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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지난 주간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지나오면서 내 어머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예수 잘 믿고 천국 가신지가 3년이 지났지만 의젓하게 예배상 위에 성경을 올려놓고 성경을 읽고 계시는 사진 속 어머님을 자주 보았습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은 제가 어머님 손 때 묻은 성경을 가지고 예배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나의 어머님은 성경을 너무 사모하고 많이 보셨기에 헤어지고 중요한 성경구절은 밑줄을 그으셨고 중요한 성경구절은 견줄지에 따로 적어 끼워 놓으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어디 저만 어머님을 그리워 하겠습니까?
우리들의 보통 ‘어머님’, ‘아버님을’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포근함을 느낍니다. 왜 그렇까요?.... 우리들의 어머님, 아버님이 하나님을 닮은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 삶의 여정을 보면 자녀를 무조건 사랑하셨습니다. 자녀의 못된 짓 하는 것을 보면서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고 어떤 일이든 앞장서시며 모든 것 아낌없이 쏟아 부르셨기에 우리들의 어머님 아버님은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머님 아버님을 공경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인데 코 끝을 찡하게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엄마에게 초등생 딸이 종이에 쓴 글을 내 밀었습니다. 종이에 쓴 글을 들어보세요 내 방 청소한 값 2000원....가게에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 1000원....엄마가 시장간 사이에 동생 봐 준 값 3000원....쓰레기 내다 버린 값 1000원....아빠 구두 4켤레 닦은 값4000원...마당을 청소하고 빗자루 질 한 값 2000원....전부 합쳐서 13000원 달라는 것입니다.
엄마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 딸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잠시 후 연필을 가져와 딸 아이가 쓴 종이 뒷면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너를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세워가며 간호하고 널 위해 기도한 값.....무료!..... 널 키우며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힘들어 하고 눈물 흘린 값..... 무료! 장난감, 음식, 옷, 그리고 네 코 풀어 준 것도....무료!.... 너에 대한 내 사랑의 정까지 모두...무료!!! 이렇게 엄마는 썼습니다.
딸은 엄마가 쓴 글을 다 읽고 나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에게 말하기를 "엄마 사랑해요♡~~~!" 그러더니 딸은 연필을 들어 큰 글씨로 이렇게 썼습니다. "전부 다 지불되었음" 이렇게 적었답니다.
우리는 어머님 아버님께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세상에 태어나 지금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로 다 할 수 없기에 진심으로 나를 낳아주신 우리어머님 아버님 공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전도자 사도바울이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처럼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약속 있는 첫 계명을 명령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 20장에 기록한 십계명 기초 위해 있습니다.출20:3..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첫 계명이지요 그리고 네 번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수직적 계명입니다.
그리고 제5계명 수평적인 계명 첫 시작이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 말씀을 인용하며 사도바울은 본문 말씀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의 가정문화와 핵가족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가정은 대가족 중심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식 심지어 일가친척들이 함께 사는 가족공동체입니다. 당시 유대인은 목축업과 농사가 주업이기에 혼자 하는 일이 아니지요 대가족들이 서로 의지하고 함께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모여 살았습니다.
이처럼 대가족으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가족 간의 위계질서가 필요하였고, 윗사람에 대한 절대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손자 그리고 친척과의 다양한 관계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배울 수 없는 정서적인 안정감, 소속감과 정체성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약 시대의 히브리 가정은 신앙적 공동체로서 자녀의 신앙을 책임지는 교육이 살아 있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먼저 본문 1-3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바울은 자녀들아!! 이렇게 쓴 것은 단순한 편지로써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힘 있는 선포적인 명령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편지내용은 그렇습니다. 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 더 나아가 공경하라 그러면 땅에서 장수 할 것이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 반드시 옳다 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옳다는 것은 100번 1000번 10000번 말해도 마땅이 옳은 것이기에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늘 하지만 하늘의 계신 우리아버지 기도로 시작합니다. 하늘의 계신 우리아버지를 시인하는 것은 어떤 말씀이든 분부 하십시오 순종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도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부모를 이 시대에 허락하신 것은 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신앙적으로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순종하되 주 안에서 하라고 했습니다. 주 안이란 주님 안에서 나는 어떻게 순종해야 하느냐 입니다. 이 말씀에는 철저한 자기부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자녀들아” 부른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자녀가 아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한 자로 내 의지를 다 십자가에 못 박은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는 주님이 내 안에 좌정하고 계심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세입니다. 오직 하나님중심..... 주님중심입니다. 삶 가운데 어떤 일을 행할 때 부모님 조언이 필요에 찾아뵙고 말씀을 드리면 부모님 답변하십니다. 그런데 부모님 말씀이 설령 나의 이치에 맞지 않아도 먼저 하나님을 대하듯 “예” 하고 순종하는 것이 주안에서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속에는 아름다운 순종의 모델이 있는데 그 중에 창세기 22장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독자 아들이삭 부자관계에서 아주 감동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에 갔습니다. 그만큼 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런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믿고 신앙을 배웁니다. 그래서 순종의 시작이 아브라함이라면 독자 이삭도 순종의 아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아들과 종들이 번제의 쓸 나무를 준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3일 길을 갔더니 하나님이 지시한 모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는 저 만큼 가서 기다리라 하고 아브라함과 독자이삭 부자가 제물에 쓸 나무 짐을 아들이삭에게 지게하고 아버지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잡고 갑니다.
