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국왕 탄신 축하 불꽃놀이>
태국 국왕과 왕실 이야기
태국의 현 국왕은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라마 9세이다.
국왕은 입헌군주제의 태국에서 정치적인 실권은 없으나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어서 쿠데타를 일으킨 장군들도 왕의 승낙을 받지 못하면 부대로
복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살아있는 신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푸미폰 국왕은 1927년12월 5일(월요일)에 탄생하였고
1946년 6월 9일에 왕위에 즉위하였다.
그리하여 2006.6.9.에 즉위 60주년을 맞이하였고
지난 12월 5일에 80회 탄신일을 맞이하였다.
국왕의 탄신일은 공휴일이다.
국왕으로서 재위 60년은 태국역사는 물론 세계적인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파타야의 거리에 걸려 있는 국왕의 사진. 이러한 그림은 대도시는 물론 지방도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노란 셔츠의 물결>
우리가 방콕에서 지내면서 의아해 하였던 일의 한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노란색 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느 단체의 운동복인가도 생각하였으나 시장의 상인들도
학생들도 노란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이에 대한 의문은 깐짜나부리에서 기차를 탔을 때 치앙마이 출신의 여자 여행가이드에게
물어서 풀렸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태국에는 요일별로 색깔이 있다고 한다.
월요일은 노란색, 금요일은 파란색 하는 식이다. 국왕의 탄생일이 월요일이었으므로
노란색은 국왕의 색깔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금년 가을 국왕이 뇌졸증으로 입원하여 병세가 심상치 않게 되었으므로 국민들이
국왕의 쾌유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국왕의 색깔인 노란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다행히 국왕의 병세는 호전되어 휠체어를 타던 그가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단다.
(10월13일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11월 7일에 퇴원함) 국왕의 병이 나았지만
국민들은 국왕의 건강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계속 노란셔츠를 입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치앙마이의 두앙타완 호텔옆 주차장 벽면에 걸린 국왕부처의 사진.
사진들은 젋었을 적의 모습 또는 현재의 모습등 다양하다. >
<태국의 지폐>
태국의 모든 지폐에는 국왕의 젊을 적의 초상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새로 발행될
지폐에 어떤 인물의 초상을 수록할 것인가를 놓고 열띤 논의를 하였던 것과는 대조
되는 일이다.
방콕의 어느 호텔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운전기사들이 심심풀이로 게임을 하였는데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돈을 걸고 하였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제보를 하여
(태국에는 도박이 금지되어 있고 카지노도 없다.) 도박을 하던 기사들이 경찰에 잡혀 갔다.
그런데 그들의 죄목은 국왕모독죄!
국왕의 초상이 들어있는 지폐를 주차장 땅바닥에 놓고 노름을 하였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보석(Saudi Arabian Jewelry>
2006년 6월의 태국국왕 재위 60주년 기념축하행사는 대단한 행사였다.
왕의 즉위기념일인 6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은 공휴일로 선포되었으며
전 세계의 26개 왕국에서 축하사절을 보내어 축하하였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에서는 왕은 물론 축하사절조차 보내지 아니하였다.
같은 왕국이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축하사절을 보내지 않은 이유는
1989년에 사우디의 리야드에서 발생한 보석 도난사건에서 비롯되었다.
그 당시 사우디에는 한국의 건설업체에 고용된 노무자를 비롯하여
30만 명에 가까운 타이 인력이 진출하고 있었다.
“크리앙크라이 태차몽”이라는 태국남자가 파드 왕의 아들인 파이잘 왕자의 궁에 하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궁정의 청소를 담당하고 있던 그는 왕자와 그 가족이 외국으로 휴가를 간
사이에 전자경보장치를 해제하고 무게가 200파운드(약75kg)나 되는 보석들을 훔쳐갖고
태국으로 도망하였다.
사우디 왕실에서 그렇게 많은 보석을 훔쳐 갖고 유유히 사우디를 빠져나간 대담한 절도사건은
그 당시 사우디에 진출해 있던 우리나라 건설업체의 고위간부들에게도 소문이 나서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절도범은 사우디로부터 통보를 받은 태국경찰에 체포되었고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5년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보석으로 가득 찬 상자가 사우디에 반환되었다.
그러나 그 상자를 열어 본 사우디의 왕자는 반환된 보석이 도난당한 보석의 20%밖에 안 되고
그나마 반환된 보석 중에는 모조품까지 섞여있는 것을 보고 경악하였다.
사우디의 엄중한 항의를 받은 태국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하였고 범인이 암살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범인을 살해하여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막으려는 거대한 조직이 개입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태국경찰이 사후 또는 사전에 연루되었다고 확신한 사우디에서는
전담 외교관을 파견하여 독자적인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도난당한 보석의 행방과 연루된
경찰간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수집하였으나 조사를 담당했던 사우디의 외교관이 암살당하였고
암살범은 체포되지 아니하였다.
