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7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 시 114; 출 14:19-31; 롬 14:1-12; 마 18:21-35
언제까지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장모님은 아들이 이상하다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모자간 심한 다툼이 불안을 야기하는가 봅니다. 아들의 기분이 좋을 때는 어떤 말을 해도 웃음으로 넘기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사소한 말에도 쏘아붙인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직도 쉬고 있나?” 이 한마디에 막말을 들었고, 걱정해주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이상하다며 도움을 청합니다. 혹시나 극단적 선택을 할까 염려된다는 것입니다. 여러 번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데, 한번은 그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집니다. “자형이 뭐라고 엄마에게 훈계합니까” 서로 쏘아붙이는 심한 다툼이 일고, 불안이 야기되는 등등의 여러 번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만 그 관계는 일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관계는 빠르게 회복되었다가 다시 싸우고 하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는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베드로의 의미심장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주님, 한 신도가 내게 죄를 지을 경우에,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수제자라 불리는 베드로의 질문이 의미심장하다는 것은 그의 질문이 그를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하되, 한두 번도 아닌 일곱 번이라도 할 만큼 넓은 마음을 가졌다는 자부심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이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과시 같은 느낌이 듭니다. 주님, 내가 이 정도 신앙을 가졌습니다. 주님, 저의 내공이 이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는 과시 같습니다. 베드로의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보다는 민망한 말을 듣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 순간 달아오르는 베드로의 붉은 얼굴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신앙은 결코 과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 같습니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하는 고차원의 영역입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용서는 신앙의 영역입니다. 이어지는 하늘나라 비유가 대변해 줍니다.
만 달란트 빚진 종이 왕과 셈을 합니다. 그가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몸과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합니다. 그 종이 엎드려서 무릎을 꿇어 애원하기를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자, 주인이 그 종을 가엾게 여겨 그를 놓아주고, 모든 빚을 삭쳐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우선 여기까지 보면, 하늘나라 비유가 정말 멋집니다. 무릎으로 애원했더니 모든 빚을 삭쳐 주는 것입니다. 셈의 비유이기에 셈을 하자면, 1달란트가 6천일 노동의 가치라고 할 때, 만 달란트는 계산이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아내와 자녀들이 평생 갚아도 어찌할 수 없는 빚입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대가 없이 용서해 주는 하늘나라입니다. 그가 이런 용서를 받았다면, 그의 여생은 어떠할까요? 아내와 자녀들까지 해방되었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모든 억눌림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앞날의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한 삶이 되었습니다. 이 기쁨을 어찌합니까? 이 기쁨은 주변으로 흘러 넘쳐날 것입니다.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이웃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용서입니다.
그런데 이 용서받은 종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그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찾아가서 멱살을 잡고 갚으라고 합니다. 그 동료 역시 자기처럼 무릎으로 애원하며 갚을 테니 참아 주기를 바라지만, 옥에 가둬버립니다. 여기서 1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의 가치라고 할 때, 100일 치 정도입니다. 적지 않은 빚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탕감받은 데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욕심에는 끝이 없기 때문일까요? 그를 용서하고 함께 잘 살 수 있을 텐데, 멱살을 잡고 옥에 가둬버린 결과는 그도 결국 다시 옥에 갇힐 뿐 아니라 삭쳐진 빚을 다시 떠안게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욕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한한 용서를 받았음에도 조그마한 용서도 하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에 들려주는 비유가 아닐까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용서 받음, 하나님의 죽으심에 대한 값없는 은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로마서 본문의 일부를 함께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230917 시 114; 출 14:19-31; 롬 14:1-12; 마 18:21-35
시 1141이스라엘이이집트에서 나올 때에,야곱의 집안이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에게서 떠나올 때에,2유다는 주의 성소가 되고,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다.3바다는 그들을 보고 도망 쳤고,요단강은 뒤로 물러났으며,4산들은 숫양처럼 뛰놀고 언덕들도 새끼양처럼 뛰놀았다.5바다야, 너는 어찌하여 도망을 치고,요단강아, 너는 어찌하여 뒤로 물러났느냐?6산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숫양처럼 뛰놀며, 언덕들아, 너희는 어찌하여 새끼양처럼 뛰놀았느냐?7땅아, 네 주님 앞에서 떨어라.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어라.8주님은 반석을 물웅덩이가 되게 하시며, 바위를 샘이 되게 하신다.
