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느님만이 심판자,
어떤 이는 낮추시고 어떤 이는 높이신다
(시편75,8).
여기서는 하느님이“심판자”이시다.심판자이신 하느님은 사람을‘낮추기도’하고‘높이기도’하신다.이것은 한나의 기도(1사무2,7)에서 처음 나타나고,루카복음서에서도 마리아가“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다”(루카1,52)고 노래한다. 3-5절에서 경고한 대로 하느님은 심판자로서 거만한 자들과 악인들을 낮추시고 의인을 들어 높이시어 세상을 올바르게 심판하시고 질서를 세우신다.‘하느님은 두 종류의 사람을 아신다.그들은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이다.곧 부정하게 말하는 사람과 올바르게 말하는 사람이다.또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과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이다.교만한 이는 부정을 말하고 겸손한 이는 공정을 말한다.하느님은 그들에게 맞게 심판하신다’(아우구스티누스).
시편 75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75편의 의인과 악인의 운명을 대조하면서(11절)특별히 악인들의 태도에 대해 경고한다.이 시편에서는 악인들이 시인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들의 태도는 거만하고 힘을 행사하며 기고만장한 모습이다.그들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할 줄 모르고 결국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1편에서도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대조하면서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고 의인들은 하느님이 함께해 주신다고 했다(시편1,6).그런데 이 시편에서는 하느님 심판의 결과 악인들의 뿔은 꺾이고 의인들의 뿔은 드높여진다고 한다.곧 악인들은 거만한 힘을 잃게 될 것이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의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게 될 것이다.이 시편은 그리스도인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를 생각하게 한다.자기의 뿔을 사용하는 거만한 사람들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고,하느님께 의지하며 성령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참된 기쁨을 얻게 된다.인간적인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살아갈 때 일상 안에서,사도직 안에서 노래와 춤은 의욕이 넘쳐난다.하느님은 스스로를 높이는 자는 낮추시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이신다.“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다”(루카1,52)라고 노래하신 성모님은 이 진리를 몸소 체험하고 증거한 분이시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2 시편 42-89편/바오로딸)
제4장
통합 생태론
137.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오늘날의 문제들이 세계적 위기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시각을 요구하기 때문에,저는 인간적 사회적 차원을 분명히 존중하는 통합 생태론의 다양한 요소들에 관한 성찰을 제안합니다.
Ⅰ.환경,경제,사회 생태론
138.생태론은 살아 있는 유기체들과 그 유기체가 성장하는 환경의 관계를 연구합니다.여기에는 반드시 사회의 삶과 존속의 조건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따르게 됩니다.또한 발전,생산,소비의 모델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솔직함이 있어야 합니다.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시간과 공간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원자나 아원자입자조차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지구의 물리학적,화학적,생물학적 구성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듯이,생물종들도 우리가 결코 그 전체를 알고 이해할 수 없을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많은 유전 정보를 여러 생명체들과 공유합니다.따라서 단편적이고 개별적인 지식은 현실에 대한 폭넓은 전망에 연결되지 않으면 일종의 무지가 될 수 있습니다.
139. 우리가 ‘환경’이라고 말할 때 이는 자연과 그 안에 존재하는 사회가 이루는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우리 자신과 분리된 것이나 단순한 우리 삶의 틀로만 여기지 못하게 됩니다.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며,자연에 속하므로 자연과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합니다.어떤 지역이 오염된 이유를 알아내려면 사회의 기능,경제,형태,유형,현실 이해 방식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변화의 규모를 생각해 볼 때,개별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별도의 답을 찾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반드시 자연계 자체의 상호 작용과 더불어 자연계와 사회 체계의 상호 작용을 고려하며 포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우리는 환경 위기와 사회 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입니다.그 해결책을 위한 전략에는 빈곤 퇴치와 소외된 이들의 존엄 회복과 동시에 자연 보호를 위한 통합적 접근이 요구됩니다.
