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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동물원(人間動物圖抄)
손 창 섭
동굴 속같이만 느껴지는 방이다. 그래도 송장보다는 좀 나은 인간이 십여 명이나 무릎을 맞대고들 앉아 있는 것이다. 꼭 같이들 푸른 옷으로 몸을 감고 있는 것이다. 밤이 되어도 자라는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누구 하나 멋대로 드러누울 수 없는 것이다. 밤중에 자지 않고 일어나 앉아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할 자유조차 완전히 박탈당한 그들에게는 먹고, 배
설하고, 자는 일만이 허용되어 있을 뿐이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주체스럽기만 한 것이다. 낮이면 부질없는 이야기로 지루한 날을 보내고, 밤이면 제각기 색다른 꿈으로 잠을 설치는 것이다. 날마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들은 곧잘 이야기마저 잊어버리는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감방 안은 그야말로 동굴 속처럼 무거운 정적만이 차 넘치는 것이다. 게다가 땀내와, 변기에서 새어나오는 구린내까지 더 심해지는 것같이 생각되는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의식하지 못하는 기대를 안고, 한 사람 두 사람 고개를 뒤로 돌린다. 뒷켠 벽 꼭대기에는 조그마한 창문이 있었다. 거기에는 엄지숟가락보다 굵은 쇠창살이 위아래로 꽂혀 있는 것이다. 그 창살 사이로는 나무 없는 산등성이가 바라보이고, 그 너머로 아득히 푸른 하늘도 쳐다보이는 것이다. 맨 앞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방장(房長)이 먼저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오늘두 날씨는 참 좋군!”
방장 눈에는 창살 사이로 나무 없는 산등성이가 바라보이고 그 너머로는 푸른 하늘도 아득히 쳐다보이는 것이다. 다음으로 방장 옆에 앉아 콧구멍을 쑤시고 있던 전차 운전사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살 사이로는 나무 없는 산등성이와 푸른 하늘이 아득히 쳐다보이는 것 이다. 이번에는 전차 운전사 옆자리의 좌장(座長)과 그 옆의 핑핑이가 거의 동시에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그들 눈에는 나무 없는 산등성이와 푸른 하늘이 쳐다보이 것이다. 이어서 핑핑이 맞은쪽에 앉아 있는 주사장(廚事長)이 납작한 코를 젖히고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그 눈에는 나무 없는 산등성이와 푸른 하늘이 아득히 쳐다보이는 것이다. 주사장 옆에 앉아 있는 임질병, 그리고 그밖에 모두들 자연히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아무 눈에나 창살 사이로 쳐다보이는 것은 역시 나무 없는 산등성이와 그 너머의 푸른 하늘인 것이다. 그러나 끝끝내 통역관만은 창밖을 내다보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남을 깔보는 것 같은 눈으로 싱글싱글 웃으며 사람들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것이다. 양담배는 늘 통역관의 그 눈이나 싱글거리는 웃음이 공연히 마음에 켕겼다. 그리고 흔히 무슨 깊은 의미가 있는 듯이 중얼거리는 엉뚱한 소리가 양담배에게는 까닭 없이 불안하였다.
“모두들 푸른 하늘이, 저 드높은 하늘이, 그리운 게지! 저 하늘을 차지하고 싶거든 용감해져야 합니다. 강해져야 한단 말입니다.”
지금도 통역관은 그런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인 것이다. 양담배는 도무지 통역관의 속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통역관의 언동에는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약자는 언제나 이렇게 하늘만 사모하다 죽는 법입니다.”
통역관은 그런 말도 했다. 알 듯도 모를 듯도 한 소리지만, 거기에는 어려운 뜻이 들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미국말에도 익고, 이렇게 난해한 말을 잘 지껄이는 통역관은 그 학식이 비범할 것이다. 그래서 양담배는 남몰래 통역관과 좀 의논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이다. 지식이 많은 통역관은 자기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을 깔보는 것 같은 그 눈과 웃음이 좀처럼 양담배를 접근시켜주지 않았다. 동굴 속 같은 이 감방에 들어온 날 저녁부터 양담배는 아주 고약한 경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방장이 잠자리를 정해주는 대로 좁은 틈에 끼어 어렴풋이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등 뒤에 붙어 자던 주사장이 슬그머니 양담배의 엉덩짝을 쓰다듬는 것이었다. 이 안에서는 누구나 내의를 입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알몸뚱이에 고름 없는 여름 두루마기 같은 수의(囚衣)를 겉치고 있을 뿐이다. 수의 자락만 들치면 그대로 맨살이다. 그러기 주사장은 손쉽게 양담배의 엉덩짝을 어루만질 수가 있는 것 이다. 양담배는 기분이 나빴지만 처음에는 가만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사장은 양담배의 옷자락을 훌렁 걷어 올리더니 누운 채로 등 뒤에서 꼭 끌어안으며 이상한 짓을 하려 드는 것이다. 그제야 양담배는 좀 당황했다. 이 자가 미쳤나 싶었다. 아무리 잠결이라 쳐도 남녀를 식 별하지 못하랴 싶었다. 양담배는 징그러웠다. 그는 얼른 자기의 수의 자락을 내리켜 아랫도리를 꽁꽁 감싸듯이 한 것이다. 또 얼마가 지나서다. 양담배가 이번에도 잠이 들닥말락 하는데, 도로 옷자락이 헝클어지더니 뒤에서 주사장이 꽉 끌어안는 것이었다. 항문에 불쾌한 압박감을 느끼는 순간,
“왜 이럽니까?”