사우디정부는 태국과의 대사급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사우디에 진출한 근로자 25만 명의 체류허가를
취소해 버렸다. 겨우 2만 명의 태국근로자만이 잔류하게 되었다.
태국경제에 큰 타격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대사급 외교관계가 격하되어 대리대사로 태국에 부임한 사우디의 외교관 Khoja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경찰의 연루사실을 파헤쳤고 사우디정부가 강력한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간부
가 여러 명 해임되었으나 보석도난사건의 정확한 진상과 없어진 보석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사우디와 태국의 관계는 아직도 불편한 상태라고 한다.
<국왕은 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가?>
태국국민들이 그들의 국왕을 존경하는 것은 우선 국왕의 인품이 훌륭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왕은 대학을 포함한 고등교육을 스위스에서 받았다.
그는 음악, 미술(그림, 사진),스포츠 등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가 작곡한 재즈음악은 지금도 태국에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고 한다.
<도이수텝 사원 경내의 화단위에 걸린 국왕부처의 사진.>
그는 1950년에 결혼한 왕비와 1남 3녀의 자녀를 낳으며 해로하고 있다.
단 한 번도 다른 여자를 가까이 한 일이 없다고 한다.
이 점을 태국사람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국왕은 실질 정치면에서의 실권은 없으나 헌법이 국왕에게 부여한 권한을 통하여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국왕은 별로 행사하는 일은 없지만 국회에서 의결한 법률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재임 중에 몇 번의 사례가 있었는데 국왕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률에 대하여 국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일은 없었다. 국왕은 또한 감사원장이나 대법관의 최종임명권도 갖고 있다.
이러한 권한의 행사에 있어 국왕이 생각하는 것은 오직 태국의 국가적 안정과 국민들의 복지뿐이다.
푸미폰 국왕은 엄청난 부자로 전 세계 부호 중 최상위에 랭킹 될 정도의 재산가이다.
국왕과 왕실의 재산은 수 십 억불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왕의 재산은 왕실재산국(CPB :Crown
Property Bureau)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CPB는 법에 의하여 설립되었지만 정부에서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기구이다.
CPB가 관리하고 있는 왕실재산은 대부분 부동산과 주식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CPB는 태국 최대의
산업체인 Siam Cement, 태국 최대의 건설업체인 Christian&Nielson, Siam상업은행, 통신업체인 Shin
Corporation의 최대주주이다. CPB는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방콕 중심지에 있는
Siam Paragon, Central World Trade Center등의 부지도 포함되어 있는바 이로부터 막대한 임차료수
입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왕은 이러한 막대한 재산을 낙후지역의 개발이나 태국에 꼭 필요한 산업부문의 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데 사용하고 있어 국민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한다.
국왕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은 대부분 마음에서 우러난 자발적인 것이지만 왕의 권위는
왕실모독죄를 다스리는 법률에 의하여 엄격히 보호되고 있는 면도 있다.
2007년 3월에 치앙마이를 여행 중이던 Oliver Jufer라는 스위스 사람이 술에 취하여 몇 군데의
국왕의 초상화에 검정 페인트를 뿌린 일이 있었다.
그는 체포, 구금되었고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10년에 처해졌다.
다행히 그는 국왕에 의해 사면되어 한 달 만에 풀려났다.
얼마나 많은 태국인들이 왕실모독죄로 처벌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왕의 승계문제>
국왕이 80세나 되었으니 태국국민들은 누가 다음 왕이 될 것인지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왕에게는 1남 3녀가 있다. 둘째가 왕자이다.
<도이수텝 사원 경내에 걸려있는 국왕의 가족사진.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국왕과 왕비.
국왕의 뒤에 서있는 남자가 왕세자이고 왕비 뒤에 서있는 세 여자는 공주들이다.
왕세자 좌우에 있는 3명의 여자는 왕세자의 부인들이다.
왕 바로 뒤에 서 있는 뚱뚱한 여인이 왕세자의 본부인인데 왕세자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왕의 첫째 딸은 결혼 전에 미국 보스턴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미국남자와 결혼하였다.
그 결혼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여 공주는 쫓겨나듯이 이혼을 당하고 태국으로 귀국하였다.
왕자에게는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결혼을 시킨 후 미국에 유학을 보냈다.
공부를 잘 마치고 귀국하였으나 조강지처를 버리고 여배우와 눈이 맞아 둘째부인으로 들였다.
그 이후에도 왕세자의 여인편력은 계속되어 공식으로 부인으로 들여 앉힌 여자만 3명이고
그외에 그가 관계한 여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왕세자가 과연 푸미폰 국왕의 뒤를 이어 즉위할 경우에 현 국왕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태국의 나라 안정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국민들이 염려하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둘째 "마하 차크리 시린턴" 공주가 아름다운 용모와 훌륭한
인품으로 국민들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국회에서는 공주도 왕위를 승계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기도 하였다.
과연 누가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는 태국 국왕의 후계자가 될 것인지.
태국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