140. 구체적인 기업 활동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할 때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이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연구자들이 각자 합당한 역할을 맡아 폭넓은 학문적 자유를 누리며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이러한 지속적인 연구는,다양한 피조물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으며 오늘날‘생태계’라고 불리는 커다란 단위를 이루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우리가 생태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 합리적 활용 방법을 찾기 위해서만 아니라 그 효용과는 별도로 생태계가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모든 유기체는 하느님의 피조물이기에 그 자체로 좋고 감탄을 자아냅니다.또한 하나의 체계로 기능하는 일정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유기체들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경우에도 그러합니다.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생존을 위하여 이 공존에 의존합니다.우리는 생태계가 이산화탄소의 분해,물의 정화,질병과 전염병의 통제,토양의 형성,배설물의 분해를 통해서,그리고 우리가 간과하거나 모르는 많은 방법을 통해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이를 깨닫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이미 주어진,곧 우리의 역량과 존재에 앞서는 실재를 토대로 살고 활동한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그러므로 ‘지속 가능한 이용’을 언급할 때에는 개별 생태계의 재생력을 그 다양한 영역과 측면에서 논의하는 것도 포함시켜야 합니다.
141.다른 한편으로,경제 성장은 생산 과정의 단순화와 비용 절감을 위한 자동화와 규격화를 추구합니다.이 때문에 현실을 더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경제 생태론’이 필요합니다.환경 보호는 사실“발전 과정의 핵심 요소이어서 별도로 다룰 수 없습니다.”그런데 이와 동시에 우리는 경제학을 포함한 다양한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인본주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오늘날,환경 문제의 분석은 인간,가정,노동,도시의 상황에 대한 분석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또한 인간이 타인과 관계와 더불어 환경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자신과 맺는 관계에 대한 분석과도 분리될 수 없습니다.생태계들의 상호 작용과 사회의 다양한 영역들 간의 상호 작용이 존재하는 것입니다.그래서“전체는 부분보다 크다.”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됩니다.
142.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면,사회 제도의 건전함도 환경과 인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칩니다“연대와 민간 우호를 침해하는 것도 모두 환경을 해치는 것입니다.”이러한 의미에서 사회생태론은 필연적으로 제도와 관련되며,사회의 기초 집단인 가정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지역 공동체와 국가,그리고 국제적 삶까지 그 대상으로 삼습니다.사회의 각 계층 안에서,그리고 그 계층들 사이에서,인간관계를 규제하는 제도들이 발전합니다.그러한 제도를 약화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의 상실,불의,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많은 나라들에서 불안정한 제도로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국가 행정과 다양한 차원의 시민 사회,또는 개인들의 관계에서도 불법 행위가 너무 흔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형식을 제대로 갖춘 법률이 제정되지만,이는 흔히 사문화되고 맙니다.그런데도 그러한 경우에도 환경 관련 법률과 규정이 실제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예를 들면,분명히 삼림 보호법이 있음에도 그 법의 위반 사례가 자주 발생하여도 묵인하는 국가가 있습니다.더 나아가,어느 한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이 다른 지역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예를 들면,풍요한 사회에서 마약을 소비하면,빈곤 지역에서 나오는 마약 제품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거나 조장될 수 있습니다.그러한 지역에서는 부패가 만연하고 삶이 파괴되며 결국 환경이 파괴되는 데에 이르기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일부 신경학자들은 우리가 전화번호와 조리법 같은 것을 휴대전화에 맡기고 주행 방향을 알려주는 GPS시스템에 의존하면서“디지털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또 우리는 낯선 사람이 우리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를 때 소량 분출되는 도파민에 중독되고 있으며 *트롤링을 당하면 짜증이 치솟거나 더 심한 가정을 느낀다.
인터넷은 문화와 직업을 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려 했으나 끊임없이 확장되는 보르훼스식 미로가 되고 있다.이 미로는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작은 *필터버블로 끝없이 세분화되며 우리는 이 필터버블에서 우리의 편견과 관심을 공유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하고만 접촉한다.마셜 매클루언이 1969년에 예측한 대로,떠오르는 전자 기술은 탈중심화 효과를 가졌왔고“불연속성과 다양성과 분열”을 촉진했다.실제로 새로운“지구촌”의 특징은 “통합과 평온”이라기보다“갈등과 불화”였다.(본문 78쪽 발췌)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지나서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참 만만치 않은 거라며
아차 하는 사이에 몸도 마음도 망가지기 십상이지
화투판 끗발처럼,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때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느냐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한 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이놈의 세상
되는 게 좆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세/백창우)
무더운 날씨지만
쿨 하게 지내시고,
늘 행복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