하고, 양담배는 후닥닥 뛰어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주사장의 억센 팔뚝은 양담배의 허리를 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가만하구 있어 이 자식아!”
그래도 양담배가 버둥거리니까,
“잠자쿠 있지 않으문 모가질 비틀 테다!”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살기 어린 표정을 방불케 하는 음성이었다. 동시에 주사장의 한쪽 팔이 양담배의 턱밑을 숨이 컥컥 막히도록 조이는 것이다.
“끽 소리 말어, 귀신 몰래 죽지 않을 테건.”
결국 주사장은 저 하고 싶은 짓을 다 하고야 만 것이다. 양담배는 속이 메슥메슥해서 그날 밤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는 길로 방장은 주사장에게 영문 모를 소리를 던지는 것이었다.
“이놈아, 내게 절을 해라!”
주사장은 방장을 바라보며 만족한 듯이 헤헤헤 하고 웃었다. 아침 식사 때, 주사장은 자기 그릇의 밥을 절반이나 양담배에게 덜어주는 것이었다. 낯을 붉히며 양담배는 굳이 사양했으나 마침내 받아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양담배에 대한 주사장의 친절은 강경했던 것이다.:
아무튼 살아 있는 인간임에는 틀림없지만 동굴 속 같은 이 우리 안에서는 화제에 궁해지는 일이 많은 것이다. 어떤 때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십 분 이상이나 입들을 봉한 채 우두키니 앉아 있는 수가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왜 그런지 사람들은 대개가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창살 사이로는 여전히 나무 없는 산등성이와 그 너머의 푸른 하늘만이 쳐다보일 뿐이다. 어떤 때는 그 하늘에 구름덩이가 머물러 있기도 하고, 흘러가기도 하는 것이다. 간혹 나무 없는 산등성이에 한 쌍의 남녀가 나타나는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런 날은 이 깊숙한 감방 안에 소동이 발생하는 것이다. 오십이 넘은 좌장과, 남을 깔보는 듯한 냉소와 언동으로 무장한 통역관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일어나서 창밑으로 바투 모여 서는 것이다r 그리고 그들은 목을 길게 빼고 발돋움을 해가며 지치는 일 없이 산등성이의 남녀를 내다보는 것이다. 몰론 먼 거리라서 얼굴의 생김새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복장으로 남녀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남녀는 천천히 걸어서 지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더러는 한동안을 나란히 앉아 있기도 하였다. 그쯤 되면 여러 사람의 관심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흥, 연애들 걸러 왔구나!”
제일 먼저 설명을 가하는 것은 핑핑이었다. 그는 여러 번 연애를 걸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잘 아노라는 것이다. 연애를 걸려면 저렇게 여자를 외딴 데로 끌고 가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고녀 학생을 다섯 명이나 농락한 끝에, 국민학교 다니는 소녀에게까지 상처를 입히고 들어왔다는 핑핑이는 자신 있게 그런 해설까지 붙이는 것이었다. 그밖에 모두들 한두 마디씩은 참견을 해 보는 것이다. 전차 운전사가, 저년은 영락없이 오늘 안으루 정조를 뺏기구 말 거라고 했다. 그러자 저게 여태 처년 줄 아느냐고 임질병이 반박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너처럼 임질균이 득실득실 할 거다.”
하고 운전사는 지지 않았다. 코가 납작한 주사장은, 그 납작한 코를 벌름거리면서, 임질이나 매독균이 욱실거려도 좋으니 저년을 하룻밤만 빌려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헤헤 웃는 것이다. 한편, 저 자식이 연앨 처음 해보는 모양이라고 핑핑이는 남자를 비웃는 것이다. 저 같으면 그동안에도 벌써 여러 차례 껴안고 키스를 했으리라는 것이다.
“가만있어, 인제 좀 두구 보기만 해. 한판 멋지게 얼릴 테니.”
