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눈] 사막을 숲으로, 주님의 일은 알 수 없네 / 김지영
발행일2020-10-25 [제3216호, 23면]
그리스도교 신앙에 관한 족보라면 나는 내놓을게 전혀 없었다고 앞서 밝힌바 있다. 친가나 외가 혈족, 그 대부분이 골수에 박힌 유림의 후예였다. 그런 우리 집안엔 내가 세례를 받던 1995년에도 천주교·개신교 신자들이 몇 명 되지 않았다. 이들도 대놓고 예수를 찬미하는 등의 언행은 감히 하지 못하는 집안 분위기였다.
나의 경우, 그리스도교가 나에게 영적으로 다소나마 영향을 준 것은 천주교재단인 동성학교의 교육이었다. 그리고 신문사 재직 중 미국연수 기간에 누군가 갑자기 내 등을 교회 안으로 떠밀어 넣었고, 때마침 ‘영육 간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는 생명을 구해줄 동아줄에 매달리듯 간절하게 매달리게 됐다. 세례 후 사회교리를 접하고는 이것이 나의 직업적 소명인 저널리즘과도 같은 맥락임을 알고 저널리즘에 내 신앙인 천주교의 사회교리를 얹어 열심히 논설과 칼럼 등 기사를 썼다. 또 ‘전례와 성사만이 신앙생활이 아니며 삶의 모든 자리에서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고 삶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러다보니 내 신앙은 기복보다는 사회공동체의 정의에 초점을 두게 된 것 같다.
누구라도 오랜 신앙가문의 형제들과 나를 몇 시간만 비교해 접해본다면 신앙의 결이 확실히 다르다는 점을 느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쩌면 미숙하고 약한 내 믿음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리스도교 불모의 집안에서 자라난 나는 특정한 신앙의 결과 틀을 갖추고 신자라고 불리며 이렇게 교회매체에 단골로 글까지 쓰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신앙으로 삶의 대전환을 이룬 것은 아니다.
우리 집안에서도 그런 분은 따로 있다. 바로 육촌 형님인 김흡영 목사님이다. 신앙으로 인해 극적인 삶을 살았고 집안에도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가정환경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 부친인 나의 당숙은 육군 장성이었으며 그는 공부를 잘해 가장 좋다는 고교와 대학을 줄곧 다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어느 모로 봐도 훌륭한 규수를 만나 결혼, 대기업의 미국지사에 발령을 받아 출국했다. 그리곤 사실상 미국시민으로 살았다. 당시로서는 누구라도 부러워 할 만한 삶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 때이던가, 그 형님이 목사가 됐다는 ‘충격적인’ 소문이 들려왔다. 형수씨도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했다. 그 뒤, 그 모친인 당숙모께서 돌아가셨을 때다. 장례를 치르려 귀국한 그에게 집안 어른들은 “장례절차는 상주가 정하는 법이니 자네가 정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목사인 이 형님은 망설임 없이 “개신교 법도대로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 어른들은 그러나 아무 말 없이 개신교 장례절차를 따랐다.
장례를 치른 뒤 어른들이 김목사를 불렀다. 좌장인 어른이 말씀 끝에 흐느끼다 방바닥을 손으로 치며 절규했다. “이놈아, 네가 우리 집안의 몇 백 년 전통을….” 김목사님은 이때 문화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은 그의 신학 연구에 영향을 끼쳐 새로운 신학 패러다임으로 유교-기독교적 시각에 입각한 도의 신학(theo-logos)을 주창하게 됐다고 한다. 또 현대과학과 신학, 동양종교 간의 심중적 대화를 제안해왔다.
그는 당초 미국에서 상사원으로 있을 때 극적인 종교체험을 함으로써 신학수업에 뛰어들게 되고 신학석사·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 대학 세계종교연구소 등 국내외 유수 대학과 연구소에서 과학과 종교에 관해 강의·연구 활동을 했고 ‘도의 신학’과 ‘왕양명과 칼 바르트:유교와 그리스도교이 대화’ 등 많은 저서와 논문을 냈다. 고향인 영주·안동 지역에서는 많은 서양 신학자들과 현지 유림을 함께 초청해 세미나 등 여러 행사를 기획하면서 현장에서 유교와 기독교의 접목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머나먼 타국에서 뜻하지 않게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으며 평생 ‘예수 꼬랑댕이’를 싫어했던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자청하다시피 해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세속적 삶을 살던 육촌 형님은 아예 예수를 따라 십자가를 지고 목회자 및 연구자가 됐다. 그뿐 아니라 많은 집안 혈육들이 누구의 권유랄 것도 없이 너도나도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사막을 숲으로 만드시고 족보 없는 집안의 족보를 새로 쓰게 하시니, 진실로 주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알 수 없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지영(이냐시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