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ELkRFP9yX9c
미국에서 가장 큰 집 빌트모어
2017년 7월 13일 목요일.
노스 캐롤라이나 애쉬빌.
블루 리지 마운트로 둘러싸인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꼭 가 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빌트모어 하우스와 가든(Biltmore House and Gardens)
이 집의 역사는 네덜랜드 이민자 후손이며 뉴욕에서 태어난 뉴욕의 갑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부터 시작된다.
코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 1794~1877)- 뉴욕 스테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 출생, 철도 산업과 운송업으로 부를 축적. 자선 사업가, 그가 남긴 재산은 2016년 가치로 $215 billions. 빌 게이츠는 얼마
소유? 사촌과 결혼한 그에게는 14명의 자녀가 있음. 그가 남긴 말 중에 "You have undertaken to cheat me. I won't sue you, for the law is too slow. I'll ruin you." 너는 나를 속이려고 한다. 나는 너를 소송하지 않겠다. 왜냐면 법은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너를 파괴할 것이다."
14명의 자녀 중 윌리엄 헨리 밴더빌트(1821~1885): 뉴저지 출생. 뉴욕 철도와 다른 지역 철도 소유.
윌리엄 헨리 밴더빌트의 막내 아들, 죠지 워싱턴 밴더빌트 2세(1862~1914): 뉴욕의 Staten Island 출생.
할아버지 코넬리우스와 아버지 윌리엄으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 받음. 또한 자신의 증기선, 철도 산업, 그 외
다양한 사업으로 부를 축적. 미술품 수집가. 죠지는 가족 소유의 여러 집을 오가며 살면서 1888년 자신의 컨츄리
집을 짓기로 결심. 노스 캘롤라이나 애쉬빌 방문. 산림 130,000에이커 구입. 1889년 공사 시작 후 6년 후 1895년에 완공. 프랑스 르네상스 스타일의 대저택에는 정원, 농장, 말 농장, 도로도 건설. 로드 아일랜드 출생 Edith Stuyesant Dresser와 프랑스 파리에서 결혼, 이탈리아에서 4개월의 허니문 여행. 빌트모어 하우스로 돌아 옴.
딸 코넬리아(Cornellia Stuyesant Vanderbilt) 출산. 죠지 사망 후, 에디트는 미국 산림부에 85,000에이커를 팔았음. 한 에이커당 $5. 정부를 위하여 저렴하게. 그 이후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땅을 더 팔았음.
현재 8,000에이커 남음.
그들의 딸 코넬리아에게는 아들 둘이 있음: 죠지 헨리 밴더빌트 세실과 윌리엄 앰허스트 밴더빌트 세실.
1930년: 애쉬빌 시는 대공황을 이겨 내기 위하여 빌트모어 하우스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기를 원함. 코넬리아는 집을 일반인에게 공개.
1942년: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워싱턴 디 씨의 국립 아트 갤러리의 미술품을 빌트모어 하우스에서 무료로 보관.
큰 아들 죠지는 빌트모어 농장 상속.
윌리엄은 빌트모어 하우스 상속. 그 이후 와인너리 오픈, 호텔 두 개 오픈. 그의 아내 Mary Lee Ryan은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 재클린 리 부비에르(Jacqueline Lee Bouvier)의 첫 사촌. 메리의 엄마와 재클린의 엄마가 자매지간. Lee의 가족 전통으로 메리와 재클린은 결혼할 때 Lee 가족의 할머니가 입었던 똑같은 면사포를 입음.
현재 빌트모어 하우스는 빌트모어 하우스를 지은 죠지 워싱턴 밴더빌트 2세의 4대 후손(윌리엄과 메리의 딸과 아들)이 소유, 운영하고 있음.
캘리포니아에 허스트 케슬(Hearst Castle)이 있다.
허스트 케슬은 대지 127에이커, 총165개의 방, 세 개 건물 총 규모 90,000sqft 이상(8,361평방미터).
노스 캐롤라이나 애쉬빌의 빌트모어 하우스는
6년간의 공사, 1895년에 완공.
8,000에이커, 총 250개의 방 (33개의 방, 43개의 화장실, 65개의 벽난로, 3개의 주방, 건물 면적 4에이커
(174,240sqft-16,187평방미터), 그 당시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전기 시설을 가짐, 전기 엘리베이터, 히팅
시스템, 전기 워크인 냉장고, 화재 경보, 10,000권 이상의 책 소장, 1톤 되는 당구대, 진품 미술품, 높이 70피트의
뱅큇 홀, 집 안에 겨울 정원, 음악실, 전망대, 볼링장, 수영장, 운동실, 씨가 룸, 세탁장(세탁장 안에 건조방도 있음)
정원으로는 이탈리언 가든, 250개 이상 종류의 로즈 가든, 철쭉 정원, Walled Garden, 스프링 가든 등등.
