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5. 06;00
이른 새벽시간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좁은 산길에 무성하게 자라던 잡초들의 허리가 싹둑
잘렸다.
풀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쩌면 이 풀냄새는 극심한 가뭄을 이기며 꿋꿋하게 자라던 잡초들이
흘리는 피 냄새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산길에 무성하게 자랐다는 이유로,
사람과 가까운 곳에서 자란다는 이유로,
아주 약한 바람에도 살랑거리던 개망초,
허리를 잔뜩 곧추 세웠던 지칭개도,
바스락거리며 소리를 내던 소리쟁이도 몽땅 잘려나가며 집단학살을
당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아름답지 않은 생명이 없건만 정부의 통계용
일자리를 채우느라 새벽부터 동원된 일꾼들에게 풀 한 포기라도
소중한 생명을 아껴달라는 생태 감수성을 부탁하는 거는 무리겠지.
숲의 정령(精靈)이 듣는다면 소름이 돋을 예초기 소리를 뒤로 하고
오르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금은화(인동초)를 만났다.
이 인동초는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라 살아
남은 모양이다.
같은 줄기에서 하얀 꽃과 노란 꽃이 동시에 핀 것처럼 보이는 인동초,
사실은 처음에는 하얗다가 차츰 색이 변해 노랗게 되는데 동시에
핀 것처럼 보인다.
색이 변하는 꽃으론 또 무엇이 있을까,
금낭화는 땅의 성분에 따라 색깔이 조금 다른데,
산성토양이면 푸른빛을 띠고 알칼리성 토양이면 붉은빛이 선명하다.
이밖에도 산수국 역시 흙의 산도에 따라 꽃색이 변하는데,
흙의 성분이 중성이면 흰색, 산성이 높으면 청색, 알칼리성이 높으면
분홍색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처음엔 흰색으로 피었다가 점차 푸른색이나 분홍색으로
바뀌는 이유는 안토시아닌이 합성되면서 색이 변하는 거라고 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은 올라갈 때 보이지 않다가 내려갈 때 비로소 보인다고 했다.
나는 시인이 아니라서 이와 반대로 보인다.
즉 오를 때는 잘 보이고 내려갈 때는 잘 보이지 않는데,
위를 향해 오르다가 걸음을 멈췄을 때가 가장 잘 보인다.
최근 북한에 역병인 코로나 19가 많은 사람에게 전염이 되자,
제대로 된 치료약과 백신이 없는 북한 당국에선 국민들에게 버드나무
껍질과 금은화를 다려먹으라고 지시를 했다는 기사가 떴다.
버드나무 껍질은 진통효과가 있어 아스피린을 추출했고,
금은화로 불리는 인동초는 이뇨, 염증치료, 항암효과, 바이러스성
질환 예방, 항균작용, 관절염 개선 등에 효과가 있는데 북한 당국은
특히 염증치료와 항균작용 등에 방점을 찍고 인동초를 권한 모양이다.
꽃과 잎, 줄기에 약효가 있다는 인동초를 바라보며
한참 멍해졌으니 '꽃멍'인가?
꽃멍이라는 말을 쓸 정도면 나도 말재주가 많이 늘었구나.
한동안 '미학'이라는 말이 유행을 탔다.
사람들은 여행의 미학, 맛의 미학, 게으름의 미학, 술의 미학~~ 등등
미학이라는 말을 넣어 수많은 말을 만들었는데 나도 그중 하나를 택하여
글제를 '느림의 미학'으로 쓴다.
요즘에는 '멍'이라는 말을 잘 쓴다.
멍 때리기가 유행하더니 멍자를 붙인 놀멍, 불멍, 물멍, 책멍 등
순식간에 멍이라는 말이 많이 늘어났다.
'미학'이라는 말과 '멍'이라는 말은 순수한 편에 속한다.
얼마 전 지방선거에서 야당으로부터 매우 경망스럽고 좀스럽다는 뜻을
가진 '체수 없는 입'이라는 말을 대하고 많이 놀랐다.
체수라는 또 다른 말은 죄가 결정되지 않아 옥에 오랫동안 갇혀 있거나,
또는 범인이 잡히지 않거나 죄인이 특별한 사정으로 복역을 할 수 없을 때
그와 관계있는 사람을 대신 가두어 두던 일을 말하는데,
뜻밖에도 '체수 없는 입'이라는 말을 대하고 저들의 언어 인지능력에
대하여 새삼 감탄을 한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에 노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살을 하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줄여 '지못미'라는 말을 만들더니,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패하자 진 게 아니고 '졌잘싸'라고 표현을 한다.
즉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로 언어 장난을 치는 거다.
민주, 공정, 상식, 평등, 개혁, 촛불 등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은 다 선점
하였으면서도 정반대로 행동하던 사람들이 요즘엔 더 이상한 말을
만들었다.
수박이라,
'수박'이라는 말은 겉은 초록이지만 속은 빨간색이니 민주당 인척 하면서
실제로는 여당 쪽 사람들이라는 의미라는데,
여름철에 국민들이 가장 잘 먹는 과일인 수박을 폄혜 하는 말을 만들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이재명을 반대하는 사람을 '똥파리'라고
지칭을 한다.
2030 젊은 여성 지지층을 '개혁의 딸'을 줄인 말로 '개딸'이라고 하며,
개딸과 비슷한 의미로 '양심의 아들'이라는 말을 줄여 '양아들', 또는
'냥아'로 부른다.
금은화에 시선을 두고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멍에서 깨어났다.
나에게 잠시 동안 브레인 포그(brain fog) 현상이 있었나 보다.
멍이 휴식이 아닌 불편으로 느껴지면 나쁜 멍이다.
나쁜 말을 좋은 말로 포장을 해도 나쁜 말은 나쁜 말이다.
이를 무한대로 재생해서 사용하고, 또 새롭게 만드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을지 자못 궁금하다.
07;00
하늘엔 먹구름이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너무 가물어 모를 제대로 심지 못한 논이 많다는데,
낙종물도 좋고 송화비도 좋고 작살비도 좋으니 가뭄을 해결해줄 흡족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음력으로 5월 10일이면 비가 내려 태종비(太宗雨)가 내린다고 했다.
"내가 죽으면 하늘에 올라가 비를 내리게 하겠다"라고 한 후 5월 10일에
태종이 승하(昇遐)를 하자 실제로 비가 내려 태종우라 한다.
내일이 망종(芒種)이다.
씨앗에 수염이 달린 곡식을 파종하는 시기인 망종과 음력 5월 10일인
수요일엔 비가 제대로 내리려나.
밤꽃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을 하니 여름이 제대로 익어가는가 보다.
2022. 6. 5.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