임질병이 그래서 모두들 시선을 모으고 남녀가 한판 얼리기를 기다리지만, 좀체 그 기대는 달성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노라면 남녀는 일어서서 산등성이를 내려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제는 모두들 실망한 듯이 제자리에 돌아와 앉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그 남녀가 이미 육체적 관계를 가졌겠느냐, 아니겠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한동안 활기 있게 논쟁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누구보다도 노골적인 흥미를 갖고 참견하려 드는 것은 역시 핑핑이었다. 물론 핑핑이란 그의 본명이 아니다. 이 안에서는 서로들 본명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다. 구태여 본명을 캐묻거나 밝히려 들지도 않는 것이다. 각자에게는 이름 대신 일정한 번호가 있지만 그게 여러 계단의 숫자인 경우에는 자기 번호만 외우기도 노력이 든다. 그러니까 남의 번호까지 기억하기란 어림도 없는 일이라 자연 별명을 통용하게 되는 수밖에 없었다. 핑핑이란 것도 역시 이 안에 들어와서 얻은 별명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있는 옥외 운동 때나, 실내에서나, 핑핑이는 가끔 빈혈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아아, 머리가 돈다, 머리가 핑핑 돈다, 지구가 핑핑 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머리를 몇 번 내젓다가는 그 자리에 푹 꼬꾸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핑핑이는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얼굴이 해쓱해져서 잠시 누워 있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주사장은 그러한 핑핑이를 가리켜, 여태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녀석 이 과색¹을 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럴 적마다 주사장을 노리는 방장의 눈이 왜 그런지 무섭게 번득였다. 아무튼 핑핑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머리가 펑핑 돈다, 지구가 핑핑 돈다.”
하고, 쓰러지곤 한 데서 얻은 별명 이었다. 그밖에 임질병이니, 옴쟁이니, 전차 운전사니 하고 부르는 것도, 당자의 질병이나 직업에서 온 별명인 것이다. 물론 양담배도 들어온 날부터 얻은 별명인 것이다. 그는 여기 들어오기 전에 미군 부대에 인부로 다녔다. 어떤 날 양담배 한 보루를 사서 숨겨가지고 나오다가 발각되어 종로서 엠피(MP) 관계로 넘어갔던 것이다. 그는 거기서 군정 재판을 받을 때, 거의 매일같이 해먹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고 처음으로 사 내오던 자기만이 걸렸으니, 암만해도 억울해 못 견디겠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호소도 보람 없이 그는 이 개월의 언도를 받고 이리로 넘어온 것이다. 이밖에 별명 말고 불리는 칭호로 좌장, 방장, 주사장이 있는데 그것은 감방 내에서의 지위를 표시하는 말이다. 제일 연장자를 좌장으로 모시고, 징역살이를 가장 오래한 사람이 방장인 것이다. 끼니때마다 식사를 맡아보는 주사장은 두번째로 징역을 오래 산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안에서는 방장이 주권자인 것이다. 좌석이나 잠자리 같은 것도 방장의 지시대로 정해지고, 변기를 내놓고 들여놓는 일도 방장에게 지명 받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방장 앞에서는 아무도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통역관만은 좀 달랐다. 그는 방장이건 좌장이건, 이 방에 있는 사람 전부에게 끊임없이 깔보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해오는 것이다. 통역관은 가끔 변기 위에 올라서서 창밖으로 맞은쪽 감방을 건너다보며 영어로 무어라고 지껄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간수에게 발각되어 끌려나가는 일도 있지만 그는 태연자약하였다. 간수가 문을 따고 나오라고 하면, 그는 역시 냉소를 띤 채 버젓이 따라I나가는 것이다. 통역관이 끌려 나가고 문이 닫긴 뒤에야,
“그 자식 언제든 가만두지 않을 테다!”
하고 방장은 입을 씰룩거리며 벼르는 것이다.
날마다 우두커니 지낸다는 것은 참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도무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별수 없이 얼굴들만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대개는 무표정한 얼굴들인 것이다. 그러한 상판만 진종일 바라보고 있으려면, 여기가 마치 저승행을 기다리는 대합실이나 대기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맹랑한 착각이나 공상에서 건져주는 것은 그래도 잡담의 힘이었다. 무슨 이야기든 두세 번 되풀이되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러한 잡담 가운데서도 먹는 얘기와 여자 얘기만은 언제나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 얘기만은 몇 번 되뇌고,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지금도 한동안 침묵이 계속 된 끝에 자연 먹는 얘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아 설렁탕이나 파를 듬뿍 넣어서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전차 운전사는 입맛을 다셨다. 옆에서 그 말을 핑핑이가 비웃어주었다.
“저 양반은 언제나 설렁탕이야. 그건 시골 놈이나 먹는 거라우. 난 나가는 길로 양식점에 들어가 비프까쓰를 먹을 테요.”
