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인간의 음성〉의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이충이]

<월간조선 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2015년 1월호>

<인간의 음성〉의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朴興津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후회하지 않는 삶은 양심대로 사는 것”
“슬픈 주름살보다는 행복한 주름살 갖고 싶어”

    

소피아 로렌이 80세의 나이로 주연한 단편영화 〈인간의 음성〉.

       

과거 모국인 이탈리아와 할리우드에서 맹활약한 연기파이자 육체파 수퍼스타 소피아 로렌(Sophia Loren・80)과의 인터뷰가 할리우드에 있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 자리는 로렌의 아들 에도아르도 폰티가 감독하고 로렌이 주연한 26분짜리 단편영화 〈인간의 음성〉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했다. 로렌이 최근 출판한 자서전 《어제, 오늘, 내일: 나의 인생》(이 제목은 비토리아 데 시카가 감독하고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공연한 1964년 작 동명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딴 것이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가슴 윗부분이 들여다보이는 셔츠 위에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로렌은 나이가 있어 젊은 시절만큼의 아름다움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위풍당당했다. 그러나 터질 것 같은 육체미를 뽐내던 로렌의 주름진 얼굴과 피부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적금발의 긴 머리와 큰 눈에 옅은 갈색 선글라스를 낀 로렌은 악센트를 써 가면서 질문에 유머와 위트를 섞어 솔직하고 진지하게 답했는데, 생의 예지가 가득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로렌은 현재 스위스의 제네바에 살고 있다.
 
  —인생 80을 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한 것이라도 있는지요.
 
  “왜 후회한 일이 없겠습니까. 살면서 너무나 많은 일을 겪다 보면 후회도 하게 마련이나, 난 어렸을 때 부터 언제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애썼습니다. 그것은 결국 양심대로 사는 것이지요.”
 
  —나이를 먹은 이제는 과거보다 현명해졌다고 생각하나요.
 
  “난 늘 내 감정에 따라 살아 왔기 때문에 현명하진 못해요. 그러나 난 전후의 이탈리아에서 문제가 많고 어려운 가정환경하에서 고생을 하며 자라 그 같은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그 같은 경험을 보석처럼 중하게 여기는데 나이를 먹어서도 그때의 경험에서 삶의 지혜를 빌려다 쓰지요.”
 
 
  “아이들로부터 단순함을 배우고 있어”
 

소피아 로렌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 준 〈두 여인〉.

  —지금 당신은 무엇을 추구하며 기대합니까.
 
  “난 이제 내가 과거 원했던 것을 성취했기에 평화로운 삶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가족과 아름다운 자식들과 손주들이 있으니 뭘 더 바라겠습니까. 단 하나 유감이라면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 꿈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어요.”
 
  —삶이 사랑에 관해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지요.
 
  “사랑이란 인생의 모든 면의 기본입니다. 그것 없이 무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난 사랑 없이 살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것은 모두가 늘 찾는 것이며 또 언제나 변함이 없는 것이지요.”
 
  —명성과 성공은 당신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지녔습니까.
 
  “난 명성과 성공이 내게 찾아오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시골서 로마로 갔을 때 그저 작은 것부터 시작하리라 다짐했었지요. 〈쿼바디스〉의 엑스트라부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갔어요. 내가 성공한 큰 이유는 나와 같은 나폴리 출신의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가 나를 나폴리가 무대인 영화에 썼기 때문입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점차 무게 있는 역을 맡게 됐습니다. 난 데 시카와 20년을 함께 일했어요. 그는 나의 꿈을 이뤄 준 사람이지요.”
 
  —아들 감독과 다른 감독들과의 차이라도 있었는지요.
 
  “감독은 비교할 수 없어요. 무슨 영화를 만드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지요. 장 콕토의 연극이 원작인 〈인간의 음성〉은 나이 먹은 여자의 과거에 대한 회상이에요. 난 늘 이 역을 하고 싶었지만 나이가 안 돼 못했지요. 2년 전에야 작품의 여인과 나이가 비슷해 만들었습니다. 꿈의 실현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 아직도 영화에 대한 정열을 지니고 있습니까.
 
  “아직도가 아닙니다. 난 늘 열정을 갖고 있어요.”
 
  —당신의 손주들로부터 무언가 배우는 것이라도 있는지요.
 
  “그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인지 난 그들로부터 단순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있을 때면 집에 생기가 돌아요.”
 
  —당신이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두 여인〉에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원래 그 역은 안나 마냐니에게 제공됐고 난 그의 딸 역을 맡을 예정이었는데 마냐니가 역을 거절하는 바람에 내가 맡게 된 것입니다. 정말로 좋은 역으로 역시 데 시카가 감독했지요.”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냅니까.
 
  “난 육체적 운동을 싫어합니다.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이런저런 할 일들을 하지요. 난 매사에 정확한 것을 좋아합니다. 이젠 마치 아이들처럼 무엇이든지 내가 하고픈 대로 할 수가 있어 좋습니다.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난 쉬는 것을 좋아하지요.”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당신에게 그런 힘과 열정과 추진력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나도 모르겠어요.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이것이 내 인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요. 난 아직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열성이 있어요. 난 늘 그랬습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지요.”
 
 
  “건강의 비결은 많이 안 먹는 것”
 
  —요즘 미국영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시상 시즌이 오면 영화들이 집으로 배달되는데 어떤 것은 좋고 또 어떤 것은 별로예요. 난 음악과 뮤지컬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인〉에도 나왔지요. 난 이 영화를 몹시 좋아합니다. 특히 공연한 대니얼 데이-루이스 때문에 더 좋아하지요.”
 
