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날씨 탓인지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선풍기가 여름내 어지러울 만큼 날개를 돌리며 바람을 만들었다. 고열로 시달리면서도 모두 잠든 시간에도 잠 못 자면서 밤새워 바람을 만들었다. 이제 날개를 접고 구석 한쪽에 단정하게 앉아있다. 눈물 나도록 애써준 고마운 친구이다.
선풍기 날개를 깨끗이 닦아서 여름을 시작했는데 여름을 보내고 나니 날개에 먼지가 쌓여있다. 엊그제 선풍기를 창고에서 꺼낸 것 같은데 다시 청소해서 보관해야 한다. 우리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것 맞다.
오늘은 산으로 소풍을 가기로 했다. 날씨도 선선한 탓이다. 집에서만 있기에는 아까운 바람이고 햇살이다. 요즘 대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김밥이 난리다.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서 보았는데 늦은 밤에 주인공이 김밥을 먹을 때면 군침을 삼키면서 김밥 유혹을 떨쳤었다.
김밥을 싸 들고 소풍을 가자고 했더니 더운데 만들지 말고 김밥을 사서 가자고 하니 내심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김밥 세 줄과 아들이 좋아하는 햄버거 3개, 김밥에는 뭐니 뭐니해도 환타, 인절미, 설탕을 듬뿍 넣은 토마토, 얼린 물 2통을 배낭에 넣고 팔공산 운부암으로 소풍을 갔다.
은해사에서 운부암까지 걸어가는 산길은 명상의 길이다. 나무숲 사이로 걷는 산길은 새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졸졸 따라오며 벗이 되어준다. 은해사에서 운부암까지 3.5km이다. 왕복 7km의 먼 거리지만, 평평한 산길에 경사도 완만해서 산책하기 좋은 산길이다. 중간에 신일지라는 연못과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가면 좋다.
산길을 한 시간 넘게 걸으니 온몸에서 땀이 흐른다. 그동안 더위에 지쳐서 그런지 조금은 힘에 부쳤지만, 중간에서 잠시 쉬면서 운부암까지 걸었다, 하루살이들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던지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다른 날보다 부담스러울 만큼 안겨들었다. 손사래를 치면서 ‘정상에서 만납시다.’서로 격려하면서 한 발씩 한 발씩 걸었다.
계곡에는 생각보다 물이 적었다. 서울에 물난리가 나서 뉴스에 연일 보도가 될 때도 여기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어쩌다 아쉽게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가뭄으로 타들어 가는 마음을 더 애타게 했다. 비가 오기는 했나 싶을 만큼 계곡이 말라 있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암자에서 들려오는 독경 소리 같았다.
가방에 잔뜩 가져간 김밥이랑 햄버거를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연못가 너럭바위에서 늘 먹었는데 오늘은 하루살이들 성화로 인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자리 펴고 김밥을 먹다가는 아마도 하루살이를 생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암자를 지키는 속이 텅 빈 1300년 된 느티나무에서 잠시 쉬면서 땀을 식혔다. 할머니가 생각난다는 손자의 마음을 남겨두고 달마대사의 넉넉한 가슴도 뒤로하고 어둠이 내리는 산길을 설렁설렁 내려왔다. 김밥은 집에서 먹기로 했다. 저녁때가 훨씬 지난 이유도 있고 하루살이의 습격도 무섭고 해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노래 부르며 조금은 짧아진 낮의 길이를 얘기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천상병 시인의 시 < 새 > 가 복숭앗빛으로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에 걸려있었다.
살아서 / 좋은 일도 있었고 /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2022. 8.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