그 말에 전차 운전사는 무안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비프가스보다 설렁탕이 훨씬 몸에도 이롭고 맛이 낫다는 말로 반박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전차 운전사는 아직 비프가스라는 걸 먹어보지 못한 것이다. 먹어만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게 어떻게 생긴 음식인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만하고 있자니 분하다. 그래서 이런 말로 핑핑 이를 무시해주는 것이다.
“내 참 설렁탕을 시골 놈이나 먹는단 말은 생전 첨 듣네. 설렁탕이란 서울의 명물이야, 서울 사람이 먹는 거란 말야. 서울 사람 치구두 본바닥 사람만이 진짜 설렁탕 맛을 알구 먹는 거야. 무식한 소리 어디서 함부루 해.”
핑핑이는 그 마지막 한마디가 몹시 귀에 거슬렸다. 자기보다는 나이가 거의 한 둘레나 위지만, 반말 짓거리로 빈틈없이 응수를 하는 것이다.
“뭐? 무식하다? 그래 기껀 설렁탕 맛밖에 모르는 사람이 누굴 무식하대. 비프까쓰 맛을 아는 사람이 무식해? 그래 도대체 비프까쓰가 뭔지나 알어? 뭘루 어떻게 만들구 뭘 쳐서 어떻게 먹는 건지나 아느냐 말야.”
ᅟᅥᆫ차 운전사는 분하기는 하지만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이다. 그 비프가스라는 결 먹어보지는 못했을망정 보기만이라도 했다면 입섞으로라도 뻗대 보겠는데 원체 이름조차 처음 듣는 판이라 대꾸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핑핑이는 더 신이 나서, 전차 운전사 따위에게 무식하다는 말을 듣다니, 이런 모욕이 어디 있느냐고 대드는 것이다. 핑핑이가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것은 믿는 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방장을 믿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지 방장은 늘 핑핑이를 두둔하는 것이다. 양담배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 핑핑이는 똥통에 빠진 일이 있었다. 온 방 안에 똥물이 튀고 핑핑이의 한쪽 다리는 정강이까지 분뇨로 매닥질²을 했다. 만일 그게 다른 사람 같았으면 허리를 못 펴도록 방장에게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방장은 도리어 새로 들어온 사람을 시켜서 걸레를 몇 번이나 빨아가지고 오물투성이가 된 핑핑이의 다리를 닦아주게 했던 것이다. 주사장, 좌장, 통역관, 이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방장 앞에서는 꿈쩍을 못하는 것이다. 방장이래서만 아니라 주먹이 센데다가, 살인강도의 누범(累犯)³으로 십육 년째 징역살이를 하고 있다는 그의 경력 앞에 기가 죽는 것이다. 그러한 방장도 이상히 좌장에게만은 공손하게 대하는 것이다. 일방 통역관에게 대해서는 몹시 아니꼽게 생각하고 벼르면서도 지식인이라서 그런지 마구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사장 역시 강도와 강간범으로 십 년 이상이나 복역 중에 있는 사람이라, 결코 만만히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자주 언쟁을 했고, 언쟁 끝에는
육박전까지 하게 되는 수가 많았다. 키는 작지만 통통한 몸집의 주사장은 완력으로도 호락호락 방장에게 굴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대개가 언쟁의 시초는 극히 맹랑한 데 있는 것이다. 설렁탕이니. 빈대떡이니, 순댓국이니, 그밖에 자장면, 냉면, 탕수육, 개장국 등등 한동안 음식 타령이 벌어지고 나면, 으레 여자 얘기로 화제가 옮아가는 것이다. 그리 되면,
“저건 계집 얘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저 침 흘리는 거 좀 뵈.”
방장 입에서는 그런 말이 튀어나오게 되고,
“임마, 그래 넌 점잖다. 그렇게 점잖은 녀석이 새로 들어오는 젊은 애마다 밑구멍에 고름을 들게 해주는 거냐?”
하는 식의 반격이 주사장 입에서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아직 육박전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런 투로 차차 흥분해지기 시작해서 얘기는 어느새 처녀성에 관한 문제에 도달하는 것이다. 한 번만 데리고 자보면, 처년지 아닌지를 대뜸 알 수 있다는 것이 주사장의 주장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방장의 주장인 것이다. 그 말을 가지고 한동안 옥신각신하다가 주사장은 마침내 방장이 가장 싫어하는 심리적 면을 건드려놓는 것 이다.
“이놈아, 넌 여적 숫처녀하구는 한 번두 자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거야. 숫처녀는 고사하구, 대체 여자하고 자본 일이 있어? 숫제 사내의 밑구멍에 고름을 곪게 한 것이 고작일 테지.”
