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람 1-1
십자가의 능력(고린도전서 1:18)16.02.14.주일낮설교
물고기 중 유일하게 둥지를 만드는 것이 가시고기입니다.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의 모래를 퍼내고 그곳에 둥지를 짓습니다.
모래집에 수초까지 덮어 완벽한 산란의 보금자리를 꾸밉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이때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몸집이 큰 물고기들과 처절한 싸움도 불사합니다. 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부지런히 그것을 넣고 꺼내는 작업도 잊지 않습니다.
가시고기 수컷은 보통 15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알을 보호합니다. 그리고 알이 부화할 무렵, 둥지 옆에서 장렬하게 죽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치어들은 무심하게도 제 아비의 살을 뜯어먹으며
성장합니다. 가시고기는 새끼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최후에는 몸까지 내어놓습니다.
그 부성애로 인해 가시고기의 부화율은 90%를 웃돕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가시고기의 그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한 영혼의 부화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쏟아 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멸망하는 사람들" 이란 십자가 사건을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하며 안 믿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광야에서 모세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사는 방법을 제시 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만들어 매어단 장대 위의 구리 뱀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것을 어리석고 미련한 것으로 보고 믿지 못하는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믿음으로 장대에 높이 달린 구리 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리뱀 사건은 지금의 십자가 사건의 예표입니다.
어리석게 보이고, 미련하게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대로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최근에 웰빙(well being)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복지, 안녕, 행복’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잘 먹고 건강하게 살기’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삶의 질을 생각하고, 건강한 영혼과 육체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웰빙이라는 영어의 뜻을 잘 몰라서 웰빙을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웰빙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의 길은 우리의 웰빙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한 영혼과 육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에게
3가지 놀라운 삶을 약속 하셨습니다.
1.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넉넉한 삶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을 보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 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했습니다.
사마리아는 원래 이스라엘 민족에 속한 땅이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침략을 받았고,
남 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침략을 받았습니다.
앗수르는 사마리아 지역에 이방 족속을 강제 이주시키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통혼을 강조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 유대는 70년간 어려운 포로 생활을 버티다가 순수혈통을 지키고 다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를 거쳐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가성의 한 여인이 그 곳의 우물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 수가성의 여인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고
반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생수에 관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며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동안 이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남자와 살았고,
지금 남자도 제 남편이 아닌 남자와 살고 있던 이 불운한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 이신 것을 알고 온 동네에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의 샘물이신 영생수 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야, 구원자로 영접한 그리스도도인들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는 말”은 삶속에서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만족” 하며 산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영접하면 부자가 되어서 부족함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부족함이 있어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부족함이 없는 것처럼 만족하며 산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질병이 있어도 넉넉하고 만족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건강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사회적으로도 지위가 있는데 늘 불안하고 공허하게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소유의 차이가 아닌 “만족함”을 누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끼고 불평, 불만이 많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만 다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에게
3가지 놀라운 삶을 약속 하셨습니다.
1.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넉넉한 삶입니다.
2.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7:37-38을 보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먼저 유대인의 “초막절”행사를 이해해야 하는데 “초막절”이 되면 백성들은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성전 제단 아래에 부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때 하나님이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을 부으면서 “우리는 삶의 목마름이 있는 사람들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수는 성령을 상징하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말”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나 자신만 변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것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 졌다면 우리의 가정, 직장,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베드로는 형편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어물전이나 횟집 사장을 꿈꾸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종살이를 했습니다. 감옥에도 갇혔습니다. 전혀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이방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고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거나
반대로 영향을 받고 상처만 주고 산다면
우리는 그저 교회만 다니는 사람 일 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에게
3가지 놀라운 삶을 약속 하셨습니다.
1.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넉넉한 삶입니다.
2.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삶입니다.
3. 시험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삶입니다.
로마서 8장 35-37을 보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 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 넉히 이기느니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큰 시험을 당하고 좌절과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예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엄청난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슬픔보다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보면,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기도 할 수 없을 때도, 내 대신 탄식하며 기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내 속에 탄식의 영을 회복시켜 주셔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부짖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십니다.
가슴 속에 한을 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울 때에 우리의 얼굴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얼굴이 웃을 때에 근육이 17개가 움직여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웃을 때는 얼굴 변화가 많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괴로워하고 찡그리기 시작하면 43개의 근육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굴이 많이 찡그려 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 보면 웃으면서 기도하는 사람보다 얼굴을 찡그리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 사람 왜 그렇게 찡그리노,
무슨 걱정이 많노, 근심거리가 많노, 그러지 마십시오.
성령이 지금 탄식의 영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 탄식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입니다.
눈물이 변하여 기쁨으로 바뀌어 지게 될 것입니다.
실패가 변하여 승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시험을 만날 때 넉넉히 이긴다면
진정 예수님을 믿고 그 사랑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겨~~우
시험에 이기거나 매번 지기만 한다면 그저 교회만 다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넉넉한 삶.
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삶.
시험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