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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장)
성경말씀 읽기는 반드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의 지식 없이는 믿음은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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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으면서 의롭게 사는 선민들이
왜 불의한 자들에게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까?
하고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불만이 섞인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의로운 자들이
핍박을 받고 고통을 당하고
반면에 불의한 자들은 잘사는 것을 보고 불만을 터뜨린 것입니다.
남에게 해를 입히며
살아가는 악한 자들이 불행을
당해야 하고 착한 사람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재앙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신앙이 좋은 사람이나 좋지 않은 사람이나,구분 없이 찾아옵니다.
해마다 태풍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고 재산을
잃지만 그 태풍이 나쁜 사람에게만 골라서 내렸습니까?
교회 안다니고 신앙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만 골라서 내렸습니까?
아닙니다. 누구나 구분 없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 그동안 믿음으로 열심히 살려고 애썼는데
왜 이러한 일이 있게 하십니까?'라는 하소연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하소연에
하나님은"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불행한 일을 겪어도
믿음으로 참고 견디라는 의미가 아니며
"의인이란 어떤 경우에서도 믿음을 드러내는 사람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느냐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산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소출이 풍성한 것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는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오직
구원의 여호와로 기뻐하고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어떤 인도 속에서든 하늘의 의를 의지하고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의인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 하시는대로 그 의만 믿고 바라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1. 복음을 위한 부르심.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
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로마서 1 :1-2)
바울은 편지를 쓰는 자기 자신을 소개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노예 제도가
있었던 당시 종은 주인에게 전적으로 복종하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 하였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그리고 자신은 그의 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도(使徒)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들과 바울에게만 적용되는 명칭이었습니다.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열두 제자들 중 가룟 유다는 배신하였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를 세웠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예외적으로 바나바에게도 사도라는 명칭이 두 번 돌려졌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으로서 구약 성경에 미리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 :3-4)
복음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이시요 참 하나님
이십니다. 그는 참된 인성과 참된 신성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성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요, 신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중심 인물이고 복음 자체이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로마서 1 :5)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은혜로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사도의 직분이 은혜요 은혜 중에 하나가 사도의 직분입니다.
마음으로 순종한 자는 물론
행위로도 순종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가지고 곳곳에 다니며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의 순종을 하게 하였습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 :6-7)
이 편지를 받는 로마 교인들도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는 무리 중에 들었습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서 1 :8)
바울 사도는 로마의 교인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널리 알려졌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성도의
성도 됨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의 믿음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로마서 1 :9-10)
로마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감사의 기도 생활은 사람 듣기에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증인이 되실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도의 진실한 마음과 진실한 사역을
증거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이 증인이 되실 수
있을 정도로 범사에 진실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을 위해 항상 기도
하는 중에 그들에게로 갈 좋은 길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러한 길 얻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주권자이십니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로마서 1 :11-12)
바울이 로마로 갈 좋은 길 얻기를 기도한 이유는
그들을 보기를 심히 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교인들을
보기를 원했던 목적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 신령한 은사는 .
예언이나 , 방언 같은 그런
은사들이라기보다 하나님의 말씀, 곧 그의 진리의 교훈을 가리킵니다.
서로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는 성도들에게 무엇을 주려고만 하지
않고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으려 한다고 겸손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의 교제란
서로의 믿음, 서로 안에 있는 믿음,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은혜로 주신 믿음을 인하여 피차 위로와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교제요 영적 교제의 유익입니다.
우리의 교제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데 그치지 말고, 이렇게 같은
믿음의 확인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주고 받는 교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로마서 1 :13)
바울은 믿지 않는 로마인에게 열매를
맺게하기 위해서 로마에 가고자 했습니다.
당시에 로마는 세계의 중심이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하는 열정에 불탔습니다.성령께서도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사도바울을 로마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여러 번 나타나셔서
그가 로마에서도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에 바울을 인도하시고 로마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3. 복음의 빚진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 :14-15)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빚을 졌다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의 '빚'은 복음의 빚, 전도의 빚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어서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리고 더욱이 전도자들이 주께 받은 사명을 생각하면, 그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 전도의 빚을 진 자들인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1 :16)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 전파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옛날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날도 이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오늘도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받든지 안받든지,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이 복음을 널리 전하기를 힘써야 될 것입니다.
