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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1(화) 송구영신예배설교 느헤미야 8:2~18 진정한 기쁨 예산수정교회 이몽용 목사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쁨이 존재하며, 이는 문화, 개인의 경험, 상황,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세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기쁨의 종류를 몇 가지로 나눈 설명입니다.
1) 감각적 기쁨 (Sensory Pleasure)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느끼는 기쁨입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향기로운 꽃내음을 맡을 때 2) 성취의 기쁨 (Achievement Joy)
목표를 이루거나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느끼는 기쁨입니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큰 프로젝트를 완수했을 때 3) 관계의 기쁨 (Relational Joy)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기쁨입니다. 친구와의 대화, 가족과의 화목한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4) 나눔의 기쁨(Joy of Giving)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베풀었을 때 얻는 기쁨입니다. 기부, 봉사활동,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었을 때 5) 예술적 기쁨 (Artistic Joy)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창작 활동을 통해 느끼는 기쁨입니다.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을 그릴 때, 연극이나 영화에 몰입할 때 6) 내면의 평화에서 오는 기쁨 (Inner Peace Joy) 마음의 평온함과 안정을 통해 느끼는 기쁨입니다. 명상 중 평온함, 자연 속에서의 고요한 순간,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때. 7) 발견과 모험의 기쁨 (Discovery & Adventure Joy)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모험을 통해 느끼는 기쁨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여행할 때, 새로운 지식을 배웠을 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때. 8) 유머와 웃음의 기쁨 (Humorous Joy) 웃음과 재미를 통해 얻는 기쁨입니다. 친구의 농담에 웃을 때, 코미디 영화를 볼 때, 어색한 순간이 웃음으로 풀어질 때. 9) 성장의 기쁨 (Joy of Growth) 스스로가 성장하고 발전했을 때 느끼는 기쁨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웠을 때,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을 때, 성숙함을 깨달았을 때. 10) 자연 속 기쁨 (Nature Joy) 자연과 교감하며 느끼는 기쁨입니다. 해돋이를 볼 때, 숲 속을 걸을 때,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을 때. 11) 감사의 기쁨 (Gratitude Joy) 현재 상황에 대해 감사할 때 느끼는 기쁨입니다. 건강에 감사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 12) 소속감의 기쁨 (Joy of Belonging)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과 소속감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팀워크가 잘 맞았을 때, 공동체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얻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진정한 기쁨임을 알려줍니다.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미야 8:10)
여기서 기쁨은 히브리어로 ‘체드바’로 이는 위에서 설명했던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 분의 은혜로부터 오는 영원하고 진정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진정한 기쁨임을 보여주는 다른 성경 구절을 살펴보면
1) 시편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하며,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2)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외적인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기쁨을 줍니다.
3) 이사야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을 내게 입히셨음이라.”이는 구원의 확신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이 구원의 기쁨은 세상의 어떤 조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4) 요한복음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기쁨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셨습니다. 이 기쁨은 단순한 인간적인 기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완전한 기쁨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포로 생활 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여호와로 인한 기쁨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미야 8:9-10) 이 말씀은 죄를 깨닫는 슬픔을 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쁨은 세상적인 조건이나 상황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진정한 기쁨을 누리려면?
1. 진정한 기쁨을 누릴려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백성의 요청으로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서자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자 모입니다.
2절과 3절 함께 읽겠습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2,3절에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회중 가운데 말씀이 들리는 사람이 많이 생긴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알아들었어"라는 말은 말씀을 지식적으로 알고 이해했다는 의미를 뛰어넘어서 그 말씀을 통해서 "내 주제를 알았어. 내 실상을 파악했어"라는 뜻입니다.
내 주제를 모르고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니까, 말씀을 통해서 어떤 것도 기쁨이 안 되고 그로 인해 얻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그 말씀을 통해서 나 자신을 알고 내 실상(죄와 허물)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누릴 가장 큰 축복이고 하나님의 은혜이며 말씀의 능력입니다.
간증) 저도 모태신앙으로 주일학교 부터 교회를 잘 다니고 착하고 공부잘하고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받았지만,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앞두고 내 앞에 놓인 막막한 진로 문제 앞에서 말씀이 들리니 그 말씀을 통해서 제 모습이 보이고 제 모습이 보이니 갇힌 것 같은 환경, 짙은 안개가 낀 것과 같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말씀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 없어 나 자신을 모를 때는 장래문제로 답답해 하고, 함께 입학한 친구들은 다 취업준비하는데, 나는 무엇을 준비해서 ‘앞으로 무얼 먹고 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 하루가 우울하고 공허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들리니 나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있고,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세상 염려는 뒤로 하고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친구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3절을 보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시간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무려 6시간이나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시간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들리니 지루하지 않아요.
