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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부둥킴의 못난이 형제들이다. 상체도, 발도 없는데 치마 한 자락과 퉁퉁한 장딴지가 보이고 그 위로 생뚱맞게 산수화의 단면인 듯한 반원 모양의 산이 포개져 있다. 뚝 잘린 두 가닥의 난이 도자기 머리에 뻗쳐있고 그 밑에는 굽은 나무가 서 있다. 온전한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엿보이지 않는 얼기설기한 조각의 맞춤이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의 날이다.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권장하고 지원할 목적으로 지정된 영화관과 미술관 등을 무료로 개방한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함께 문화의 날을 누려 보려고 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실에는 여러 작품이 있었지만 유독 관심을 끈 건 이수경 작품의 [번역된 도자기]였다.
작가의 도자기는 깨어져 버려진 서로 다른 파편들을 붙여 기존의 형태가 아닌 새로운 모양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명장들에 의해 주저없이 버려진 조각들을 이어서 붙이고 그 붙인 자리에 화려한 금박을 입혀 재탄생하게 한 것이다. “금을(crak) 금(金)으로 메움으로써 시련과 역경을 딛고 성숙해지는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는 작가의 의도에서 ‘다시,’의 의미를 읽는다.
‘다시’는 세 가지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 하는 것과 그친 것을 계속하는 것, 그리고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일상을 되돌아보면 우리 주위엔 수많은 ‘다시’들이 있다.
내가 다니는 성당 입구에는 인체 크기의 성 바오로 석고상이 있다. 어느 비바람이 지나간 다음 날, 여느 때와는 다르게 처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놀라 자세히 보니 손에서부터 옆구리와 허벅지, 무릎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쪽이 떨어져 나간 심한 부상 상태였다. 나뭇가지가 바람을 견디지 못해 부러지면서 덮쳐버린 것이었다. 눈길을 오래 둘 수 없을 정도로 흉물스러워 서둘러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일주일쯤 지나 다시 성당을 찾았을 때 떨어져 나가고 없던 한쪽 부분이 제자리에 붙어있었다. 강력 접착제의 거스러미가 군데군데 돋아 있어 거친 흉터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시 벌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튿날은 뽀글뽀글 부푼 방울 풍선 주머니를 옆구리에 차고 있었다. 그다지 예쁜 모습이 아니라서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한 남자분이 바오로 사도 상을 매만지고 있었다. 예전보다 말쑥한 감쪽같은 모습이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신기함을 못 이겨 아저씨께 작업 과정을 여쭤보니 떨어져 나간 부분을 맞춰 강력 접착제로 붙인 후 틈새를 메우기 위해 우레탄폼이라는 물질을 발포한 뒤 이틀 정도의 기다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 후 석고상이 다치지 않게 세심하게 긁어내고 사포로 문질러 표면을 매끈하게 한 다음 특수 도료를 두어 번 입혔다는 것이었다. 정성과 기다림의 반복이었다.
정크라는 말에서도 다시, 를 읽는다. 기장 간절곶에는 정크아트 공원이 있다. 어느 봄날 남편과 함께 손자를 데리고 나들이 갔던 그곳에는 폐볼트나 나사, 철판 등을 재사용 해 크고 작은 갖가지 조형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창을 든 거대한 공룡과 컬러 풀한 귀여운 아기공룡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앉아 쉴 수 있는 의자와 서생 배에 이르는 특산물까지 작품의 대부분이 쓸모를 다한 폐기물이었다. 새로운 이미지로 재창조하여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다시, 라는 말이 유형물에만 국한될까. 얼마 전 안동과 영덕 쪽에 산불로 인한 큰 재앙이 있었다. 순식간에 번진 불로 많은 인명과 동식물이 피해를 봤다. 이재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았다. 수개월이 지난 지금, 그들은 다시, 조금씩 일상을 되찾고 있다. 불탄 임야도 차츰 회복할 것이다. 피폐한 가운데에서도 용기 내어 일어나는 그들에게 뜨거운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나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30여 년 유지하던 신앙을 포기할 만큼 사소한 듯한 관계에서의 갈등에 좌절한 때가 있었다. 딸아이의 설익은 결혼으로 실의에 빠져 힘든 적도 있었고 엄마의 교통사고로 집안이 흩어지는 아픔도 겪었다. 마음에 쓴 물을 뱉어내는데 시간과 뜸과 동굴이 필요했다. 그것이 독서거나 여행이거나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던지, 일어설 수 있는 숨, 그 어떤 것이 절실했고 그것으로 다시 일어났다.
다시, 라는 말은 상처와 좌절과 고통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결코 끝이 아님을 말한다. 힘들고 번거로운 부정의 기운을 긍정으로 전환 시키는 힘의 언어, 그것이 있어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봄이 핀다. 폐허에서 소망을 짓고 실패는 도전으로 꿈을 꾸며 미움은 이해로 사랑을 드리운다.
울퉁불퉁 못난 도자기 형제를 바라본다. 상처 난 부분이 황금으로 빛이 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아픔이 빛으로 피어나기를 내 안의 상처들을 가만히 보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