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하던 고교등급제 적용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동안 암암리에 학생들 사이에서 돌던 이야기인데 사실로 드러났다.
내가 고3때,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길
S대의 경우, 학교마다 등급을 매겨 원서의 장수에 차등을 둔다고 하셨고,
Y대나 E대의 경우 그 해 입학한 그 학교 출신생들의 학교성적 등을 고려하여
그 고등학교 아이들의 점수를 매긴다는 소리도 하셨었다.
그래서 니들이 혹시 대학가게 되거든 펑펑 놀아서 학점 망치면
다음해 수시제도 할 때 후배들한테 피해가니까 놀땐 놀더라도 학점관리하며 놀라고도 하셨었다.
나보다 1년 선배들, 그러니까 00학번 때부터 시작된 수시는
그 이듬해인 01학번들 입시 때 폭이 넓어지더니,
우리 바로 아래 학번인 02학번-7차 교육과정의 수혜자들-때 대폭 확대되어
지금은 정시로 가는 인원과 수시로 가는 인원의 차이가 줄어들게 되었다.
고교등급제에 대해서 살펴보려면, 현 수시제도의 맹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현 수시제도의 가장 문제점은 자격기준을 "경시대회 수상자" 또는 내신 몇 점 이상으로
제한하는 데에 있다.
-몇 몇 학교는 특색있는 기준을 두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저렇다.-
물론, 수시제도를 꾸리면서 최저 자격기준조차 두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문제점이 발생하겠지만, 단순히 내신제도로 자격지원을 둔다는 것은 문제다.
내가 나온 지역의 고등학교만 해도, 서울 강남과 같은 수준차이는 아니더라도
상위그룹 학교들과 하위그룹 학교들의 실력차가 엄청나다.
-상위그룹 여학교로 꼽히는 학교가 딱 세군데이고, 나머지가 하위그룹으로 분류된다.-
실례로, 내 모의고사 점수가 우리학교에서는 전교 2~30등 수준이었지만,
내 친구가 나온 학교에서는 전교 10등의 수준이었다.
비교적 학력격차가 작은 지역으로 꼽히는 곳도 이 정도인데
서울과 같이 학력격차가 크다고 널리 알려진 곳은 어련할까.
비교적 학업성취도가 높은 집단의 1등과 학업성취도가 낮은 집단의 1등을 동일시해선 곤란하다.
수시제도의 도입취지가, 다양한 특기를 가진 학생들에게
수능제도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특기를 통해 대학입학의 기회를 주고자 함이었다.
또한, 수능 점수의 비중이 높아만 가는 가운데 점점 커져만 가는 사교육 시장 견제책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학교측에서도 단순한 수능 점수상의 우수학생이 아닌
정말 그 분야에 소질이 있고 재능이 있는 양질의 우수학생들을 뽑게 된다는 장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행 수시제도가 과연 그런 제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물론, 정말 극소수의 특기자들은 수시제도를 통해 대학엘 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특기생들이 아닌 '내신성적 우수자'들에게 다른 학생들에 비해
기회를 몇 번 더 주는것에 그쳐버리게 되어버렸다.
실제로, 고등학교 때 나와 친했던 친구는 외국에 살다 온 것도 아니었지만
영어를 너무 좋아해서 열심히 공부한 덕에 고등학생으로는 받기 어려운 토익 920점을 받았다.
그러나 그 애가 단지 토익점수로만 갈 수 있었던 학교는 아무곳도 없었다.
사실, 현행 대입에서 수시제도를 통해 특기자를 발굴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발상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수시제도는 내신싸움이 되어버리는 셈인데
이미 기정 사실화 된 학교별 학업성취도의 차이를 싸그리 무시해 버린채
획일적으로 같은 등급을 매긴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지역을 축소시켜서 서울의 예를 든다면,
강남권 학생들이 서울시내 다른지역 학생들에 비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게 사교육의 힘이었던지 아이들의 노력 탓이던지 일단 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넓게 확대해 본다고 해도,
특목고나 비평준화 우수 고등학교 학생들이 타교 학생들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대학입시도 경쟁인데 경쟁력 높은 사람들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확산되고 그것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또한 커졌지만
단순히 그러한 이유로 인해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진 학업성취도의 차이를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지금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공교육의 질이 하락했다는 데에 있다.
