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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이 돌아왔다. 작년에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 있긴 했지만, 우리에게 익숙했던 '지독한 최민식'은 분명 [악마를 보았다]로 돌아왔다. 그는 더욱 독해졌고,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악역을 소화해냈다. 현재 논란으로 들끓고 있는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아니 장경철을 만났다. 영화 속 연기만큼이나 뜨거웠던 인터뷰의 열기를, 그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글 | 신민경(영화 저널리스트) 사진제공 | 페퍼민트앤컴퍼니 구성 | 네이버영화
(10점 만점에) 빵점 아니면 10점이죠.(웃음)
예, 그러네요.
했죠.(웃음)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원래 시나리오는 [아열대의 밤]이었는데, 다른 감독이 연출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됐죠. 그런데 감독 선정도 안 되고, 시나리오 판권도 넘어가고…. 그래서 '안 되나 보다' 생각했는데, 김지운 감독에게 한 번 연락해봤는데, 미국 촬영 준비 때문에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안 되나 보다 싶었는데, 결국은 하게 된 거죠.
에이… 프로듀싱까지는 아니고요, 제가 조금 적극적인 입장은 취했죠. 작품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어요. 범인이 누군지도 처음부터 나오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고, 그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또 하나의 가해자가 있고, 이걸 처음부터 모두 밝히고 시작한다는 것. 저는 그게 참 좋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김수현(이병헌)이 장경철을 잡았다 놔주잖아요. 잡아서 죽이든지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게 아니고, 잡았다 놔준단 말이에요? 극한의 고통을 안겨주는 거죠.
처음에 수현은 인간적인 분노와 도덕적 동기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폭력을 즐기게 되는 거죠. 영화에 그런 대사 있잖아요. "짐승 잡자고 짐승이 되면 되겠느냐"는 대사. 그게 이 작품의 주제인 것 같았어요. 짐승 잡자고 짐승 되는 이야기. 폭력이 전염되는 이야기. 만약에 단순히 권선징악에 근거해 악을 응징하는 영화였다면 약간 생각을 해봤겠죠. 그런데 악을 응징하는 사람도 똑같이 폭력에 전염되는 거죠.
그래서 처음엔 잔인하지만 되게 웃기는 영화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들이 볼 때 행위 자체는 무지무지 끔찍한데 웃기는 영화. 이 영화의 핵심 요소가 폭력이잖아요. 그 폭력을 유희처럼 즐기는 캐릭터들의 행위를 보면서 관객들이 "쟤네들 정말 황당하게 놀고 있네?" 이러다가, 어느 순간 관객 스스로가 "내가 저걸 지금 보면서 웃고 있어?"라고 자각하게 되는 영화인 거죠.
변한 거 없어요. 아, 있네요. 술이 조금 늘었어요. 그땐 정말 술을 입에도 못 댔어요. 커피만 얼굴이 새까매질 때까지 마시고.(웃음) [반칙왕] 시사회 끝나고 술을 한 잔 하는데, 안 마시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도 한 잔 권했는데, 난리가 났어요. 심장 뛰는 소리가 옆에 앉는 나한테까지 들리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사케를 작은 병으로 하나 다 마시고, 2차도 같이 가더라고요.(웃음) 정말 장족의 발전이죠. 나머진 똑같아요. 현장에서 여전히 열정적이고.
수현 역을 맡아서 (장경철보다) 더 미친 놈이 되고 싶었어요. 약혼자를 잃은 슬픔부터, 마지막에 장경철을 응징하는 순간까지,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흥미로웠고요. 제가 했다면 지금 나온 영화와 조금 달라져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김지운 감독이 "최 선배가 장경철 역을 좀…" 그러길래, 그것도 뭐 나쁘진 않다 싶어서 했어요. 그리고 수현 역에 (이)병헌이가 적역이고. 그런데 제가 수현이를 했으면 마지막 장면에서 안 울었을 것 같아요. 오히려 무덤덤하게, 일상적인 전화를 하면서 걸어간다든가 했겠죠. 그런 느낌 있잖아요. 또 다른 살인마의 탄생?
[악마를 보았다]는 폭력에 중독된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폭력에 중독되어 있는지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봤어요.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죠. 그런 보도를 접하고 사는 우리들, 그리고 언어적 폭력, 정치적 폭력…. 조금은 거창하지만, 폭력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 내 안에 내재된 악마성, 폭력성, 야수성 같은 것들을 공감해보자는 것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고요.