사도행전 20:7-12에 유두고라는 사람이 나오지요. 유두고는 3층 창가에 앉아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바울의 설교가 밤늦도록 이어지자 그는 졸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깊은 잠에 빠져 3층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사람들은 유두고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바울은 그에게 내려가 안고 말합니다.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행 20:10)고 말하며 바울의 기도를 통해 유두고는 다시 살아났고, 사람들은 크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행운아’, ‘복된 자’라는 뜻입니다. 비록 말씀을 듣다가 졸아 떨어져서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생명을 다시 얻은 행운아요, 복된 자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설교를 듣는 청중은 마음과 몸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준비하고, 말씀을 기록하든지 해서, 적극적으로 말씀에 참여해야 합니다. 또한 설교자는 청중의 상태를 고려하여 지루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달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님의 말씀에서 오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레미야 15:16 말씀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고 진정한 기쁨을 줍니다.
그러니 말씀을 6시간이나 들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또한 4절에서는,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4절을 보니 말씀을 전하는 학사 에스라의 오른쪽과 왼쪽에 사람이 세워집니다.
오른쪽에 선 ‘맛디댜’는 ‘여호와의 선물’이란 뜻이구요, ‘스마’는 ‘들음과 순종’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아나야’는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야’는 ‘여호와의 등불’, ‘힐기야’는 ‘여호와는 나의 재산’
‘마아세야’는 ‘여호와의 사역’이라는 뜻입니다.
또 왼쪽에 선 ‘부다야’는 ‘여호와께서 구속하셨다’ ‘미사엘’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말기야’는 ‘나의 왕은 여호와’ ‘하숨’은 ‘부유함’, ‘하스밧다나’는 ‘친구가 되다’라는 뜻이예요..
또한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 ‘므술람’은 ‘고상’이라는 이름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
학사 에스라의 오른편과 왼편에 선 사람의 이름의 뜻을 들으니 여러분은 어떤생각이 드시나요?
이름만 봐도 마치 마치 말씀 운동을 펼치려고 준비된 사람들 같지 않습니까?
에스라의 오른쪽에 6명, 왼쪽에 7명, 총 13명이 에스라의 옆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돕습니다.
그리고 7절부터는,
또 다른 13명의 레위 사람들이 율법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해 줍니다.
7절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이는 학사 에스라 혼자서 말씀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뜻을 해석해주는 협력사역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공동체가 함께 읽어 내려가야 합니다.
또한 삶으로 깨달은 말씀을 입으로 간증하여 다른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얼마나 큰 지 모릅니다.
우리교회도 계속해서 큐티를 하고 소그룹 모임을 하고 그러면 이제 주일예배 시간에는 간증자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간증을 나만 소유하고 있지 않고 공동체와 함께 나눌 때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이 배가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간증의 주인공이 되어 은혜의 강물을 흐르게 하는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말씀이 들려 내 실상이 보이나요?
2) 내 수치와 죄를 간증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씀을 깨닫도록 돕고 있나요?
3)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기쁜가요?
여호와로 인한 진정한 기쁨을 누리려면
둘째, 회개의 눈물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9절에,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고 합니다.
9절 말씀 다 같이 읽겠습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우는 것’이었습니다. .
이 눈물은 ‘회개의 눈물’을 의미합니다.
말씀이 듣는 자에게 바르게 들리면 ‘정죄감’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죄’ 때문에 애통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으로 인한 회개는 인생 최고의 감정이요 복받은 감정입니다. 팔복 중에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애통하다’는 헬라어는 ‘펜테오’로 이는 깊은 슬픔과 비탄 속에서 마음 아파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애통함은 단순한 감정적 슬픔을 넘어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마음’을 포함합니다.
즉 자신과 세상의 죄악된 상태를 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가슴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복있다 말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애통 해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의 위로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또한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위로를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니...” (요한계시록 21:4).
그러므로 회개의 눈물은 기쁨의 반대말이 아니라 기쁨의 극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오늘 본문과 정반대의 ‘잘못된 울음’도 있습니다.
