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수야
버들아씨 강아지 등타 오지 봄 너울 아리스렁 비단 결 졸이졸졸 난 그만 물끄럼 보다 가슴재갈 물리네
수양버들의 '수양'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아버지인 문제를 죽이고 보위에 오른 수나라의 제2대 황제 양제(煬帝)에서 생겼다.
황하와 회수를 잇는 대운하를 건설할 당시 운하 제방에 버드나무를 심었는데, 대운하를 만들면서 백성들에게 상을 주며 많이 심게 하였기에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양제가 무더운 날씨에 광릉으로 행차할 때 우세기(虞世基)라는 관리가 둑에 수양버들을 심자고 제안하여 이를 수락, 백성들에게 수양버들 한 그루씩을 바치면 비단 한 필을 하사하겠다고 하자 백성들이 앞다투어 바쳤다 한다. 양제는 기뻐하며 친히 수양버들에 자신의 성인 양(楊)을 붙여 양류(楊柳)라고 이름을 하사하였기에 이와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는 설이 있다.
중국어에서 이와 같은 양류의 별칭으로는 수양류(垂楊柳)도 존재한다. 수양버들은 보통의 버들보다 가지와 잎이 더 가늘고 길어서 '실버들' 또는 '사류'(絲柳), '세류'(細柳)라고도 불린다.
수양버들의 속인 버드나무속의 학명인 Salix는 켈트어로 가깝다는 뜻의 살(sal)과 물이라는 뜻의 리스(lis)의 합성어인 〈물가〉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유래했다. 종 이름인 수양버들의 학명인 Salix babylonica의 babylonica는 '바빌론의' 라는 뜻인데, 구약성경의 시편 137편에서 나오는 바빌론 강변의 버드나무에서 유래하였다. 다만, 실제로 시편에 나오는 바빌론의 강변에 나있던 나무는 사시나무의 일종인 유프라테스 포플러라는 설이 있다. :214 영어 명칭인 ‘weeping willow’도 구약성경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꽃말은 '비애', '추도'이다.
봄은 버들강아지 등타고 온다.
봄 오는 길목에서 봄의 도래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껑충나무가 있다.. 촐랑거리는 강아지 등에 바람도 보들보들하다. 그 전령사목木을 고대 중국인들은 으레 수양버들이라 일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나무들이 아직 성깃한 가지로 잎도 없이 서있을 때 수양버들이 먼저 흐드러지게 푸르름을 달랜다. 호들갑인양.
나무들 가운데 가장 여성적인 수양버들은 섬세하고 미묘하고 정감적이다. 겨울 동안 세찬 바람 앞에서 뻐센 가지가 휘날리던 수양버들은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지가 풀어지고 힘이 없어진다. 봄을 맞이하려면 유연해져야 한다. 바람에 잘 흔들리는 촛불처럼 수양버들도 봄바람에 민감하다. 버들은 바람이 머무는 집이다.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양수와 유수는 각기 다른 나무이고, 또 이들을 '양류'로 통칭하기도 하지만, 때로 양류라는 말로 수양버들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양버들을 아예 소양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양버들에 대한 인상이 강하기에 버드나무의 호칭이 자리를 잃은 것이다.
금곡원, 곡강, 소제, 이화원... 중국의 버들 명소들
![]() |
▲ <죽림칠현과 영계기> 중의 산도와 왕융 부분. 두 사람 가운데 있는 수양버들이 양식화된 수법으로 그려져 있다. |
ⓒ 중국 강소성 남경 서선교(출토 분묘 벽화 |
![]() |
▲ <귀거래사도 부분. 도연명의 <귀거래사> 내용을 그렸다. 도연명은 자신의 집 앞에는 수양버들이 다섯 그루 있어 자칭 오류선생이라 불렀다. |
ⓒ 유송 육탐미 그림으로 추정 |
잘 알려진 경우는 수대 때인 605년, 낙양과 양주를 잇는 운하를 건설할 때 둑방을 따라 수양버들을 심었다. 수양버들은 물가에서 잘 자라기도 하지만 그 뿌리가 둑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안성맞춤이다. 끝없이 이어진 제방 위로 수양버들이 서 있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지 이후 '제방 위의 버들'은 시의 고정된 소재가 되었다.