4.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 :17)
복음이 구원의 능력이 되는 까닭은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義)가 복음에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의는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과 법을 다 행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과 법을 행함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경험을 통하여 너무나 명백
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복음에 그의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의 책임과 형벌을 담당하심으로 이루신 의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이 의를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
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로마서 1 :18-19)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 까닭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 곧
하나님께로부터 내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와 구원이 필요합니다.
불경건은 하나님을 향해 범하는 죄의 통칭이요,불의는
모든 죄의 통칭입니다. 물론 불의는 불경건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의(義)요, 그것을 어기거나 지키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어느 정도
모든 사람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어느 정도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을 일반 계시라고 말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 :20)
일반 계시가 확실한 까닭은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웅장하고 거대한 천지 만물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보존을 묵상할 때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과 영원하심을, 즉 그의 신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의 모습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 세계에 계시된 하나님의 존재와 신성의 증거가 확실
하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버려둔 자의 삶.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
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로마서 1 :21-23)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고 그에게 감사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천지 만물의 기원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어리석음이요
무지(無知)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심각한 정신적 어두움인 것입니다. '
사람은 이처럼 무지하고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직 우주와 인생의 참 지식의 초보도 터득지 못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사람과 새들과 네 발 가진
짐승들과 기는 벌레들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불경건의 죄의 내용이요
인생의 무지와 어리석음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생의 불경건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
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로마서 1 :24-25)
하나님은 도덕의 근원이시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부도덕의
뿌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악을 떠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죄인을 구원할 능력도, 죄인을 버려두실 권한도 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왜 당신이 그들을 구원치 않느냐고 항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본래 스스로 하나님을
떠났던 자들이요, 지금도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있고 자연 만물 속에 명백히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우상숭배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로마서 1 :26-27)
여성들이 순리대로 쓴다는 말은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기능을 한다는 뜻입니다.
즉 여성이 성년이 되어 결혼하여 정상적 결혼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러한 정상적
결혼생활을 이탈하거나 거슬러 행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성(性)을 하나의 상품으로 파는 행위가 그것입니다.
남자들도 하나님이 주신 부부관계로 만족하지 않고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파괴하는 악한 행위일 뿐 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 :28)
죄인들은 세상의 많은 지식은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가지기를 싫어합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실패하고 무가치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버려두셔서 그들로
합당치 못한 일들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거절하는 자들은 결국 여러 가지 죄악들에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
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악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로마서 1 :29-31)
불의는 모든 죄악들의 대표적 명칭입니다.
의(義)는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일치하는 생각과
행위요, 불의는 그의 명령과 뜻에 어긋나는 생각과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온갖 종류의 불의를 정죄하시고 우리에게 의로운 삶을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온갖 음란이 가득합니다.
음란은 인간 관계의 죄들 중에 가장 크고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음란을 미워하시고 우리에게 거룩하고 단정한 삶을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남을 헐뜯고 비난하기를 잘합니다. 이것도 교만과
시기와 미움 등에서 나옵니다. 사랑은 이웃의 허물을 덮을 것이지만,
미움은 이웃에 대한 은밀한 혹은 공공연한 비난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 1 :32)
사람들은 이런 죄악들을 행하는 자가 죽어야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규정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양심이 증거하는
바요,거기에 근거하여 그들이 정한 사회의 법들에 나타나 있는 바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영적으로, 또는 육적으로, 영원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들만 이런
죄악들을 행할 뿐 아니라 이런 것들을 행하는 자를
옳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더 가증한 뻔뻔함과 완악함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땅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날마다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돈 많이 벌어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으며 사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식들을 세상적으로 성공 시키기 위해서 입니까?
이 모든것은 다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벗어난 삶의
목적인 것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들도 사도 들과 다름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 받은 줄 믿습니다.
결과와 열매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줄 믿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8. 15.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