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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오다(에스라 7:1~10)
* 본문요약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된 후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아론의 16대 손으로 여호와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자로
그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왕이 들어주었습니다.
에스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례와 규례(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결심을 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는
성전이 완공한 때부터 57년이 흐른 뒤인 아닥사스다 왕 제 7년입니다.
찬 양 : 234장(새 199) 나의 사랑하는 책
235장(새 200)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본문해설
1. 아론의 후손 에스라(1~5절)
1) 이런 일이 있는 뒤(몇 십 년이 흘러) 바사(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2) 살롬의 현손이요, 사독의 5대손이요, 아히둡의 6대손이요
3) 아마랴의 7대손이요, 아사랴의 8대손이요, 므라욧의 9대손이요
4) 스라히야의 10대손이요, 웃시엘의 11대손이요, 북기의 12대손이요
5) 아비수아의 13대손이요, 비느하스의 14대손이요, 엘르아살의 15대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이라.
2. 율법책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에스라(6~10절)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능통한, 통달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길이
항상 그 위에 있었으므로(여호와께서 항상 그를 돌보셨으므로),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요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는 자이더니
7) 아닥사스다 제 7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성전 막일꾼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올라올 때에
8) 에스라도 그들과 함께 올라왔으니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는 아닥사스다 왕의 제 7년 다섯째 달이라.
9) 에스라는 첫째 달 초하루(양력 3월 중순 이후)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하나님께서 그를 잘 돌봐주셔서),
다섯째 달 초하루(양력으로 7월 중순 이후)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도착하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지키며),
이스라엘에게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 아닥사스다 제 7년(7절) :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의 왕인 다리오는 주전 486년에 죽고,
에스더와 모르드개 시대의 왕인 그의 아들 아하수에로 왕은 20년간 다르십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인 아닥사스다가 왕이 되에 40년간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에스라는 성전이 완공된 후 57년 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입니다.
- 율법에 익숙한 학자(6절) :
율법을 잘 알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자를 뜻합니다.
- 느디님 사람들(7절) :
느디님 사람들은 여호수아 때에
먼 곳에서 온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 여호수아와 평화협정을 맺은 사람들로,
그때 이스라엘에 노예로 편입되어 성전에서 막일꾼으로 봉사하던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 후에 이방인 중에 유대인으로 귀화한 자들도 성전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성전 막일꾼이 되었는데, 이들을 통칭하여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 다섯째 달 초하루에 도착(9절) :
에스라가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데
1월 1일에 출발해서 5월 1일에 도착했으니 꼭 4개월이 걸렸습니다.
1,500km나 되는 먼 거리이니 4개월이나 걸립니다.
-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다(10절) :
성전이 지어진 지 57년이 지났으나
아직 예배만 있고 유다 백성들의 삶의 변화는 없으니,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례와 규례(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예루살렘으로 간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에스라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
포로지인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완공한 후 50여 년이 흐른 뒤의 일입니다.
1) 페르시아에 있던 율법에 익숙한 에스라(1, 6절)
아닥사스다가 페르시아의 왕으로 있을 때 ‘에스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론의 16대손으로, 율례와 규례(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한 학사였습니다.
말씀에 익숙한 학사란, 단순히 말씀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그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2) 예배만 있고 말씀은 없는 삶을 사는 먼저 귀환한 유대인들
그런데 에스라가 페르시아 땅에서 항상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며 살고 있을 때
먼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대인들은
새로 지은 성전에서 말씀에 기록된 대로 희생 제사가 드려지기는 했지만,
백성들의 삶은 아직 변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에 있는 동안 누가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었으니
예배 의식에나 참여하는 그저 그런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3) 그의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함(10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율례와 규례(말씀)에 익숙한
학자 에스라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고향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말씀을 알지 못해 갈급해 있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가르쳐야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품게 하신 것입니다.
