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일 기념관
17일 아침, 식사를 하고 몇몇은 산책을 나가고 몇몇은 어젯밤에 이어 삥똥 보기를 했다. 산책길에 나섰던 회원들이 돌아오자 짐을 챙겨서 지리산 온천호텔을 떠나 태안사로 갔다. 나는 전에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지라 절 안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만 얼쩡거리다가 되돌아섰다.
태안사 계곡은 여전히 숲이 울창하였다. 스무 해 전 동료교사들과 함께 태안사에 놀러왔다가 그 골짜기에 텐트를 치고 술 마시며 화투 치고 놀던 일이 생각났다. 참 세월은 빨리도 흘러간다. 벌써 그 시절이 스무 해가 지나갔다니.......
태안사에서 조금 내려가자 전에는 없던 조태일 기념관이 세워져 있었다. 1941년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출생. 1999년 몰. 유신독재체제에 반대하다가 감옥살이. 저항시인. 국토시인. 그는 갔지만 그의 시는 남아서 아직도 태안사 골짜기의 푸르름에 화답하고 있었다.
-푸름을 푸름을 들이마시며 터지는 여름을 향해 꽃망울을 준비하리라. -
포리똥
내가 강력히 주장하여 태안사 골짜기에서 빠져나온 우리들은 왔던 길을 거꾸로 되짚어 10여 분 달려서 여울목 식당에 닿았다. 여울목 식당은 원래 구례의 중학교에 몇 년 동안 근무한 이 선생의 단골 식당이었다.
작년 봄과 재작년 봄에 나와 유 선생 나 선생은 구례중학교 이 선생한테 놀러갔다가 이 식당에서 눈치 회를 맛나게 먹었다. 식당에 전화를 걸어 눈치 회 있느냐고 물었더니 지금은 없고 겨울에서 초봄에 먹는 회라 했다. 눈치의 표준말은 누치로서 잉어와 붕어의 사촌쯤 되는 민물고기이다. 나는 60이 넘어서야 구례에 가서 처음 먹어 보았는데 그 회 맛이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올 봄에도 압록 눈치 눈치 염불을 외웠지만 허리 수술을 하는 통에 못 가고 말았다.
눈치 회 대신 은어 회와 송어 회를 주문했다. 똑같은 은어지만 어제 화개장터에서 먹은 은어 회하고는 맛이 달랐다. 양도 훨씬 푸짐하고 신선도도 좋아서 그런지 어제는 못 느꼈던 은어 특유의 수박향이 느껴졌다. 참게와 잡어를 넣어서 끓인 탕국물도 얼마나 진하고 맛났는지 모른다. 먹고 남은 탕국물은 싸주라 했다.
아, 그리고 포리똥. 식사 전에 화장실에 갔더니 부근 밭에 꽤 오래된 포리똥나무가 새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었다. 마치 날더러 ‘얼른 따 잡수세요.’하는 듯이 폭삭 무르익어 있었다. 몇 개를 따서 맛을 보았더니, 오메, 어린 시절에 먹어보고는 처음으로 포리똥다운 포리똥의 떫떠름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제대로 배어나왔다. 손으로 한 움큼 따가지고 수돗물에 씻어서 상으로 가져갔더니 수대로 맛나게 먹었다. 물론 양이 안 찬 사람들은 직접 포리똥나무로 달려가기도 하였고.
언젠가 또 기회가 생기면 나는 꼭 여울목에 다시 가서 눈치 회, 은어 회도 즐기고 포리똥도 실컷 따 먹어야겠다.
앵두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일 년 중 가장 생기가 왕성한 때라고 하였다. 6월 17일은 단오가 지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섬진강과 그 주변의 산야는 신록으로 우거진 채 바야흐로 왕성한 생기를 물씬 물씬 내뿜고 있었다. 박정희 때부터 유실수 심기 운동으로 시작한 밤나무 밭은 가는 곳마다 숨 막히도록 진한 암꽃 수꽃 냄새를 뿜어대고, 버찌는 까맣게 익고, 포리똥은 농염한 빨간색으로 나그네들의 식욕을 돋우었다. 그리고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는데 또 새빨간 앵두가 있었다.
여울목 식당에서 회에다 탕에다 걸게 점심을 먹은 우리들은 목포를 향하여 주암호 쪽으로 길을 잡았는데 얼마 안 가서 그만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농사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식들 이야기가 나와 가지고 문 선생의 시집간 두 딸과 두 사위 이야기까지 번졌다. 어떤 사위가 더 푸짐하네 어쩝네 하다가 둘째사위가 이번 여행길에 나선 문 선생 입으라고 좋은 점퍼 사주었다는 대목까지 이르렀다.
“오메, 내 잠바!”
이야기를 하다 말고 문 박사가 비명을 질렀다. 이야기하다 문득 그 점퍼가 생각나서 두리번거렸더니 아무데도 없었다. 여울목 식당에 모자와 함께 벗어 놓고 그냥 차를 타 버렸단다. 하는 수 없이 전 선생 차에 문 선생과 유 선생이 타고 이십 분가량 걸리는 그 식당까지 되돌아갔다. 나머지 회원들은 당구차를 세워놓고 시골의 버스 정류장 의자에 무료하게 앉아 농사차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도로 건너 시골길로 산책에 나섰던 나 선생이 손에 한 움큼 가득 새빨간 앵두를 따 가지고 왔다. 심심하던 차에 먹어보니 참 물도 많고 시원하게 달고 퉤퉤 씨를 뱉기도 좋은 앵두여서 눈이 번쩍 뜨였다.
나 선생이 가져온 앵두를 다 먹은 다음 나는 나 선생이 앵두를 땄던 앵두나무를 찾아 나섰다. 꼬부라진 울타리를 막 돌자 울타리 너머 손닿는 곳에 앵두가 지천으로 열려 있었다. 나는 주먹에 따 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거기에 다닥다닥 열린 앵두를 가지에서 훑다시피 따서 담았다. 그걸로도 모자라 앵두가 많이 달린 가지를 두 개나 꺾어서 임 선생을 갖다 주었다.
세상에나! 버찌를 먹어본 것도 오랜만이요, 포리똥과 앵두를 실컷 먹어본 것도 그 날이 처음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은 일을 말하라 한다면 나는 밤꽃과 버찌와 포리똥과 앵두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숨 막히는 밤꽃 냄새를 진하게 들이키고, 붉다 못해 검게 익은 버찌로 손바닥을 벌겋게 물들이고, 떫으면서도 달콤한 포리똥을 포식하고, 달콤 시원한 앵두를 원 없이 먹은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본전을 뽑은 셈이었다.
게다가 맘에 맞는 벗들끼리 생기 왕성한 초여름에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 돌아다니며 맛난 음식만 골라 먹고 술까지 곁들였으니 이런 호강 이런 행복이 또 어디 있을손가.
걸쭉한 밤꽃 향기 노인들도 휘청거렸다.
요염하게 익은 버찌 자연의 진수였다.
새빨간 포리똥 앵두는 박카스 신의 선물이었다.
흘러간 세월 뒤돌아보니 허망하고 야속하다.
일락서산 해 떨어지니 남은 시간 별로 없어.
다정한 벗님네들과 산천경개나 구경 다니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