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준 여유(2) - 질병과 의학의 경주에서 누가 이길까?
메가포나(megafauna)라고 들어보셨나요? 영한사전에 없는 단어입니다. WORD에 들어가 사전은 물론이고 관련 서적, 리서치를 뒤져 보아도 나오지 않습니다. mega는 크다는 말이고 fauna는 한 집단 한 시대의 동물군이라는 설명뿐입니다. 25년 전 쯤 방학 중 미국에 있을 때 한 신문기사에서 본 것인데 문맥으로 판단해 보면 ‘큰 동물 집단’을 말합니다. 4월 17일 밤 자리에 누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글을 찾아보니 상세하게 나와 있더군요. ‘큰 동물’ 집단의 정의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존재해온 동물들, 이어서 이들의 ‘멸종’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구의 역사에서 대멸종은 생명체가 나타나기 시작한 고생대 이후인 약 4억 5천만 년 이후 5번 (혹은 20번까지 추정하기도 함) 있었다고 합니다. ‘메가포나’는 이 중 하나가 아니라 빙하기 중 약 5만 5천 년 전부터 특히 인류 등장 이후 멸종한 큰 동물 집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당연히 1억 6천만 년 전에 멸종한 공룡은 제외되고 매머드(mammoth)나 이빨이 밖으로 튀어나온 미주 대륙의 ‘검치 호랑이’ 등은 포함됩니다.
위의 기사에 의하면, 메가포나라는 큰 동물 집단의 멸종 원인은 일단 급격한 기후의 변화에서 찾습니다. 3억 년 전 모든 대륙이 뭉쳐져 있던 판게아가 서서히 나눠지면서 그 사이에 바닷물이 들어가 기온이 내려가고 공룡시대 25%였다는 산소의 비율이 오늘날 21% 수준으로 떨어지니 50-70cm 크기의 잠자리 등 산소 소비가 많은 큰 동물들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두 번 째 원인은 인간에 의한 포획이죠. 작년 시칠리아 여행 중 전라남북도를 합친 크기의 섬에 사슴과 코끼리만이 아니라 주변해역에 살던 돌고래와 참치 등도 로마인들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매머드의 멸종도 인간의 남획이라는 증거들이 남아 있습니다. 절벽 아래 수십 마리의 매머드 뼈가 발견되었지요. 인간이 불을 이용하여 이들을 절벽까지 몰고 가서 아래로 떨어뜨려 죽이고 고기를 채취했다는 겁니다.
제3의 이론이 바로 질병이더군요. 질병의 창궐이 동물을, 그것도 몸집이 큰 동물을 ‘멸종’시켰다는 이 기사는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한 동네나 집단을 없앨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한 종을 멸종시킨단 말인가요? 25년 동안 머리에 맴돌았던 이 주제를 이번 코로나19와 관련해서 한번 정리해 보려합니다. 비전문가의 엉뚱한 진단일 수도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마침 미주 한국일보 주필인 권정희 여사가 글방에 최근 빌 게이츠가 앞으로 수십 년 내에 1천만 명이 죽을 바이러스 전염병이 창궐할 것이라는 예견을 소개하군요. 멸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1천만이라 수치도 보수적이겠죠.
나는 인간에 관한 문제는 총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동물의 왕국’을 자주 보라고 권했습니다. 인간 중심의 사고 틀에서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이죠. 인간만이 이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행동하고 미래를 예견합니다. 당연히 이 세상은 인간 대 비인간, 문명화된 이성적 인간 대 합리성이 결여된 야만인으로 나누었지요. 인권만이 존재하며 소나 돼지 등 동물이나 식물들의 권리는 존재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입니다. 3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나타났을 때 혹은 3천만 년 전 인간과 꼬리 원숭이의 공동 조상이 나타났을 때 인간은 유인원/영장류에 속하는 한 동물이었을 뿐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사냥하지 못하면 사냥 당했습니다. 남아공에서 발견된 수십만 년 전 인간의 머리뼈에는 표범의 잇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표범에게 사냥당한 인간의 유골입니다.
