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꿈꾸었으나, 여태껏 성사되지 못했던 세기의 드림 이벤트가 올 9월 마침내 실현되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불세출의 명지휘자, '신이 내린 목소리'로 국제 오페라 무대를 휘어잡고 있는 스타 소프라노인 빈 필하모닉과 주빈 메타와 조수미,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그것도 여기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주빈 메타와 빈 필, 조수미와 주빈 메타, 조수미와 빈 필은 서로 오랜 세월 인연이 깊은 각별한 사이임에도 각자의 빡빡한 스케줄에 쫓기어 삼자가 함께 모여 콘서트를 가진 적이 없다. 그러기에 이번 공연의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하겠다.
내한 콘서트를 빛낼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먼저 빈 필하모닉. "이야말로 파괴할 수 없는 빈입니다. 이 오케스트라의 멋진 소리는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1897년의 소리와 똑같습니다. 그 특성이라든가 아름다움은 전혀 변치 않았습니다." 1948년 5월, 베토벤 '합창' 교향곡과 말러 '부활' 교향곡을 지휘하려 10년 만에 귀향한 브루노 발터는 빈 필과 리허설을 마치고 난 뒤 감격하여 이렇게 술회했다. 발터뿐만이 아니다.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오케스트라 중 하나'라 단언했고, 안톤 브루크너는 '음악에 있어서 최고의 협회'라 격찬했다. 청중은 물론이요, 이 악단과 눈길을 맞춰보았던 지휘자, 작곡가들이라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빈 필의 사운드에 매료되었다고 말했다. 베를린 필, 로열 콘서트헤보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 유서 깊은 역사와 쟁쟁한 관록을 보유한 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들 중에서도 빈 필이 창출해내는 사운드는 단연 유니크하다는 평을 듣는다.
지휘자 한스 크나퍼츠부쉬의 표현대로 '비교할 수 없는' 빈 필 사운드의 비밀은 무엇인가. 단원들조차 정확히 분석하지 못한다는 음색의 비결은 그들이 사용하는 악기와 독보적인 연주법, 유구한 전통에 근거한다. 빈 필의 악기는 19세기 말의 음향 이미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는 목관·금관·타악기에 두루 해당된다. 일반적인 더블 호른과 재질 및 양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며 관의 내경이 좁고 길이가 긴 F조의 빈식 호른은 유연한 음의 연결과 우람한 음량을 자랑하는 빈 필만의 트레이드마크다. 트럼펫은 기동력이 앞서는 피스톤식 대신 소리가 부드러운 로터리 밸브 방식을, 튜바는 울림이 육중한 빈 스타일을, 오보에는 세계적으로 연주되는 프랑스식 오보에와 달리 관의 형태가 특이하고 리드와 운지법이 다른 빈식을 고수한다. 클라리넷도 마우스피스와 리드의 형태가 보통 악기와 다르며 운지법이 서로 다르다. 풍부한 배음과 밝은 음조, 넓은 강약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팀파니 또한 인조가죽 대신 온도 변화에 민감하지만 공명이 널찍하게 울려 퍼지는 천연 소가죽을 씌우고, 페달 대신 손으로 나사를 돌려 세밀하게 조율을 한다.
빈 필하모닉 사운드의 비밀
빈 필 고유의 매력 포인트인 현악기는 오트마르 랑 공방에서 제조되지만 막상 구조상으로는 색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빈 필의 악장으로 활동하다가 1992년 사고로 타계한 게르하르트 헤첼은 기계적으로는 이해 불가한 그 비밀에 대하여 "단원들의 이상적인 음에 대한 공통된 생각은 우리의 전통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나옵니다"라고 설명했다. 키워드는 다름 아닌 전통인 것이다. 바이올린이라면 요제프 뵘이나 빈 필의 초대 콘서트마스터인 요제프 헤르메스베르거 1세의 아버지 게오르그 헤르메스베르거가 창시하여 단원들 대대로 전승되고 있는 빈 바이올린 악파의 독자적인 주법이 바탕이 된다. 이러한 스트링 섹션의 독특한 활 보잉은 고풍스러우면서도 그윽하고 유려한 빈 필 사운드를 빚어내는 데 기여하는 일등 공신이다. 피치도 국제 표준보다 약간 높은 445Hz를 채택한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는 이 방식을 다른 오케스트라 빈 톤퀸스틀러 심포니에 적용해보려 했으나, 빈 필과 같은 음향은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었다고 저서에 썼다.