명소에도 수양버들이 우거졌다. 낙양의 금곡원이나 장안의 곡강에도 수양버들이 많지만, 백거이는 소주에 버들이 더 많다고 하였다. 또 소주 근처 항주의 서호를 가로지르는 소제도 버들이 유명하다.
이를 그대로 모방한 북경 이화원의 서제도 버들이 '한 풍경' 한다. 북경에서 유학할 때 봄을 맞아 서제를 거닌 적이 있는데 참으로 한가하였다. 여행객들은 멀어서 오지 않기에, 어쩌다 한두 사람이 걸어가거나 아니면 바람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뿐이다. 만약 누군가 봄날 이화원의 서제를 휘적휘적 걸어간다면 또 하나의 봄을 맞을 수 있으리라.
눕혀 심어도 거꾸로 심어도 꺾어 심어도 버들버들
![]() |
▲ <수양버들, 까치, 기러기> 싹이 나기 시작한 수양버들을 그렸다. |
ⓒ 송 조길 그림 |
![]() |
▲ 비단 부채에 그려진 <인물도>. 수양버들은 곧잘 이별과 돌아오길 기다리는 의미를 환기한다. 여인은 버들을 보며 떠나간 사람을 그린다. |
ⓒ 청대 임이 그림 |
그러나 중국에서는 아직도 수양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베이징에서는 버들솜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므로 자금성 주위에 서 있는 수양버들을 다른 수종으로 교체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이러한 의견은 고도(古都)의 이미지에 수양버들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견해에 밀려 채택되지 않았다. 사실 붉은 담장을 배경으로 초록으로 흔들리는 버들처럼 고성의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없다.
수양버들이 잘 자라난다는 속성에서 사람들은 세월의 빠름을 탄식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잘 알려진 예로 삼국시대 조조의 아들 조비의 이야기가 있다. 그의 <유부>에 기록된 바로는, 14세 때 마당에 1자 높이의 버들을 심었는데 15년 후에는 두 팔로 껴안을 정도로 자랐다고 한다. 이를 보고 그는 "해와 달이 빨리 지나감을 탄식하나니, 시간이 분주히 달려가도다"라고 하였다.
동진의 뛰어난 장수로 황위를 찬탈하려 했던 환온도 북벌하러 가는 길에 금성(지금의 남경 근처)에 들렀는데 예전에 심었던 버들 둘레가 열 뼘이나 되어 "나무도 이와 같은데 사람이 어찌 세월을 견딜 수 있으랴!"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공구는 강물이 흘러가는 걸 보고 세월을 아쉬워했는데 조비와 환온은 버들에서 세월의 빠름을 탄식하였다.
버들가지같은 그녀의 가는 허리
왕공(王恭, ?~398, 그림)은 동진 시대의 인물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도연명(365~427)도 집 앞에 다섯 그루의 수양버들을 심어 스스로 오류선생이라고 했는데, 역시 이러한 정신을 공감해서인지도 모른다. 이보다 앞선 시기에 활동했던 혜강(223~262)도 마당에 수양버들이 한 그루 서 있어 그가 좋아하는 대장간 일을 하다가 그 아래에서 쉬곤 하였다. 수양버들에서 느끼는 한아한 이미지를 사람의 풍모에 비기면서 새로운 미감을 발견해내었다.
이러한 맑고 깨끗한 이미지는 후대에 오면서 여성적인 이미지로 굳어졌고, 특히 허리가 가늘거나 눈썹이 아름다운 미녀를 가리키게 되었다. 특히 버들가지가 휘휘 늘어진 모습에서 여성의 가는 허리를 비유하여, '유요'는 곧 여인의 날씬한 허리를 의미하였다.
