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서 '김씨' 성을 '바칼추크'로 바꾼 고려인 타티아나. 출산 휴가중에 시작한 인터넷 쇼핑몰 '와일드베리스.ru'(이하 와일드베리스)를 러시아 최대 규모의 인터넷 마켓플레이스(쇼핑몰)로 키워내고, 스스로는 러시아 제1의 부자 여성 기업인으로 올라섰다.
그녀는 지난 6월 러시아 최대 옥외 광고업체인 '루스 아웃도어'(이하 루스, 서방의 대러 제재전에는 프랑스의 다국적 옥외 광고회사 JCDecaux가 지분 소유/편집자)와 '깜짝 합병'을 선언했다. 창업 동지이자 남편인 블라디슬라프 바칼추크가 이 거래를 '적대적 M&A'라고 대놓고 반대하면서 불거진 와일드베리스의 합병 스캔들. 그러나 타티아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이혼 소송도 냈다. 그녀가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다음 그림은 뭘까? 실현가능한 것일까?
현지 인터넷 매체 rbc가 9일 타티아나와 합병 기업의 총괄 관리자인 로베르트 미르조얀(Роберт Мирзоян, 루스의 전무이사)을 나란히 앉혀놓고, 두 회사의 전격적인 합병 전말과 향후 계획 등을 물었다. 그 내용을 rbc와 코메르산트 등 현지 언론을 바탕으로 정리한다/편집자
포브스 러시아어판에 나온 타티아나 바칼추크/캡처
◇ 합작회사 설립(합병) 과정과 이유
"(타티아나) 지난해 12월 rbc와 인터뷰에서 조직이 커지면서 내부적으로 생겨나는 위험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는 3,000명의 직원이 있는데, (이전처럼)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살피고 비교하는 직원들이 많아졌다. 회사의 앞날에 진짜 큰 위협 요소다."
"인터넷 쇼핑몰 시장은 더욱 경쟁이 치열해졌다.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방법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로베르토 (미르조얀)와는 이전부터 소통을 하고 있었다. '루스'는 서방의 제재 이후, 2022년부터 중소기업 제품을 더욱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외국 기업이 떠난 상황에서 국산 브랜드를 더 키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이바노보주(州) 주지사로부터 '와일드베리스가 여기에 창고를 지어 놓고 여기서 생산된 물품을 판매할 수는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불편한 물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그곳에서 생산된 제품을 800억 루블 어치나 판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돕고, 그 제품들을 더욱 체계화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러시아에는) 성장에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중소기업이 있다. 그들이 우리 플랫폼(와일드베리스)을 통해 얼마나 판매하는지, 지속적으로 체크한다. 매출이 매년 두 배로 증가하고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이냐? 그들에게 홍보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다른 문제는 없는지 물어본다. 때마침 루스 측이 와서 중소기업 제품의 홍보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사업을 통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결정했다. (미르조얀) 와일드베리스가 지방에 창고를 짓듯이 광고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 과정이 만만찮다. 건설 현장에 가스를 공급하려면 에너지 회사인 가스프롬(Gazprom)과 전기를 공급하는 통합전력회사(UEC, 한국전력공사 격)와 접촉하고 구매 계약을 맺어야 하듯이, 광고 사업도 과정이 복잡하다.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회사와 손을 잡으면, 보다 손쉽게 '시너지'를 낼 것으로 생각했다. 합병은 그런 차원이다."
타티아나 바칼추크/사진출처:위키피디아
◇ 합병기업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이유
"기존 회사와 파트너쉽을 맺는 것이 (독자적으로 하는 것보다) 수익성이 더 높으냐의 고민은 있었다. (미르조얀) 루스가 가진 전문성은, 이전 주주인 프랑스의 다국적 옥외 광고업체 '제이씨데코'(JCDecaux)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노하우를 다 습득했다. 옥외 광고는 근본적으로 소비자 유입의 최상위 경로다. 그러나 루스는 그 효과를 실제 거래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와일드베리스와의 합병을 통해 광고로 시작해 소비자 반응, 거래 실적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곧바로 확인 가능하다. 루스와 와일드베리스 사이의 독특한 시너지 효과다."
"(타티아나) 루스 이외에 다른 광고회사를 찾아본 적은 없다. 루스 측과 소통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와 가설을 바탕으로 협의를 진행했고, 실질적으로 논의했다. 또 로베르트라는 유능한 관리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보다 더 나은 관리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 와일드베리가 직면한 현 문제점은?
"(미르조얀) 와일드베리스의 관리 철학은 1~2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스타트업 시스템이다. 한 기업이 오늘날과 같은 규모로 성장하면, 경영 관리 차원에서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와일드베리스는 이미 러시아 경제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그게 없으면 안된다."
"(타티아나) 1,500명이던 직원이 6개월 만에 6,500명으로 늘어났다거나, 매출이 두 배로 늘고, 더 많은 창고를 짓고, 기계를 도입하는 차원의 작업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하루에 1,500만 개의 상품을 서비스하려면(올해는 3,000만 개가 될 터인데), 단순히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모든 과정을 시스템화해야 한다. 정상적인 제어 시스템 없이 규모가 2~3배 늘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굽지 않은 '생 파이'를 먹는 것처럼 (조직이) 소화하기가 어렵다."
"루스 팀의 합류와 함께 기존 경영진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본다. 하반기의 수익이 (상반기보다) 더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반기 실적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합병 소식도 자극을 주었을 것이다. 전년 동기(2023년 7월) 대비, 올해 7월 말 와일드베리스의 상품 판매 매출은 1.6배 증가한 3,092억 루블, 총 매출액은 1.5배 늘어난 3,154억 루블에 이르렀다. 광고 수입도 크게 늘어 전년 대비 3.1배 증가한 109억 루블을 기록했다. 우리는 사업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았다."