왜 그런지 방장은 이 말을 최대의 모욕으로 생각하였다. 이 말만 듣고 나면 방장은 더 참지 못하는 것이다. 마침내 그는 폭력행위로 분을 풀려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쑥 들어갈 주사장도 아니다. 두 사람은 기어이 짐승처럼 서로 물어뜯는 것이다. 그런 싸움이 지나가고 나면 양담배는 자꾸만 자기 일이 걱정스러워지는 것이다. 밑구멍에 고름을 들게 한다는 주사장의 말이 가슴에 걸리기 때문이다. 요즘 와서 양담배는 확실히 자기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짐작되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늘 뒤가 무죽한⁴ 채 있는 것이다. 도무지 개운하지가 못해서 뒤가 마렵거니 싶어 변기 위에 올라앉는다. 그러나 장시간 그러고 앉아서 힘을 주어도 용변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변비증인가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게 아니라고 깨달은 것이다. 정말 뒤가 마려운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런 감이 드는 것뿐이다. 그것은 영락없이 주사장이 말하는 것처럼 밑구멍에 고름이 곪은 탓이리라 양담배는 생각하는 것이다. 첫날밤 이래 그는 거의 매일밤 그 징그러운 주사장의 장난질을 받아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밤만 되면 끔찍한 것이다. 아무리 궁리해도 그 짓을 모면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느 날 그는 핑핑이도 방장에게 그런 장난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방장이 덮어놓고 핑핑이를 두둔해온 일이나, 반드시 핑핑이를 제 옆에다만 재우는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한 번은 핑핑이가 슬며시 다가앉더니, 양담배에게 웃으며 이런 귀띔을 해주는 것이었다.
“인제 한 달만 겪어 봐, 너두 머리가 핑핑 돌다가 쓰러지군 할테니.”
그렇더라도 할 수 없다고 양담배는 각오한 것이다. 애초부터 이런데 들어오게 된 것이 불운이라고 생각하였다. 양담배 한 보루 샀던 일이 새삼스레 후회되는 것이다. 지금 와서는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이다. 만기가 되어 여기를 나가기만 하면, 병원에부터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항문이, 그리고 내장이 채 썩기 전에 병원에 달려가서 보아 달래야겠다고 벼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달은 마치 이 년처럼 지루하게 생각되었다.
그래도 다들 자기의 만기일(滿期日)만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제 번호 하나 변변히 외우지 못하는 사람도 만기일만은 잊지 않는다. 그만큼 그들은 사회에 나가는 날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모나 처자가 있어서 반가이 맞아줄 처지라면 출옥을 기다리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 아무도 없는 방장, 주사장, 임질병 같은 자들도 어서 만기가 되어 풀려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심속을 양담배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좌장만은 분명히 생각이 다른 것이다. 사기횡령 및 문서 위조죄로 일 년 팔 개월의 언도를 받고 들어와 있다는 좌장은 불평이 적지 않은 것이다. 복역 기간이 길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짧다는 불평인 것이다. 이미 오순이 넘은 처지에 자녀도 재산도 없으니, 사회에 나가 뭘 하겠느냐는 것이다. 어디다 의지하고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이삼십 년의 언도를 받고, 이 안에서 살다가 죽고 싶다는 것이다. 남의 사랑방이나 노변에 쓰러져 죽는 것보다는, 비록 형무소일망정 이런 방 안에서 안심하고 죽고 싶다는 것이다. 자기가 섣불리 문서 위조를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노후를 걱정하는 나머지 한 밑천 장만하기 위해서였다는 짓이다. 사람이 늘그막에 의탁할 곳이 없고 보면 그것처럼 초조하고 불행한 일이 없다 하며, 자기는 앞으로 출옥을 하면 이번에는 좀더 큰일을 저지르고 나서, 한 이십 년 언도를 받고 다시 들어오겠노라고도 했다. 양담배는 그러한 좌장의 의견에 무작정 공명⁵을 표한 것이다.
“옳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두 노모만 안 계시구 나이가 좀 들었다면 아예 예서 늙어 죽구 말겠습니다.”
그 말에 먼저 분개한 것은 방장이었다. 방장은 좌장의 말에도 자기 자신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연장자에게 정면으로 대들 수도 없고 해서 잔뜩 부르터 있던 판이다. 그는 이상하게도 윗사람 앞에서는 언제나 공손하였다. 그러던 차에 양담배가 마련 없이⁶ 좌장의 말에 동의를 표하는 데는 울컥 치미는 밸을 누를 수 없는 것이었다.
“요망스런 자식아, 소견머리 없이 마구 지껄이지 말아. 주둥일 찢어줄 테다.”
“어디 나만 그랬어요. 나 혼자만 그랬어요! 좌장님의 말씀이 옳은 말씀이란 말이죠.”:
방장은 눈이 번뜩였다. 한쪽 다리를 들어 양담배의 옆구리를 힘껏 질렀다.
“난 나가 죽을 테다! 얻어먹다가 길가에 꼬꾸라져 죽는 한이 있더래두 나가 죽을 테다!”