에스겔 8장을 보면, 여인들이 담무스 즉 이방신을 위해 애곡하는데, 이것은 바로 망하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여인들은 생명의 신, 농업과 다산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이방신인 담무스의 죽음을 애곡하며 그의 부활과 자연의 회복을 간구했습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서 담무스를 위해 애곡했다는 것은 심각한 우상 숭배의 죄가 만연했음을 보여줍니다. 성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교 신을 섬기는 행위를 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그들의 눈물과 애곡은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와 회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 신에게 의존하는 거짓된 믿음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나요? 에스겔 10장에 따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배교와 우상숭배가 극에 달했음을 의미합니다. 담무스를 섬긴 여인들은 자신들이 의지한 이방신에게서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열심으로 봉사하고 흥분된 감정으로 울부짖고 눈물 흘리며 기도해도 내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지는 애통함이 동반된 참된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의 눈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듣는 것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눈물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나의 죄의 실상을 보며 우는 것 이것이 곧 회개요, 입니다. .
이렇게 내 죄 때문에 회개하고 슬퍼하는 사람은 더 이상 환경 때문에 슬퍼하거나 근심하지 않게 됩니다. .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백성을 향해
10절에서, “ 살진 것을 먹고 근신하지 말며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참된 상급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성도는 이 힘으로 말미암아 고난의 환경을 인내하고 죄를 이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에 12절에,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고 합니다.
학사 에스라가 들려 준 하나님 말씀을 밝히 알게 되니 눈물은 변하고 즐거움이 되고, 즐거움은 식탁의 회복으로 이어집니다.
백성들이 서로 “먹고 마시며 나눈다”는 것은 서로 한 몸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같은 말씀을 듣고 함께 먹고 마시며 나누는 것이 바로 교회지요.
이런 모범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초대교회인데요.
초대교회의 모습은 주로 신약성경의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 강림(오순절 사건)을 기점으로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놓은 공동체로, 그들의 삶과 신앙 활동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중요한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42-47에는 초대교회의 공동체적 특성이 잘 나타납니다.
1) 성도의 교제: 믿는 자들이 서로 교제하며 함께 식사하고,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소유의 나눔: 각자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물질적으로 서로를 돌보았습니다.
일치와 연합: 믿음 안에서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도행전 2:44-45) 2) 예배와 성례전: 초대교회는 주로 가정집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교회) *말씀의 가르침: 사도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성찬식: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식을 가졌습니다. *기도와 찬양: 지속적인 기도와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3) 복음 전파와 선교: 초대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적극적인 복음 전파입니다. *사도들의 설교: 베드로, 바울, 요한 등의 사도들이 공개적으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고난과 박해 속의 선교: 로마 제국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확산되었습니다. *선교 여행: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 등지로 선교 여행을 다녔습니다. 4) 성령의 역사 초대교회는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 오순절 성령강림: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각 나라 언어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성령의 은사: 병 고침, 예언, 방언 등 다양한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자기 죄를 아는 교회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떡을 떼며 먹는 기쁨을 누릴 때 죄의 권세를 깨뜨리고 모든 결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 생깁니다. 5. 박해와 순교 *로마 제국과 유대교 지도자들의 박해가 있었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었고, 이를 계기로 복음이 더 널리 퍼졌습니다. *로마의 핍박: 네로 황제 때부터 본격적인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6) 교회의 조직과 역할 초기에는 사도들이 지도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점차적으로 집사, 장로, 감독(주교) 등의 직분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의 서신: 교회의 신학적 기초와 실천적 교훈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7) 사랑과 섬김 초대교회는 사랑과 섬김의 공동체로 알려졌습니다. *과부와 고아 돌봄: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병자 치유와 돌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병든 자를 치유하고 돌보았습니다. * 초대교회는 단순한 종교 집단이 아니라, 믿음, 사랑, 나눔, 선교로 하나된 공동체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초대교회의 이러한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초대교회의 역사가 바로 학사 에스라의 말씀 회복 운동이 일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역사가 나타나기를 노력하고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성령으로 하나되는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한 몸이 된 교회에 음부의 권세를 이길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 언제 눈물 흘리세요?
* 그 눈물은 회개의 눈물인가요? 후회의 눈물인가요?
* 누구와 밥 먹을 때 가장 기쁜가요?