2. 율법책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에스라(6~10절)
1) 페르시아의 왕궁을 떠나 예루살렘에 간 에스라
고향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로 지어진 성전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는 드리고 있으나,
아직 말씀을 모르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에스라는
자기가 편안하게 페르시아의 왕궁에나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즉시 아닥사스다 왕에게 허락을 받아
하나님의 율법책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2) 말씀을 전하기 위해 고생의 길을 택한 에스라
우리는 여기에서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는 갈급한 심령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러 가는 에스라의 헌신 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는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그곳에 그냥 있었다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간다면 보장된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저 고생뿐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고생의 삶을 선택합니다.
● 묵상 :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위하여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갔듯,
우리도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도록 착하고 선한 일을 하십시오.
그 일들을 통해서 혹시 몇 명이라도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온 정성을 다하여 그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우리의 사명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의 필요에 따라 사람을 쓰십니다.
1)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을 입어(9절)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성전을 짓게 하셨고,
에스라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실 때 그들이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자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이 그들과 함께하여 그들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2)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혹시 나에게는 어떤 것을 하라고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지,
내 마음에 주시는 하나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스룹바벨이나 에스라나 학개나 스가랴처럼
이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 묵상 : 내 마음에 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큐티를 습관처럼 하십시오.
밥 먹고 샤워하는 일이 습관이 된 것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이 습관이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동안
주께서 당신의 마음속에 살며시 속삭이며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세미하게 들려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내 마음이 오직 주께로 향하도록 묵상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립니다.
3) 준비된 사람 에스라(6절)
그러나 그때에 말씀을 가르쳐야 할 자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평소에 에스라가 말씀을 연구하여 율례와 규례에 익숙한 자가 되지 않았다면
예루살렘에 가더라도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께로부터 쓰임을 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 묵상 :
말씀을 공부하고 연구하여 언제든지 말씀을 가르치고 전할 수 있는 자가 되십시오.
항상 기도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영적인 역량을 갖춘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때가 되면 주께서 필요한 일에 당신을 들어 쓰실 것입니다.
4. 에스라와 함께한 느디님 사람들
1)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에 온 느디님 사람들(7절)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 막일꾼들입니다.
이들은 기브온족으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요단강을 넘어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놀라운 방법으로 물리쳐 이기자
두려운 마음에 멀리서 온 자들인 것처럼 거짓으로 꾸며
여호수아와 거짓 협상을 벌인 자들입니다.
그때 비록 거짓으로 협상을 했을지라도 어쨌든 협상을 했으니
기브온을 멸하지 못하게 했으나,
그들이 거짓을 말한 죄로 그때부터 기브온족은 성전 막일꾼들이 됐습니다.
이들 기브온족 외에 솔로몬 왕 때에 강제 노역에 시달린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솔로몬에게 붙잡혀 와서 노예로 살아온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을 합해서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2) 이들은 이방인들이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했던 자들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온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모두 외국인(이방인)들로서
유다인들로부터 노예처럼 천대받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을 천대했던 유다인들이 바벨론에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천대받으며 유다 백성들 틈에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유다 백성들과 함께 포로 생활을 했고,
에스라가 먼저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려 할 때
함께 예루살렘에 와서 그 일에 참여한 것입니다.
이들은 페르시아에 그냥 남아있다면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기 위해 스스로 유다인들의 노예가 되기로 자처한 자들입니다.
이 땅의 즐거움보다 영생을 얻기 위해 고난받기를 더 즐거워한 자들입니다.
● 묵상 : 이들처럼 끝까지 믿음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가 되십시오.
믿음이란 가치관의 변화를 뜻합니다.
이 땅의 멸망 받을 것보다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을 더 좋은 가치로 여기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느디님 사람들은 참으로 칭찬받을 만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들처럼 끝까지 믿음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기도제목
1. 하나님께서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학개와 스갸랴를
그 시대의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신 것처럼
우리도 이 시대에 주님의 일을 위하여
쓰임 받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2. 에스라가 율례와 규례에 익숙한 자였으므로
필요한 때에 주께 쓰임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과 기도에 준비된 자가 되어
필요한 때에 쓰임 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