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이슬을 머금은 모란꽃을 신부(新婦)가 꺾어 들고 창 앞을 지나다가 방긋이
웃으며 신랑에게 묻는다.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신랑은 짐짓 장난을 치느라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신부는 꽃이 더 예쁘다는 말에 토라져 꽃 가지를 밟아
뭉개고는 말하기를 “꽃이 저보다 예쁘거든 오늘밤은 꽃하고 주무셔요.”
이규보의 한시 [절화행折花行]의 내용이다.
어느 TV방송에서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를 방영하더니, 그 후 꽃과 비견하는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등의 프로그램이 속출했다.
그만큼 꽃은 아름다움을 표징하는 아이콘이라는 사실에 대한 비교불가의 반증이리라.
저 남녘 섬진강 매화축제가 화신을 알리더니, 동네 천변에 ‘영춘화(迎春花)’가
노란 미소를 방싯 드러내 눈이 번뜩했다.
드디어…… 그렇다. 누가 뭐래도 냉혹 속에 살포시 그 자태를 드러내는 꽃이 있다.
어느 계절이든 꽃이 없으련만 역시 봄은 꽃으로 그 본색을 드러낸다.
어떤 이는 봄을 좋아하는데도 ‘봄이 오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봄이 온다는 것은 봄이 간다는 말이고, 봄이 간다는 것은 여름을 지나 가을마저도
곧 왔다가 갈 것이며, 그러면 나이도 한 살 더 먹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란다.
이 또한 봄에 대한 간절한 애착의 표현이 아닐까? 그래서 시인 김영랑은
그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봄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노래했다.
이제 슬프도록 찬란한 그 봄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그런데 봄은 어김없이 이렇게 계절로서 우리 곁에 오건만, 우리네 세상과 삶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넘어 ‘춘래불가춘(春來不可春)’인 듯하다.
‘봄은 오지만 봄은 되지 못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방산비리와 관련된 뇌물수수 혐의로 전 해군 참모총장이 구속되는
안보에 구멍이 뚫리고,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도입사업 중개과정에서 국방비
500여 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 모 그룹회장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돈 세탁 창구로 활용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탐욕에 의한 회사차원의 비리를 넘어
거룩하고 성결한 교회재정에까지 파렴치한 오물을 끼얹어버렸다.
한 미치광이 같은 사람이 주한 미 대사에게 칼부림을 하고, 이 일로 여야 대변인은
‘종북숙주’니 ‘정신병자’니 하며 서로의 심장에 칼질을 하는 독설을 쏟아내고 있다.
모 기업 회장이 비리수사를 받던 중, 오늘 자살을 하고 현정권 실세들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쪽지로 인하여 정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봄은 왔건만 이 땅의 참된 평화와 화합은 요원하기만 하고 정의가 하수처럼
흐를 날은 멀기만 한 듯하다.
그러나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한다. 저 동토의 땅에도 찾아온 프라하의 봄처럼,
그리고 그 엄중한 베를린 장벽의 붕괴처럼 이 땅의 차가움도 계절처럼 밀려 가고
말리라. 이 땅의 봄을 앞당기기 위해선 각기 처한 자리에서부터 화평과 포용을
추구해야만 한다. 우리의 작은 평화의 노력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이 땅에
봄꽃 만개한 평화의 동산을 이루기 때문이다.
시인 정호승은 그의 시 [봄 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따스한 봄날, 이런 이해와 배려, 사랑의 꽃이 우리 주위에 활짝 피어나기를,
함초로히 내리는 봄비처럼 꽃에 스미고 싶다.
첫댓글 찬란한 슬픔의 봄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올려주신 은파님!!
감명 깊게 공감합니다.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 처럼
다투어 사랑을 전하는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뇌물 줬다고 자랑하며 자살하는 것 보다는
이를 부끄렵게 여기고 근절 되는 사회가 구현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