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 병 원인은 인색한 황소 탓
「두리 봉」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였다. 저 「두리 봉」너머로는 도고C.C. 가 70년대 초부터 「가등 거리」란 동네에서 개발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후에 이곳에 골프를 치러 자주 오셨던 박대통령의 눈을 속이려고 우리 집의 한쪽기와 색갈이 파란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골프장 의 윗동네에 위치하여 오른 쪽 기와가 골프장에서 잘 보였다. 파란 색을 칠한 것은 Variety를 늘리려고 하였다기보다는 새로 올린 기와집임을 보여주어, 당시 농촌에 불이 붙기 시작하였던 “새마을 운동”이 이만큼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대통령에게 설명해 주기 위함이었다.
하루는 내가 시골인 죽산 리에 가보니 기와 색갈이 달랐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물어보니 그런 이야기인지라, 서울에 가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사진을 찍다가 집안 형님한테 들켰다. 사진을 찍는 이유가 그렇다는 것을 안, 집안 형님은 나를 극구 말렸다. 그래 봐야, 권가 집성 촌인 우리 동내나 개인적으로 우리 집에 득이 될 것이 없다는 논리였다.
사실 이것이 당시에 지방관서를 대표하던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생긴 실례이었다. 한번 잘 못 보이면 다음 번은 기약할 수가 없었고, 그 부락은 모든 면에서 불리하였다. 그래서 내 계급이 너무 낮고 영향력이 미미하여 생각해보면, 당시 옳다고 생각한 것을 이루지 못한 첫 케이스였다.
참고로「두리 봉」옆으로는 저수지가 있고 마을 뒤에는 기차 길이 달리고 있었다. 죽산(竹山) 리. 골프장이 있지만 생각해 보면 흉악한 시골이었다. 전기 불이 들어오기까지는 순위가 아직도 멀었고 기찻길은 언덕을 올라오는 길이었기 때문에, 쉬어가기 위해 간이역 (簡易驛)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였다.
열차의 간이역이란 외길 기차 길에다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승강장만을 만들어 놓았고 역사도 없는 그런 역이었다. 그야말로 차장이 모든 것을 다하는 역이었다. 지금은 순천 향 대학에 손님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에 전철을 포함하여 기차 길도 순천 향 쪽으로 났고, 폐역이 되었지만 앞뒤로 5-6km는 가야 신창(新昌) 역과 선장 역 (仙掌驛)이 나오는 그런 촌 동네이다. 선장 역으로 가는 중간에 골프장이 나오고, 도고 온천을 지나 가야 선장 역 (仙掌驛)이 나온다. 그야말로 완전한 시골이다.
이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50년이 넘었다. 나는 외교관이란 명색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외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정부를 2007년에 은퇴하였다. 촛불 시위가 난 것이 20008년이었다. 그 원인이 어느 방송국의 의도 때문이었다고 밝혀졌지만, 시골에 갔다가 “소의 다리에 병이 있어” 못 일어나는 소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는데,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광우 병의 병인(病因)을 지적한 집안 형님의 냉혹한 진단이었다.
우리 권가 집성 촌에도 목장을 하는 형님이 있었다. 젓 소를 키우는 것이다. 지붕 한쪽만 색을 칠해, 박 대통령의 눈을 속이려던 기관을 고발하려던 나를 극구 말린 바로 그 형님이었다. 그런데 목장을 하던 이 형님이 망하였다. “광우 병”이 촛불시위마냥 우리나라를 덮친 것이다.
물론 광우 병 자체가 인간에 직접적인 효과를 미치지는 않는다고 독일, 불란서 등 유럽에서는 통용되어 있었다. 과학적으로는 말이다. 만약 직접적인 효과를 미친다면, 광우 병의 원산지인 영국에서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형님은 능글맞게 실실 웃고만 있었다. 전국에 있는 축산 과와 수의과 학생들이 우리 시골에 몰려 들었다. “어떻게 하여 한국에서 광우 병이 발생하였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 형님에게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사료를 뭘 썼느냐? 매년 소들의 검사를 하였느냐?” 등등. 그런데 우리 집안 형님의 대꾸는 여전하였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공부 잘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여학생들이다. 우리 집에 몰려든 것도 대학 2-3학년이 주축을 이루었고, 축산학과와 수의학과가 대부분이었다. 예쁜 여학생들이었다. 꿈속이지만 막 피어나고 있었다.
「우리 목장에서는 말이지요. 하루에 두 번씩 젖소의 젖을 빨아 주거든요! 학생들 같다면 어때요? 젓을 빨면 흥분합니까? 안 합니까? 그런데 정작 숫 놈 황소는 일 년에 딱 한번 넣어주거든요. 미치지 않겠어요?」
(권영민/현 순천향 대학 초빙교수/전 주 독일 대사
광우 병 원인은 인색한 황소 탓
「두리 봉」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였다. 저 「두리 봉」너머로는 도고C.C. 가 70년대 초부터 「가등 거리」란 동네에서 개발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후에 이곳에 골프를 치러 자주 오셨던 박대통령의 눈을 속이려고 우리 집의 한쪽기와 색갈이 파란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골프장 의 윗동네에 위치하여 오른 쪽 기와가 골프장에서 잘 보였다. 파란 색을 칠한 것은 Variety를 늘리려고 하였다기보다는 새로 올린 기와집임을 보여주어, 당시 농촌에 불이 붙기 시작하였던 “새마을 운동”이 이만큼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대통령에게 설명해 주기 위함이었다.