입구에서 집까지 3마일.
가이드 없이 방문객이 오디오 가이드 이용하여 관람.
셀피 스틱 금지, 비디오 카메라 금지.
나는 빌트모어 하우스에서 블로그에 다 올릴 수 없을 만큼 사진을 많이 찍었다.
다시 차를 타고 와인너리와 호텔로 가면 다양한 야외 활동 및 운동을 할 수 있다. 스웨그웨이(Swegway),
자전거, 카약 등을 렌트할 수 있다.
우리는 자전거를 가지고 다니므로 우리 자전거를 탔다.
해바라기 꽃길을 따라서, 말이 풀을 뜯고 있는 목장을 지나서, 강을 따라서, 숲길을 따라서...
자동차들이 지나는 옆 길에서는 나는 속으로 말한다, '나는 자전거 탄다!'
자동차에 탄 사람들 보란듯이 더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가슴을 쭉 펴고...
다행히 자전거 도로가 언덕 길이 아니었다.
내 힘 빠지는 모습을 보일 필요없이 신나게 달렸다.
나는 나의 꿈 중의 두 개를 이루었다.
그 꿈은 자전거 타고 전원을 달리는 것.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 아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그리고 또 하나는 여행하면서 박물관만 쫓아 다니는 것이 아닌
여행 속에, 자연 속에 나를 넣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산책하면서, 수영을 하면서...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모토홈에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 입고 와이너리를 방문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모토홈 여행이 그래서 좋다.
주차장에서 한 노인이 우리의 모토홈 번호판을 보고 우리가 캘리포니아에서 왔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 또 물었다.
엘에이.
그러자 그는 사우스 파사디나에서 작년에 애쉬빌로 이사 왔다고 했다.
부촌 사우스 파사디나는 내가 살았던 동네 바로 옆이다.
우리 동네는 부촌 아니다.
사우스 파사디나에서 태어난 아들과 함께 빌트모어 농장으로 자전거를 타러 왔다. 1년 멤버쉽도 있다.
역사를 남기는 것,
유산이 크든 작든 유산 받은 재산을 까먹지 않고 더 키우면서 동시에 사회와 함께 나누는 것,
어렵지만 해 내는 사람이 있다.
입구에서 집까지 3마일(약 4.8킬로미터)
집까지 이런 숲 길이 계속 이어짐
겨울 정원
연회룸
연회룸, 벽난로 3개
연회룸의 파이프 오르간
연회룸 테이블
연회룸 천정
동판화
음악실
피아노, 디자인을 잘 살펴 보기 바람
도서실
도서실 천정 벽화
모든 것 하나 하나 섬세하게 장식
볼링장
볼링장 점수판
오른쪽 코너는 볼링 핀 정리하는 사람이 서 있는 곳
여자 손님들의 드레싱 룸
실내 수영장, 차가운 강물을 끌어 옴, 전기로 물을 데움. 다이빙 가능.
운동실
주방
전기 엘리베이터로 음식 운반
하인들이 식사하는 곳
그 다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전기로 냉장고 만듬
이 모터는 연회룸의 파이프 오르간 연주
세탁장
세탁 건조실
꼬리가 파란 도마뱀
빌트모어 해바라기 농장을 자전거로 달림
자전거 길
말 목장
빌트모어 와이너리에서 본 하늘
빌트모어 와인너리 나가는 길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미국이란 나라도 크지만 개인의 부를 가늠하기 어럽네요.
캘리포니아를 여행할 때 Hearst Castle을 가보고 태평양을 바라보는 멋진 위치에 있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빌트모어는 8000에이커. 뜨악
Hearst Castle과 완전 비교가 되지 않네요.ㅎ
한국은 고만고만하게 살기에 별로 부의 가치를 모르고 살았는데 빌트모어라니.!!
눈요기라도 자~ 알 했습니다만
지나치게 거대하니까 세상 살아가는 맛이 없을것 같습니다.ㅋㅋㅋ
자본주의 국가의 상징인 것 같아요. 인구대비 국토가 엄청 큰데다 국토가 워낙 넓다가보니 자연의 여러가지
아름다움이 태고 때부터 창조 돼 있으니 비교할 수가 없지요. 거대한 저택에 하고싶은 것 다 하고 지내는 사람들 세계는
따로있으니까 일반국민은 모르지요 그들이 그렇게 사는지 관심도없고. 만약 우리나라 제벌들이 그렇게 산다면 일반국민의 비난으로
살지도 못할 것입니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