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 혜릉(惠陵)에 있는 큰 연못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의 혜릉(惠陵)에 겨울에도 피어있는 화초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의 혜릉(惠陵)으로 들어가는 문(門)
▲ 혜릉(惠陵)에 있는 천추늠연(千秋凜然) 편액 아래 서있는 두류봉
적벽대전(赤壁大戰 or 赤壁之战)은 후한(後漢)의 헌제(獻帝)때인 건안
(建安) 13년(208년) 삼국시대(三國時代) 초기통일(初期統一)을 목표로
세력을 계속 팽창하던 조조(曹操)에게, 손권(孫權)과 류비(劉備)가 연
합해서 대항(對抗)하여 양자강(揚子江)의 적벽(赤壁: 今湖北省赤壁市
西北) 일대에서 벌어진 큰 전투로, 류비(劉備)와 손권(孫權)의 연합군
(聯合軍)이 적은병력(兵力)으로 조조(曹操)의 대군(大軍)을 격파(擊破)
하였다.
이것은 ‘적은 병력으로 큰 병력을 이긴(以少勝多)’ 것이며, ‘작은 힘으
로 강한 것을 물리친(以弱勝强)‘ 유명한 전쟁이었는데, 이로서 삼국정
립(三國鼎立)의 기초(基礎)를 다지게 되었다.
이것은 중국역사(中國歷史)에서 “이소승다(以少勝多)” 의 유명한 전쟁
의 하나이면서, 삼국시대 3대 전쟁 중에서 제일 유명한 한판의 진검승
부(眞劍勝負)이다. 그것은 중국역사에서 처음으로 양자강 유역(揚子江
流域)에서 일어난 대규모 강하작전(江河作戰)이었으며, 그 이후는 중국
의 정치 군사의 중심 지역이 황하유역(黃河流域)으로 바뀌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조조군(曹操軍)을 화공(火攻)
으로 대파(大破)하였다. 조조군(曹操軍)은 북쪽으로 방향을 바꿨고, 류
비(劉備)와 손권(孫權)의 연합군(聯合軍)은 각각 형주(荊州)의 일부를
탈취(奪取)하였다.
▲ 혜릉(惠陵)의 능묘 위에 있는 초목들
▲ 혜릉(惠陵)의 능묘 표지글을 한소열지릉(漢昭烈之陵)이라고 써두었다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의 혜릉(惠陵)에 있는 광익당(廣益堂)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 안의 혜릉(惠陵) 문 바깥
▲ 동한시대(東漢時代)의 석관(石棺)
▲ 당비(唐碑)
▲ 당비(唐碑) 설명
당비(唐碑)는 809년에 건립(建立)하였는데, 전체 이름은《촉승상제갈
무후사당비(蜀丞相諸葛武侯祠堂碑)》이며, 당대(唐代)의 이름난 승상
(丞相)인 배도(裴度)가 글을 짓고, 저명(著名)한 서예가(書藝家)인 류
공작(柳公綽: 柳公權의 형)이 글을 쓰고, 유명(有名)한 조각가(彫刻家)
인 로건(魯建)이 비석(碑石)에 글을 새겼다.
그 문장(文章)과 서법(書法) 및 조각(彫刻) 솜씨가 매우 정예(精詣)하
여, “삼절비(三絶碑)” 라고 부른다.
♣ 현장 설명에는 綽자를 한글로 ‘탁’이라고 읽었으나, 우리나라에
서는 綽자는 <너그러울-작>임. '탁'이라고 쓴 것은 틀린 것임.
x 柳公綽(유공탁)、o 柳公綽(류공작)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