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우스님은 승무를 춘다. 스님은 춤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포교를 하며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다.
법우스님은 승무 이수자이며 살풀이춤 영산재 작법무 이수자이다.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승무보유자이다. 스님의 춤이라는 이름과 달리 승무를 추는 스님은 거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선(禪)을 중시하고 의식을 멀리했던 조계종에서는 찾기 힘들다. 종단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분이다. 스님은 해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공연 무대를 연다. 오는 9일 오후7시30분 평송청소년수련원 대강당에서 ‘맥(脈)’을 주제로 전통춤 공연을 연다. 공연을 앞둔 지난 10월27일 스님을 만났다.
“말이나 글 대신 춤으로 부처님 가르침 전해”
“자비희사가 수행자 정신이듯 승무의 최종 목적지도 회향”
15회째 결식아동 지원과 장학금 마련 위한 자선공연 개최
오는 9일 평송청소년수련원에서 ‘脈’ 주제로 전통춤 선뵈
대전 시내에서 금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현불사가 나온다. 대웅전과 요사채 사이에 포도밭이 길게 늘어섰다. 본사에 큰 행사가 있어 상좌 스님들과 함께 김제에 갔던 스님이 해질 무렵 절에 당도했다. 마치 부모와 자식이 큰 집 행사에 함께 갔다 오는 것처럼 가족들이 한꺼번에 절에 들어서니 조용하던 공간이 일순간 떠들썩해진다. 상좌스님이 7명인데 해제(解制)철이라 모두 절에 와있다고 한다. 공양주도 없이 은사와 상좌 스님이 함께 밥을 짓고 청소를 한다. 큰 절 행사도 같이 다녀왔다. 보기 드문 광경이다.
법우스님은 “상좌들이 참 착하다. 잘해 준 것도, 크게 뒷바라지도 안 해주었는데 아주 바르고 착하다. 결제를 마치면 다른데 가지 않고 모두 이리 와서 날 도와주다 결제하면 돌아간다”고 자랑했다. 속가 집에서도 자식이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학원 다니느라 만나기 힘든데 법우스님의 은상좌 사이가 예사롭지 않다. 아마 노스님을 잘 모시는 은사 스님을 보고 배운 공부 덕분일 것이다. 법우스님의 은사는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스님이다. 속성(俗性)과 이름 끝 글자가 같아서 출가할 때부터 친척 아니냐는 질문 꽤나 받았지만 부처님이 맺어준 인연이다.
“어렸을 때부터 북소리 장구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장단을 맞추게 되고 어깨춤이 절로 날 정도로 춤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 어머니 몰래 춤을 배우다 들켜 혼이 나고 춤과 인연을 아예 끊었다.” 춤 노래 등 예능을 좋아하고 뛰어난 자질을 보였던 스님은 일찍이 홀로 되신 어머니의 간청에 결국 일체를 끊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 인연이 닿아 절에 잠시 머물게 됐는데 출가의 길에 들어섰다. 금산사로 갔다. 하지만 춤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이었는지 바라 범패를 보게 됐다. 불교 집안에도 불교 춤이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춤은 속가 부모뿐만 아니라 은사 스님도 못하게 했다. “우리 종단이 선종에다 공부를 제일로 치는 지라 춤은 꿈도 못 꾸었다. 마침 내 소임이 원주라서 절 밖에 자주 나가게 됐는데 전주 인근에 바라춤과 범패를 잘하는 다른 종단 스님이 계셨다. 스님들 모르게 밖에 나가면 들러 배웠다.”
그러다 1987년 대전에 현불사를 창건하고 혼자 나와 살면서 본격적으로 불교 의식무를 배웠다. 1988년부터 태고종 송암스님에게서 영산재를 배우고 승무와 살풀이춤 예능보유자인 이매방 선생으로부터 승무를 배웠다. 출가 전에는 좋아서 배웠지만 출가 후에는 공부의 한 방편으로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포교 일환으로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예술이었다. 말이나 글 대신 춤으로 불교를 보이고 부처님 가르침을 전달한다고 믿고 그렇게 생각한다.” 스님은 “춤을 출 때 엎어져서 시작한다. 그 때 숨을 고르며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기도한다. ‘제가 오늘 춤을 출 때 사람들에게 그 뜻이 잘 전달되고 제 춤을 보는 동안 일체의 근심 걱정이 사라지며 이 한 시간이 극락이 되게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표현 방법만 다를 뿐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기본 바탕은 같다”고 말했다.
