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미로콰이(Jamiroquai)는 1992년 영국 일링 출신의 제이슨 케이와 데릭 멕켄지가 만나면서
이루어 졌다. 자미로콰이란 팀명은 "Jam"과 "Iroquois"를 합성한 단어인데, "Iroquois"는 북미
인디언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고,자미로콰이 자신들이 상상하는 이상향을 뜻하기도 한다.
밴드의 프런트맨인 제이 케이가 맨 처음 레코딩 스튜디오로 들고 들어간 곡은 바로 그의 데뷔 곡인
When you gonna learn이었다.
인디 레이블 "Acid Jazz" 에서 발매된 이 싱글 은 클럽가와 언더그라운드에서 대단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이내 영국 챠트에 데뷔하게 된다.
21살에 불과한 한 청년의 성공은 메이저 레코드 레이블들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마침내 소니
뮤직과 8장의 레코딩 계약을 맺어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첫 히트곡의 오리지널 데모는 지금의 멤버로 녹음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레이블의 뮤지션들을 임시로 모아서 행한 녹음이었는데,이제 제이 케이에게는 정규 라인업이
필요했다. 일단 그의 곁에는 키보드를 연주하며 공동 작곡 능력을 갖춘 토비 스미스가 있었고,
스케이트보드 친구였던 뮤지션 월리스 부캐넌은 닉 밴 겔더라는 드러머를 소개했다.
닉(Nick)은 과거 아케이오스(Archaos)라는 그룹에서 활동했는데 한 여성 멤버의 동생이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와의 오디션을 주선했다.
막강한 베이시스트인 스튜어트 젠더(Stuart Zender)를 얻은 자미로콰이는 마침내 화려한 기본
편성의 라인업을 갖추고 스튜디오로 향한다.
거대한 레이블인 소니와의 첫 작업은 순조롭지 못했다. 제이 케이는 자신이 프로듀서를 떠맡기를
고집했으나 레코드 회사는 이들이 유능한 프로듀서와 작업하기를 원했다.
마침내 제이가 작업포기를 선언하자 레이블은 그의 고집에 굴복하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녹음된 Too young to die는 1993년 3월 1일 차트 12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둔다.
1993년 6월 발표된 앨범 EMERGENCY ON PLANET EARTH는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오르고
평론가들의 찬사가 뒤따랐다.
미국에서 When you gonna learn의 싱글이 발매됐으나, 이 비디오에 삽입된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 L.A.폭동고래 사냥 장면들이 혐오감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MTV에서는 방영을
거부당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이들이 가장 화제를 몰고 다니는 팀이었다.
앨범 판매 수익의 7%는 그린피스(Greenpeace)에 기증되고 있었고, 93년 10월 이들은
고래남획을 반대하는 의미에서 덴마크 대사관 앞에서의 트럭 콘서트를 연다.
결국 경찰관이 플러그를 뽑아버리는 것으로 이 해프닝은 마감되고 이들의 투어는 연말까지
이어졌다.
1994년이 열리면서 자미로콰이는 영국의 음악상인 브릿 어워즈(Brit Awards)에서
'Best British Group(최우수 그룹)', 'Best Album(최우수 앨범)', 'Best British Dance Act
(최우스 댄스 아티스트)', 'Best British Newcomer(최우수 신인)', 'Best Video(최우수 비디오)"
등 5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지만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한다.
같은 해 드러머였던 닉 밴 겔더가 그룹의 음악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이 케이로부터
해고당하고, 이들의 데뷔 앨범을 2천만번 이상 들었다고 주장하는 열성 팬 데릭 매켄지가
오디션을 통해 가입한다.
같은 해 10월 훨씬 성숙하고 다듬어진 음악들로 채워진 이들의 두 번째 앨범 THE RETURN OF
THE SPACE COWBOY가 발매된다.
앨범의 타이틀과 음악적 특성으로 인해 조금 더 원초적인 연주들을 들려주는 데뷔 앨범은
'Earthy' 앨범이라 불리기도 하고, 재즈 퓨전(Jazz Fusion)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낸 두 번째
앨범은 'Spacey'앨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앨범은 곧장 2위로 데뷔했고 훨씬 두터워진 팬들의 갈채가 쏟아진다.