모방 범죄에 대한 부분은, 솔직히 동의하진 않지만, 작업에 참여한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해요. 영화의 사회적 파급력에 대해서 우려한다는 건, 그 사회가 그만큼 방어 능력이 있다는 거고요. 그리고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이 있는 것 같아요. 이성적으로 "이건 그냥 영화다" 이렇게 받아들이기가 힘든 거죠. 최근 들어 언론을 통해 흉악한 범죄를 많이 접하니까, 충분히 감정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왜 저런 영화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그런데…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받아들이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결말대로 갔으면 더 논란이 뜨거워졌을 것 같아요. 지금의 결말은, 아주 잔혹한 방법으로 나름대로 응징하고, 수현은 인간적인 회한과 고통과 슬픔을 끝까지 가지고 가잖아요. 이것이 김지운 감독의 논리이고, 동의해요. 그리고 이것이 관객에 대한 일말의 서비스일 수 있고요. 결국엔 장경철은 저렇게 죽어야 한다는 응징이고요. 하지만 남은 자의 허망함과 슬픔이 있죠. 어쩌면 부질없는 복수일 수도 있고요. 죽은 약혼녀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요.
슬픈 감정이 한 방에 밀려오는 거죠. 엄청난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가, 그런 것이 다 끝난 후의 허망함 있잖아요. 수현은 모든 걸 다 잃었잖아요. 자기 자신조차 황폐해졌고. 그래서 장경철은 "넌 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장경철은 가증스럽게도 살려달라고 해요. 여기서 김지운 감독의 해석에 동의하는 부분은, 결국 장경철도 나약한 인간일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죽음에 임박해서는 별 수 없는 추접스러운 인간. 그런 한계를 보여준다는 건,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로서 아주 만족스러운 부분이었어요. 거기서 무슨 장렬하게 "그래 죽어주마!" 이런 건 가식인 것 같아요. 그냥 인간이죠. 그 인간이 곧 악마였던 거고.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사는 한 인간일 뿐인데 그런 행위를 하고 돌아다니는, 아주 추접스러운 그 인간을 표현하는 게 저에겐 좋았던 점이었어요.
각오했죠. 하하하.
야, 이거 아주… 하하하. 제가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 중에서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것보다도, 정서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작품이에요. 5개월 동안 피 칠갑하고 더미(소품용 시체) 깔고 앉아서 찌르고 자르고…. '사람이 이래서 돌아버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살인을 저지른 후 물 청소하는 장면에서, 정말로 피비린내를 느낄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뜨거운 물이라 김이 나잖아요. 정말 '욱' 하고 속이 울렁거려요. 지금까지 영화 찍으면서 피도 어지간히 묻혀 봤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어요. 아… 정말 싫더라고요. 그러니까 당연히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깨지죠. '이래선 안 되는데…' 그러면서도요.
그러니까요.(웃음) 이미 보도는 된 것처럼, 한참 캐릭터에 몰입해 있을 시기에 엘리베이터에서 어떤 중년 남자가 저에게 반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순간이나마, 엘리베이터를 정지시키고 왜 반말이냐고 따지려고 했죠.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엘리베이터를 세울 생각을 했다는 건, 위험 수위까지 왔던 거에요. 거기서 이 아저씨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저도 모르게 한 대 쳤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 심리예요. (장경철 같은 캐릭터는) 하나가 탁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터지는 거 같아요. 이성과 방어막으로 터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일단 터지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사건'이 터지는 거죠. 영화 한 편 하고 내가 끝나는 것도 아니고…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바로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야… 이거 사람 잡을 영화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웃음)
가급적 감독의 디렉션을 많이 존중했죠. 제 느낌으로 하는 건 있지만, 이 상황에서 어떤 느낌으로 대사를 해달라고 감독이 이야기하면 제가 조금 첨가하는 식이었어요. 사실 다른 영화 때는 리허설 할 때 제 멋대로 한 번 해보곤 했어요. 촬영 전에 이미 서로 토론해서 얻은 결과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감독이 원하는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죠.
이 영화만큼은 그런 질문이 필요없다고 봤어요. 장경철이 어떤 근거로 살인마가 되었는지, 논의조차도 안 했죠. 실제 형사들을 만나서 나름 취재를 해보긴 했어요. 어떤 상황이길래 그 인간이 인간 이하의 짐승 같은 상태로 망가졌느냐…. 그런데 이 부분에 나름대로 인간적인 이유가 있다 해도, 그 사람의 행위가 정당화될 순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형사들 말로는, 정말 인간적으로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가는 범죄자는 거의 없었다는 거죠.