하루는 내가 시골인 죽산 리에 가보니 기와 색갈이 달랐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물어보니 그런 이야기인지라, 서울에 가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사진을 찍다가 집안 형님한테 들켰다. 사진을 찍는 이유가 그렇다는 것을 안, 집안 형님은 나를 극구 말렸다. 그래 봐야, 권가 집성 촌인 우리 동내나 개인적으로 우리 집에 득이 될 것이 없다는 논리였다.
사실 이것이 당시에 지방관서를 대표하던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생긴 실례이었다. 한번 잘 못 보이면 다음 번은 기약할 수가 없었고, 그 부락은 모든 면에서 불리하였다. 그래서 내 계급이 너무 낮고 영향력이 미미하여 생각해보면, 당시 옳다고 생각한 것을 이루지 못한 첫 케이스였다.
참고로「두리 봉」옆으로는 저수지가 있고 마을 뒤에는 기차 길이 달리고 있었다. 죽산(竹山) 리. 골프장이 있지만 생각해 보면 흉악한 시골이었다. 전기 불이 들어오기까지는 순위가 아직도 멀었고 기찻길은 언덕을 올라오는 길이었기 때문에, 쉬어가기 위해 간이역 (簡易驛)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였다.
열차의 간이역이란 외길 기차 길에다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승강장만을 만들어 놓았고 역사도 없는 그런 역이었다. 그야말로 차장이 모든 것을 다하는 역이었다. 지금은 순천 향 대학에 손님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에 전철을 포함하여 기차 길도 순천 향 쪽으로 났고, 폐역이 되었지만 앞뒤로 5-6km는 가야 신창(新昌) 역과 선장 역 (仙掌驛)이 나오는 그런 촌 동네이다. 선장 역으로 가는 중간에 골프장이 나오고, 도고 온천을 지나 가야 선장 역 (仙掌驛)이 나온다. 그야말로 완전한 시골이다.
이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50년이 넘었다. 나는 외교관이란 명색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외국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정부를 2007년에 은퇴하였다. 촛불 시위가 난 것이 20008년이었다. 그 원인이 어느 방송국의 의도 때문이었다고 밝혀졌지만, 시골에 갔다가 “소의 다리에 병이 있어” 못 일어나는 소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는데,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광우 병의 병인(病因)을 지적한 집안 형님의 냉혹한 진단이었다.
우리 권가 집성 촌에도 목장을 하는 형님이 있었다. 젓 소를 키우는 것이다. 지붕 한쪽만 색을 칠해, 박 대통령의 눈을 속이려던 기관을 고발하려던 나를 극구 말린 바로 그 형님이었다. 그런데 목장을 하던 이 형님이 망하였다. “광우 병”이 촛불시위마냥 우리나라를 덮친 것이다.
물론 광우 병 자체가 인간에 직접적인 효과를 미치지는 않는다고 독일, 불란서 등 유럽에서는 통용되어 있었다. 과학적으로는 말이다. 만약 직접적인 효과를 미친다면, 광우 병의 원산지인 영국에서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형님은 능글맞게 실실 웃고만 있었다. 전국에 있는 축산 과와 수의과 학생들이 우리 시골에 몰려 들었다. “어떻게 하여 한국에서 광우 병이 발생하였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안 형님에게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사료를 뭘 썼느냐? 매년 소들의 검사를 하였느냐?” 등등. 그런데 우리 집안 형님의 대꾸는 여전하였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공부 잘 한다는 학생들은 대부분 여학생들이다. 우리 집에 몰려든 것도 대학 2-3학년이 주축을 이루었고, 축산학과와 수의학과가 대부분이었다. 예쁜 여학생들이었다. 꿈속이지만 막 피어나고 있었다.
「우리 목장에서는 말이지요. 하루에 두 번씩 젖소의 젖을 빨아 주거든요! 학생들 같다면 어때요? 젓을 빨면 흥분합니까? 안 합니까? 그런데 정작 숫 놈 황소는 일 년에 딱 한번 넣어주거든요. 미치지 않겠어요?」
(권영민/현 순천향 대학 초빙교수/전 주 독일 대사, 주 덴마크 대사, 주 놀웨이 대사, 주 애틀랜타 총영사/저서: 자네 출세했네, 권대사, 자네 큰 실수 했네, 베룰린 맑은 하늘에 그림을 그리자 등/서울대 독문과 졸/아산 産)
첫댓글 대사님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포항 색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