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 있는 화상음식점인 산동교자에 처음 가본 것이 2005년 2월의 일이니 갑판장이 손님으로 드나든 지도 어느덧 10년을 넘겼습니다. 어쩌면 그 보다 더 일찍부터 다녔을 수도 있는데 개인기록물에서 그 전의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산동교자에 다니기 전에는 그 이웃에 있는 일품향에 주로 다녔었습니다. 협소한 산동교자에 비해 규모가 클뿐더러 다양한 요리(고수도 청하면 줍니다)를 맛볼 수 있기에 여럿이 모임을 갖기에 편리합니다. 그 거리에는 산동교자와 일품향 말고도 개화, 행화촌, 도향촌 등 화교들이 운영하는 노포들이 화상거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탕수육/산동교자, 명동
예전의 수북했던 채소조각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중국대사관이 있어 중국대사관길로도 불리지만 시간을 되돌려 갑판장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아직 중국과 수교(1992)를 하기 전이라 당시의 수교국이었던 대만(1992년 단교)의 대사관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대사관 주변 길을 따라 화교들을 위한 학교와 중국음식점, 과자점, 책방 등이 즐비했었습니다. 대사관을 비롯한 그 일대가 그들(1992년 여름 이전에는 대만, 그 후로는 중국)의 영지이기에 화교들을 대상으로 저렴하게 임대를 주어 중국거리가 형성 된 것입니다. 명동의 재개발로 인해 예전에 비해 많이 위축이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아직은 중국거리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대만대사관이 있던 시절, 갑판장은 사대문 안에 살았습니다. 거기서 국민학교도 잠시 다녔었고요.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는지 학교에 다닌 기억보다는 땡땡이를 치고 코스모스백화점에 놀러 다니던 기억이 더 생생합니다. 그 당시 명동에는 코스모스 말고도 신세계나 미도파도 있었지만 갑판장에게는 코스모스가 단연 최고로 꼽혔었습니다. 5층에 있던 완구 및 프라모델 매장이 가장 크고 구경거리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프라모델 디오라마가 압도적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그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던 꼬마를 기억하신다면 아마도 그 꼬마가 갑판장일 확률이 무지 높습니다.
당시의 코스모스백화점은 옥상(6층) 전체가 롤러스케이트장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통금이 있었고, 장발단속에 미니스커트 길이까지 관에서 통제하던 시절이라 청소년들은 영화관은 고사하고 제과점조차 자유롭게 출입을 못했었습니다. 그런 시대의 롤러스케이트장은 그야말로 좀 까진 이팔청춘들의 낙원이었습니다.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채 허우적거리기 일수인 단발머리 여학생들 주변엔 늘 두 발을 S자로 교행하며 멋지게 후진을 해대던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배틀이라는 것도 실력자들 사이에선 종종 벌어지곤 했었습니다. 당시엔 그 만한 구경거리가 또 없었기에 국민학생이던 갑판장도 학교를 땡땡이 치고서라도 코스모스백화점을 자주 들락거렸다나 뭐라나...
에구구...또 말이 샜습니다. 하여간 주제파악도 못하면서 쓰잘대기 없는 말만 나불대는 갑판장입니다. 각설하고 다시 잇겠습니다.
짬뽕국물/산동교자, 명동
사진은 후지지만 실제는 훨씬 보기도 좋고 맛있습니다.
간만에 사대문 안으로 들어간 김에 남대문시장 부림면옥에서의 1차를 마치자마자 명동의 산동교자에서 2차를 이어가기로 코스를 정했습니다. 배가 덜 부른 상태였다면 늘 먹던 대로 시그니처 메뉴라 할 수 있는 오향장육과 물만두를 필두로 (새우)덴뿌라, 짬뽕 등을 차례로 주문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미 부원면옥에서 흡족한 브런치를 누리고 온 터라 탕수육에 고량주 한 병만 주문했습니다. 라고 하려다가 냉면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두 친구가 짬뽕국물, 볶음밥을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다른 테이블로 나가는 삼선짬뽕과 볶음밥이 무척 맛나 보였기에 사실 갑판장도 먹고픈 욕망이 불타오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볶음밥/산동교자, 명동
강추! 암튼 그 날은 무지 맛있었습니다..
삼선짬봉 대신 주문한 짬뽕국물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 주문이 신의 한수였다며 세 남자가 몹시 만족했다는 후문입니다. 불내가 폴폴나는 짬뽕국물을 훌훌 들이키자니 볶음밥을 말아먹음 만족도가 더 높아지겠단 욕망이 스멀스멀 불타오릅니다. 그래서 기어이 볶음밥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신의 두수였습니다. 밥 알갱이 마다 강력한 불길이 스쳐 지나간 자욱이 역력하고, 고슬고슬하게 계란물이 코팅된 볶음밥을 누가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배뻥이 되더라도 일단은 맛을 꼭 먹어봐야 합니다. 암요.
예전에 주방을 담당하셨던 인상이 강한 남자 사장님은 어찌 되셨는지 요즘엔 통 안 보입니다. 그 대신 대만으로 갔다던 (미모의)따님이 다시 돌아왔는지 가게를 종횡무진 누비며 완전히 장악한 듯 보입니다. 어찌됐든 산동교자는 지난 10년간 갑판장이 친구들과 그 근방을 누빌 때면 어김없이 찾게 되는 단골코스 중 한 곳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변치 않는다면...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매번 익숙한 것보다 가끔 낯선 것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첫댓글 사람도 변하고 강산도 변하고 맛이라도 안변하면 좋은거지~ ㅎㅎ 낯선곳에 가보자구~
낯선 곳? 어디?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