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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의 이방인의 전도
2015, 12, 27
행13 : 1-12
사도행전 1장에서 12장까지의 중심인물은 베드로 사도입니다.
다르게 말한다면 초대교회의 전반기가 끝나고 이제 후반기도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그 후반기 시작이 사도행전 13장부터인데 바나바와 바울을 중심으로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로 시작되며 그 때부터 안디옥 교회는 세계의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 곧 바로 아라비아 사막으로 들어가서 홀로 3년 동안을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구약성경의 대가인체 했지만 이미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도 알지 못할 만큼 성경에 무지했던 것을 스스로 깊이 깨닫고 아라비아 사막으로 들어가서 3년 동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을 연구하며 묵상하며 성령님과 교제하는 기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비로써 구약성경이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목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 대속의 십자가를 대신 담당하게 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분의 부활에 대한 약속도 비로써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와 사도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와서 며칠 동안 있는 동안 부활하신 주님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계획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 성을 밤에 탈출하여 자기 고향 다소로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10년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 10년 동안 바울이 자기 고향 다소에서 무엇을 행했는지 성경에는 아무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습니다.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파송되어 오면서 안디옥 교회가 더욱 크게 성장하자 바나바는 다소에 가 있던 바울을 데리고 와 1년을 같이 사역을 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안디옥교회에서 1년을 사역하는 동안 교회는 더욱 부흥하여 많은 수로 이제 밖으로 흘러넘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와 헤롯의 젓 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전도는 국내 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선교는 타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교회 당시는 선지자와 교사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는 성경이 기록되지 않은 때이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선지자가 교회에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로부터 들은 복음을 전하고 해석하며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교사가 교회에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 선지자와 교사로 기록된 사람들 중에서 헤롯의 젓 동생 마나엔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마나엔은 헤롯 왕과 함께 한 어머니나 아니면 한 유모의 젖을 먹으며 로마 왕궁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여기에 기록된 것은 그는 귀족 출신임에도 세상의 영화를 뒤로 하고 천하고 초라한 그리스도의 양 무리들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야심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히 궁중의 중요한 요직을 차지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바치기로 작정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 위해 세상 영화를 버리고 수모와 멸시를 받기로 자초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가 기록된 것은 우리가 그를 본받아야 할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받는 수모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큰 재물로 여기며 상주시는 이는 바라본 모세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육신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라고 바울과 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겠습니까?
2절과 3절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여러분 잊지 마시고 기억하십시오.
금식하며 집중하여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면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들이 금식하며 기도 하는 중에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워 이방인들에게 보내라는 지시를 받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어떻게 이방인의 사도로 이방인들에게 보내심을 받게 되었는가를 여기 비로써 처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하늘 문을 열어주는 데 사용되는 열쇠와 같았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유대인들에게만 하늘 문이 열리고 이방인들은 제외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유대인들은 고넬료 가정은 아주 특별한 케이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도 하늘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이 확인 되었던 것입니다.
2절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라는 말씀이 아주 단순한 뜻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의 뜻은 “각각 자신과 자신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며,” 또는 “인간의 영혼을 제물로 바치며” 하는 뜻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왜 놀라운 이적이 많이 일어났는가 하면 이런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그의 서신 14장 2절에서 말하기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드리리이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이 자기의 모든 불의를 버리고 주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그 열매를 가지고 감사와 찬송을 올리는 입술의 제사를 수송아지의 제사를 대신해서 드린 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송아지의 제사보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감사하는 제사를 더욱 기뻐하시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사울 왕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는 것같이 좋아하시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그분의 음성을 알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주께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가르치실 때 한 여자가 큰 소리로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젖 먹이 젖이 복이 있도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 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보다 내 말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더 복이 있느니라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성령이 이르시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지혜로 운영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온전히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다스려 져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구별하여 세우라고 말씀하시고 성령의 명령에 따라 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목자는 성령의 부르심을 받은 목자라야 합니다.
성령의 부르심을 받은 목자만이 성령의 뜻에 따라 주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서신 48장 16절에서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의 영을 보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은 성령과 성령의 종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3절의 안디옥 교회가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그들이 보내시는 사람들이 이방의 나라에 가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문제가 아주 험난한 과제라는 것을 아는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에게 그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어깨를 허락해 주실 것을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종들에게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 전파의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시고 지혜와 용기의 영을 허락하시며, 주의 능력을 통해 사단과 세상의 모든 공격에서 승리하며 그들의 수고를 축복하여 헛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교회가 그들의 머리 위에 안수한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권위로 보낸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신탁을 받고 복음을 전하러 나간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인증하는 것이었습니다.
4절과 5절에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고 실루기아에 내려가서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바나바와 바울 두 사도의 이 전도 여행을 바울의 일차 전도여행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일차 전도 여행은 바나바와 바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교회가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 두 사도는 전도 여행의 첫 목적지로 구브로를 택했습니다.
구부로는 바나바의 출신지이기도 합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에 위치한 꽤 큰 섬나라 였으며 유대인들이 많이 이주해 와 사는 나라였습니다.
