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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가치에 몰입하라!
호세아서 10:1~3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3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제가 아침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루틴(Routine)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구하는 내용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 중에 땅에 속한 일시적인 것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기도의 내용을 더듬어 살피고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의 흐름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내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내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육체는 땅에 속한 것으로 반드시 없어질 것이지만 영혼은 영원한 세계에 머물 수 있기에 내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원하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이를 NIV성경에서는 ‘even as your soul is getting along well.’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헬라어의 원문에는 ‘형통하거나 잘 되어 가는 것’을 의미하는 ‘유오도오 εὐοδόω’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지속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내 영혼이 잘 되는 것’은 단회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이음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 됨을 확증하여 나타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쉼 없이 작용하십니다.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이 세상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에게 주어진 영혼은 영원토록 변화를 이루며 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내 영혼이 잘 되는 비결이 무엇이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입니다.
호 10: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로 만드셨습니다. 여기서 포도나무의 열매와 땅의 번영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저 주신 선물이자 은혜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열매가 많아짐에 따라 우상의 제단을 더 많이 만들었고, 땅이 번영하고 물질이 풍족해지자 바알을 섬기는 돌기둥(주상)을 더욱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의 복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웃을 섬긴 것이 아니라, 자기가 섬길 우상의 제단을 단장하는 데 사용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신앙이 번창한 것이 아니라, 우상 숭배와 세속적 탐욕이 번창했습니다.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깊이 간직하고 그 안에 머물 때 우리의 영혼이 잘 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Exodus) 사건을 유월절, 무교절, 초막절 등 절기 때마다 자손들에게 반복해서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지식으로 전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구원의 감격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마음에 담아두라는 것입니다. 절기를 지키며 출애굽의 구원 역사를 들려줌으로써, “하나님은 머나먼 옛날의 신이 아니라, 우리를 절망과 종 되었던 삶에서 건져내신 살아계신 구원자”임을 아이들의 마음에 각인시키기 위함입니다.
유대인의 전통(미드라시/하가다)에서는 ‘모든 세대는 마치 자기 자신이 애굽에서 나온 것처럼 스스로를 여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애굽의 고통을 상징하는 쓴 나물과 매우 급했던 탈출을 상징하는 누룩 없는 빵을 직접 먹어보고, 초막(광야 생활)을 지어 거주하는 상징적 체험을 통해, 수백 년 전의 사건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큰 축복이자 은혜는 죄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은혜를 보화처럼 여기며 기억하고 누리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비결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읊조리다’라는 표현이 종종 등잡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가(הָגָה, Hagah)’라고 하는데 단순히 시나 글을 입으로 조용히 읽는 행위를 넘어, 성경이 말하는 가장 깊은 차원의 묵상과 영적 훈련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에 대한 사모함과 영적 집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마치 사자가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 정신을 집중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집중력으로 말씀을 붙드는 모습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묵상은 눈으로만 읽거나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술’과 ‘몸’을 사용하여 나지막한 소리로 조려내는 것이었습니다. 소가 음식을 계속해서 되새김질(반추)하듯이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며 내 삶에 적용하는 것이 내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게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은혜를 날마다 순간마다 기억하므로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이길 수 있고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 집중할 때 영혼이 잘 될 수 있습니다.
호 10:2의 상반절에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마음을 품었다’는 '마음이 나누어졌다', '거짓되다'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버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입술로는 여전히 여호와를 부르며 성전에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실제 삶과 마음은 물질과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바알과 세속적 가치관에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의 이익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회주의적 신앙, 하나님을 내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계산된 신앙이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두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돌봄은 집중, Concentration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보살피시는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눈동자같이 지키신다고 하였습니다. 집중할 때 상상을 초월한 힘이 붙어집니다. 평범한 햇빛이 볼록렌즈에 의하여 빛이 모이면 종이를 태우고 짚을 태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마음을 집중하여 보십시오! 모든 좋은 것이 하늘의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담긴 렌즈로 집중하여 하나님께서 내 삶에 행하시는 사랑에 집중할 때 성령께서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람을 깨닫게 하시고 누리게 하십니다. 사랑에 대한 충만함이 내 영혼을 말갛게 하고 잘되게 합니다.
작은 것 하나, 보잘 것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사랑을 나타내심을 믿고 찾아보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예배당에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내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사랑을 느꼈습니다. 평생을 기도할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는 처소를 구하였는데 하나님은 제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건물의 단열이 잘 되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함을 주는 장소였고, 이 건물을 사용하셨던 분들이 가져가지 않은 여러 불품을 얼마아 잘 쓰고 있는지 놀랍기만 했습니다. 내 기도에 귀를 기우리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때 제 영혼은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호 10:3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경외)하지 않게 되자, 그들은 삶의 지휘자요 지도자인 왕의 존재 가치마저 부정합니다. 영적인 주권을 잃어버리자 사회적, 정치적 질서와 도덕마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기 싫어했고, 세속의 왕이나 이방 나라(앗수르)의 힘을 의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3절에 나타나듯 그들이 의지했던 인간 왕도, 그들이 축적한 부도 그들을 위기에서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호세아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지 2,700년 전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향한 경고가 아닙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똑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신앙의 태도를 보여야 하겠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시며 나를 다스리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주님이 나의 주관자 되시고 다스리시는 왕이 되심을 믿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로드쉽(Lordship)입니다. 내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 놓고 예수님의 뜻을 내 뜻 보다 앞세우며 나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바른 모습입니다.
저는 목사의 정년 은퇴를 마치고 다시 목회해야 하는 어쩌면 숨 가쁜 사역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사항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성령으로 나를 다스려 가지 않으면 나는 도무지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더욱 기도에 힘쓰며 내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농촌에서 목회할 때 서해안에 있는 몽산포 해수욕장에 갔다가 썰물이 지고 난 후에 굳어진 해변에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마차에 매여 있는 노새를 보았습니다. 노새는 주인이 올 때까지 8월의 뙤약볕을 맞으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시간이 흐르고 두 시간이 지나도 노새는 꼼짝없이 그 자리에 수레를 맨 채 서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저 미물인 동물도 주인의 명령에 순응하지 않더냐?” 그 음성을 듣고 나귀를 자세하게 지켜보았습니다. 온종일 주인을 위하여 일하고 먹이통에는 보잘것없는 먹이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평을 하지 않고 마냥 주인을 기다리는 짐승이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때 역시 마찬가지로 노새의 몫이 아니라 철저히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와서 가자고 할 때 터덜거리며 달려갔습니다. 우매하기 짝이 없는 그 짐승이 주인에게는 충성스런 존재로 비쳐졌을 것입니다.
저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에 기꺼운 마음으로 주님의 종이 되겠다고 서원한 적이 있습니다. 때와 기한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게 주어진 환경에 순종하고 잠잠히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종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내 영혼은 스스로 노력으로 잘 될 수 없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내 안에서 수없이 매만져 주시고 이끌어 주셔야 가능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안에 거할 때 내 영혼이 잘 될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머물고 그 안에서 내가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어 성령의 교제가 이뤄집니다. 주님의 숨결을 느끼며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알게 됩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이룹니다. 나의 약함이 강함으로, 나의 무명(無名)함이 유명(有名)함으로, 나의 천함이 존귀함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영혼이 잘되어 가는 사람은 어떤 처지에 놓였더라도 잠잠히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오는 이 때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원한 가치는 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내 영혼의 보석함에 쌓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주권됨을 인정하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십시오! 내 영혼이 잘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