이삭은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궁금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창22:7-8......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이삭이 이렇게 물어 볼 정도면 하나님 앞에 드리는 번제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고 있는거죠 그만큼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받은 신앙교육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겁니다. 이 정도면 이삭은 사리분별력이 있고 왕성한 청소년으로 추측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삭의 질문에 “하나님이 다 준비하셨단다.” 그리고 번제드릴 장소에 도착한 후 돌로 제단을 쌓아 올렸어요 이제 제물만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브라함 말대로 하나님이 준비된 제물이 있어야 되는데 아직까지도 없는거예요....궁금했던 이삭은 꼭 참고 제차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결박합니다...... 이삭은 얼마든지 젊은 혈기로 뿌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보세요 아버지 아브라함이 결박 하는 대로 그냥 바보처럼 제단에 올려져 꼼짝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칼을 들고 아브라함이 이 세상에 하나뿐이 없는 독자 이삭을 칼로 내리 칠려고 합니다..... 그래도 이삭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이삭은 죽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광경을 누구 지켜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불었습니다. 아브라함아!!~~~~ 이제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숫양을 대신 번제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성도여러분!! 이삭을 번제물로 드렸던 모리아산 위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배워야 할 순종은 무엇입니까? 자원하는 순종입니다. 이것이 곧 주님 안에서 순종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자녀들아! 이렇게 명령적으로 강조 한 것은..... 세상에 있는 자녀들을 포함 한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먼저는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사는 하나님 자녀로 주님을 내 안에 모셨기에 하나님 대하듯 부모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것은 바로 갈보리 산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여주신 예표적인 사건입니다. 놀랍게도 훗날 이 모리아 산에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고 훗날 이 근처에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철저하게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시므로 인류를 위해 제물이 되셨습니다. 눅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우리 예수님 철저히 자신을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하나님께 순종 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안에서 순종입니다.
바울은 이런 순종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명령했습나다. 제가 설교하고 듣는 성도는 은혜롭게 듣지만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이 행동으로는 쉅지 않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후회하기도 불효했던것이 떠오르기에 제 나이 이정도 되니 자식들 행동하는 모습도 나와 다르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잘못된 모습을 볼 때 자식을 낳은 아버지 어머니로써 그 책임이 뒤따르지 않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4절입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설령 잘못했어도 부모가 자기감정으로 다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매를 들지만 말씀의 매를 들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좀 더디더라도 말씀으로 가르치는 것이 보약입니다.
우리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내 자녀라는 인식이 많습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내 자녀이기 전에 주님의 자녀입니다.
잠시 나에게 살아 있는 동안 잠시 맡겨진 것뿐입니다. 내 자녀라는 생각 때문에 내 방법대로 가르치다 보니 시행착오를 범합니다..... 오직 말씀이 자녀들을 변화 시킵니다.
초대교회 교부인 어거스틴은 설교 때마다 소개되곤 합니다. 어거스틴은 성자가 되기 전 탕자였습니다. 16살에 집을 나가 이단 마니교에 빠져 사생아까지 낳았으니 탕자지요 이런 아들을 보고 있는 어머니 모니카의 마음은 심히 걱정되고 고통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는 밤이면 밤마다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모니카가 나무로 만든 자(水準尺) 위에 섰습니다. 이 때 키가 큰 한 청년이 모니카에게 다가와서 수심에 잠겨있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왜 슬퍼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니카는 아들이 저렇게 타락의 길을 가고 있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대답합니다.
이때 그 청년이 아들을 자세히 살펴보라고 했는데, 살펴보니 아들 어거스틴이 어머니 모니카 곁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모니카의 이 꿈은 아들이 어머니의 기도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 온다는 희망적인 꿈으로 생각한것입니다. 그래서 모니카는 꿈에서 깨어나 당시 교회 감독이었던 암부로시우스를 만나 설교를 듣고 교회 마룻바닥이 기도의 눈물로 썩기까지 16년을 기도했는데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가 응답 되었을까요?
어거스틴 32세때 그가 꿈을 꾸었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기를 롬13:13-14 을 펼쳐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운동력 있는 이 말씀이 어거스틴을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되게 한 것입니다. 더욱 감동된 것은 어거스틴이 새 사람이 되기까지 어머니의 기도 안에서 숨 쉬고 살았습니다.
모니카는 탕자 어거스틴을 위해 기도의 울타리를 친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방탕한 가운데서도 어머니의 기도로 숨 쉬고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자녀든 부모님의 사랑과 훈계의 낯을 피해 세상에서 허랑방탕해도 반드시 어머니 기도의 낯을 피할 수 없기에 반드시 주님께 돌아 올 것입니다
♬♪578장.......언제나 바라봐도 늘 보고 싶은 분 기쁠 때나 슬플 때 늘보고 싶은 분 모든 것 주시고도 더 주시려는 어머니 한 분이 외 또 어디있으랴
하나님아버지 마음 같은 우리아버지 우리어머님!!....... 오늘 내가 예배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아버지께 예배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아버지 어머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그 사랑과 헌신을 다시 기억하고 약속있는 첫 계명으로 마음 판에 새기고 순종과 공경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