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환자였다.
아람 임금은 이스라엘에 병을 잘 고치는 예언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아만을 이스라엘의 임금에게 보내면서 그의 병을 낫게 해 달라는 편지를 함께 보낸다.
이스라엘의 임금은 그 편지를 읽고 옷을 찢으면서 화를 낸다.
아람 임금이 자기에게 자기 신하의 나병을 고쳐 달라고 청하는 것은
분명 자기와 싸울 트집을 잡는 것이라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들은 예언자 엘리사가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알게 할 기회인데
왜 화를 내느냐며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전한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를 찾아 그의 집 대문 앞까지 왔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심부름꾼을 시켜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을 나아만에게 전하게 한다.
이번에는 나아만이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려 하였다.
자기 고향에는 더 좋은 강물이 있고
거기서 몸을 더 깨끗이 씻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말하였다.
“만일 이 예언자가 이보다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해진다고 하는데 못할 일이 무엇입니까?”
나아만은 자존심을 버리고
엘리사가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2 열왕 5,1-15)
이스라엘 임금이 아람 임금의 편지를 읽고 화를 낸 것은 그가 왕이었기 때문이고
나아만이 엘리사가 내려준 처방에 화를 낸 것은
그가 아람군의 높은 지위에 있는 군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분노는 그들의 높은 지위와 명예로 말미암아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할 뿐더러 상대를 얕잡아본 때문이었다.
직책과 명예와 인기와 재물에 연연한 사람은 화를 내기 마련이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바리사이들이 화를 낸 것(루카 4, 24-30)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자기를 몰라주는 고향사람에 대한 서운함이라기보다
남(타지 사람)을 배격하는 것이 몸에 베인
텃세부리는 바리사이들을 겨냥하여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그들이 남의 마음 안에 들어가 남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존재였다면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은 하느님 나라가 모든 이의 마음 안에 와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존중하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화는 마음 안에 쌓아두면 안 된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화는 내어서라도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푼 화는 당장은 속을 시원하게 할지는 모르지만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화는
자기의 존엄한 존재마저 비참하게 만든다.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화는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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