한마디로 그거죠. 다른 사람은 죽어가도 자기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것. 만약에 한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 실연을 당했어요. 그런 이유로 세상 모든 여자에게 적개심을 품고 다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그 남자 나름대로는 타당한 이유일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미친놈이라는 거죠. 우리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논리가 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장경철의 과거가 묘사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본 거죠. 단지 현재의 행위만 보여줄 뿐이고요.
그렇죠. 그리고 그런 사이코들도 사회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송곳니가 튀어나온 사람이 아니라, 카멜레온처럼 위장하며 살고 있어요. 병원 장면에서, 연세 많으신 의사 선생님이 반말을 하실 수도 있거든요? 특히 시골의 작은 병원에선. 그런데 그것에 일단 상처를 받는 거예요. 아주 극도의 적개심을 나타내는 거죠. 그게 보통 사람과 다른 거예요. 분노라고 하면, 살인까지 이를 수 있는 분노를 느끼니까요. 웃을 땐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웃고. 감정의 진폭이 엄청나거든요. 그러니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죠. 제가 맡은 캐릭터가 그거죠.
그렇죠. 굉장히 상반적인 면이 있죠. 정상인들은 그런 욕망이나 욕구를 이성과 관습으로 본인 스스로가 통제하고, 그런 마음이 들어도 두려워서라도 행동으로 옮기질 못하죠. 설사 옮겼다 해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성으로 환원시키고. 장경철은 그런 제어 장치가 없는 인간이죠.
그런 부분이 있죠.(웃음) 장경철이가 내는 소리는 뭔가 정상적인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짐승 같은 소리? 새앙쥐 밟을 때 나는 '찌익~' 하는 소리? 이 캐릭터는 그런 소리를 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온 장치죠.
장애가 되는 것 같진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지도 않고. [올드보이]에서 혀를 자른다든가 이런 것도 다 논리적으로 당위성이 있었거든요. 이 세 치의 혀 때문에 네 누나가 죽었다면, 네 앞에서 이 혀를 잘라 보여 주마. 그러니 내 딸에겐 이야기하지 마라. 부탁이다…. [악마를 보았다]도 마찬가지고요. 영화의 구조에서 당연한 논리예요. 만약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갔다면, "왜 내가 묶여 있어야 하지?" "왜 잘라야 하지?"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면, 연기할 때 브레이크가 많이 걸렸을 거예요. 논리적으로 납득하고 설득되니까 연기가 가능해지는 거죠.
잘 지냈습니다. 하하하
하기가 싫었어요.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서요. 제가 한 행동에 추호의 후회는 없지만, 저 자신에 대한 형벌일 수도 있고요. 굳이 요약하자면, 반성과 자부심의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너무 많은 걸 배우게 된 기간이었고요. 제가 언제 그 수많은 직종의, 수많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언제 그렇게 수많은 대학 강단에 서서 이야기하고 격론을 벌일 수 있었겠어요. 그 결과가 저에게 상처든 어떤 것이든요.
바보가 아닌 이상, 제가 작전상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물러설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떳떳하고 싶었어요. 내가 몸 담고 있는 영화계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나름 학습을 하다 보니까, 소통의 방식이 글러 먹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러 생각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나는 대중과의 소통이 세련되었고 원활했느냐…. 그건 아니었거든요. 술자리에서나 통하는 톤과 감정으로 대중 앞에서 소통이랍시고 했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 있어요.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형님도 "차분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 네가 생각하는 게 옳다고 해서, 네가 이긴다고 생각하느냐"고 하셨고. 그런데 전 그때 제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고요. 제 행동이 대충 어떻게 귀결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죠. 그런데 진짜로… 후회는 없어요.
허허허. 그게 어떻게 보면 제 단점인데, 주변에서들 그래요. "그냥 넘어 가. 넌 왜 그러냐" 이러는 거죠.(웃음) 이제 한 번 겪고 나니까, 이젠 저도 넘어갈 건 넘어가겠죠. 그런데… 모르겠어요. 그땐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지금 와서 이 얘기를 또 꺼내는 게 조금 그렇지만, 그때 정동채 문화부장관이 스크린쿼터는 아무 문제 없다고 했는데, 3개월 지나서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이 한미 FTA 때문에 스크린쿼터를 줄인다고 발표했어요. 다 좋아요. 하지만 사전에 "사정이 이러니 양보를 좀 해달라" 이런 얘기라도 있어야 했다고 생각했어요.
