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1. 영원한 인생의 맞수, 엄마와 딸
한 여자가 있다.
믿음직한 남편과 여섯살박이 아들,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와 함께 단촐한 가족을 꾸리고 사는 평범한 여자.
그리고 또 한 여자가 있다.
존 웨인보다는 험프리 보가트를 더 좋아하고, 바퀴벌레가 무섭다고 엄살을 부리며 한밤중에 딸에게 전화를 걸고, 밍크코트를 사달라고 딸을 졸라대는 철없는 엄마.
그녀는 앞서 말한 평범한 여자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엄마이다. 남편에게 사랑받아 본 적도 없고, 자식들에게도 외면당하는 엄마에게 남은 것이라곤 늙고 병든 몸뚱이와 약봉지 뿐이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 옆에서 머릿결에 좋다며 마요네즈를 덕지덕지 바르는 모습과, 바지에 변을 지린 아버지를 구박하던 모습을 보는 순간, 엄마에 대한 동정이 환멸로 바뀌면서 깊어져 간 엄마와 딸의 갈등…
좁은 아파트 공간에서 벌어지는 조금은 유별난 엄마와 이미 그런 엄마를 마음속에서 밀어 내버린 딸의 미묘한 심리 관계를 그린 영화 \'마요네즈\'의 이야기이다.
마요네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우리네의 전통적인 모성상에서 벗어난다. 이에 딸은 \"다른 엄마들은 안그런다\", \"엄마가 역겹다\"고 악을 쓴다. 결정타를 날리는 엄마의 대꾸 한마디. \"엄마도 여자고 사람이야!\"
Round2. 인터넷에 파출소장 엄마를 고발하다!
얼마전, 인터넷과 PC통신 게시판에는 \'우리 엄마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 왔다.
한 여대생 딸이 현직 파출소장인 자신의 어머니의 실명까지 밝히며 가정에 대한 무책임과 불륜을 인터넷에 폭로해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딸의 공개고발 내용의 글은 네티즌 사이에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양분되었다. 딸의 행동에 대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론에서부터, \'어떻게 자식이 인륜을 저버리고 부모를 고발할 수 있는가\' 등등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고발장에서 딸은 엄마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어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이며 엄마이며 아내이며 모든 국민의 선망의 대상인 여자파출소장으로서 자식을 버리고 남편을 버리고 가정을 철저히 파괴하고 인륜을 깨버리는, 그래서 자신의 안락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반사회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딸의 고발에 대해 엄마는 \"스무해 넘게 살아왔지만 남편의 가정폭력과 의처증 때문에 더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며 \"파출소장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 그 한 여자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채 오직 딸하나 잘 키워보겠다고 20년을 살다가 자식들 성인으로 키워놓고 이제는 자기 자신을 되찾겠다고 하는 것이 도의적으로나 사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호소했다.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딸과, 개인의 존중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엄마 사이의 가치관의 충돌. 과연 골 깊은 엄마와 딸의 갈등은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Round.3 \"우린 엄마와 딸이잖아요.\"
옛말에 이런말이 있지 않던가… \'시간이 약\'이라고…
모녀간의, 세대간의 전쟁에 화해를 준비해주는 것 또한 시간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던 날, 14년전 월북했던 어머니가 북측 방문단장의 자격으로 돌아왔다. 부모의 월북이후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으며 \'월북자의 자식\'이란 멍에를 지고 살아왔을 딸에게 14년만에 찾아온 어머니는 미안함의 표현이었을까, 이렇게 말했다. \"늙지도 않았구나.\"
부모의 월북으로 모진 세월을 견뎌내야만 했던 딸의 눈길에서도 원망의 감정은 찾을 수 없었다.
남한에 살던 딸 순애씨과 북에서 온 엄마 류미영씨는 서로 부둥켜 안고 오열하며 한맺힌 지난 세월을 화해하고 용서했다.
\"이런 좋은 날 옛날 얘기해서 뭐해요. 세월이 많이 지났고 우린 엄마와 딸이잖아요\"
Final Round. \'그래, 너도 한번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아봐라…\'
자식과 남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희생을 강요받아온 어머니를 보면서 두 주먹 불끈쥐고 딸들은 맹세한다. \"난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을꺼야~\"
하지만 한맺힌 각오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문득 자신에게서 비춰지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친정엄마의 이 한마디가 뼈에 사무친다.
\'그래, 너도 한번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아봐라…\'
그제서야 딸은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게되고, 모녀의 갈등관계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눈물로 녹아내리게 되는 것이다. 흔히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지만, 진정 \'모녀싸움\' 이야말로 \'칼로 물베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