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딤후1:9
복음은 어떤 면에서 부끄러운 소식입니다. 수치 당하고 죽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살아 있다고 믿고, 지금도 우주의 유일한 통치자라고 믿는 어리석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믿어야 구원을 받고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과 썩지 않는 소식을 믿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디스트는 때리는 것에 쾌감을 느끼고 메조키스트는 맞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요샌 알 권리라는 무기를 이용해서 자기네들 원하는 상대를 때리는 쪽이 언론이라면 동네 북 신세인 대중은 메조키스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The gospel is in some ways shameful news. It is foolish news to believe that Jesus, who was humiliated and killed, is alive as a messiah, and to believe that he is still the only ruler of the universe. But you can be saved and preachers by believing that it is not all. Because we are believers in life and news that does not rot. It is said that the sadist feels pleasure in being hit, and the mesocist feels pleasure in being hit. Nowadays, if the media uses the weapon of the right to know to hit the opponent they want, I think the local North Korean people are the mesocists.
-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도 검투사끼리 싸우게 한다 거나 살아있는 사람을 사자의 밥이 되게 해 놓고 그것을 즐겼던 대표적인 사디즘(sadism)의 예가 아닙니까? 여기 세기의 메조키스트 바울이 차가운 로마 감옥에서 관제가 된 마당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바울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자고 디모데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했고, 그것은 부끄러워 할 일이 결코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Isn't it an example of typical sadism in which the Roman amphitheater made gladiators fight with each other or let a living person be the food of a lion and enjoyed it? Here, the mesokist of the century, Paul, is controlled in a cold Roman prison, so don't be ashamed of the gospel and go through hardships with it. Paul is inviting Demode to suffer with the gospel. He said that God's power appears in that life, and it is by no means something to be ashamed of. Why is that?
-
복음은 생명의 약속이고 이 생명은 고난을 통해서 만 잉태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고난을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부활)이 아니면 절대로 고난을 감당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고난을 독려하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주신 ‘은혜를 따라‘ 우리를 거룩한 구원으로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나타났으며, 예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로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을 장래의 부활을 환히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Because the gospel is the promise of life and this life is conceived only through hardship. That is why I believe that if you do not understand the gospel, you will not be able to understand hardship and will never be able to bear it unless it is the power of God (= Resurrection). Paul encouraged Demode to suffer because he called us holy salvation, "following the grace" that God had given us since eternity. And now the grace appeared with Jesus Christ, and Jesus died with the cross and resurrection, showing a bright future resurrection that will not rot with life.
-
그러니 이를 위해 죽고, 위해 살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을 본보기로 삼아 바른 말을 꽉 붙잡되 믿음과 사랑으로 하고, 아름답고 참된 복음을 지키기 위해 성령을 의지하라고 합니다. 믿음과 사랑이 있을 때 복음 증거가 자랑이 되지 않으며, 성령을 의지할 때 고난 중에도 타협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감옥에 갇힌 바울이 부끄러워 떠난 자가 있고, 남아서 고난에 참여한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So I don't think there's anything worth dying for and living for. Paul tells Demode to use his example as an example to hold on to the right words, but to trust and love, and to rely on the Holy Spirit to keep the beautiful and true gospel. Gospel evidence is not proud when there is faith and love, and when you rely on the Holy Spirit, you will be able to endure without compromising during hardships. According to Paul, there were those who left because they were ashamed of Paul, who was imprisoned, and there were those who remained and participated in the hardships.
-
복음이 주는 영광만 기대하고 고난은 외면한 자들이 있는 반면에, 긍휼의 사람 오네시보로는 에베소 뿐 아니라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도 바울을 방문하여 기운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나도 이제는 정녕 고난을 즐기는 메조키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증인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While some people expected only the glory of the gospel and turned a blind eye to the hardships, Onesiboro, a man of mercy, visited Paul to cheer him up when he was in a prison in Rome as well as Ephesus. I also want to become a mesocist who really enjoys suffering. Why can witnesses not be ashamed of their hardships while preaching the gospel?
-
바울의 첫 권면에 대한 부연(9-10)
a.하나님의 구원과 부르심:9
b.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10
복음과 관련한 바울의 예(11-12)
a.바울의 부르심:11
b.바울의 충성:12
바울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권면(13-14)
a.바울을 버린 사람들:15
b.바울에게 신실한 사람:16-18
-
하나님이(9a)
우리를 구원하사(9b)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9c)
우리의 행위대로(9d)
하심이 아니요(9e)
오직 자기의 뜻과(9f)
영원 전부터(9g)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9h)
우리에게 주신(9i)
은혜대로 하심이라((j)
-
이제는(10a)
우리 구주(10b)
그리스도 예수의(10c)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10d)
나타났으니(10e)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10g)
복음으로써(10h)
생명과(10i)
썩지 아니할 것을(10j)
드러내신지라(10k)
-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11a)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11b)
세우심을 입었노라(11c)
-
이로 말미암아(12a)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12b)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12c)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12d)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12e)
그 날까지(12f)
그가(12g)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12h)
-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13a)
믿음과 사랑으로써(13b)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13c)
본받아 지키고(13d)
_
우리 안에 거하시는(14a)
성령으로 말미암아(14b)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14c)
-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15a)
나를 버린(15b)
이 일을 네가 아나니(15c)
그 중에는 부겔로와(15d)
허모게네도 있느니라(15e)
-
원하건대 주께서(16a)
오네시보로의 집에(16b)
긍휼을 베푸시옵소서(16c)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16d)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16e)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16f)
-
로마에 있을 때에(17a)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17b)
만났음이라(17c)
-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18a)
그 날에(18b)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18c)
또 그가(18d)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18e)
네가 잘 아느니라(18f)
-
복음을 위한 고난으로의 초대_an invitation to hardship for the gospel_
말씀을 붙잡는 삶으로의 초대_an invitation to a life of holding on to the word_
긍휼과 격려의 삶으로의 초대_an invitation to a life of compassion and encouragement_
-
주님, 복음으로의 초대는 생명과 말씀의 능력과 긍휼의 삶으로의 초대이나이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예수를 고난으로 온전케 하셨던 주님, 대부분의 사람들은 넓은 길을 가기 때문에 오네시보로의 길을 가는 사람은 늘 소수이지만 그러나 그 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인식하며 살겠습니다. 내가 생명의 약속 가운데 분명히 서 있지 않으면 직장 속에서 상사들과 부딪힐 힘도, 가정 가운데 선한 싸움을 싸울 명분도 없사오니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 생명의 약속을 붙잡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기꺼이 고난을 받게 하옵소서. 왜냐하면 생명에 이르는 길이 죽음이며 영광에 이르는 길이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Lord, an invitation to the gospel is an invitation to life of life, the power of words, and the life of mercy. Lord, who has made Jesus complete with hardship in leading many sons into glory, most people go the wide path, so I will live with the recognition that the results vary depending on the path. If I do not stand clearly in the midst of the promise of life, I will not have the strength to confront my bosses at work or to fight a good fight in the family. Let me hold on to the promise of life in order to live properly in the call you called with my holy call. Follow the power of God and be willing to suffer with the gospel. Because the path to life is death and the path to glory is hardship.
2024.11.13.wed.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