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명작가 미우라 아야코.
그녀 이름이 알려지기 전,
남편 수입만으로 생활을
이어나가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활에 도움이 되고자 자그마한 가게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욕심 없이 시작한
가게였지만, 장사가 너무나도 잘 됐습니다.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을 트럭으로 공급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매출도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녀 가게가 잘 될수록 옆집 가게는 장사가 안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남편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가게가 매우 잘 돼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에요.
이건 우리가 생각했던 거와 어긋나는 것
같아요."
아내는 남편의 배려 어린 이야기에 감동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가게 규모를 축소해 팔지 않을 물건을 정하고,
그
물건은 가게에 아예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찾는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안내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에게 없던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그 소설이 바로 '빙점'입니다.
네 죄가 따뜻한 날 서리처럼 녹아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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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에는 입양한 딸 요코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증오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사진은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빙점' 의 한 장면. |
사랑의 힘이 병을 떨치게 하다
결핵과 만성 척추염으로 내일을 알 수 없는 나날을 보내던 여성이 있었다. 어릴 때 헤어진 친구 마에가와 다다시를 요양원에서 다시 만난 그는 친구들 감화에 힘입어 그리스도교인이 되지만 친구는 그만 병을 못 이기고 하늘나라로 간다. 그는 슬픔에 잠겨 1년 동안 집에서 두문불출하는데, 그 나이 서른세 살 때 한 남자의 방문을 받는다. 이 방문은 한 여성의 생을 바꾼다.
사형수와 결핵 환자들이 자기 심정을 토로한 글과 그리스도교인들의 위문 사연을 받아 소책자를 만들고 있던 스와가라란 이가 책에 자주 글을 올리는 미우라 미쓰요를 여성으로 착각, 당신 주소를 보니 같은 홋카이도 아사히가와이니 우리 책에 당신만큼이나 글을 자주 올리는 홋다 아야코라는 사람을 찾아가 위로를 좀 해주라는 엽서를 보내게 된다. 홋카이도 영림서 경리직원이던 미우라 미쓰요는 주저주저하면서 과년한 처녀 환자 홋다를 찾아간다. 그 또한 임파선 결핵과 방광 결핵 환자였던 시절이 있어 동병상련 심정이 있기는 했지만, 미지의 여성 환자 병문안은 조심스런 일이었다. 누워서만 지내고, 우유병을 오른손으로 잡고 가슴 위에서 서서히 기울여 벌린 입에 우유를 따라 마시는 것을 보고 불쌍하게 생각한 미우라는 몇 달에 한 번씩 병문안을 간다.
미우라의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병을 떨치고 일어난 홋다 아야코는 1959년, 37세 나이로 2년 연하 미우라 미쓰요와 결혼함으로써 미우라 아야코가 된다. 돈을 벌어야겠기에 구멍가게를 열고 주인이 된다. 1963년 정초에 미우라 아야코는 친정으로 신년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동생 히데오가 챙겨준 아사히신문을 보게 된다. 신문에는 1천만 엔 상금을 내건 장편소설 공모 광고가 나와 있었다. 집에 돌아와 곧바로 1년여 동안 밤에 집에 가지 않고 가게 안채에서 엎드려 소설을 쓴다. 1964년 7월 10일 신문에 기사가 대서특필된다. 기성 문인을 포함해 731편 투고 장편 중에서 당당히 당선! 이 소설은 연재가 될 때,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그때마다 일본 열도를 들끓게 한다. 42세 구멍가게 여주인이 쓴 소설 「빙점」은 왜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소설 「빙점」 줄거리
1946년, 홋카이도 아사히가와 시 교외에 있는 병원 원장 게이조는 아내 나쓰에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나쓰에가 안과의사 무라이를 좋아해 단둘이 있고 싶은 마음에 세 살짜리 딸 루리코를 집에서 나가 놀라고 하는데, 루리코는 그 길로 그만 유괴 살해되고 만다. 어린 여자아이를 입양해 기르자는 아내 요청이 있자 게이조는 아내에 대한 복수심에서 범인 딸을 수소문해 출생을 비밀에 붙이고 기르기 시작한다. 요코라 이름 지은 딸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나쓰에 마음을 돌변케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요코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남편 서재를 청소하던 중 그 다이어리에서 떨어진 메모에 적힌 요코 신분을 안 나쓰에는 남편에 대한 심한 배신감과 친딸 루리코를 죽인 살인범 자식임을 알게 된 요코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오르게 된다. 이후 나쓰에는 요코를 미워하기 시작하고 요코가 여고 2학년 때 자기 아들 도루 친구 기다하라 구애를 받자 요코 출생에 대해 폭로하고 저주를 퍼붓는다. 요코는 큰 충격을 받고 음독,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때 요코 실제 아버지가 살인범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낸 기다하라가 요코에게 달려오는 것으로 「빙점」은 끝난다.