두보 杜甫(그림)는 문 밖의 나긋나긋한 버들은, 마치 열다섯 살 딸아이의 허리 같아라"고 읊었다. 백거이도 "버들잎에 맺힌 이슬은 눈물 흘린 눈 같고, 미풍에 한들거리는 가지는 춤추는 허리 같다"고 하였다.
버들잎은 '유미'라 하여 곧잘 미인의 눈썹을 가리켰다. 장안석은 "비단 자리와 은 병풍엔 하릴없이 먼지만 쌓이는데, 버들 같은 눈썹과 복사꽃 같은 얼굴에 봄날은 흘러간다"고 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너무 많아 예시하자면 지루할 것이다.
수양버들이 이별을 의미하는 것은 중국문학에선 아주 뚜렷한 전통이다. 이와 관련된 작품도 수없이 많다. 한대 이래 헤어질 때 떠나는 사람에게 수양버들의 가지를 꺾어 주는 습속이 있었다. 보통 배를 타고 떠나면 강가에서 헤어지게 되는데, 강변에는 으레 버들이 심어져 있었다.
버들의 '유(柳)'는 머물게 하다는 '유(留)'와 음이 같아,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뜻을 갖는다. 또 버들은 이른 봄에 가장 먼저 싹이 피기 때문에 가장 일찍 돌아오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러한 풍습에 근거하여 <절양류>라는 노래가 만들어졌고, 송별의 곡이 더 나아가 망향의 그리움을 나타내는 곡이 되기도 하였다.
봄의 상징, 꽃보다 버들
![]() |
▲ 항주 서호 호심도의 수양버들. 1월인데도 벌써 잎이 나기 시작했다. 1월 5일 촬영. |
ⓒ 서성 |
只道梅花發 매화꽃 핀다고만 말들 하길래
那知柳亦新. 버들도 새로운지 모르고 있었소
枝枝總到地, 가지들이 모두 땅까지 내려닿고
葉葉自開春. 잎사귀 하나하나 절로 봄빛이구료
꽃 가운데 가장 먼저 봄의 도래를 알리는 것은 매화일 것이다. 나무 가운데 가장 먼저 산뜻한 녹색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양버들이다. 벌거벗은 빈 나무들 사이에서 연녹색으로 물들어 있는 버들의 모습은 어찌 그리 선연한가. 매화꽃만 봄을 알아차리는 줄 알았는데 수양버들도 미리 아는구나. 두보의 놀라움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느껴진다. 이른 봄의 버들을 읊은 시 가운데 하지장의 <버들을 노래하다>를 빼놓을 수 없다.
碧玉妝成一樹高, 벽옥이란 소녀가 단장하여 나무로 섰으니
萬條垂下綠絲絛. 수많은 푸른 실끈을 줄줄이 드리웠네
不知細葉誰裁出, 갸름한 잎사귀를 누가 마름했을까
二月春風似剪刀. 이월의 봄바람이 가위되어 만들었네
수양버들 한 그루를 벽옥이란 여인으로 비유하고 있다. 벽옥은 남조 시기의 민요에 나오는 다정다감한 소녀이다. 동시에 '푸른 옥'으로 버들을 만들었다는 뜻도 담고 있다. 버들잎이 생생하고 윤기난다는 느낌이다. 수많은 가지는 허리에 늘어뜨린 푸른 실끈과 같다. 그런데 그 갸름한 잎들은 누가 만든 것일까. 시인은 음력 이월의 봄바람이 가위가 되어 이들을 잘라내었다고 말하고 있다. 봄바람이 불면 잎이 핀다는 생각은 전통적인 것이지만, 한기를 담고 있는 바람을 가위 같다고 묘사한 것은 개성적이다.
