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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집단 자살사건, 교주 박순자와 연루된 세모해운 유병헌회장
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침몰사고로 인해 사망자, 실종자를 포함해 300여명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세월호’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 청해진해운은 누구의 소유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과거 32명의 집단 변사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대양사건’의 배후인물로 알려진 유병헌 전 세모회장의 아들인 유혁기씨와 유대균씨가 최대주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인 유혁기씨와 유대균씨는 유병언 전 (주)세모회장의 아들들이며 청해진해운은 1997년 부도 처리된 세모해운을 모체로 해서 설립된 회사다. 유병언 전 세모회장이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진 오대양사건은 1987년 오대양 신도 32명이 오대양 공장의 식당천정에서 집단변사체로 발견되어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희대의 집단 사망사건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광신도 변사사건으로 악명이 높았던 오대양사건은 1887년 오대양(주)의 대표이자 교주인 박순자의 주도로 발생한 돈과 권력과 폭력, 그리고 사이비신앙이 뒤엉켜서 일어난 충격적인 집단 변사사건으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방영되었던 적이 있다.
이렇게 수많은 신도들의 생명을 앗아간 오대양사건의 중심에는 박순자라는 사이비교주가 있었으며 교주 박순자는 자신을 구원자라고 선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철저히 세뇌시켜서 그들로부터 170억원의 사체를 끌어들이는 도구로 이용하였다. 교주 박순자는 "나는 오대양을 지배하는 사람으로 앞으로 전세계를 주관할 것이다"라고 자신을 선전했고 ‘천국’과 ‘구원’을 내세워서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속여서 그들로부터 거액의 사채를 끌어다 쓰며 자신의 사업 확장의 도구로 만들었다. 원래 박순자는 유병헌씨가 목사로 있는 구원파라고도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에 신자로 있었는데 자신만의 독특한 교리를 만들어서 기독교복음침례회의 여러 신도들을 이끌고 독립하여 자신이 설립한 오대양의 추종자들로 만들었다. 박순자가 설립한 오대양(주)은 외형적으로는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회사였으나 내부적으로는 자신만의 독특한 교리를 만들어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종교단체의 성격을 띄고 있었으며 오대양에 소속된 신도들에게는 그녀만의 독특한 교리를 설파하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했고 자신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부가 각방을 쓸 것과 자식들과도 인연을 끊을 것을 강요하는 등, 특이하고도 이상적인 신앙생활을 강요하였다. 또한 신도들을 합숙시켜 함께 생활하게 만들었으며 자녀들도 한데 모아 공동 유아원에서 따로 양육했으며 한 달에 한번씩 자아비판의 시간을 만들어서 문제점이 드러난 신도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대양사건 당시 32인의 집단변사체가 발견된 공장 식당 천정 모습 이렇게 신도들과 주위사람들을 자신만의 사교적 교리를 내세워서 현혹시키고 미혹시켜 그들로부터 엄청난 액수의 사체를 끌어다 썼으며 점점 사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박순자가 끌어들였던 사채의 규모가 170억원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신도들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끊임없는 폭력의 행사와 사이비 신앙강요 등이 더욱 강해짐에 따라 결국 신도들의 불만과 반발이 불거지게 되었는데 박순자는 더욱 더 강한 폭력행사로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오대양 조직의 결함들이 수면위에 불거지게 되고 자신이 끌어다 쓴 사채와 이자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위기의식을 느낀 박순자는 신도들을 더욱 강력한 구타와 폭력으로 통제해 나갔다. 이런 오대양조직의 비인륜적인 처참한 행태가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87년 고액의 사채를 빌려준 이상배씨가 오대양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부터다. 또한 오대양의 박순자가 자신의 교리에 위반했다는 죄명으로 오대양 신도 4명을 살해하여 암매장한 사건이 나중에 한 신도의 증언에 의해서 밝혀지게 된다. 결국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된 박순자와 신도들은 경찰의 수배망을 피해서 오대양의 경기도 공장에 있는 식당천정에 은신해서 4일간이나 경찰들을 따돌리기도 했다. 결국 한계점에 다다른 상황에서 1987년 박순자를 포함한 신도 32명이 오대양공장 식당천정에서 모두 변사체로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박순자의 파렴치한 사교행위는 끝을 맺게 된다. 87년 당시 오대양의 집단변사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당국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오대양사건을 집단자살 사건으로 규정했다. 당시 오대양 용인공장 공장장 이 모씨는 대들보에 목을 매어 숨진 상태였고, 박씨를 포함한 31구의 시체는 식당의 천장바닥에서 목을 맨 채 누워 있거나 2~3구씩 포개진 채로 죽어 있었다. 이를 놓고,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해 격렬한 논란이 일었었다. 이 사건이 과연 경찰의 발표대로 집단 자살극인가, 아니면 외부인이 개입된 집단 타살극인가에 대한 논란만 무성했을 뿐 정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부검을 맡았던 의사는 3구의 시체는 자살이 분명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교주 박순자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교살(絞殺)에 의한 질식사가 분명하며,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행해진 집단 타살극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오대양 교주 박순자가 끌어다 쓴 거액의 사채 170억 원의 행방을 쫒던 당시의 검찰은 세모 유병언 회장의 주도 아래 오대양의 거액 사채가 세모로 유입된 사실을 확인하였고 1991년 유 전회장을 사기 혐의로 구속하였다고 한다. 이후 (주)세모는 경영난을 겪었으며 1997년 부도를 맞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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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대양 - 세모 - 청해진 = 무슨 연관성이 있는것은 아닌가~~조사할 필요가 이따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