교육에서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고착화된 것도,
사교육 시장이 어떠한 제제에도 불구하고 해가 갈수록 커가는 것도,
수시에서 고교 등급제가 문제가 되는 것도,
그 근본적인 원인을 든다면, 공교육의 질이 전체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공교육을 통해 얻지 못하는 부분을 사교육을 통해서 얻으려고 했고,
경직된 공교육에 비해 자유로운 사교육계에서는 학생의 수준에 맞추어
하나하나 세세히 가르쳐 주는 맞춤학습이 가능했기 때문에
학생들과 학부형의 만족도는 당연히 올라가게 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돈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서민층이나 빈민층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공교육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방법중의 하나이다.
당장 먹고 살것이 빠듯한 그들에게 있어서 과외나 학원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사치이다.
공교육이 무너진다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서민층과 빈민층의 자녀들이다.
툭 까놓고 말해서, 소위 말하는 "돈 있는집 자식"들은 국내에서 공부가 부족하다면
돈 가지고 해외로 나가면 되는거고, 공교육이 부족하다면 사교육을 받으면 되지만
서민층과 빈민층의 자식들은 그들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공교육을 받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고교 평준화 정책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얼마든지 좋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 그 학교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교 평준화 정책이 도입되고 나서는 사실상 그게 불가능해 졌다.
수업의 수준을 어느 수준의 학생에다 맞추어도 한반의 3분의 2는 그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사교육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러한 것이 해가갈수록 되풀이 되면서 지금과 같은 고교간 학력격차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평준화 정책 이전에는 고교 별 학업성취도 차이가 우수학생의 수에 따라 생겨났었다면,
지금의 고교 학업성취도 차이는 지역별, 더 엄밀하게 말하면 빈부의 격차에 따라 생겨나게 되었다.
평준화 정책 이전의 명문 고등학교들이 정책상 또는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강남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그 명문 고등학교를 따라 사람들이 이사하게 되면서
그 근처의 집값이 뛰기 시작하고, 그러한 과정이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되어 오면서
지금과 같은 빈부격차에 따른 고교 별 등급이 생겨나게 되었다.
-강남, 서초, 송파, 분당 등의 지역의 집값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비싼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지역도 집값 분포를 살펴보면 "명문대 입학률"이 높은 학교 근처의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많게는 네 배 가까이 비싸다.-
공교육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공교육의 영역이 사교육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빈부격차에 따른 학력차, 고교 별 학업성취도 차이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린다.
요새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을 본다면, 고교 평준화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각종 경제문제가 정부의 통제로도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사교육 또한 정부가 통제한다고 통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실 수십년에 걸쳐 발생하고 있었던 고교 평준화 정책의 실패요인들과 고교 등급제가
본고사나 연합고사, 수능제도 등에 의해 덮여져 왔다가
내신을 중시하는 수시제도의 비중이 커지게 되면서 불거진 것에 불과한 것이다.
수시제도에서의 고교 별 등급을 매겼다는 그 사실만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단편적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면 그 문제는 영영 해결이 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그 원인에 걸맞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겉으로는 고교별 평준화일지 몰라도, 실상은 이미 고교별 등급이 생긴지 오래다.
이러한 상황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심화되지,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생겨났고, 벌어질대로 벌어질 교육의 편차를 인정하지 않은 채
요즘의 고교 별 학업성취도 차이가 단지 강남권 학생들에게 이득을 주기 때문에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단순 논리로 문제에 접근한다면,
그러한 방법은 어찌보면 우수학생들이 단지 "돈많은 집 자식들"이기 때문에 당하게 되는
역차별을 당연하게 여기게 됨은 물론, 영영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미 기정사실화 된 고교등급을 부정하는 것은,
사각형 보고 사각형이라 부르지 않고 동그라미라고 우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본다.
공교육의 실패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사회 문제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 고착화를 완화시키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첫댓글 대학 본고사 제도 부활을 검토해 봐야 할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조카가 전교조에서 소송 지원 한다는 말에 당사자로 참여 한다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누이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참 여러가지로 어지러운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