아니죠. 서툴렀죠. 그분들이 보기엔 제가 얼마나 호구로 보였겠어요.(웃음) 저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웃음) 그런데… 후회는 없어요. 그러다 광고 하나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고…. 전후 좌우를 보고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웃음) 분명한 건 있죠. 앞으로 저에게 CF가 들어올진 모르겠지만(웃음) 앞으로는 그러지 않는다는 거죠. 공익성을 생각했을 때, 그때 제가 잘못한 건 분명하니까요.
그 전엔 사랑하는 여자와 연애를 끝낸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불 같은 사랑을 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거,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네요.(웃음) 아무튼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요? 미련도 많이 남고, 시원하기도 하고, 애틋한 연민도 들고. 그런데 이번엔 전쟁을 끝낸 것 같아요. 결국엔 자신과의 전쟁이었던 것 같고. 전쟁터를 뚫고 나온 느낌이죠.
그렇죠. 몸이 아닌 정신이 만신창이가 된 전쟁이었고요. 그리고 무당에 대한 비유는, 제가 뭐 접신을 한다기보다는 일이 비슷한 거죠.
무당들의 행위에서 궁극의 목표는 카타르시스인 것 같아요. 그것이 배우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거죠. 대중과의 소통이고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그것이 해소일 수도 있지만 요즘 같은 복잡한 사회에선 어떤 문제를 더 곪게 해서 그걸 끌어 안고 끄집어 내서 수면 위로 부상시키고…. 아무튼 소통하는 건 똑같다는 거죠. 우린 굿판이 아닌 스크린 위에서 하는 거고요.
그리고 연기할 때 보면, 사전에 여러 분석을 하고 준비하지만 감독이 "액션!"이라고 외치면, 그 순간에 표현하는 건 배우 혼자의 몫이에요. 아무리 분석력이 좋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그것이 몸으로 체화되어 표현될 때는 논리 그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하고요. 그게 표현이 되어야 해요. 그건 정말 설명을 못하겠어요. 접신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아도. 캐릭터에 체화되는 게 있어서,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들이 나와서, 나중에 모니터를 보면 "어, 내가 저걸 어떻게 했지?"하게 되는 불가사의한 상황들이 생겨요. 예를 든다면, [올드보이]에서 혀 자르기 전에 개처럼 짖고 이런 것의 상당 부분이 다 애드리브였어요. 동선 잡으려고 리허설 딱 한 번 하고 들어갔어요. 그건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표현된 것 같아요. 똑같이 다시 하려면 안 되요. 그 느낌이 안 나요.
여러 프로젝트 있죠. 그리고 분명한 건, ([악마를 보았다] 같은) 이런 작품은 아닙니다.(웃음) 좀 경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일 것 같아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그런데 연기라는 게, 관객의 기대를 외면할 순 없지만 굉장히 이기적인 작업이거든요. 내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손님에게 드릴 수 있는 거잖아요. 내가 맛이 없는데 관객이 좋아한다고 그런 음식을 만들 순 없죠. 이젠 이런 음식(센 캐릭터들)이 지겨워요. 질렸어요. 배 터질 만큼 먹었어요.(웃음) 이젠 다른 맛의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을 해야 할 입장인 거죠.
절대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 대중이고 관객이지만, 1차적인 작업은 저를 위해서 하는 거죠. 저도 이 작업을 통해서 인생의 무엇인가를 얻고 싶은 거고. 제 스스로가 만족하지 않는 작업을, 대중들을 위해서만 한다는 건 거짓말인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 작업이 되어야겠죠. 그 다음에 "제가 이런 메뉴를 만들었는데, 한 번 잡숴 보시실랍니까"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죠. 나는 맛이 없고 감흥이 없는데 대중이 이런 음식을 좋아한다고 만들어 파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다음 작품은 [악마를 보았다] 같은 작품은 아닙니다.(웃음)
첫댓글 최민식님의 깊은 생각을 알수 있는 좋은 기사 입니다^^감사합니다,,,ㅎ
영화 끝에 대한 부분은 저와는 생각이 달랐지만요 ㅎㅎㅎ
잘 읽었어^-^ 역시나 멋진 배우님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