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말씀의 용광로에서" 서재경 목사 (2020.08.2. 성령강링 후 아홉째 주일)

[김윤식]

말씀의 용광로에서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용광로의 불길같이 모든 것을 살라버릴 날이 온다. 모든 교만한 자와 악한 일을 하는 자가 지푸라기같이 타버릴 것이다.(말라기 4장 1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마태복음 6장 9절)

어느새 8월입니다. 아직도 장마가 끝나지 않았지요. 올 장마는 유난히 길고 비도 많이 내렸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폭우로 심한 피해를 본 곳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덜한 편인데, 일본이나 중국은 엄청난 홍수로 이재민도 많고 피해도 심하답니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힘겨운데, 홍수로 머리 둘 곳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 여름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장마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장마는 지나갈 텐데, 이어서 무더위가 다가옵니다. 올해는 무척 더울 것이라지요? 暴炎에 마스크까지 써야 하니, 더 답답하고 힘든 여름이 될 것 같습니다. 이 후더분한 여름에 시원한 빙수 같은 이야기를 해도 시원찮을 텐데, 오늘은 ‘용광로’ 이야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쇠를 녹이는 뜨거운 용광로입니다. 온도가 1500도에 이르는 용광로는 모든 것을 다 녹여버리지요. 생각만 해도 덥습니다. 

말라기는 ‘그날’을 기다리는 희망을 말하는 책입니다. 구약성서의 마지막 책이지요. 그런데 말라기는 그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그날은 금과 은을 연단하는 용광로의 불길같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히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것은, 잡것에 오염되어 불순하게 된 신앙을 깨끗하고 순수하게 정련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그 후 바빌론이 망하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페르시아 이후에는 그리스를 거쳐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포로 생활이란 다른 민족, 다른 문화, 다른 종교의 지배와 영향 아래 사는 것이지요. 특히 소수의 약자인 히브리 사람이 다수의 강자인 바빌론 사람 밑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의 언어와 생각과 전통과 문화, 그리고 특히 종교와 신앙을 빼앗기게 됩니다. 포로 생활이 대를 이어 계속되면서, 자신들의 언어도 문화도 종교도 사라지게 되지요. 실제로 2-3세대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버렸고, 혈통도 섞여 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라기는 이제 곧 다시 새 나라를 세우는 날, 그 날이 다가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시는 날, 해방의 날이요 구원의 날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 날을 맞이하려면, 뭐가 가장 필요할까요? 그 종교와 신앙을 순수하게, 정갈하고 깨끗하게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말라기는 용광로의 불길 속에서 금과 은을 정련하듯이, 이스라엘 백성을 순수하게 연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금과 은이나 철에 불순물이 섞였을 때, 용광로에 넣어 모든 잡것을 태우고 녹여서 정련하듯이, 온갖 잡것이 뒤섞인 종교와 신앙을 다시 깨끗하게 연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의 순수함을 되찾는 것, 소위 종교의 혼합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말라기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갖 잡것이 섞여버린 신앙을 다시 순수하게 정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용광로의 불 속에 넣어서 잡것을 날려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빌론의 신전을 혐오하고, 페르시아의 법전을 불태우고, 그리스와 로마의 판테온을 폭파해 버리면 될까요? 그렇게 다른 종교를 혐오하고 배척하고 적대하고 테러를 가해서 파괴해 버리면 나의 종교가 순수해지는 것일까요? 다른 종교의 신전에 특공 선교 부대를 투입해서 그 신상에 오물을 끼얹고, 망치로 때리고 부수어버리면, 나의 신앙이 회복되는 걸까요? 그것이 종교 혼합주의를 극복하는 길일까요? 

