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독일에서의 두번째날. 그리고 쾰른에서 눈을 뜬 날.
오늘 오전에는 간단히 쾰른의 유명한 현대미술관인 'LUDWIG MUSEUM'(루트비히 미술관)에 갔다. 한눈에 미술관 외관의 디자인이 굉장히 맘에 든다!
내부도 깔끔하고 멋지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입장료 5.5유로
이 미술관의 지하에는 팝아트가 전시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팝아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맘에 드는 몇개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감상하고는, '망할 팝아트...' 라고 생각하며 2층으로 올라 갔다.
그렇지만 2층의 현대회화는 정신적으로 나를 피폐하게 만들어, '팝 아트가 재밌어, 새로우니까...' 라고 줏대없는 생각에까지 빠지게 했다.
루트비히의 많은 작품들에 지친 나는, 오전의 관람을 서둘러 끝내고, 오늘의 메인코스를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오늘의 메인코스란 바로.... 오로지 미술관 하나를 찾아, 북부의 노이스 라는 도시를 가는 일정이다!!
도대체 그 미술관이란 무엇이기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는, 관광객조차 찾지 않는 외진 시골로 가게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홈브로이히 라는 자연과 접한 미술관, 유럽의 숨은진주! ('21세기 유럽 현대미술관 기행' 이란 책에서 이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다)
입장료: 홈브로이히+랑엔미술관 11유로
울창한 숲과 잘 가꾸어진 초원을 걸으며 그 가는 길목에 위치한 11개의 건물에 걸려진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커다란 숲속에서의 미술관 찾기를 하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유럽에서 수없이 많은 미술관을 갔지만, 작품이 아닌 '미술관 그 자체'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관이 바로 이 홈브로이히 미술관이고, 이곳은 미술관이라기보다 하나의 문화와 자연의 체험의 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두는 이쯤하고, 그럼 바로 홈브로이히 미술관으로 출발해보자. 가는길이 적잖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기차로 노이스에 가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노이스 역에 내린 순간부터는 너무나 막막했다. 내가 제대로 내린 것인지도 의문인데, 그것을 물어보기엔 노이스는,,, 그 자체가 너무 조용했다.
그림같은 주택과 정원만 있을 뿐 버스조차 다니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애초에 책 하나 믿고 온 게 무리였을까?
어쨌든 공기 하나는 참 좋다. 가만히 보면 참 예쁜 곳이다.
이 동네를 헤메며, 사람이 눈에 띄기만 하면, 길을 물어 어찌어찌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미술관행 버스를 타려고 시도하였으나, 이 역에는 해당버스가 없다 ㅡㅡ;
내가 곤란해하며 당황하고 있을때, 차가운 표정으로 다가온 독일인들,,, 그러나 그들은 표정과 달리 마음은 너무나 친절했다.
내가 타야할 버스를 적극적으로 잡아주고, 버스안에 사람들은 몇번이고 버스기사에게
'저 여자를 홈브로이히에 내려줘야 해요'(아마 이런 뜻이었을거다;; 독일어니 확실히는 알수 없지만)라며 말하고는, 나에게 괜찮다고, 걱정말라고 안심시켜주었다.
그런 그들이 너무 고마워서 마음의 표시라며, 한국에서 사간.. 약간은 조악한 하회탈 열쇠고리를 선물하려했더니,
똑 부러지는 독일인들, 그건 받지 않겠다며 마다한다;; 그래도 너무 착한 그들 ^ㅡ^
드디어 도착한 미술관! 힘들게 찾아 온 곳이라 더욱 가치있는 이곳.
버스에 내리자마자 산속의 공기가 물씬 느껴진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있지만, 시골냄새는 없고 향긋한 풀냄새만 풍길 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홈브로이히로 입장했다. (여태껏 파리에서 관광객에 치이다가 이렇게 관광객이 없는 곳에 오니 기분이 색다르다)
미술관의 표를 끊어주는 입구.
서둘러 표를 끊고 건물에서 나오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정원이 아니고 섬 하나의 넓은 면적을 이용한 하나의 '숲'이기 때문이다.
풀냄새가 나고 새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조경이 가꾸어진 이곳.
자갈길을 걸으며 맑은 독일하늘과 자연풍경을 함께 보고 있으면, 이 자연자체가 예술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길을 따라 걷다보면 눈 앞에 작은 건물이 나타나는데, 이 작은 건물이 11개의 미술관 건물 중 하나이다.
독특한 건, 이 건물이 미술관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현대건축'에 속하기 때문에, 이 미술관섬은 크게 봤을 때 11개의 건축예술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첫번째로 나타난 건물. 안에는 천장까지 새하얀 벽에 현대회화 몇점이 걸려있을 뿐이라서 부담없이 감상하고 저 문의 맞은편 문을 통해 나가면 된다.
그 건물을 나와 걷다보면 또 길이 나 있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 다시 산책에 나선다.
산책로가 지겹지 않도록 곳곳에 다리도 있고 아기자기한 설치 미술도 있다. 심지어 놀이터도 있다.
플라타너스와 수련이 잔뜩 피어있는 물가를 이어주는 다리.
잔뜩 핀 플라타너스와 수련
귀여운 설치미술품들
처음에 입구에서 나눠 주는 미술관 안의 지도를 보며 11개의 건물을 하나씩 찾아나가는 과정을 하나보면 보물찾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이 나올까 기대하며 가득 쌓인 선물 상자를 하나씩 펼치는 기분이 되기도 한다.