그래서 빈 필의 지휘대에 서보았던 작곡가 몇 명은 이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음색을 상상하면서 작곡에 임했다고 한다. 내한 공연의 프로그램도 그러한 작품들로 짜여있다. 브람스 교향곡 4번이 전형적인 예이다. 빈 필에 대해서 '친구이자 숭배자'라 말한 바 있는 요하네스 브람스는 실제로 자신이 쓴 교향곡 2번과 3번을 막역한 친구이자 깊은 신뢰를 보냈던 거장 한스 리히터의 지휘 아래 빈 필하모닉의 연주로 초연하도록 부탁했다. 본 콘서트에서 공연되는 교향곡 4번은 1885년 10월 25일 작곡가 본인이 마이닝겐 궁전 관현악단을 지휘하여 초연했으나, 이듬해 1월 17일 한스 리히터와 빈 필이 연주한 뒤 브람스가 운명하기 직전인 1897년 3월 7일 재차 리히터와 빈 필하모닉이 공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던 곡이다. 작곡가는 병환으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콘서트에 나타나 단원과 관객들에게 박수 갈채를 받았다. 18세기 후반 빈 고전파 음악의 중심인물 요제프 하이든의 교향곡 104번 역시 빈 필이 자신 있어하는 레퍼토리. 작곡가 서거 200주년인 올해에 적합한 선곡이다.
빈 필하모닉은 1842년 3월 빈 궁정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 오토 니콜라이가 극장에 소속된 오케스트라를 콘서트 악단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에 따라 레두텐잘에서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지휘한 '필하모니 아카데미'라는 연주회로부터 출발한 것이라 여겨진다. 콘서트가 11회 연속되며 '모든 면에서 자주적으로 운영된다' 및 '모든 결정은 악원 총회에 의해 이뤄진다' 등 기본 원칙이 설정되었다. 제2대 수석 지휘자 칼 에케르트 시대를 거치며 단원들 스스로가 오케스트라 운영에 책임을 진다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빈 필의 호른 연주자 출신인 한스 리히터(1843-1916)를 수석 지휘자로 맞이하여 장족의 발전을 하였고, 구스타프 말러(1898-1901), 펠릭스 바인가르트너(1908-1927), 빌헬름 푸르트뱅글러(1927-1930), 클레멘스 크라우스(1930-1933) 등 기라성 같은 대지휘자를 맞이하여 첫 번째 황금기를 구가했다. 크라우스가 빈을 떠나게 되자 빈 필하모닉은 단원들의 투표에 의하여 지휘자를 초빙하는 현재의 객원 지휘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후 유럽과 영미 등에서 수많은 명장과 콘서트를 가지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상의 명문 오케스트라로 자리 잡았다.
오케스트라의 오랜 동반자 주빈 메타
주빈 메타는 인도 출신이지만 예술적 토양은 오스트리아 빈에 뿌리내리고 있는 지휘자다. 18세 나이인 1954년 빈 국립 음대에 유학을 가서 이듬해부터 명교수 한스 스바로프스키의 엄격한 지도를 받으며 지휘법을 배웠다. 그가 빈 필하모닉과 첫 대면한 시기는 1961년. 이해 6월 11일 빈 무지크페라인 잘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돈 키호테'를 지휘하며 데뷔했다. 빈 필을 지휘한 최초의 동양인으로 화제를 모으는 동시에 빈의 전통을 소중히 지키는 태도를 견지하여 정기 회원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얻었다. 그 후 거의 매년 빈 필의 지휘대에 정기적으로 오르는 메타는 현역 지휘자 중 이 오케스트라와 가장 오래 관계를 지속하는 인물이 되었다. 2011년이면 빈 필을 지휘한 지 무려 50년이나 되는 것이다. 올해에도 2월에서 3월에 걸쳐 빈 필하모닉과 빈·뉴욕·런던·파리 등지를 순회하며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영웅의 생애' 등을 공연했다. 빈 필과 녹음도 여러 번 하여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슈만 교향곡 전집, 브루크너 교향곡 9번(Decca) 등이 음악평론가들에게 일제히 절찬받았다.