아니지요. 성서가 말하는 길은 전혀 그 길이 아닙니다. 성서는 다른 종교를 공격하자는 게 아닙니다. 나의 종교를, 우리 신앙을 뼈아프게 성찰하고 제대로 지키자는 것이지요. 일찍이 미가 예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모든 민족은 각기 자기 신들을 섬기고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주 우리의 하나님만 섬기고, 그분에게만 순종할 것이다.”(미 4:5) 무슨 말입니까?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온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인데, 그 평화란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고, 민족마다 자기 신들을 섬기고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남의 포도나무를 빼앗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남의 종교와 신앙을 함부로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성서에서는, 억압하는 제국의 종교와 지배자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결코 종교 제국주의 지배를 꿈꾸지 않습니다. 용광로에 넣어야 할 것은 다른 종교가 아니라 내 종교와 내 신앙입니다.

사실 구약성서에서 잡것으로 오염되고 변질된 ‘혼합주의’ 종교와 신앙을 순수하게 회복하는 과제는 포로기 이후에 대두된 것이 아닙니다. 유대 왕조가 끝날 즈음에, 요시야 왕이 성전을 정화한 일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열왕기하 23장에 나오지요. 요시야 왕은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율법책을 읽고 성전이 얼마나 변질되고 잡것에 오염되었는지 깨닫게 되었지요. 그래서 요시야는 율법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전을 정화했습니다. 요시야는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별을 섬기는 기구와 목상을 성전에서 밖으로 끌어내고, 불태운 다음 가루로 만들어버립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예언자들이 그렇게 비판하고 경고했던 우상이지요. 그런데 그런 우상을 다른 곳도 아닌 성전 안에 두고 숭배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정말 심각하고 무서운 것은, 그것이 성전 바깥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바로 성전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우상숭배가 치명적인 것은, 그것이 저 바깥 다른 종교에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바로 교회 안에서, 성전 안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만큼 신성모독적인 죄악이 또 있을까요? 하나님을 바알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참람한 죄가 있겠습니까?(호 2:16) 그것은 내 앞에서, 내 얼굴 위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출 20:3)는 십계명의 제일 계명을 범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기는 죄입니다.

요시야는 성전을 정화하면서 우상들만 불태운 게 아닙니다. 성전 제단들도 불태워버렸습니다. 특히 아하스가 만든 제단도 불태워서 가루로 만들었지요. 아하스는 아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갔다가, 거기서 엄청 큰 제단을 보고 부러워서, 예루살렘 성전에도 그렇게 크고 장엄한 제단을 만들게 했지요. 그렇게 제단을 특별히 더 크고 웅장하게 만들고, 거기에 날마다 많은 제물을 바치는 왕이라면, 이거 참 칭찬받을 왕 아닌가요? 그러나 그 제단은 왕의 제단이지 하나님의 제단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온갖 잡것으로 혼탁해졌을 때, 그들은 신앙과 생활을 성찰하고 연단하여 순전하게 회복해야 했습니다. 그 신앙의 성찰과 연단은 마치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금은을 정련하듯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에게 스며들어 있는 온갖 잡것들을 태워버리고, 다만 하나님 앞에 서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신앙을 성찰하고 연단하게 하는 중심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으로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성찰하고 바로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말씀입니다. 용광로에 들어가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주신 이야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이른바 ‘주의 기도’입니다. ‘주의 기도’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 나오지요. 이 산상수훈은 어떤 말씀일까요? 저는 산상수훈은 우리를 성찰하고 연단하게 하는 용광로 같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사실 뜨거운 불보다는 고요하고 잔잔한, 평온한 물 같아 보이지요. 그러나 산상수훈의 말씀을 제대로 맞닥뜨리면, 우리 안에 있는 온갖 잡것들이 여지없이 드러나지요. 

산상수훈은 바깥을 탓하거나 공격하지 않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저들을, 저 다른 사람을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또 저 다른 신들을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우리 자신을 깊이깊이 들여다보게 하지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眞我를 보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합니다. 혼탁한 잡것들을 다 걷어내고, 우리 안에 있는 행복한 나, 빛나는 나, 사랑스러운 나를 보라 합니다. 그렇게 말씀은 우리를 정련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다만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말씀은 또 우리 안에 있는 헛된 욕심과 무익한 분노를 고요히 가라앉혀주고, 하늘의 새와 들에 핀 작은 꽃들을 보게 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형제와 자매를 보게 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아무런 불꽃도 없이 우리 안에 있는 잡것들을 다 태워버리고, 우리를 가난한 영혼으로 연단하는 신비로운 용광로 같습니다. 새로운 용광로이지요.