출 14:19-31
19이스라엘진 앞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천사가 진 뒤로 옮겨가자, 진 앞에 있던 구름기둥도 진 뒤로 옮겨가서,
20이집트진과이스라엘진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그 구름이이집트사람들이 있는 쪽은 어둡게 하고,이스라엘사람들이 있는 쪽은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밤새도록 양 쪽이 서로 가까이 갈 수 없었다.21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밀었다. 주께서 밤새도록 강한 동풍으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내시니, 바다가 말라서 바닥이 드러났다. 바닷물이 갈라지고,22이스라엘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다. 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었다.23뒤이어이집트사람들이 쫓아왔다.바로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 모두이스라엘백성의 뒤를 쫓아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왔다.24새벽녘이 되어, 주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에서이집트진을 내려다 보시고,이집트진을 혼란 속에 빠뜨리셨다.25주께서2)병거의 바퀴를 벗기셔서 전진하기 어렵게 만드시니,이집트사람들은 '이스라엘사람들을 쫓지 말고 되돌아가자. 그들의 주가 그들 편이 되어 우리이집트사람과 싸운다!' 하고 외쳤다.26주께서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바다 위로 너의 팔을 내밀어라. 그러면 바닷물이이집트사람과 그 병거와 기병 쪽으로 다시 흐를 것이다."27모세가 바다 위로 팔을 내미니, 새벽녘에 바닷물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이집트사람들이 되돌아오는 물결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주께서이집트사람들을 바다 한가운데 빠뜨리셨다.28이렇게 물이 다시 돌아와서 병거와 기병을 뒤덮어 버렸다. 그래서이스라엘백성의 뒤를 따라 바다로 들어간바로의 모든 군대는,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29이스라엘자손은 바다 한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으며 지나갔는데 바닷물이 좌우에서 그들을 가리는 벽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30바로 그 날, 주께서이스라엘을이집트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셨고,이스라엘은 바닷가에 널려 있는이집트사람들의 주검을 보게 되었다.
31이스라엘은이집트를 치신 주의 크신 권능을 보고 주를 두려워하고, 주와 주의 종모세를 믿었다.
롬 14:1-12
1여러분은1)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을 시비거리로 삼지 마십시오.2어떤 이는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약한 이는 채소만 먹습니다.3먹는 이는 먹지 않는 이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이는 먹는 이를 비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셨습니다.42)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3)주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5또 어떤 이는 이 날이 저 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6어떤 날을 더 존중히 여기는 이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요, 먹는 이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며, 먹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먹지 않는 이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7우리 가운데는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이도 없고, 또 자기만을 위하여 죽는 이도 없습니다.8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9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려고 하신 것입니다.10그런데 어찌하여4)우리는5)형제나 자매를 비판합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11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6)"주께서 말씀을 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입이 나를 하나님으로 고백할 것이다."12그러므로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마 18:21-35
21그 때에베드로가 다가와서예수께 말하였다. "주님,6)한 신도가 내게 죄를 지을 경우에,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22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8)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23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가리려고 하는 어떤 왕에 비길 수 있다.
24왕이 셈을 가리기 시작하니, 만9)달란트빚진 종 하나가 왕 앞에 끌려왔다.25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몸과 아내와 자녀들과 그 밖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26그랬더니, 그 종이 엎드려서 무릎을 꿇어 애원하기를 '참아 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였다.27주인은 그 종을 가엾게 여겨, 그를 놓아 주고, 빚을 삭쳐 주었다.28그러나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10)데나리온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 붙들어서 멱살을 잡고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29그 동료는 엎드려 간청하기를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였다.30그러나 그는 들어주려 하지 않고, 가서, 그 동료를 감옥에 가두고,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하였다.31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딱하게 여겨서, 가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일렀다.32그러자 주인은 그 종을 불러다 놓고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간청하기에, 내가 네게 그 빚을 다 삭쳐 주었다.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34주인이 노하여, 그를 형리에게 넘겨 주고,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하였다.35너희가 각각 진심으로11)형제나 자매를 용서하여 주지 않으면, 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