1995년 초 두 번째 앨범은 미국에서도 발매됐다. 빌보드지는 펑크와 하우스, 힙 합의 컨셉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들의 앨범을 극찬했고 이미 많은 클럽 DJ들이 이들의 음악을
리믹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마리화나 잎이 등장하는 타이틀 트랙의 비디오는 또 다시 검열의 칼날에 의해 상처를
입었고, 게다가 영국판 오리지널과 트랙 순서가 뒤바뀐 미국판에 대해 제이 케이는 '곡 흐름의
시퀀스를 망쳐버렸다'며 불편한 심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그도 미국 비디오 편집판을 위해 노래 가사의 일부를 수정해서 다시 부르는 수고를
감수해야만 했다.1996년에는 영국의 정글(Jungle) 프로듀서인 엠 비트(M-Beat)와 함께 작업한
이색적인 싱글 Do you know where you're coming from이 발표됐고 곧 이어 3번째 앨범인
TRAVELLING WITHOUT MOVING이 뒤따랐다.
가장 두드러진 싱글은 역시! Virtual insanity였다.
지금까지 그들이 연주해온 음악적 색깔을 모두 유지하면서도 한결 편안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작이었고, 대중적인 갈채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독특한 효과를 사용한 비디오 클립과 MTV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의 비디오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음악보다는 마룻바닥과 가구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특수효과에
더 큰 관심을 나타냈지만 어쨌든 이 비디오는 팝 음악 시장에서 그들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1997년 자미로콰이는 브릿 어워즈 2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스파이스 걸스의 막강한 걸 파워에
눌려 빈손으로 시상식장을 나와야했다.
그 해 8월 MTV는 자미로콰이를 10개 부문에 후보로 올리면서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결국 그들은 'Best Video of the Year(최우수 비디오 상)', 'Breakthrough Video(가장 혁신적인
비디오)', 'Special Effects(특수효과)', 'Cinematography(촬영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과거 이들에게 검열의 칼날을 휘둘렀던 MTV가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이제 이들은 미국 TV 토크쇼의 단골 게스트가 되었고, 모든 음악 팬들은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꿈에 그리던 미국시장에의 대침공이 시작되는 순간에 충격적인
루머가 터져나왔다. 한 TV쇼 프로그램에서 연주하기 직전 그룹의 두 멤버가 무대 뒤에서 격렬한
다툼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제이 케이와 베이시스트인 스튜어트 젠더였다.
소문에 따르면 둘은 말다툼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 다퉜고, 베이스 연주자인 스튜어트
는 제이와 함께 무대에 서기를 거부했으나, 막이 오르기 직전에 마음을 바꿔 그 프로그램의 연주를
아슬아슬하게 마쳤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1년 뒤 스튜어트 젠더는 그룹을 떠난다.
1998년 지금까지 숨가쁘게 성공의 고속도로를 달려온 자미로콰이는 1년 동안 휴식기를 갖는다.
같은 해 그래미는 이들에게 'Best Pop Performance for a Duo or Group' 부문의 트로피를
수여한다. 지금까지 자미로콰이가 받은 모든 상을 통틀어서 가장 영광스런 순간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이들은 시상식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긴 휴식의 와중에도 이들은 영화 <고질라(Godzilla)>의 사운드트랙을 통해서 하지만
긴 휴식의 와중에도 이들은 영화 <고질라(Godzilla)>의 사운드트랙을 통해서
Deeper underground라는 곡과 (상당히 비싸게 만들어진)비디오를 선보이는 서비스를 잊지
않는다.
98년 한 해 동안 제이 케이는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99년에 발표될 새 앨범에 실릴 곡들의
사전 작업에 들어간다. 현장감을 최대한 살린 종전의 작업 형태를 벗어나 연주와 사운드에 많은
가공을 첨가하는 실험들이 시도됐다.
1999년에 새 앨범 Synkronized를 발표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Jamiroquai는 전세계에서
천 백만장이라는 놀라운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