두 사도가 구브로에서 먼저 도착한 도시는 살라미 였으며 전도를 시작한 도시가 바로 살라미였습니다.
살라미는 구브로에서 유명한 도시요 인구가 많은 도시였습니다.
먼저 두 사도는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 사도가 첫 선교지인 살라미에서 얻은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같습니다.
6절에 보면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의 거짓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두 사도는 구브로 섬의 가운데를 지나 살라미라에서 반대편의 도시인 바보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이 섬나라 전체가 비너스 여신을 섬기는 나라였으며 그 중에서도 바보는 이 우상을 섬기는 중심 도시였습니다.
이 우상의 도시에도 두 사도가 복음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 도시에서 유대인의 거짓 선지자요 마술사인 바예수라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한 시대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는 두 셋에 불과 했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어느 곳에나 넘치도록 많이 있었으며 백성들은 누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참 선지자인지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어느 시대나 참 선지자의 말보다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더 기뻐했고 그들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참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외치는 말씀은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하시며 그들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참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은 언제나 백성들에게 아프게 들리는 말씀이요,
그들을 공격하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백성들은 그 선지자의 말씀을 듣기를 원치 안했고 그래서 그 선지자들을 미워하고 그들에게 돌을 던져 죽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은 언제나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축복의 말씀과 소망을 주고 백성들을 격려하는 말로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7절을 읽어보면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기이한 것은 지성과 학식이 풍부한 사람들도 거짓 선지자와 교사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8에서 10년 정도 지난 것인데 기독교 신문에 여자 목사총회장이 왜 남자하나님만 계시고 여자 하나님은 안 계시겠느냐 하며 여자 하나님도 계시다고 했습니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 무식한 사람이 여목회 총회장으로 있으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교회 목회자가 또 같은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협작군이 목회하는 하나님 교회가 전국에 큰 교회를 여러개 이루고 있으며 큰 무리가 모여들고 있습니다.
구브로 섬의 총독 서기오 바울은 지혜로운 사람인데 거짓 선지자 바예수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마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진리를 찾던 중에 유대인의 거짓 선지자 바예수를 만나 그에게 잠간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총독 서기오 바울은 유대인의 거짓선지자 바예수의 말에 의심이 생겼을 것이며 헛된 말에 만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 전하는 복음도 듣고자 해서 초청했을 것입니다.
8절에 “이 마술사 엘루마는 (그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라.”
이 거짓 선지자가 바나바와 바울 두 사도가 총독에게 말씀 전하는 것을 막는 것은 그의 거짓이 바로 들통이 날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거짓이 진리를 막는 것은 항상 있는 일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거짓이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로이드 존슨은 1981년에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석학으로 가장 유명한 주의 종 주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초대교회부터 현재까지 예수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는 이단의 말이 크게 득세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유럽과 온 세계에 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까?
하지만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느니라.” 하신 말씀을 여러분도 아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그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들어가리라.”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순종의 열매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는 하며 육신을 따라 자유롭게 살아도 되는 것처럼 하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은 누가복음 14장 27절에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의 삶이 없다면 그는 주를 믿는 자가 아니요,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의 말씀이 여러분의 가슴에 담아 두어야 하고 반드시 순종의 열매가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9-10절에 “바울이라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여기서 사울을 바울이라고 이름이 바뀌어서 처음 기록되고 있습니다.
사울은 히브리식의 이름이고 헬라식으로 번역하면 바울이라는 이름이 됩니다.
유대인의 거짓 선지자인 엘루마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총독이 믿지 못하게 방해했을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바울은 거짓 선지자 엘루마는 좋은 말로 타일러서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성령께서 주시는 대로 그를 크게 꾸짖어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요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그 때 거짓 선지자 엘루마는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왔고 그를 인도할 사람을 구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는가?
여러분 내 말을 잘 들어 주십시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기 안에 주님이 계시는 것을 알고 그 주님을 자신이 의식하고 느끼는 사람 그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성령이 계시고 그 성령을 의식하고 느낄 정도가 되면 그 사람은 종종 환상을 보게 되고 또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알고 주께서 행하시기를 원하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주시는 대로 말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대로 행하면, 그의 말과 행위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이 손이 거짓 선지자 머리 위에 있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을 것이며 성령께서 바울 사도에게 시키는 대로 그렇게 꾸짖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성령께서 주시는 대로 꾸짖자 바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 그가 앞을 못 보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먼저 조건은 주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것을 여러분이 믿을 뿐 아니라 의식하고 또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참으로 예수 믿는 자와 하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실제로 알기까지는 시간이 좀 경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결단코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주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영혼이 깨끗하지 않고 아직도 마귀의 마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귀의 세력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마귀의 올무와 그 세력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마귀의 세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12절에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침을 놀랍게 여기니라”
주의 말씀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이 되시며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얻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5절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는 우리의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를 보라 그렇지 아니하냐?” 그렇게 말했습니다.
복음은 이론이 아닙니다.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능력이 되시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장 3절에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능력을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의 덕으로써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길 수 있는 모든 능력도 주셨다고 하십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