속편 주제 "너희들 중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을 벌하라"
요코를 죽이면 안 된다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미우라 아야코는 속편을 쓴다.
전편 주제가 죄, 혹은 원죄라면 속편은 용서 혹은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살인범 자식이 아니라는 오명을 벗었지만 요코는 자신의 출생이 어머니 게이코 부정에서 기인한 것을 알고 어머니를 증오하게 된다. 즉, 속편은 요코가 어머니를 용서하게 되는 기나긴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처음에 요코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죄 없는 자신이 부정한 어머니를 심판할 수 있다고 여긴다. 작가는 여기서 신약성경 속 예수의 일화를 가져온다.
어느 날 유다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으로 데리고 온다. "모세법에는 이런 죄를 범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녀를 감싸고 돈다면 예수는 율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고, 죽이자고 하면 당시 로마 총독만 갖고 있던 사형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 돼 반역자로 제소할 구실을 마련하는 셈이었다. 그때 예수가 이렇게 말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유다인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뜬다. 작가는 이 일화를 통해 인간은 태생적으로 유혹에 넘어가기 쉽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세상에 완전한 이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어머니, 죄송해요."
"요코는 고개를 숙인 채 눈길을 걸어가던 게이코 등을 향해 호소하는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중략) 갑자기 요코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요코는 그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고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속편 마지막 장면이다. 요코는 스스로를 인격체로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코 마음속에도 죄 씨앗인 '빙점'이 흐르고 있었다. 빙점은 인간의 냉정함이다. 작가는 빙점 대척으로 불타는 유빙을 제시한다. 죄의식과 증오심 같은 것이 '빙점'이라면, 용서와 참회는 그것을 녹이는 불타는 '유빙'이다. 결국 인간은 모두 죄를 짓게 마련이고, 인간의 죄를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것은 하늘임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 인간은 타인의 죄를 용서함으로써 성화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속된 말로 「빙점」은 출생 비밀을 따지는 막장 드라마이지만 죄와 벌, 용서와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줌으로써 일본과 한국 두 나라에서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을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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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일과를 끝내고 소설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미우라 아야코. |
1999년, 78세 나이로 죽을 때까지 미우라 아야코는 철두철미 크리스천이었다. 사랑이냐 윤리냐, 종교적 이상이냐 세속적 현실이냐를 놓고 따진 (일본에서는 드문) 기독교 작가였다. 남편 마쓰요는 아내의 집필활동을 위해 공무원 생활을 접고 아내 곁에서 평생 동안 보좌했다. 충실한 비서가 있어 한평생 쓴 소설만 해도 96편에 달한다. 그녀는 이런 말을 했다.
"질병으로 내가 잃은 것은 건강뿐이었다. 대신 나는 신앙과 생명을 얻었다. 사람이 생을 마감한 뒤 남는 것은 쌓아놓은 공적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눈 것들이다."
홋카이도에 가면 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에 꼭 들러보시라. 작고 1년 전인 1998년에 세워졌다. 독자 1만 5000명이 십시일반으로 기부한 금액이 2억 엔에 달했다. 지난해 7월 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에 가봤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라고 했다. 애독자들이 시간을 내 교대로 문학관을 지켜갈 만큼 이들의 「빙점」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승하 교수(프란치스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