었던 시대도 많았고, 아무나 소지할 수 없는 시대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성경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고, 성경을 소지할 수 없는 나라들도 상당합니다. 지금 우리가 제한 없이 성경을 소지하고 제한 없이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최고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 성경이 가까이 있을 때 성경을 사랑하고 묵상하며 존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불행하지만 훗날 성경을 볼 수 없는 시대가 속히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개인이나 다른 이유에서든지 말입니다.
성경을 볼 수 없는 것이 최고의 아픔이요 고난이 될 것입니다. 본문 3장은 말세에 나타날 타락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타락한 말세에 승리하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소중함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 세상을 이기는 모든 권세와 능력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1) 성경의 핵심(15절)
성경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은 무엇일까요? 성경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경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 영생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성경이 없다면 우리의 구원은 시작도 없고 과정도 없으며 완성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믿음의 근거도 없고 믿음의 확신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성경이 구원에 관한 내용만을 전달하는 책은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핵심이지만, 구원받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지식과 정보와 지혜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의 사람됨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사도 요한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한마디로 성경이 기록된 가장 본질적인 핵심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되 보다 풍성한 생명을 얻기 위함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빼놓고는 구원을 논할 수 없고, 구원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W.Graham Scroggie 박사는 “성경의 배후에는 오직 한 인물만 있다, 구약에서 그는 예언되었고, 복음서에서 그가 나타났으며, 사도행전에서 그가 전파되었고, 서신서에서 그가 사람들 속에 계셨고, 계시록에서 그가 사람들을 지배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대략 3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실명으로 거론되지만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조연배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예수님이 주연이십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관한 예언서요,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실증서입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라면 당연히 성경의 핵심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작용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원에 필요한 가장 본질적인 핵심이 성경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구원의 근거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믿음을 배웁니다. 성경을 통해 믿음의 능력을 확장시킵니다. 믿음의 모든 것이 성경에 있고, 성경을 통하여 믿음이 확장되며, 믿음의 결국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결국이 무엇일까요? 베드로전서1장9절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결국이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결국이 구원이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1장23절을 관찰해 보십시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때문에 성경의 핵심이 구원이라는데 토를 달수 있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에베소서1장13절의 말씀은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거듭났다는 증언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간의 정신을 개조시키는 윤리 교과서가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서 반드시 자기 영혼의 구원을 경험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자기 영혼에 대한 구원에 어떤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면, 성경을 통해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끔씩 성경을 읽으면서 정신세계를 순화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반드시 자기 영혼의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자기 영혼의 구원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은 성경이 기록된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성경을 통해 자기 삶을 풍요롭고 지혜롭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구원의 문제를 해결 받은 후에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원받은 성도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방정식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성경을 접근하는 데 있어 영적인 것보다는 육신적인 것에 더 치중합니다. 어떤 이는 자기의 지식을 확장시키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성경은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한번쯤은 읽어야하지 않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성경을 비판하고, 논쟁하기 위하여 읽기도 합니다. 물론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자기 영혼의 상태를 보지 못하거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 아닙니다. 아마도 당신은 그냥 그렇고 그런 책을 한권 더 추가해서 읽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책 중에 책이요, 영혼의 문제를 풀어주는 최고의 책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책을 읽든지 저자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의도를 알지 못하고 읽으면 그 책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인간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히 담겨 있습니다. 복잡한 이야기 할 것 없습니다. 영혼구원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본질적 핵심입니다. 만일 그것이 성경의 핵심이 아니라면 성경은 세상의 모든 서적 가운데 또 하나의 책에 불과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서입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배운 것입니다(딤후1:5). 그리고 바울로부터도 성경을 깊이 있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딤전1:18). 그는 성경을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졌고, 성경을 통해서 믿음의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이 믿음의 근거요, 본질이며 최종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결국이 영혼구원인 것처럼 성경의 핵심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두말할 것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영혼에 대한 해답을 성경 밖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성경 밖에서 자기 영혼의 문제를 찾으려는 것은 무지한 일이요, 무모한 일입니다. 성경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의 스토리요, 예수 밖에 구원이 없다는 말은 성경밖에 구원이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밖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성경을 똑똑히 보십시오. 성경을 바르게 보십시오. 성경으로 돌아가십시오. 성경에 인간의 구원이 담겨 있다면 성경에서 구원을 찾으십시오. 성경을 통해 구원을 확인하십시오. 절대 성경 밖에서 찾으려는 엉뚱한 일을 삼가십시오. 오늘날 상당수의 기독인들이 마치 성경밖에도 구원이 있는 줄 알고 두리번거립니다. 없습니다. 절대 성경 밖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믿는 성도는 성경의 길만 좇아가면 됩니다. 믿는 자는 믿음의 서정과 종국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119:105절을 통하여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맛에 대하여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119:103)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말씀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119:97). 바로 이것이 말씀 앞에서 우리가 취할 자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맛본 사람은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말씀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성경의 권위(16절)