메타와 빈 필하모닉의 신뢰 관계는 해가 갈수록 두터워졌다. 1990년·1995년·1998년·2007년 빈 필의 중요한 연례행사인 신년 음악회를 지휘했고, 1997년에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명예회원, 2001년에는 빈 필의 명예 지휘자, 2007년에는 빈 악우협회의 명예회원으로 선정되었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이 빈 악우협회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받은 사람은 베르디·브람스·말러·카라얀·번스타인 등 극소수의 음악계 거인들뿐이었다. 1936년생으로 칠순을 넘긴 노장 메타는 전형적인 엘리트형 지휘자다. 1958년 리버풀에서 열린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줄곧 승승장구했다. 1961년에서 1967년 사이 몬트리올 심포니의 음악감독, 1962년에서 1978년 사이 LA 필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으며, 1978년부터 1991년까지 뉴욕 필의 음악감독으로 재임했다. 1985년에는 피렌체 5월 음악제 오페라 극장의 수석 지휘자로 취임했고, 1998년에서 2006년 사이에는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총감독으로 생활했다. 이스라엘 필과도 친분이 깊어 1981년 종신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연주가 다이내믹하면서도 곡선적인 요소도 소홀히 하지 않아 음악이 항상 장려하다.
화려한 미성의 소프라노 조수미
조수미와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만남은 짧지만 귀중했다. 유럽 데뷔 공연으로 1986년 10월 26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주세페 베르디 극장에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카라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년 뒤 오디션에 초청하여 그녀의 노래를 들은 카라얀은 완전히 매료되어 '백 년에 한두 명 나올까 한 목소리'라 극찬했다. 빈 필하모닉을 지휘하여 조수미와 가지려던 공연은 급환으로 무산되었으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게오르그 솔티와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의 오스카 역을 노래하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1989년 1월 27일에서 2월 3일 사이 플라시도 도밍고 등과 그녀를 함께 캐스팅하고 직접 바통을 들어 빈 필하모닉을 지휘, <가면무도회> 스튜디오 음반(DG)을 만들었다. 조수미와 빈 필하모닉의 기록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솔티/빈 필하모닉과 녹음한 모차르트 <마술피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그림자 없는 여인>(Decca)도 스테디셀러 아닌가.
조수미와 주빈 메타도 평소 친분이 두터운 음악적 동료이다. 메타는 그녀의 가창을 접하고 '신이 주신 목소리'라 말했다. 자주 협연을 가지며 조수미와 호흡이 잘 맞는 지휘자로 손꼽히고 있다. 이번 콘서트에서도 조수미가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손수 골라 추천했다.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중 '꿈속에 살고 싶어라'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중 '웃음의 아리아,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이상해. 언제나 자유라네'가 그들이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조수미는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 지아넬라 보넬리에게 사사했다. 1985년 나폴리 존타 국제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발돋움했다. 1989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베르디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1990년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서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을, 1991년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에서 오펜바흐 <호프만의 이야기>의 올림피아 역을 맡아 이름을 드날렸다. 오늘날 조수미는 청초한 미성과 화려한 기교를 겸비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5대륙 오페라 극장을 누비고 있다.
다가오는 9월 2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예정인 빈 필하모닉과 주빈 메타와 조수미의 내한 콘서트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성대한 음악 연회를 선사할 것이다. 천상병 시인이 가을에 들어야 한다고 말했던 브람스와 귓가를 속삭이는 환상적인 아리아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들 황금 트리오가 엮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에 웃고 울며 기뻐하고 행복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