이 미술관 건물과 자연이 그 자체로 예술품이란 사실을 입증하는 요소가 있는데, 어떤 건물은, 건물안으로 들어가도 아무런 작품이 없이 그저 큰 창이 하나 나 있고, 그 창을 향해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게 해놓아, 건물안에 비친 자연광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미술관을 한참 즐기던 중... 처음에는 길이 하나여서 그 길만 따라 가면 됐는데, 이제는 길마다 갈랫길이 너무 많아서 현재의 위치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정표도 없고 번호도 없어서 급짜증을 내며 길을 헤메다가 걷고 걷고 하다보니, 가야하는 길이 제대로 나왔다. 지도를 신경쓰면서 다녀야 겠구나!
미술관 앞의 휴식처
드디어 마지막 건물의 관람을 끝낸 나! 꽤 긴 길이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기념으로 건물의 투명한 창에 비춰 셀카도 찍어놓고! ^^
11개 미술관의 관람은 끝났지만, 즐거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미술관이 끝난곳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카페테리아 때문인데, 이곳에서는 유기농빵과 각종음식, 음료를 뷔페로, 게다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테리아의 외관! 외관도 멋져라.
하루종일 미술관을 구경한 지라 몹시 배가 고팠던 나는, 다양하게 음식을 담아왔다.(딸기잼에는 엄청난 벌들이 있다 ㅎㅎ)
유기농 빵은 정말 맛있구나... ㅠ^ㅠ 찐감자도... 커피도...
이 모든 음식이 무료!라는 사실 ^^
배불리 식사를 끝내고 커피와 사과를 들고 카페테리아 밖으로 나와 그늘이 형성된 카페의 노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나무의 벗어나간 가지를 밑으로 향하게 하여 그늘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안은 아주 시원하다!
빨강과 흰색으로 색깔을 맞춰입은 두 유러피언 ^^
이렇게 다채로운 경험을 안겨준 홈브로이히의 구경을 끝내고 아쉬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왔다.
그러나 이 곳 홈브로이히는 2~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랑엔 재단'이라는 미술관과 연계가 되어 있기에, 나는 두개를 함께 볼 수 있는 콤비티켓을 끊었고, 랑엔재단을 향해 갔다.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풍경들.
함께 꽃밭을 거닐고 있는 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
홈브로이히와 랑엔재단을 이어주는 길목의 거대한 갈대숲
랑엔재단 건물은 일본의 유명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는데,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위에 유리를 씌운 단순하면서도 독특한 외관이 이미 여기까지 오게 한 가치를 충분히 입증시켜준다.
내가 랑엔재단에 도착했을때는 5시 45분이었는데, 미술관은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표를 끊어두었기에 15분이라도 봐야겠다고 얼른 미술관에 입장했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때문에 내가 볼 수 있는 그림은 기껏해서 5~10점이었으나, 그때본 5점의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그 곳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이제 모-든 관람을 끝내고 다시 쾰른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는데, 돌아가기위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때 난 비로서, 내가 시골의 특징을 잠시 잊고 있었다고 깨달았다. ㅡㅡ
이곳 홈브로이히는 독일로 따지면 엄연히 시골... 그렇기에 버스란건 내가 원하는 시각에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고, 표지판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게다가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다.
이대로 버스가 안오는건 아닌가 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다행히도 7시에 막차 버스가 있다!! 표지판에 적힌 알수없는 말들이, 요일마다 버스가 오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난 운이 좋았던것이라고 할 수 있는게, 오늘은 7시에 버스가 막차이지만, 다른 요일에는 진작 버스가 끊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7시까지 하염없이 버스 기다리기.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 도로
7시에 869번 버스를 타고 쾰른으로 돌아가기. 오늘만 세번째 탄 869번인데, 세번 다 같은 기사아저씨인걸 보니, 이 아저씨가 869번의 유일한 기사아저씨인가보다.
저녁늦게 쾰른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목적지인 프랑크프루트로 가기위해 서둘러 기차를 탔고, 밤 10시가 넘어서 프랑크프루트역에 도착했다.
숙소로 가기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도통 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풍채좋은 아저씨가 나와 같은 유스호스텔로 간다며 둘이 인사를 나누고 함께 택시를 타기로 했다.
'둘이서 택시비를 나누는 구나 다행이다..'라며 기뻐하고 있는데, 스위스에서 왔다는 이 아저씨, 택시에 타자마자 은근슬쩍 손을 만지고, 터치를 시도하더니, 함께 관광하자며 폰번호를 가르쳐준다 - -;
이럴때는 무조건 경계하라. 라는 본능으로 얼른 그를 떼어놓고 숙소로 올라가버렸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하룻동안 묵었던 유스호스텔은 'Haus der Jugend'라는 곳인데, 여기 정~!!말 좋다.
여행중이었던 나에게는 호텔처럼 느껴졌던 이 곳... 1층의 라운지가 엄청 넓은데, 라운지가 정말 좋고 침대시트도 아주 편하다. 하루숙박 17유로)
라운지에는 함께 어울리고 있는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있었으나, 나는 조용히 bar의 한 구석에서 작센하우젠의 명물이라는 사과주를 마시고 오늘의 꿈과 같았던 미술관을 곱씹으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tip. 유럽인들은 참 친절하다. 독일IC를 탈때마다 캐리어를 천장에 올리는 힘든 작업을 항상 마다않고 도와준다.
하긴 한국에서도 짐이 무거운 할머니들 짐을 들어주는거랑 같은 이치인가?
ps. 미술관 얘기가 아주 길었네요.. ^^; 그렇지만 그만큼 제게 큰 감동을 준 곳이기에, 되도록 자세하게 써서 모두와 공유하고 싶었답니다!
<출처 : ★배낭길잡이★ 유럽 배낭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