양담배는 모로 넘어진 채 걷어챈 옆구리를 한 손으로 누르고 잠시 버둥거렸다. 그 꼴을 보고 핑핑이가 실없이 히히대고 웃어버렸다. 그 안면에서 웃음이 채 사라지기 전에, 핑핑이의 한쪽에서 짝 소리가 났다. 주사장의 손길이 번개처럼 움직인 것이다.
“뭐가 우스워? 남의 억울한 일이 그렇게두 좋으냐?”
주사장의 낯에는 살기가 어렸다. 방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방장과 주사장의 음흉한 시선만이 얽혔 양담배가 처음 보는 눈들이었다. 지글지글 타는 것 같은 눈인 것이다. 양담배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장과 주사장은 한마디도 서로 말을 건네지 않았다. 알고 보면 그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암투를 계속해오곤 있는 것이다. 핑핑이가 들어왔을 때 그들은 눈이 번쩍 띄었던 것이다. 실로 오래간만에 보송보송한 앳된 젊은이를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둘은 다투어 핑핑이에게 친절을 다했던 것이다. 그런 중에도 일방 두 사람은 내심으로 험악한 풍파를 예기했고, 일전(一戰)을 각오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사장은 타협적으로 나가 본 것이다. 방장의 귀에 대고,
“우리 사이좋게 지내세! 피차 손해야.”
그랬다. 방장도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떡였고, 결국 핑핑이를 자기들 두 사람 사이에 재우기로 밀약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이 안 가서 방장은 핑핑이를 독점하고 만 것이다.
“네가 너무 난잡하게 굴어서 싫대.”
그러면서 방장은 핑핑이를 자기의 저쪽 곁에다만 재우는 것이다. 주사장은 그때부터 내심 칼을 갈아왔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날 양담배가 들어왔던 것이다. 얼굴은 핑핑이만큼 눈에 들지 않지만 나이는 더 어려 보였다. 주사장은 이내 양담배를 차지했고, 방장은 묵인해주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주사장은 좀처럼 핑핑이의 체온이 잊혀지지 않았다. 여자처럼 희고 보들보들한 피부를 핑핑이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아무렇게 굴어도 핑핑이는 몸을 사리는 일 없이 박자를 맞춰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뒤에도 주사장은 방장에게 대해서 감정이 개운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자 얘기만 나오면 더욱 방장과 대립하려 들었고, 또 그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을 퍼부었다.
“네깐 놈이 평생 징역살이나 했지, 단 한 번인들 여자와 자본 경험이 있느냐? 숫제 사내 밑구멍에 고름이나 곰겨주는 게 고작일 게다.”
방장은 정말 사십이 가까운 나이에 한 번도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해본 경험이 없는 것이다. 그러기 그 말을 들을 적마다, 그는 인간으로 최대의 모욕을 당하는 것 같이만 생각되는 것이었다. 주사장은 자기를 여지없이 경멸하고 있다고 방장은 생각하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 와서는 심지어 밥 같은 것도, 다 부스러진 찌꺼기만 자기와 핑핑이 앞에 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국도, 원래가 건더기라고는 별로 없기는 하지만, 특히 자기와 핑핑 이 그릇에다는 일부러 머룩한⁷ 국물만을 따라주는 것이었다. 차차 한다는 짓이 노골적으로 사람을 무시하려는 태도다. 그 앙갚음으로 방장은 똥통을 들어내는 일이나 실내 소제는 주로 양담배를 시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그들 두 사람은 매사에 사감을 두고, 내심 날카롭게 모를 세워왔던 것이다. 두 사람의 그러한 관계를 다른 사람들도 요즘 와서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알은체하지는 않았다. 어느 편을 두둔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아무래도 통역관만은 달랐다. 깔보는 것 같은 웃음을 담은 눈으로, 방장과 주사장의 부어오른 태도를 암만이구 오래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마치 결론이라도 내리듯이 그는 또 엉뚱한 소리를 들려주는 것 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란 늘 싸워야 하는 거요. 싸울 줄 모르는 인간은 송장이요. 그러나 반드시 저보다 강대한 적과 싸우는 싸움만이 신성합니다. 약자끼리의 싸움이란 언제나 강자를 위한 자멸입니다.”
양담배는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말 속에는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요긴한 뜻이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방장일지라도 몰래 벼르기만 할 뿐, 감히 통역관은 어쩌지 못하는 것이리라. 미국 말을 유창하게 지껄일 줄 아는 통역관은 무엇이든 모르는 게 없을 것이다. 그러기 양담배는 그 징그러운 장난을 남모르게 밤마다 당해야 하는 제 괴로운 처지를 통역관에게 말해볼까 하고 망설이는 것이다. 통역관은 좋은 지혜를 빌려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방 모든 사람을 덮어놓고 깔보는 것만 같은 그 눈과 웃음을 생각할 때, 아예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자기의 몸뚱이는 영 망치고 말았다고 생각하며 양담배는 한숨을 쉬는 것이다.