봄 소식 먼저 전해주고 있지만
![]() |
▲ 창경궁 춘당지의 수양버들에 잎이 나기 시작하고 있다. |
ⓒ 서성 |
![]() |
▲ 창경궁 춘당지의 수양버들. 3월 28일 촬영. |
ⓒ 서성 |
이날도 봄바람에 수양버들이 쓸리고 있었다. 잎사귀는 이제 나기 시작하여 연록 빛을 띠었다. 봄이 오는 소식을 누구보다도 먼저 전해주고 있었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없는 듯, 관람객들은 선연히 핀 진달래와 매화 앞에서만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모네가 1918년에 그린 수양버들
동양 문화권에서의 수양버들
한국에서는 옛부터 수양버들을 문 안에는 심지 않았다. 가지가 늘어진 수양버들의 모습이 상을 당하여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켜 집안에 심으면 불행한 일이 닥친다는 미신과 수양버들이 많은 물가에 도깨비가 나타난다는 미신 때문이다. 수양버들의 실가지가 요염한 여자의 허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심지 않았다고도 하며, 특히 양반집에 심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제주도에서는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잘 흔들려 집안에 심으면 부부 중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고 해서 집 안에 심지 않았다.
서울의 노량진은 수양버들(사진)이 울창해 '노들나루'라고도 불렸다.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전해지는 설화에는,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간 도령을 기다리다 절개를 지키려 자결한 낭자가 환생한 것이 수양버들이라고 한다. 과거에 급제하여 고향에 돌아온 도령은 강가의 수양버들이 자신의 금의환향을 환영하는 듯 춤추는 것을 보았다. 오늘날도 수양버들의 흔들림은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인 평양의 다른 이름은 '유경'(柳京)인데, 옛날 평안도 사람들의 기질이 너무 강해 이들의 정서를 유화시키기 위해 평양에 수양버들을 많이 심어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수양버들을 안마당에도 심는데, 이는 한국에서 마당에는 수양버들을 심지 않는 것과 대조된다. 동진의 시인인 도연명은 관직을 버리고 귀향해 집 앞에 수양버들 다섯 그루를 심은 뒤, 스스로를 이러한 다섯 수의 수양버들을 뜻하는〈오류(五柳) 선생〉이라 칭했다. 그리고 중국의 전족 문화에서는 청나라 때 방현(方絢)이라는 사람이《품조》(品藻)라는 책을 통해 전족의 형식을 열여덟 가지로 나누고 이를 다시 9품으로 세세히 나누었다.
수양버들 중국화畵
이러한 9품 중 '묘품상중'(妙品上中)이라는 품계는 "나약하고 가늘기가 그지없다. 바람에 기댄 수양버들처럼 가냘퍼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하다.…"라는 뜻으로, 전족의 모양을 수양버들에 빗대 묘사하였다. 중국에서는 옛부터〈折柳相送〉라는 말이 쓰이는 데, 남북조 시대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수양나무의 가지를 구부려 묶어 건네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이는 버드나무를 뜻하는 중국어인 '柳'의 발음([ liǔ ])과 머무르다, 주의하다를 뜻하는 중국어인 '留'의 발음([ liú ])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수양버들은 중국에서는 떠나는 사람과 관계되는 '이별'의 의미와 연관이 있으며, 중국 문학 속에서도 이별을 의미하는 데에 많이 쓰였다. 또한 중국 문학에서는 봄이 왔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수양버들의 부드러운 가지’를 드는 경우도 많았다.
일본에서는 수양버들 아래에서 유령이 나타난다는 미신이 있다. 일본에서 불꽃놀이에 사용되는 불꽃의 종류 중 하나인 '니시키카무로기쿠'(일본어: 錦冠菊)는 '수양버들'이라고도 불린다. 일본에서는 잡절(雑節) 중 하나인 히간(彼岸)에, 주로 동북지방에서 무덤에 '게즈리바나'(일본어: けずり花)라고 하는 나무로 만든 꽃을 공양하는데, 이 꽃을 만드는 재료로 수양버들을 사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