다른 동물, 특히 인간과 가까운 포유류/영장류의 행동과 생존방식을 이해하면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Nat Geo와 같은 전문적인 다큐를 찾아볼 시간이 없다면 KBS의 5시 뉴스에 이어 나오는 ‘동물의 왕국’이라도 보면서 사회과학도로서의 시각이 넓이라고 학생들에게 권고한 한 겁니다. 예를 들어, 사자는 사냥을 할 때는 협력하지만 사냥한 것을 먹을 때는 서로 다툽니다. 반대로 아프리카 들개인 리카온은 사냥도 협력하고 먹이도 다투지 않고 먹으며 집으로 돌아와서 새끼나 보모들에게 먹은 것을 겨워 나누어줍니다. 또 사자나 늑대는 먹는 순서(pecking order)가 있지요. 그 차이를 무엇으로 설명할까요? 인간사회에서는 전쟁에서 동맹국들은 협조하지만 승리한 뒤 전리품을 두고는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 다투지요. 인간은 개인적 차원이나 집단적 차원에서 사자나 리카온 무리와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행동합니다. 동물의 행위에 대한 이해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질병으로 눈을 돌려 봅시다. 개미나 벌, 그리고 코끼리, 얼룩말, 누, 영양 등 초식동물을 제외하면 집단생활을 하는 포유류는 사자, 하이에나 그리고 리카온, 침팬지나 원숭이 등이 있습니다. 미주대륙의 회색 늑대도 있군요. 이들은 먹이를 먹은 뒤 피 묻은 입을 서로 핥아 피를 닦아줍니다. 위생적인 측면도 있지만 서로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사회적 행위입니다. 이 중 한 마리가 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 마리 리카온이 결핵에 걸리면 전체 무리에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고 그러면 20마리 30마리로 구성된 무리들은 전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무리들이 영역을 두고 싸우면 당연히 상대방을 물것이고, 또 무리 중 성적으로 성숙해진 수놈들이 무리에서 쫓겨나 다를 무리에 접근한다면, 등등으로.... 전염병은 순식간에 전파되겠지요. 인간이 이들에게 페니실린을 주는 것은 인간이 자연계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금기시됩니다. 그래서 야생세계에서의 수명은 동물원이나 애완용으로 기르는 동물에 비해 훨씬 짧습니다. 개나 고양이의 수명은 심장박동수로 계산하던데 인간의 7분의 1입니다. 인간 자연수명이 의학의 발전 이전 최대 50년인데 개나 고양이는 7년입니다. 집에서 기르면 15살까지 사는 놈들도 많지요? 소파에 누어서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인간의 보살핌으로 생명은 연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 의해 자연계에서 이들이 살아갈 영역은 줄어들고 또 에베레스트 산의 눈에서도 화약약품이 검출된다는 데, 그리고 오염된 물이나 공기를 통한 전염병이 점점 기승을 부릴 것인데 그러면 메가포나의 멸종은 당연하지 않은가요?
질병이란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역사는 질병과 의학의 경주라 할 것입니다. 질병은 인간을 공격하기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인간은 백신 개발하여 질병을 공격하면서 이를 퇴치하려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번 코로나19가 가장 진화한 바이러스라 하더군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숙주에 숨어들어 기생하면서 숙주에 큰 해를 주지 않고 장기간 살아 있으니 바이러스를 공격할 약이 들어올 시간이 늦어지고 그만큼 번식(reproduction) 시간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보통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면 열이 나거나 기침 등을 통해 곧 바로 그 정체가 들어나죠. 그런데 코로나19는 바이러스가 스텔스 같이 몸 안에 살며시 들어와 열이 오르지 않고 정상적인 체온을 유지한 채 즉 아무른 증상 없이 며칠을 지냅니다. 그동안 접촉을 통해 제3자에게 전염되지요. 이것은 바이러스가 인간의 공격을 피하면서 증식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죽으니 바이러스에게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지요. 그리고 재생식이라는 ‘생명체’로서의 임무를 충분히 수행한 뒤 정체를 드러내어 숙주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생을 마감하는 겁니다.
그래서 코로나19를 제5세대 바이러스라 한답니다. 1차 대전 중 처음 나타난 전투기는 쌍엽기, 3엽기 등이었으나 2차 대전의 시작과 함께 단엽기로 속도가 높아지더니 전쟁 말기에 독일에서 메셔 슈미트 Me262라는 제트기로 진화하죠. 이후 한국전에서 제트 전투기는 더욱 발전하여 공중전을 지배합니다. 그 최신 전투기가 월남전에서 대활약을 한 팬텀 F4이고, 그 후 F15, 16 그리고 스텔스 기능을 갖춘 F117 나이트호크로 발전합니다. 이제 최신예 전투기 F22 랩터가 나왔는데 이를 제 5세대 전투기라고 합니다. 코로나19도 비밀리에 숙주의 몸으로 들어오는 스텔스 기능까지 갖추었으니 제5세대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반도체의 발달도 비슷할 겁니다.
