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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소명과 사명(사6:1-13)
20032022 유정호
Ⅰ. 들어가는 말
신학교를 통해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할 자를 훈련시키는데 이 훈련을 받는 학생을 일명 선지생도라 하고, 그들을 배출하는 학교를 선도동산, 혹은 신학교라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신학생들을 배출하기 위한 신학교가 적지 않다. 정식 인가된 신학교와 무인가 신학교를 합하면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리기 조차 없을 정도다. 신학교가 많은 것을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것은 부르심을 받지도 못하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꾀나 많기 때문이다.
본 석의는 선지자의 소명과 사명의 내용이 있는 이사야 6장을 통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소명을 받게 되고 소명받은 후에 받게 되는 사명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 신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Ⅱ. 번역 및 번역 설명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 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그 위에 섰는데1)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 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했다 나에게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기1) 때문이다2) 내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눈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기 때문이다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었다 그리고 난 후 그는 말했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 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계속해서 들으라1) 그러나 너 희는 깨닫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계속해서 보아라 그러나 너희는 알지 못할 것이다
10. 너는 이 백성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1)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그(이 백성)가 그의 눈으로 보지 못하도록2), 그의 귀로 듣지 못하도록3), 그의 마음이 깨닫지 못하도록, 그가 돌아와서 그를 치료하지 못하도록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 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 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 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2절 1) וֹל ל(from above him/그 위에) 대신 칠십인역은 쿠클로 아우투(κύκλῳ αὐτ ου)로 나타낸다. 칠십인역의 번역자는 스랍들이 주님의 위에 있었다는 표현을 마 땅치 않게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마소라 사본에는 모순이 없는 듯 하다. 그 이 유는 이절 끝에 나오는 ףפועי(그는 날았다)를 보면 스랍들이 보좌 위를 날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5절 1) 니드메이티(יתימדז)는 종종 “나는 침묵해야 했다, 망했다”로 번역할 수 있다. 두 번역 모두 적합하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 말할 수도 없을뿐 더러 망하게 됨을 직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개역개정의 망했다를 취한 다.
2) י는 “ 때문에” 또는 “…하는 것”(that)을 의미할 수도 있고, 강조를 나타내는 접 속사 “참으로”(indeed)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또는 “그러나”, “만일”, “…할 때”(when)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필자는 세 번에 걸쳐 나타난 י를 이유로 해석 하는 것을 취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자가 고백한 “나에게 화로 다”라고 말한 이유들로서 적합하기 때문이다.
9절 1) וּע는 ע(듣다)의 단순 능동 명령형 제2인칭 남성 복수로서 “너희는 들으라” 라는 뜻이다. וֹמ는 ע의 단순 능동형 독립 부정법이다. 이 독립 부정법이 정동사(וּע)의 뒤에 올 때는 그 행동(정동사)의 계속성을 강조한다. 이문구는 너희는 계속해서 들으라는 뜻이다. ע는 순종하라(obey)는 의미와 이해하다 (understand)라는 의미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וֹמ וּע는 “너희는 계속해서 들어라(순종하라,이해하라)”는 메시지를 선포하지만 백성들은 깨닫지 도 알지도 못하는 비참한 결말의 모습을 보여준다.
10절 1) ן는 ן(살찌다)의 히필 명령형으로 너는 살찌게 하라는 뜻이다. 마음이 살 찌면 그 마음이 무디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시119:10). 그런 뜻에서 이 낱말은 너는 마음을 무디게 하라는 말이다.
2) ן은 가정을 나타내는 불변사로서 하지 않게 또는 하지 않도록(lest)를 뜻한다.
본절에서는 하지 않도록을 취하는데, 이것은 11절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3) ד는 히필 명령형으로 강퍅케 하라(make harden)는 의미를 지닌다. 이 부분 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바는 백성들을 향한 심판을 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결정되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Ⅲ. 본문의 범위 및 문학적 구조
1. 본문의 범위
이사야 전체 가운데 1-39장만이 주전 8세기 예언자 이사야의 것으로, 사1-12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이다. 사5:1-7절에서는 “포도원 노래”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서술하고, 사5:8-30절에는 죄짓는 권력자들에 대한 화가 있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이 적들을 불러들이신다는 것을 말한다. 사7장은 이사야가 아람-에브라임 전쟁 중에 유다왕 아하스에게 선포한 예언을 서술하고 있고, 사6:1-13절은 선지자의 소명과 사명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2. 문학적 구조
A.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1-4절)
1. 웃시야의 죽던 해(1a)
2. 선지자가 본 것(1b-4)
a. 보좌에 앉으신 주(1b)
b. 스랍들의 모습과 찬양(2-3)
c. 문지방의 요동과 연기(4)
B. 용서받은 이사야(5-7절)
1. 죄의 자각(5)
2. 부정한 입술을 정결케 함(6-7)
C. 선지자로의 소명과 사명(8-13절)
1. 부름에 대한 자원(8)
2. 선포할 내용과 성과(9-10)
3. 어느 때까지(11-12)
4. 거룩한 씨의 남음(13)
Ⅳ. 분석적 관찰
1.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1-4절)
사6장은 선지자 소명과 사명기사를 1인칭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검증할 수는 없으나 전통적으로 본서의 화자를 이사야로 보고 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환상을 보게 되는데 이 환상을 보았을 때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 한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왕하15:7)는 정확히 확정하기 힘들지만(주전740년에서 735년 사이) 역사적으로 중대한 전환기였다.