오늘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주의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주의 기도는 다만 하나님 앞에 서는 기도입니다. 주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 앞에 서는 데 방해가 되는 것 두 가지를 경계합니다. 하나는 사람들 앞에 과시하려는 헛된 욕망, 곧 위선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알아주지 않는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은밀하게 계시는 하나님만 보시게 하라는 것이지요. 다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너무 충분한 곳, 그곳이 우리의 기도처입니다.

또 예수님은 빈말을 늘어놓지 말라 하십니다. 사실 마태복음을 기록할 당시에는 ‘기도문’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성전 제사를 드릴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도는 아주 중요해졌지요. 그들이 맞닥뜨린 그리스 로마 종교에는 온갖 수사 기교로 다듬은 현란한 기도문들이 많았습니다. 유대교 랍비들도 아주 장엄하고 수려한 기도문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럴듯한 기도문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기교로 다듬어낸 말을 ‘빈말’이라 하십니다. 그런 빈말, 아첨과 아부는 가짜 신에게는 효험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지요. 더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다 아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기도하는 장소도 기도하는 언어도 다만 순수해야 합니다. 너무 꾸미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바로 그런 기도입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주의 기도에서 하나님을 그냥 말 그대로 ‘압바’라고 부릅니다. 아빠! 어린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그 품에 안기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품에, 아빠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보고 계시고 이미 알고 계시는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아빠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빠 품에 안기는 것으로, 이미 우리의 기도는 넘치도록 충분합니다. 우리는 아버지 품에서, 다만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뜻을 바라며,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주의 기도가 특별한 것은, 아주 단순하고 담박하기 때문입니다. 주의 기도에서 우리가 구할 것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지요. 하나는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용서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면서 일용할 양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압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양식은 곧 생명이요 전부가 아닙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참으로 절실하고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또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절제요 비움이요 나눔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기도하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며, 다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기로 다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의 기도는 우리를 그저 용서받기만 하는 죄인이 아니라, 당당하게 용서하는 사람으로 세워줍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기도는 우리 안에 있는 잡것들을 비워내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품 안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과 아들들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욕심을 이루려는 기도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찬미하는 기도지요. 행복한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의 기도를 우리의 골방에서 드리며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시야 왕이 성전을 정화할 때, 그때 성전에서 나온 것 중에는 ‘남창의 방’도 있었습니다. 거룩한 성전 안에서 참으로 음란한 난장을 벌어졌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안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요즘 드러나는 한국 교회의 추잡한 모습을 보면, 그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에서 온갖 잡것들이 다 나온 것처럼, 한국 교회의 성전도 온갖 잡것으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교회 안에서 어떻게 다만 하나님 앞에 서는 순전한 믿음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한국 교회가 그래도 정신을 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스로 용광로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랬다가는 용광로만 버리게 될까요? 

잡것에 더럽힌 종교와 신앙을 철저하고 가혹하게 정련하는 용광로가 바로 ‘말씀’이라면,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신앙을 연단하는 용광로라면, 용광로는 우리에게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바로 말씀의 용광로입니다. 루터는 말씀의 용광로에서 잡것에 오염된 교회를 개혁하라는 소명을 받았지요. 우리에게는 말씀의 용광로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말씀의 용광로로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올여름은 코로나 때문에 휴가철에도 사람 많은 곳을 피해야 한다지요. 교회에서도 따로 모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기회에 골방을 찾는 것은 어떨까요? 무엇보다 올여름에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음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의 용광로에서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몸도 새롭게 연단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서 감사하고 찬미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