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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차의 오글오글한 이야기 66
이제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나에게 초대된 손님이며 장소 는 대나무발이 늘어진 소박한 다실입니 다. 발 위에 장식된 연푸른 사의 휘장 이 바람에 날리며, 매달아 놓은 자그만 풍경이 사르릉 사르릉 울립니다.
오늘 준비한 차는 곡우에 채취한 작설차 입니다. 이 작설차로 우리 고유의 다례 의 시간을 정갈하게 열어 봅니다. 내손을 따라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보고, 즐기고 맛보기 바랍니다. 내 앞에 한 벌 의 완벽한 다구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오늘의 다구는 백자로 만든 일습을 준비 했습니다. 깊은 녹색의 작설차에 더없 이 어울리는 다구입니다. 세 발 달린 무쇠 화로에 숯도 알맞게 재워져 있네 요. 이제 도기로 만든 둥근 주전자를 화로에 올리고 미리 만들어 놓은 물을 붓습니다. 작설차를 비롯한 세작차엔 오래된 무쇠 주전자로 물을 끓이는 것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자칫 물맛을 무겁게 만들어 작설차의 맛을 흐리게 하니까요.
나는 무슨 물을 만들 었을까요? 차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찻잎을 담아 녹아들 신체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차인들은 찻잎을 분별하는 것보다 품천을 잘 하는 것을 상수로 쳤습니다. 품천이란, 물의 성질을 가리고 따져서 고르는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이라 부를 만큼 물맛이 좋고, 그 어느 나라보다 물이 많 은 나라여서 삼천리 방방곡곡 수없이 많은 샘이 있는데,그 중에서 다천이라고 이름 붙은 곳들이 많습니다. 말 그대로 차를 달이기에 알맞은 단물이 솟아나는 샘이라는 뜻이지요. 몇 곳만 알아 볼까 요? 강릉의 한송정. 오대산 서대의 우통수. 충주 달천샘. 이규보의냉천정. 안화사의 샘물. 두륜산의 유천.속리산 복천암의 우물과 삼타수... 이외에도 많 은데 일일이 찾아 다니며 물맛을 가려낸 옛 다인들의 노고에 새삼 놀랍니다.
나는 이런 물을 가져올 수 없으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수돗물을 씁니다.
수돗물이라 하니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 이 보입니다. 물론 많고 많은 시판 생 수를 사용해도 되고 정수기의 물을 써도 됩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수돗물을 택했고, 차를 끓이기에 알맞은 물로 만들었습니다. 수도꼭지를 열어 물을 한 참 흘려 보내고 그릇에 물을 받습니 다. 그늘진 곳에 물그릇을 놓고 그 위 에 한지를 덮어 이틀을 재워 둡니다.
이틀이 지난 뒤, 물그릇의 물을 천천히 숙우에 붓는데, 칠부만 붓고 나머지는 개수그릇에 버립니다. 수돗물은 이제 차을 달이기에 좋은 물이 되었습니다.
화로에 놓인 찻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습 니다. 화로가 없는 사람들이 많으니 일회용 화기에 끓여도 상관 없습니다.
다만 물이 끓는다고 금방 들어내지 말고 시간을 좀 주어야 합니다. 불을 중불로 줄이고 찻주전자의 뚜껑을 한 번 열었다 가 닫습니다.
이 과정을 중요시하는 다인들이 많습니 다. 물 끓는 소리가 참 좋군요. 물을 잘 끓이는 것을 경숙이라 말하는데 제대 로 못 끓인 물은 맹탕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잘 쓰는 맹탕이란 말이 다례 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지요. 세작으로 만든 작설차이니 세심하고 정교하게 다루는 투차법이 필요합니다. 투차법은 물에 찻잎을 넣는 법을 말합니 다. 투차를 보통 세 가지로 나누는데 찻잎에 따라, 다회를 이끄는 주인의 뜻 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어느 투차법이 더 좋은지는 찻잎에 따라 다르고 오랜 경험에서 알아집니다. 상투법은, 끓인 물을 먼저 다관에 붓고 식기를 기다렸다 가 찻잎을 넣는 방법입니다. 차를 우리 는 물은 조금 식혀야 하니까요. 중투법 은 다관에 물을 반 쯤 붓고 찻잎을 넣은 다음, 조금 식힌 물을 마저 붓는 방식이 고 하투법은 다관에 찻잎을 먼저 넣고 그 뒤에 물을 붓는 방법입니다. 무슨 차이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티소믈리에는 그 맛을 구별할지 모르지 만 일반인들이 구별 할지 나는 모르겠습 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다례가 아니겠 습니까? 전문적인 차인은 계절마다 다른 방법을 쓴다고 하는데 아마 기온에 관계되었지 싶습니다. 이제 다관에서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게 또 참 어렵습니다. 알람을 맞출 수도 없고, 언제 가장 맛있는 차가 우러 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앞에 놓인 찻잔에 조금씩 차를 따르 기를 두세번 반복합니다. 맛과 향과 색 이 골고루 같아지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찻잔을 받침에 놓고 여러분 앞에 한 잔 씩 조심스럽게 놓아 드립니다. 모두 차를 맛보며 가운데 놓인 과줄등 한과를 즐겨 보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비스켓 이나 빵 종류도 함께 먹지만, 차에 어울 리는 맛은 아무래도 한과이지 싶습니다. 한과의 종류도 무척 많은 것을 잘 모르 더군요. 다과상이란 말이 차와 과에서 나온 말이듯이 우리의 다례에서 차만 내는 법이 없습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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