먹고, 배설하고, 자는 일 이외에는 고작 잡담만이 공식처럼 날마다 되풀이되는 이 감방 안에, 마침내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오랫동안을 두고 쌓여온 방장과 주사장 사이의 악화된 감정은 드디어 터지고 만 것이다. 그것은 이 방에 새로이 소매치기가 들어온 날부터인 것이다. 삼 개월의 언도를 받고 넘어왔다는 소매치기 상습범은, 마치 여자 같은 용모며 자태를 갖추고 있었다. 방장이 시키는 대로 똥통에다 절을 하고 나서, 좌장, 방장, 주사장의 순서로 돌아가며 인사를 할 때의 몸가짐이, 어처구니 없이 가냘팠다.
“어디 좀 보자! 정말 남잔가?”
좌장이 그의 사타구니를 들춰볼 정도였다. 이러한 소매치기를 맞아들인 방장과 주사장 사이가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저녁 식사 때, 주사장은 자기 몫까지 소매치기의 밥그릇에 쏟아주었다. 처음엔 서먹서먹해도, 정들이고 보면 예도 괜찮다고 하며 주사장은 소매치기를 위로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취침 호령이 내리자, 방장은 핑핑이를 다른 자리로 쫓아 보내고 소매치기를 자기 옆에다 눕히고 말았다.
“우리 사이좋게 지내세.”
혹은,
“괜히 지나치게 고집 세우면 피차 손해야. 누군 목숨이 아까워 징역살이 하는 줄 아나!”:
하고, 주사장은 몇 번 교섭을 해보았지만, 방장은 좀체 응하려 하지 않았다. 주사장은 다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궁금할 정도로 두 사람 사이는 잠잠해지고 말았다. 밤중이었다. 역시 한구석으로 밀려나가 자고 있던 양담배가 무슨 소리에 놀라 눈을 떠본즉, 서로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는 방장과 주사장 사이를, 좌장이 가로막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방장의 한쪽 귓바퀴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희미한 전등빛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잠시 뒤에야 방장은 자기 귀를 만져보는 것이었다. 손으로 볼을 훔쳤다. 피 묻은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방장은 별안간 벌떡 일어섰다. 대번에 좌장을 밀어제치고 주사장에게로 달려든 것이다. 격투가 벌어졌다. 이내 간수가 쫓아왔다. 두 사람은 말없이 끌려 나가고, 도로 감방 안은 조용해진 것이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양담배와 핑핑이와 소매치기는 함께 불려 나갔다. 방장과 주사장은 콘크리트 바닥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간수가 묻는 대로 양담배와 핑핑이는 각기 주사장과 방장에게 농락당한 사실을 할 수없이 입증했다. 간수의 한 사람은 웃으면서 핑핑이더러 그래 재미가 어떻더냐고 물었다. 핑핑이는 대담 대신 옆에 꿇어앉아 있는 방장을 보며 히히 하고 웃었다. 간수는 양담배에게도 같은 말을 물었다. 그는 붉어지는 얼굴을 숙여버렸다. 다른 간수가 양담배보고 밑구멍을 내보이라고 했다. 양담배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따귀를 한 대 맞고서야 그는 마지못해 엉덩이를 내민 것이다. 간수가 멀찍이서 들여다보더니 항문이 썩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또 큰 소리로 웃는 것이었다. 양담배는 가슴이 뜨끔했다. 참말 내장이 모두 썩어 들어가는 것만 같이 겁이 난 것이다. 간수는 양담배, 핑핑이, 소매치기에게, 앞으로는 절대 그런 장난을 받아주지 말라고 했다. 그런 짓에 응하면 너희들도 경을 칠 테니 그리 알라는 것이다. 그런 요구를 하는 놈이 있거든 주저 말고 일러달라는 것이다. 그들 세 사람이 돌아오고 나서도 방장과 주사장은 한참이나 더 있다가야 돌아온 것이다. 점심 시간이 되자, 주사장은 여전히 소매치기에게 자기 밥을 반이나 덜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정스레 말도 걸어보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방장만은 온종일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이미 그에게는 어떠한 각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기어이 새벽녘에 놀라운 사태가 발생하고야 만 것이다. 갑자기 모두들 일어나 웅성대는 바람에 무슨 영문인가 싶어 양담배도 눈을 떴다. 심상치 않아서 이내 일어나 보았다. 한쪽 구석을 향하고 앉아 있는 방장은 두 다리로 잔뜩 무엇을 벋디딘 채, 양손으로는 역시 힘껏 무엇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다. 방장은 전신 발가숭이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잔등이 울퉁불퉁 부어올라 있는 것이다. 어제 아침에 얻어맞은 자국일 게라고 양담배에게는 얼른 짐작이 갔다. 방장이 두 발로 벋디디고 있는 것은 주사장의 몸뚱이였다. 저쪽을 향하고 맥없이 누워 있는 주사장의 목에는 굵은 동아줄같이 빙빙 꼬인 헝겊〔囚衣〕이 감겨 있었다. 그 끝을 방장이 이를 사려 물고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다. 수의 자락이 마구 헝클어져서 하반신이 통째로 노출되어 있는 주사장은, 꼼짝도 못하고 늘어져 있는 것이다. 