  —얼마 전에 미 영화학회(AFI)가 주는 생애업적상을 받은 소감은 어떤가요.
 
  “아름다웠어요. 마치 4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는데 유감인 것은 모두들 셀피를 찍으려고 하는 것이었어요. 난 그때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는데 아주 성가시더군요. 나는 원래 그런 행사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번엔 정말 즐겼습니다.”
 
  —당신을 사모하던 그 멋진 사람들이 이젠 여기에 없는데 그들을 생각하면 고독해지는지요.
 
  “참 슬퍼요. 자기에게 매우 귀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요. 내 남편(명 제작자 칼로 폰티)이 죽었을 때가 그랬어요. 그러나 그는 아직도 나와 함께 있어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비록 사망했다 할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이지요.”
 
  —케리 그랜트가 당신에게 구혼했을 때 왜 거절했습니까.
 
  “그가 내게 구혼하진 않았어요. 그와는 나의 첫 미국영화인 〈자랑과 정열〉에서 처음 만났어요. 프랭크 시내트라도 나왔지요. 그랜트는 정말로 멋있고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린 아주 좋은 관계였는데 난 23세였고 그랜트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었지요. 나이 23세엔 사랑이 뭔지도 잘 몰라요. 그 후 난 이탈리아에서 칼로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요. 어쨌든 그랜트와 나는 오래 관계를 유지했어요. 우린 좋은 우정을 지키면서 편지와 전화로 교통했지요. 그랜트의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린 아름다운 우정을 지켰어요.”
 
  —아들과 손주들은 미국에 살고 당신은 스위스에서 혼자 사는데 외롭지 않나요.
 
  “참 유감이에요. 그러나 그들은 자기 삶이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손주들 자라는 것 못 봐 속상하고, 그래서 때론 울기도 해요.”
 
  —둘째 아들 칼로는 무얼 합니까.
  
  “지휘자로 세계를 돌며 활동합니다.”
 
  —건강의 비결은 무엇인지요.
 
  “많이 안 먹어요. 난 파스타를 좋아하지만 체중을 적당히 유지하기 위해 과식은 안 합니다.”
 
 
  “뉴스 외엔 재미없어 TV 잘 안봐”

  —스위스에서의 생활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작은 마을에 살아요. 난 외출을 잘 안 합니다. 가능하면 집에서 시간을 보내지요. 아침 7시 반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돌아와선 전화로 미국에 있는 아들과 손주들과 통화합니다. 매우 단순한 일상으로 책과 각본을 많이 읽습니다. 이 자서전 쓰는 데 1년이나 걸렸지요. 누군가 날 저녁에 초대해도 난 거의 응하지 않습니다. 공원에 가면 사람들이 나보고 셀피 찍자고 요구하는데 다 들어줍니다.”
 
  —스위스에 친구가 있습니까. 스위스 TV로 뉴스를 봅니까.
 
  “이탈리안을 비롯해 다른 국적의 친구들이 많아요. 이탈리안 TV를 보고 세계 정세를 알기 위해 CNN을 봅니다. 뉴스 외엔 TV를 잘 안 봅니다. 별 재미가 없어요.”
 
  —할리우드에서의 생활은 어땠는지요.
 
  “아주 즐겼습니다. 조지 큐커와 찰리 채플린 같은 훌륭한 감독들과 일한 것은 정말로 멋있는 일이었지요. 특히 채플린과 일한 것에 대해선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지요.”
 
  —아시아영화에서 일할 생각이 있는지요.
 
  “당장은 없지만 나는 새 장소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럴 생각입니다. 난 세계의 구석구석과 연결되고 싶습니다.”
 
  —당신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 가까웠는지요.
 
  “아주 가까웠지요. 내가 이렇게 된 근원은 어머니 때문입니다.”
 
  —감독인 아들과 함께 일하는 기분이 어땠습니까.
 
  “굉장히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해서 어떤 때는 기분을 뒤집어 놓기도 했어요. 하기에 매우 힘들고 어려운 역이어서 지칠 때도 많았지만 우린 서로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곤란을 극복했습니다.”
 
  —혹시 미를 위해 당신 모습을 고쳐 볼 생각이라도 한 적이 있는지요.
 
  “사람은 태어나서 나이를 먹게 마련인데 뭘 고치려고 합니까. 젊어 보이려고 성형수술을 하다간 괴물이 되는 수가 있어요. 주름살이 있지만 난 슬픈 주름살보다는 행복한 주름살을 갖고 싶어요. 성형수술을 하면 영원히 슬픈 주름살을 갖게 돼요.”
 
  —책을 쓰는 과정이 어땠습니까.
 
  “우연히 쓰게 됐습니다. 어느 날 집을 정리하다가 30년간 쓴 일기를 발견했지요. 그것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 안의 많은 내용들에 모두가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일기의 매우 사적인 내용은 모두 감췄지요. 책 다 쓰고 나서 일기를 불태웠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은 그 누구도 모를 것입니다.”
 
  —편지를 무얼로 씁니까.
 
  “펜으로 종이에 씁니다. 난 컴맹이거든요. 내 생일에 팬들이 카드를 보내 오면 난 일일이 친필로 글을 써 답신하지요. 그리고 컴퓨터로 답한다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