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한복음 21:18-23 95 350 339 595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성공) 또는 불행(실패)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느끼게 됩니다. 어릴 때 함께 자란 사람이 지금 나보다 잘되어 있으면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 가난하고 공부도 못한 사람이 지금은 나보다 잘된 것을 보고 시기합니다.
예배 시간에 늦게 왔을 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내보다 더 늦게 오는 사람이 있을 때 마치 속죄함을 받은 의인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갈릴리 바닷가의 작은 어촌에 대대로 살아온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고 함께 자랐습니다.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와 고기 잡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고, 요한은 형 아고보가 그물 깁다가 부름을 받아 네 사람이 함께 제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제자들보다 예수님을 잘 섬기고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와 요한을 좋아하셨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서로 경쟁적인 관계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릴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셨고,(눅8:51) 변화산에도 베드로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눅9:20)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도 다른 제자들은 멀리 두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고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26:38)고 하시며 자신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라고 할 정도로 언제나 앞장섰지만, 자주 실수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책망도 많이 들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므로 칭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는 무서운 책망도 들었습니다.(마16:13-24)
예수님을 잡으려는 군인들에게 베드로는 칼을 빼어 치기까지 하는 용기가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결박되어 끌려가실 때는 멀찍이 따라갔습니다.(눅22:54)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앞에 심문을 받을 때, 요한은 대제사장 집 뜰에 들어갔지만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습니다.
요한이 나가서 문지키는 여자에게 말해 베드로를 들어오게 했습니다.(요18:16) 요한의 도움으로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마당에 들어왔지만 종들 사이에 끼여 불을 쬐다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을 하였습니다.(요18:1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베드로는 제자들과 함께 도망갔지만, 요한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밑에 서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어머니를 부탁하시므로 그때부터 요한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요19:27)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듣고 베드로가 먼저 달려갔지만, 무덤에는 요한이 먼저 왔습니다. 그러나 무덤 안에는 베드로가 먼저 들어갔습니다.(요20:4-8) 이처럼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경쟁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밤새도록 수고해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요한이 ‘주님이시다’라고 소리쳤고,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 내려 예수님에게로 달려왔고, 요한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왔습니다.(요21:7)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고, 베드로는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에게 다시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18)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켜 주신 것(19)이란 말씀은 베드로가 순교를 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초대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 당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순교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말씀을 하시고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제자들도 함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 바로 뒤를 따르던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를 보았습니다.(20) ‘그 제자’는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라고 말하므로 ‘그 제자’는 바로 요한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은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고 ‘주께서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므로 다른 제자들보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함께 예수님을 따랐지만 특별히 베드로는 요한을 지목하여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다는 것은, 요한도 자신처럼 순교하게 되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요한도 자기 처럼 순교 당하게 될 것인가를 알고자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의 관계는 매우 친밀하면서도 경쟁적인 관계였습니다. 네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네가 잘 되느냐? 내가 잘 되느냐? 하는 심리적인 경쟁의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이 순교를 당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면 요한도 나와 같이 순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냐는 경쟁적인 질문으로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아셨던가 봅니다. 그래서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22)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순교하지 않는다고 할지라고 네게 무슨 상관이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순교를 하든 말든 관심 가지지 말고 네게 맡은 일이나 충실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의 믿음과 비교하며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 곧 네가 맡은 일이나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23절을 보면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라는 말씀을 베드로가 잘못 이해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요한)는 죽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 숨겨진 요한에 대한 경쟁심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자기 생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의 경쟁을 하게 되면, 말씀을 들을 때도 말씀을 내 생각대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듣지 않고 저 사람을 보고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시기가 있으면 순수한 진리의 말씀까지도 내 말씀으로 듣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오해한 것을 이 사건을 기록한 요한은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23) 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오해를 올바르게 가르쳐 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라는 말씀은 설령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요한을 죽지 않고 살아있을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순교하는 것은 주님 앞에 최고의 믿음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교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순교하는 믿음보다 못한 믿음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베드로가 요한의 죽음(순교)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보다 요한을 더 사랑하신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요한은 자기처럼 실수도 하지 않았고, 책망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보다 믿음이 더 좋은 것으로 생각하며 시기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에게 어떻게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시며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2) 베드로의 잘못된 것을 책망하시고 네가 맡은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베드로는 요한을 시기하지 않았고 함께 예수님을 잘 따르고 섬겼다는 것을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령 강림하심으로 성령 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은 더불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나면서 걷지 못한 자를 일어서게 하여 고쳐주었습니다.(행3:6) 계속 베드로와 요한은 함께 공회 앞에 서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행3:13)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다 잡혀 목베임을 당하여 순교했습니다. (크바디스 영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지금도 로마에는 베드로가 갇혔던 감옥 앞 마당에 참수형을 당했던 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순교를 했지만 요한은 백세 가까이 살면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람도 살 수 없는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 주님께서 계시하셔서 천국과 지옥을 보여 주시는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에서 내세의 모든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요한은 순교하지 않고,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백세 가까이 살다가 자연사하였습니다. 지금의 터키, 에베소에는 마리아가 살았던 집과 요한의 무덤이 있습니다.
믿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는 각각 다른 사명을 맡았기 때문에 믿음이 같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따라 충성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믿음에 따라 충성하다가 부르실 때 주의 품에 안기 위로 받게 됩니다.
믿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나만을 보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의인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의인입니다. 저 사람보다 내가 죄를 덜 지었기 때문에 내가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 사람보다 내가 잘못해서 죄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관계가 바른 신앙입니다.
핸리 나웬은 ‘인간의 삶의 주된 동기는 경쟁심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불행의 원인이 될 수 있고 행복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남의 것보다 내 것이 더 좋아 보여질 때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남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잘되는 것 같다고 생각될 때 오는 마음의 고통이 괴로움 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보았을 때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는 것보다 세상에 더 아름다운 일은 없지만 그렇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나만을 보는 것입니다. 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요 의인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의인입니다. 저 사람보다 내가 죄를 덜 지었기 때문에 내가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 사람보다 내가 잘못해서 죄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관계가 바른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떠하든 나는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 믿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따릅시다. 그래서 주님 오시는 날 주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