누구든지 말씀의 은혜를 맛본 사람이라면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권위입니다. 성경은 독보적인 권위를 갖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할 수 없다면 성경의 권위가 인정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비록 성경이 선지자와 사도들의 손을 통해 기록되었을지라도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류가 없고 신적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대리인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신18:18).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서신서가 주의 명령임을 밝힙니다(고전14:37, 살전4:2). 한마디로 성경이 선지자와 사도들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이지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은 하나님이 영감을 주심으로 인하여 저자를 사용하사 기록케 하셨다는 말입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의 의지와 생각을 기록자에게 주시고 특별계시를 기록하게 하시되 기록에 대한 모든 것에 한 점의 오류가 없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는 말입니다. 물론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 것을 기계적으로 받아썼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의 성품과 기질과 은사와 재능, 그리고 교육수준과 교양까지 그들의 의지를 충분히 활용하셨습니다. 심지어 용어선택이나 어법과 문체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다만 성령께서 친히 그들의 마음을 조명하시고 격려하시어 기록 활동에 전혀 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에 관한 성경적인 근거는 충분합니다(출6:1,레1:1,렘1:9,요10:35,고전2:13). 만일 성경이 사람이 지은 책이라면 무슨 권위가 있겠습니까?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이라는 슬로건으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른바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권위를 성경에서 찾은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진리가 없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천지가 혼란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성서를 가지고 있는 한 평신도가 성서가 없는 강력한 교황보다 더 힘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권위를 성경에서 찾은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 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신적권위로 인정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은 ‘성경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성경의 권위를 신적인 권위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부분적으로 필요한 것만 선택하여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정경66권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결코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지 마십시오. 신적권위를 부정하지 마십시오.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의 경험이나 철학을 성경보다 앞세우고, 교리나 전통을 성경의 권위보다 앞세우거나 동일시합니다. 큰일 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주해하지 않고, 자기들의 영적습관이나 지식으로 해석하려합니다. 때로는 성경을 자기 유익과 방패로 이용합니다. 성경으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찌르고 협박합니다.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강탈합니다. 미안하지만 자기가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사기와 공갈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은 성경을 자기 유익의 재료로 사용할 뿐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성경 앞에서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의문에 새겨진 성경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책 자체를 신적인 권위로 인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대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부정하지 마십시오.
(3) 성경의 목적(17절)
성경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접근하는 사람들에 따라 성경의 목적을 달리 할 수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성경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16절에서 17절을 읽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요, 목적입니다. 물론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목적은 본문의 말씀으로 제한받지 않습니다. 성경이 주는 목적은 셀 수 없이 다양하며,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강조하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모든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하는 데 목적을 갖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교훈’은 하나님의 진리를 믿는 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요(딤전5:17), ‘책망’은 범죄 한 영혼들을 꾸짖어서 깨닫게 하는 것이며(딛2:15), ‘바르게 함’은 잘못된 추를 바로 잡아 세워주는 것입니다(요21:15-17).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함’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씀으로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는 데 온전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문에 17절의 말씀은 16절의 과정을 통하여 성취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과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는 것’은 성경을 통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모든 성경은 인간을 ‘교훈하는 말씀’과 ‘책망하는 말씀’과 ‘바르게 하는 말씀’으로 되어있습니다. 한마디로 어떤 성경을 보더라도 결국 독자들을 교훈하는 메시지요, 책망하는 메시지며, 바르게 하는 메시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인간이 성경을 통해서 교훈을 받고, 때로는 책망을 받으며, 바르게 함과, 의의 교육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아버지 같은 엄격한 책망을 주기도 하고, 인자하고 부드러운 어머니 같은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우리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히5:12).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성경만이 우리를 의로 교육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의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케 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시고 책망하시며 의로 교육하시는 이유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함을 입기 위함’입니다(17절).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는 것’과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법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보증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된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된다는 말씀(17절)은 구원받은 성도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함을 입은 사람은 자기 구원에 대해 추호의 의심이나 흔들림이 없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는 사람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모든 선한 일을 온전케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선한 일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착한 수준이 아닙니다. 선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선한 일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좋아서 하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 태반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이 아닐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함을 입은 사람’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조건들이 성경을 통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의 교육’을 통해서만 되어 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분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모든 선한 일을 온전케 하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교과서요,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참고서입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