이사야는 하늘 보좌가 있는 공식 알현실의 장면을 보게 된다(1-2절). 열왕기상 22:19;욥기1:6과 2:1 그리고 스가랴 1:8;3:1과 6:1-3에서와 마찬가지로, 정황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그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주님과 여섯 날개를 가진 그룹을 보게 되는데 그룹들은 두 날개로는 자신들의 얼굴을 가렸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렸고, 두 날개로는 날고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위를 날면서 서로 교창하고 있었다. 스랍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 존재들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거룩함을 찬양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의 찬양 내용은 만군의 여호와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함이다. 스랍들의 찬양의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성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고 성전에는 연기가 충만하였다고 묘사한다. 이사야가 본 성전(לכיהה)은 예루살렘 성전을 언급할 수도 있고 하늘의 대집회장을 언급할 수도 있다. 이 단어는 의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맥은 천국 배경을 지지해준다.
2. 용서받은 이사야(5-7절)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게 된 이사야는 자신의 입술의 부정함과 자신과 함께 거주했던 백성들의 부정함을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모른채 탄식하게 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게 되면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히브리 전통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게 되면 죽는다고 이해하였었다. 그렇기에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죄인으로서의 자신이 망하게 되었음을 자각했던 것이다. 이사야는 자신의 부정함만 깨달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던 그 시대 유다 백성들의 죄악성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깨달았음을 알 수 있다.
죄로 인해 망하게 되었음을 알고 몸둘 바를 모르고 있는 이사야에게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하던 스랍들 중에 하나가 단에서 취한 숯으로 그의 입에 대며 악이 제하여졌음과 죄가 사해졌음을 말해준다. 이 숯은 결코 인간들이 상상하는 보통의 숯은 아닌 듯 싶다.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인 이사야에게 죄악의 사함의 선포는 복음 중에 복음이었을 것이다.
3. 선지자로의 소명과 사명(8-13절)
환상을 보고,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이사야에게 주의 음성이 들려온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8절)”라는 말씀을 통해 하늘 보좌 회의 가운데서 회의하시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보낼자를 찾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던 이사야는 거침없이 자신을 보내달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원한 이사야에게 전할 말씀이 주어진다. 개역 개정을 보면 9절의 내용이 가서 선포할 내용으로 보이지만 마소라 본문으로 볼 때는 이사야가 말씀선포를 했을 때의 결과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말씀선포의 성과는 참으로 비참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이사야의 질문을 통해서 더욱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11절). 이사야는 이러한 비참한 일들이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주님께 여쭙는다. 주님은 유다가 참담한 파국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뜻을 이루시겠다는 식으로 답변하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결국에 그루터기와 같은 거룩한 씨를 그 땅에 있게 될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을 주신다.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답변해 주신 말씀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11절은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듯하고, 12절은 유다 백성의 추방 곧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것의 예언인 듯하고, 13절은 포로민의 귀국, 곧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이 바사 고레스 왕의 해방령으로 그 일부가 다시 고국 유다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으로 볼 수 있다.
Ⅴ. 통전적 해석
1. 이 본문은 이사야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이야기로 환상을 통해 거룩하신 주님을 뵙게 된 이사야가 죄사함을 받은 후에 주님께서 선지자로 보낼 자를 찾고 계실 때 자원함으로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받는 과정을 서술해 주고 있다.
2.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은 인간이 죄인됨을 깨닫게 하고 죄사함의 길로 인도한다. 본문에서 높이 들린 보좌(1b), 스랍들의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리는 모습(2), 스랍들의 찬양(3)등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말해준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게 될 때(5c) 자신과 백성의 죄인됨을 발견하게 되고(5b) 자신의 죄로 인한 고통을 하나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게 된다. 죄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이사야를 하나님은 중보자인 스랍을 통해서 죄사함의 은총을 베푸신다(7). 그리스도인들의 초기 신앙체험의 과정을 이 본문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록된 말씀, 선포되는 말씀, 성령의 역사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 죄인된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게 되고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죄에 대한 탄식을 하게 된다. 이 때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해주신다. 또한 스랍을 통해 알리셨던 것처럼 보혜사되신 성령의 역사를 통해 죄사함 받은 기쁜 소식을 각자에게 전해주신다.