스님은 승무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승무(僧舞)는 우리나라 민속춤의 정수라 할 만큼 민속춤의 모든 기법(技法)이 집약되어 있으며 품위와 격조가 가장 높은 춤이다. 비교적 불교의식 춤(作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며 춤사위에 따라 업(業)에 의한 번뇌는 염불로, 그 업을 벗는 과정은 도드리와 타령으로, 속세와의 완전한 결별은 굿거리로, 해탈의 희열은 법고 놀이로 표현된다.”
승무를 추는 자세에 대해 스님은 “열심히 해서 잘 춰야한다. 남에게 들려주고 보여줄 수 있는 기량을 갖춰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심풀이 밖에 안된다.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보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못준다. 배울 때 선생님들 집에 가서 정말 열심히 했다. 몇날 며칠을 뜬 눈으로 새우며 배웠다. 지금도 늘 춤이 화두다. 어떻게 하면 나도 편하고 보는 사람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춤을 출 것인가 늘 고민하고 연구한다.” 스님은 우리 춤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한다. “승무가 발전해서 민간에 맞게 민속춤화 해서 스님들이 추는 승무와 민간인들이 추는 승무가 있는데 우리 전통춤은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으면 못 춘다. 오랜 세월 자기와의 싸움에서 정리된 사람만이 배울 수 있지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하면 오래 못 견딘다.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 늘 인내하는 마음, 남을 위한 마음으로 배우고 춰야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춤사위가 멋있어지고 손가락 하나 움직임에도 혼이 배어나온다.”
“승무 우리 민속춤의 정수”
업에 의한 번뇌는 염불로
업 벗는 과정은 타령으로
속세와의 결별은 굿거리로
해탈희열 법고놀이로 표현
스님의 승무철학 결정판은 회향이다. “남을 위하고 모든 이들의 안녕과 평화, 안락함을 기원하는 간절한 자비정신이 수행자의 정신이듯 승무도 최종 목적지는 회향이다.” 1997년 스님은 우연히 인근 학교 아이들 중에 점심을 굶은 결식아동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아이들을 돕기 위해 공연을 연 것을 시작으로 올해 15회째 결식아동을 돕고 장학금 마련을 위한 공연을 열고 있다. 올해는 은사 스님이 심혈을 기울이는 지구촌공생회에서 케냐에 만드는 초등학교 설립 후원금 마련을 주제로 내걸었다.
늘 자비와 수행을 동등한 무게로 강조하시는 은사 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남몰래 보시 정신을 실천해 왔지만 오랫동안 은사 스님 앞에서 승무를 선보이지 못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 2004년에야 겨우 은사 스님을 모시고 무대 위에 섰다. 스님이 아주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다른 도반스님들로부터 들었다. 은사 스님도 직접 격려하며 용기를 돋우었다. “그전에는 제가 춤을 추는 것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안하셨는데 처음 공연을 보시고 그 길도 옳은 길이다. 그래도 ‘중 마음은 변치마라’하시며 격려해주셨다.”
스님의 춤은 무심(無心)이다. “출가사문의 춤은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잘 보이려고 하거나 꾸미려고 하면 그대로 드러난다. 아무 생각 없이 몸 가는 대로 마음가는대로 흘려 보내면 된다.” 그리고 임제스님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처럼 늘 주인이 되라는 삶을 강조한다. “상좌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말인데 어디를 가든 머무는 곳마다 주인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것을 가르친다. 그냥 한 몇 개월 살다가면 그만인데 하며 대충 살면 남에게도 의미 없고 자신에게도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시간 밖에 안된다. 몇 시간을 있든 먼저 청소하고 쓰레기 치우고 남을 도우며 행동할 때 비로소 제대로 중노릇 한다고 할 수 있다. 그처럼 춤이나 우리 삶도 늘 최선을 다하고 적극적으로 주인 된 마음으로 살 때 잘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꿈도 스님은 춤밖에 없다. “춤을 통해 사람들 마음을 평안하게 해줬으면 한다. 춤을 보는 그 순간이나마 편안해지고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춤을 통해 소외된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가장 큰 꿈이다.”
법우스님은…
1948년 대전에서 태어나 1975년 금산사에서 월주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송광사 구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익산 심곡사 주지를 맡아 법당불사와 개금불사를 했다.
1980년대 은사 스님을 모시고 서울에서 살기도 했다. 개운사 주지를 잠시 맡았으며 중앙승가대 전신인 승가학교 1기로 입학했다. 1987년 대전 현불사를 창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전광역시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이수자,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 제50호 영산재작법무 이수자이며 사단법인 우리전통문화예술진흥회 이사장, 우리문화예술원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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