갖가지 고난을 통해 말씀이 들려 죄와 교만을 회개하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신 주께 감사드린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간증이에요.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지만 무늬만 크리스천이었어요. 신앙을 하나의 철학쯤으로 여겼죠. 대학생 때는 기독교 동아리 활동도 하고 부흥회와 기도원도 다녔지만 싫증을 내고 뛰쳐나왔어요. 이후 정욕을 따라 불신자와 사귀면서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고 죄책감 없이 음주도 즐겼죠. 그러면서도 의로운 교회 청년으로 가장하여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그러다 3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믿는 여자친구와 교제하며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양육을 받으면서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약속했지만, 대학원 박사 졸업이 미뤄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두 번이나 치루수술을 받는 고난이 찾아왔어요. 그제야 저는 말씀이 내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렸고, 그 말씀을 통해 저의 내재된 우울과 교만을 보게 되었죠. 또한 제게 찾아온 사건을 공동체에 나누며 지체들의 권면을 통해 사건이 해석되는 기쁨도 누렸어요. 9절 말씀처럼 무엇보다 불신교제를 하며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은 죄와 교만을 눈물로 회개했지요. 이후 저는 혼전순결을 지키다 40대가 되어서야 믿음의 결혼을 할 수 있었답니다. 여전히 내 생각이 앞설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말씀묵상과 적용의 나뭇가지로 믿음의 가정을 짓게 하셔서 주님 안에서 큰 기쁨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아내에게 딸의 큐티를 맡기기보다 말씀에 귀 기울이는 가정예배를 다 같이 드리겠습니다. 아내의 지적을 들을 때 내 생각이나 감정이 앞서지 않도록 공동체에 드러내고 나누겠습니다.
회개의 기쁨은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14~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바를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일곱째 달 절기에 초막에서 거할지니라 하였고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가져다가 기록한 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한지라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중이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절기 중 하나인데
출애굽 이후 초막을 짓고 생활하던 광야생활을 기억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수장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초막(임시 거처)에서 생활했던 것을 기념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공급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또한, 이 절기는 추수 감사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예배입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백성들은 오랫동안 초막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초막절을 회복하게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 발견: 학사 에스라와 지도자들이 율법책을 읽다가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는 규례를 발견했습니다. 이는 말씀을 통해 예배가 회복되는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 초막을 짓고 절기 지킴: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에 따라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일주일 동안 거주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마당, 성벽 광장, 각자의 집 옥상과 뜰에 초막을 세웠습니다.
* 기쁨과 감사의 예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우 큰 기쁨으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감사와 순종의 표현이었습니다.
* 초막절을 통한 영적 각성과 변화
초막절은 단순한 전통의 회복이 아니라, 영적 부흥과 각성의 도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영적 무감각에서 벗어나 회복되는 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들의 회복된 예배는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경외와 순종으로 이어졌습니다.
*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1) 말씀의 중요성: 예배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2) 공동체적 예배: 함께 모여 예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공동체성이 중요합니다.
3) 기쁨과 감사의 예배: 억지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4) 순종의 예배: 예배는 형식적인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표현입니다.
18절에,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7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들리고,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예배가 회복됩니다.
결 론)
일곱째 달 초하루에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백성이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그리고 율법에 기록된 대로 초막절을 지키며 예배를 회복합니다. 이처럼 구원받은 성도의 진정한 기쁨은 말씀으로 해석하여 깨닫게 해주는 지도자를 신뢰하고, 말씀으로 자기 죄와 허물을 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 때 유한한 인생의 실상을 깨닫고 세상 야망과 자랑, 특권의식, 나의 교만함과 어리석음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눈물의 회개와 간구로 예배가 회복되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여호와로 인한 기쁨은 환경을 초월한다. 진정한 기쁨은 환경과 상황을 초월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도)
주님!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기뻐하며 눈을 돌리는 저희입니다.
지위와 권세를 탐하는 것이 제 속에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말씀을 알아듣는 회중이 되어 내 속에 끝없는 욕심과 어리석음을 내려놓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므로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나를 아시고 붙잡아주시니 하나님만이 힘이요 기쁨인 것을 고백합니다.
이 기쁨으로 말씀하신 절기를 잘 지키고 기쁨으로 주님을 예배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제 남은 인생에 첫날부터 끝날까지 말씀을 낭독하고 지키고 누리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