3. 죄사함의 감격은 주님의 부름에 선지자로 자원하게 한다. 이사야은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뵙고(1-4) 죽을 줄로만 알았다(5a) 그런데 죽을 줄로만 알았던 그에게 하나님은 찬양하던 스랍을 통해 그의 부정한 입술을 깨끗게 해 주셨다(7).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죽을 죄인이 용서함을 받았으니 말이다. 이러한 감격가운데 있던 그에게 주님께서 고민하시며 선지자를 찾고 계시는 것을 듣게 된다(8a). 이사야는 바로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을 보내달라고 주님께 요청하게 된다(8c). 이사야의 선지자로의 자원은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에 대한 응답행위로서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죄사함의 뜨거운 감격으로 인해 주님의 뜻을 깨닫고 자원하는 복음 전도자로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4. 선지자의 사명은 성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주님의 뜻을 온전히 알리는데 있다. 이사야에게 주신 사명은 하나님의 뜻이 확정되었으므로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9-10). 이 사명을 받은 이사야의 심정은 참으로 암담하기까지 했다(11a). 어떤 선지자도 성과 없는 예언을 선포하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선지자의 직무가 주님의 뜻을 온전히 전하는 자이기에 힘겨운 예언의 짐을 피할 길은 없다(렘20:9).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될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 또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먼저 깨닫고 그 뜻을 전하는데 가감없이 전하여야 될 것이며 더욱 말씀선포 후의 성과가 없더라도 낙담하지 말고 서 있어야 될 것이다.
5. 선지자는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기 위한 구원의 역사의 도구이다. 선지자가 그 어려운 예언을 감당하면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그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소망의 말씀 때문이다(13).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당시대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자신들의 죄악을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들의 말씀들을 반추해 보면서 고백했을 일은 자명한 일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분이시다. 미래 하나님 백성들을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멀리 내다 보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어둠의 역사의 현장에서 그들을 통해 말씀의 씨앗을 뿌리신 것이다. 이 씨앗은 바벨론 포로기를 맞아 싹이 트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던 것이다. 선지자는 현실에 결실이 맺어지지 않는다 하여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될 것이며 미래에 이루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도 선지자로서의 생을 사셨다. 선지자로서의 생을 사셨던 예수님도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놀라우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다.
Ⅵ. 결론
사6:1-13절는 선지자의 소명과 사명을 서술하고 있다. 본문은 한 인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말씀선포자로 서게 되는 과정은 어떠하며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밝히 말해주고 있다. 말씀을 선포하는 자로 서기에 앞서 선행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과 더불어 죄사함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시간 이후로부터 하나님과 바른관계, 즉 의가 성립되어지는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체험은 이후에 선지자(말씀선포자)로 부름받을 때 이사야와 같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자원하는 자로 서게한다. 죄사함에 대한 은혜가 큰 사람일수록 주님을 향한 헌신의 강도도 높게 나타난다. 선지자로 부름받은 자는 백성들을 향해 전해야 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말씀선포자는 가감없이 그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씀선포자가 져야되는 무거운 짐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인간들이 듣기 좋은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따라오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길인 것이다.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말씀을 선포할 때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백성들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선지자로서 이 시대에 속에서도 똑같이 재현될 수 있다. 이 때 우리도 앞서 선지자로서 부르심을 받고 사명을 감당하셨던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통해 선한 역사를 이루어 주실 미래를 바라보며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야 될 것이다.
구약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아래 읽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본 선지서는 참으로 많은 교훈을 준다. 먼저 하나님은 스랍이라는 중보자를 통해서 이사야의 모든 악과 죄를 제하시고 사하셨던 것처럼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와 허물을 사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나게 해 주신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이루어가셨던 역사는 결코 심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은 거룩한 씨를 이루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도 이것이 드러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심판)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루기 위해 죽음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 내린 심판도 결국 거룩한 씨를 통한 부활의 영광으로 나아가기 위한 죽음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어성서공회판. 『해설관주성경전서』
정진황. 복음과 실천.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1995.
클라우스 베스터만. 『성서입문』. 김이곤․황성규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서. 2002.
존D.W.와츠.『WBC』. 서울: 도서출판솔로몬. 2002.
IVP성경배경주석.
첫댓글 샬롬!
위의 글은 신학대학원 재학중에 구약석의방법론 수업에서 과제로 제출했던 것입니다.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퍼갑니다
샬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