코로나19는 이런 의미에서 무서운 전염병입니다. 멀쩡한 사람과 몇 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조금 지나보니 내가 환자가 되어 있더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질병에 비해 그렇게 많은 생명을 앗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이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죽는 사람은 20만 명 전후일 겁니다. 인류 역사에서 유럽의 도시나 한 지역 인구의 절반을 죽인 14세기 중반의 페스트도 있고 도시화와 함께 불결해진 강물을 음료수 사용하여 수시로 창궐한 콜레라도 있습니다. 또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가져간 감기나 매독 등은 수천만 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이렇게 적은 것은 의학과의 경쟁에서 패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질병의 진화보다 의학적 대응이 빨랐다는 말입니다. 지난 150년 간 인간은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그 치료제를 계속 만들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의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가 발효음식과 미생물에 의한 오염을 규명하고 독일의 코흐(Robert Koch, 1843-1910)가 결핵균(1882), 콜레라균을 발견(1885)함으로써 전염병의 원인이 규명되고 대규모 창궐은 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어 종두, 페니실린, 아스피린 등의 개발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엄청나게 죽었습니다. 스페인 국왕이 걸렸다고 해서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진 이 질병은 여전히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른다는데 (아마도 1차 대전에 참전한 미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지만) 5천만이 죽었다고 합니다. 1차 대전 사망자를 내가 대학 때 처음 본 것이 8백만 이었는데 이제는 2천만이라 하지요. 스페인 독감은 그 두 배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건 페니실린이 나오기 이전이기 때문입니다. 1편에서 쓴 브론데 자매들도 모두 40을 넘기지 못합니다. (샬럿 1816-1855, 에밀리 1818-1848, 앤 1820-1849) 당시 폐병은 불치의 병이었으니까요. 존 키츠의 나이팅게일 송가(Ode to Nightingale) 첫 머리 ‘가슴이 아파오구나(My heart aches)’가 바로 이것이죠. 그도 26살에 폐병으로 가슴이 아파오고 정신이 멍해지고 숨이 가빠오다 죽습니다(1795-1921). 태종 이방원이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자 비가 왔고 기쁜 나머지 이 비를 맞은 뒤 (폐병으로) 죽었다는 야사가 담긴 태종우(太宗雨)도 있습니다. 비를 맞아 감기에 걸려 폐병으로 발전하면 치료제가 없었던 겁니다. 세조의 부스럼 병이나 효종의 등창도 지금은 페니실린 한방이면 나을 것인데 그 때는 속수무책이었지요. 처칠은 폐병에 걸렸으니 다행히 플레밍이 축출한 페니실린으로 목숨을 건지고 2차 대전의 승리에 기여합니다. 스페인 독감은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이전의 불치병이며 전쟁 중 전파가 빠르고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한 유럽과 미국에서 수천만 명을 죽인 겁니다.
인간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을까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는 현상이 질병을 극복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러나 바이러스도 계속 진화하여 스텔스 기능 이후 앞으로 어떤 기능을 장착할지 모릅니다. 인간이 바이러스와의 경쟁에서 이겨간다고 해도 분말을 통해 전염을 막기 위해 매일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한다면 암담하지 않은가요? 분말이란 침이 튀는 것인데 기침하는 모습에 현광물질을 쏘아 보면 침은 엄청나게 멀리까지 나갑니다. 2미터는 최소 거리입니다. 유럽에서 남자도 ‘앉아 쏴’가 대세인 것도 바로 오줌이 틔기는 범위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올 때 마다 그리고 그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매일 마스크를 끼고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간다면 나 같은 기저질환자에게는 끔찍하지 않은가요?
시야를 넓혀보면 지구에 70억 인간들이 산다는 게 문제입니다. 쥐 외에 이렇게 많은 포유동물이 살았던 적이 있었나요? 유럽인이 미주 대륙에 가기 전 미국 중부 평원에 버펄로는 6천만 마리 정도였다고 합니다. 1980년대 초 내가 뉴욕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가 밤이었는데 위에서 내려다 본 뉴욕의 야경은 휘황찬란하고 황홀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기분이 아닙니다. 지구표면을 덮고 있는 암 덩어리 같이 느껴집니다.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로 푸른 행성이란 지구표면을 암 세표가 덮고 퍼지는 기분입니다. 인간이 사라진 뒤 지구의 모습을 그린 다큐가 있더군요. 10-20년 내에 아스팔트는 갈라져 식물들의 싹이 트고 이들이 지구를 뒤덮고 동물원에서 튀어나온 짐승들이 다시 번창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인간이 자랑하는 고층 건물들은 100년 길어야 300년을 넘기지 못하더군요. 영화 ‘군함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그대로 두면 5천 뒤 모래에 묻혀버릴 겁니다. 이같이 인간이 파괴한 지구에서 인간이 질병과 경주하고 또 이긴다는 게 우습게 느껴지지 않은가요? 써놓고 보니 엉성하기 짝이 없는 긴 글이 되어버렸습니다.(20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