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묻어나는 곳
변죽이 죽 끓듯 한 날씨였다. 사흘간 포근해 편했다. 아침에는 예보와 달리 기온이 뚝 떨어졌다. 절반은 세찬 바람이 달리게 만들었다. 채식으로 가벼워진 몸이 평균 5분 30초 페이스를 밟아 16킬로 달리게 하였다. 한 주간의 삶도 빠르게 흘렀다. 강추위로 교회 차 시동이 안 걸렸다. 보험사 서비스받고 두 번 방전되었다. 결국 근처 카센터 사장의 도움을 구했다. 배터리 교환이 1년 못 되었는데 추위와 블랙박스가 문제였다. 이틀간 카센터에 두고 충전해도 올라오지 않았다. 새로운 제품으로 바꿨다는 말에 카드를 내밀었다. <목사님! 서비스로 해 드릴게요.> 인건비는 받으라 해도 사양했다. 고맙다는 인사 후 마트로 갔다. <오 예스, 카스타드, 자유 시간>을 박스에 꾸려 두 아이 간식거리로 드렸다.
다음 날, 요양병원 간호사의 <박 할머니 카스타드, 두유, 마스크, 바디로션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지난주 전한 전복죽 잘 드셨는지 물었다. 입으로 세 번 드시고 나머지는 호수로 넣어 드렸다고 친절하게 답했다. 집에 여분의 마스크를 챙겼다. 두유와 바디로션은 최상품으로 샀다. 도중에 장모님 집 요플레와 메치니코프 봉지를 들고 갔다. 냉장고에 요플레가 가득했다. 최근에 딸이 넣어 둔 모양 같았다. 잠시 고민하다 요양병원 박 할머니가 드실 수 있는지 물었다. 요즘 건강이 호전되어 좋다는 간호사의 반응이었다. 송 권사님 몫과 함께 전달하고 왔다. 권사님께서 감사의 전화를 하셨다. 사회복지사 도움으로 장미꽃 그리기를 두 장 할 정도 좋아지셨다. 복지사가 보내준 카톡 사진을 봤다. 선명한 색칠이었다. 화장실 출입이 가능해 살겠다는 말씀이셨다. 언제 갑장인 두암동 할머니 집 들리면 <맛난 것 잡수시라고 5만 원 봉투에 넣어 전달하라>는 부탁이셨다. 인사치레 할 정도의 여유가 있어 좋았다.
그 날 저녁 손자 손녀가 잠들기 전에 화상 통화를 해 왔다. 즐거운 표정에 장난 끼가 흘렀다. 전대 운동장 눈사람 보여 주고, 비탈길의 눈썰매도 태워 주고 싶다는 말에 눈이 커졌다. 먹고 싶은 것을 물었다. ABC 초콜릿? 약속하고 다음날 초콜릿, 요구르트, 초코스틱, 딸기 쨈 롤 케이크를 사서 오는 길에 전했다. 손녀 손자가 할아버지 최고라고 엄지 척! 하며 올라갔다. 잠들기 전, 어린 시절 겨울밤을 그렸다. 고구마 뒤지, 쌀가마니, 매달린 메주, 선반 위에 석짝, 온 식구가 덮은 검정 이불,
군불 땐 아랫목과 차디찬 윗목, 구들장 틈새로 나온 연기, 넘치는 요강, 술 담글 누룩, 콩나물시루, 아버지 두루맥이, 엄마 검정 치매 저고리와 몸빼.. 무엇보다 이불에 오줌 싸고 발가벗은 채로 챙이 쓰고 바가지 들고 동갑내기 정희 집에 소금 얻으러 가서 주걱으로 뺨 맞고 온 일.. 그 받고 싶은 종합선물 세트 선물은 끝내 못 받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음 날 이른 시간 전 집사님께서 점심 초대를 하였다. 코로나로 식당가기 어려워 거절했는데 손님 오기 전에 미리 가면 된단다. <시원한 뽈떼기 탕 시켜 놓는다>며 강요했다. 지난번 눈 올 때 사양하여 그 요구에 응하였다. 집사님은 중증 장애를 가지셨다. 두개골이 함몰되고 왼팔을 전혀 못 쓰신다. 전동 휠체어로 이동 가능한 분이다. 10년 전, 자동차로 20분 거리인 그 지역 전도 나갔다가 만난 분으로 오후 예배 초청하여 간증도 들었다. 침술에 능하여 한 때는 약한 할머니들 모시고 자주 다녔다. 그런 이유로 가끔 식사 대접하려고 전화하신 분이다. 그 고마움을 기억하고 계셨다. 최근 장모님 허리도 침을 맞고 좋아지셨다. 만나면 교회 이야기, 전도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들어줘 잘 따르는 편이다. 식사 후에 커피 잔을 들어 부축하며 휠체어에 앉아 드시게 하였다. 앞에 작은 양철통이 보여 물었다. 추울 때 알코올 부어 불 붙여 손을 녹인다고 시연하였다. 쇼핑몰에서 3만 원에 구입한 보온 조끼도 자랑했다. 열선이 들어 충전하여 입으면 따뜻해 좋단다. 조끼 가슴 호주머니가 반쯤 열렸다. 그 안에 담배 케이스가 보였다. 서서 눈을 의심했다. 믿음의 말 많이 함보다 한 번의 정직한 삶을 보여주길 원하는 맘이었다. 청년 시절, 설날 낀 주일 예배 마치고 청년들과 남전도회 회원들이 교회 옥상 마당에서 윷놀이를 했다.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신혼살림 차린 서 집사님 사위가 던진 윷이 모가 나와 승기를 잡았다. 그가 춤추듯 홀딱 홀딱 뛰다 와이 샤스 호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이 떨어졌다.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된 초신 자라 이해한 분위기였다. 불같은 믿음으로 사신 서 집사님도 딸자식이 택한 사위를 어찌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대접을 받고 오는 길에 성 집사님 집으로 갔다. 수요 예배 마치고 조수석에 앉아 내리면서 폰을 빠뜨렸다. 거실이 썰렁하였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누워 계셨다. 깊은 잠에 불러도 대답이 없어 살며시 폰을 놓고 나왔다. 건강이 약하지만 늘 예배 시간을 기다린 마음이 고마웠다.
2021. 1. 16 서당골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목사 010 8579 0191
첫댓글 감사합니다.
귀한 댓글과 관심 고맙습니다.
행복하 날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