타티아나 바칼추크/인스타그램 캡처
◇ 슈샤리(Шуша́ры) 창고 화재의 결과는.
"지난 겨울에 슈샤리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그 극복 과정에서 루스가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화재 이후인 2월에야 세부 협상을 시작했다. 와일드베리스는 화재 발생 이튿날인 1월 15일 첫 번째 보상을 했고, 2개월 내에 거의 모든 공급업체에게 보상을 마쳤다. 상품 피해 금액의 95%에 이르는 349억 루블을 지불했다. 물론, 공급업체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협의 채널을 만들어 가동했다."
"(미르조얀) 루스는 외국 주주(제이씨데코) 시절부터 재고 관리에는 늘 철저했다. 또 화재 등 각종 안전 시스템도 완벽했다. 가장 현대적인 시스템을 와일드베리스에 접목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도 계산했다. 돈이 많이 들더라도 이제는 꼭 갖춰야 한다."
"(타티아나) 우리는 슈샤리 창고의 상품 보관 및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보험을 들었다. 보험 규모와 액수 등은 회사 기밀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
◇ 와일드베리의 회사 가치는 얼마?
"(타티아나) 남편이 와일드베리스가 주식의 80%를 루스에게 넘기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루스의 사업 가치에 대해 불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루스의 공식 평가 가치(회계법인 B1의 평가)는 4,600억~5,000억 루블이다. 합병 당시 와일드베리스의 가치는 100억 달러 정도다. 이 평가에 따라 지분이 결정됐다."
"남편은 지난 2월부터 이 일에 참여했다고 주장했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회사의 모든 전략적 결정은 내가 내린다. 창고를 짓기로 한 것도, 외국으로 진출하는 것도 내가 결정하고 주도했다. 남편은 슈샤리 창고 화재 사건에 많이 당황한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이런 사업을 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합병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 뒤 내가 남편에게 알렸고, 그 후 협상에 참여했다."
와일드베리스를 일으킨 바칼추크 부부/사진출처:페이스북
코메르산트 등에 따르면 루스와 와일드베리스는 6월 중순 '디지털 거래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합병하겠다'고 발표했다. 목표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CIS, 인도, 중국에서 미국의 아마존이나 알파벳, 중국의 알리바바,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경쟁하는 일류 기업을 만든다는 것. 이를 위해 두 회사는 일단 합작 투자 회사인 RVB(러시아어로는 РВБ, 에르웨베로 읽는다/편집자)를 설립했다. 지분은 와일드베리스가 65%, 루스가 35%다. 그리고 와일드베리스는 7월 중순 와일드베리스.ru 도메인을 포함해 24개의 자회사를 RVB로 이전 완료했다.
"루스는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남편의 말은 잘못된 것이다. 그 때는 협상 중이었다. 남편도 '회계법인 B1의 공식 평가가 나오면, 고려해 보겠다'고 했는데, 그 다음에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미르조얀) 협상의 배후에는 루스의 실제 소유자로 소문이 난 '올리가르히' 술레이만 케리모프(Сулейман Керимов)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사실이 아니다. 우리 회사(루스)에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도 그중의 하나다. 회사와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타티아나) 케리모프와는 개인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 이혼 소송에 따른 회사의 리스크는
"이혼 소송이 회사에는 어떤 위험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유능한 변호사들이 있다. 이혼 소송이 회사의 비즈니스와 파트너와의 관계, 공급업체, 소비자들에 대한 서비스 등 어떤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기업을 50대50으로 나눠야 한다'는 남편의 재산 분할 주장에는 아직 논평할 준비가 안 됐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이혼 절차를 끝내고 싶다. 합의가 아닌 소송으로 가게 된 것은, 어느 시점 이후 그가 의사 소통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우리의 이혼을 대외적으로 공개하고자 한 저의를 모르겠다. '내가 납치돼 아이들과 만나지도 못하게 됐다'고 했다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이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타티아나, 너를 납치해 아이들을 좀 데려갔으면 좋겠다. 그럼. 잠이라도 푹 좀 자지 않겠느냐'"
회사 자산을 50대50으로 나누자는 블라디슬라프 바칼추크/텔레그램 영상 캡처
◇ 푸틴 대통령에게 호소한 이유
"(미르조얀) 우리의 목표는 러시아에서는 전례가 없는 플레이어이자, 국제 수준에 맞는 '글로벌 디지털 거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에게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편지를 보냈다. (타티아나) 우리의 계획을 알리고 지지를 요청했다. 우리는 이제 지역별로 생산 현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벨로루시를 방문했는데, 거기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푸틴 대통령이 편지를 보고 막심 오레쉬킨 보좌관에게 (타티아나를) 감독하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소리다."
◇ 새로운 통합 로고 및 브랜드는
"와일드베리스 마켓플레이스는 합병한 후에도 브랜드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브랜드와 새로운 로고를 개발하는 게 맞다. 전문업체가 만들면 우리가 선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 문제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그 이후다."
코메르산트는 'IQ 테크놀로지' 법무법인이 남편을 대리해 지난 7일 특허청에 와일드베리스의 상표권이 새 합병 회사로 넘어가는 과정이 합법적인지 여부를 판단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M&A 상식으로 보면 와일드베리스가 새 합병 회사의 지분 65%를 차지했으니, 타티아나(의 와일드베리스)가 '루스'를 합병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새 회사의 공식 대표는 타티아나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미르조얀은 전무이사로 총괄관리를 맡는다.
업무 분장은, 미르조얀이 기업의 운영및 관리를 맡고 타티아나는 사업 방향및 전략, 기획, 홍보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이번 합병이 와일드베리스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기대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