좌장은 방장의 바로 등 뒤에 서서 전신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연신 목쉰 소리로 무어라고 중얼거리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그런 광경을 본 양담배는 일시에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별안간 며리가 아찔해지며 그는 눈앞이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았다. 전신에 맥이 탁 풀려서 양담배는 마침내 두 손으로 이마를 고이고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 순간, 나도 핑핑이처럼 머리가 핑핑 돌다가 꼬꾸라지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멀리서처럼 귓가에 앵앵거렸다. 양담배는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머리가 한결 가벼워져서 그가 일어나 앉기는 날이 훤히 밝아서였다. 이미 방장과 주사장의 모양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은 과격한 노동을 하고 난 때처럼 축 늘어져 앉아들 있었다. 통역관만이 변함없이 남을 깔보는 것 같은 눈웃음으로 여러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오늘두 날이 샜구나!”
이윽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좌장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이어서 전차 운전사도 창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핑핑이도, 소매치기도, 그밖에 여러 사람은 잊고 있었다는 듯이 거의 동시에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다만 통역관만이 유별나게 창을 등지고 앉아 있는 것이다. 양담배도 물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나무 없는 산등성이도 푸른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자욱하니 끼어 있기 때문이다. 산도 하늘도 안개에 싸여 있는 것이다. 그래도 뇌리에 그림처럼 새겨져 있는 산등성이와 그 너머의 푸른 하늘이 보이는 듯 싶어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묵묵히 창살 사이로 창밖만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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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동물원초 213
게는 어떠한 각오가 있었던 모양이다. 기어이 새벽녘에 놀라운
사태가 발생하고야 만 것이다. 갑자기 모두들 일어나 웅성대는
바람에 무슨 영문인가 싶어 양담배도 눈을 떴다. 심상치 않아서
이내 일어나 보았다. 한쪽 구석을 향하고 앉아 있는 방장은 두 다
리로 잔뜩 무엇을 벋디딘 채, 양손으로는 역시 힘꼇 무엇을 찹아
당기고 있는 것이다. 방장은 전신 발가승이가 되어 있는 것이었
다. 그 잔등이 울퉁불퉁 부어올라 있는 것이다. 어제 아침에 얻어
맞은 자국일 게라고 양담배에게는 얼른 짐작이 갔다. 방장이 두
발로 벋디디고 있는 것은 주사장의 몸뚱이였다. 저쪽을 향하고
맥없이 누워 있는 주사장의 목에는 굵은 동아줄같이 빙빙 꼬인
헝겊〔囚衣〕이 감겨 있었다. 그 끝을 방장이 이를 사려 물고 잡아
당기고 있는 것이다. 수의 자락이 마구 헝클어져서 하반신이 통
째로 노출되어 있는 주사장은, 꼼짝도 못하고 늘어져 있는 것이
다. 좌장은 방장의 바로 등 뒤에 서서 전신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
다. 연신 목쉰 소리로 무어라고 중얼거리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
었다.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그런 광경을 본 양담배는 일시에 모
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자 별안간 머리가 아찔해지며 그
는 눈앞이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았다. 전신에 맥이 탁 풀려서 양담
배는 마침내 두 손으로 이마를 고이고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 순
간. 나도 핑핑이처럼 머리가 핑핑 돌다가 꼬꾸라지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는 소리가 멀리서처럼 귓가에 앵앵거렸다. 양담배는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머리가 한결 가벼워져서 그:
가 일어나 앉기는 날이 훤히 밝아서였다. 이미 방장과 주사장의
모양은 보이지 아니하였다. 사람들은 과격한 노동을 하고 난 때
처럼 축 늘어져 앉아들 있었다. 통역관만이 변함없이 남을 깔보
는 것 같은 눈웃음으로 여러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오늘두 날이 샜구나!”
} 이옥뇨 그렇게 중얼거리며 좌장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
: 는 것이었다. 이어서 전차 운전사도 창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핑
: 펑이도, 소매치기도, 그밖에 여러 사람은 잊고 있었다는 듯이 거
∫ 의 동시에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다만 통역관만이 유별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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