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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스크랩 048_경남 창녕군 창녕읍 관룡사
無盡藏 추천 0 조회 53 12.02.26 15:5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시간이 점점 촉박해온다. 관룡사를 둘렀다 화왕산에 오르려면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아 고택은 생략하고 옥천 계곡을 올랐다. 계성에서 우회전 계성천을 오르다 옥천 저수지를 지나 조금 오르니 관광안내소가 자리한다. 이곳에서 좌측계곡으로 오르면 화왕산성가는길이고 우측으로 오르면 관룡사 오르는 길이다. 이곳은 하천을 인위적으로 돌을 쌓아 간이 수리시설을 만들고 있다. 보기는 좋을지 몰라도 아무래도 자연적으로 놓아둔 것만은 못한 것 같은 마음이다. 어느덧 주차장에 이른다.

관룡사는 신라시대 8대 사찰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창건기록은 아직 못찾았다고 전한다. 첫 번째 올라 대하는 것이 석문. 이문이 일주문일 것이다. 지난번 관촉사 문이 그러하였듯이 높이가 어른은 구부리고 들어가야 할 정도이다. 이문은 게다가 넓이까지 좁다. 경건하고 낮은 자세로 들어오라는 뜻일테다. 돌계단을 오르며 속세를 잊고 문을 지나며 마음을 깨끗이 하고 뒤돌아보며 오르면 바로 관룡사 마당에 도달한다.

[관룡사 입구 석문(일주문)...]

관룡사로 오르는 돌담길에는 축성시기를 알 수 없는 석문이 하나 있다. 사실상 관룡사의 일주문으로 불리는 이 문은 자연석 축대를 쌓아 올려 상부를 평평하게 다듬은 다음 화강석을 올려서 지붕을 올린 아담한 석문이다. 폭 118㎝, 높이 210㎝에 한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조그마한 문으로, 좌우로 관룡사 가람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조성시기는 17세기 명부전과 칠성각이 조성될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관룡산의 진산인 화왕산 산성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이외 석문 옆에는 4기의 비가 있다. 1938년에 세워진 전현풍군수하재명 숙부인김녕김씨 도장석축유공비(前玄風郡守河在鳴 淑夫人金寧金氏 道場石築有功碑)를 비롯하여 환몽화상유공비(幻夢和尙有功碑), 1985년과 1995년에 세워진 전기불사공덕비(電氣佛事功德碑)ㆍ진관평산포수군만호자 불사공덕비(鎭管平山浦水軍萬戶者 佛事功德碑) 등 관룡사 중창과 관련된 불사 공덕비이다.

[앞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이다...]

[짓누르는 돌을 비바람 속에서 구하는)...]

[화왕산 관룡사라고 쓰인 문...]

관룡사 석문을 지나 사찰 초입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건물로 1712년(숙종 38)에 대웅전과 함께 건립된 것을 1978년 지금의 모습으로 신축하였다. 건물은 어칸 중앙의 양 측면에 기둥을 세워 대문을 달고, 어칸을 통해 출입문을 만든 모습으로, 내부에는 사천왕탱을 모신 감실형의 벽체가 남아 있다. 벽체는 현재 비어 있으나 사적기의 내용을 통해 1713년 천왕문을 단청하면서 사천왕회상(四天王會像)을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의 양식은 3량가구에 외1출목을 둔 익공양식으로 살미첨차와 보머리는 수서형태로 장식하였으며, 주심도리에는 초각된 운공을 올렸다. 현재 절의 출입문으로 사용되며, 정면 어칸에는 ‘화왕산관룡사(火王山觀龍寺)’라는 편액 1기가 걸려 있다.

[관룡사 종각...]

관룡사 사천왕문 좌측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건물로 원음각과 함께 남향하고 있다. 1987년 대웅전 서쪽 요사와 함께 지은 것으로, 2층 누각의 모습으로 하고 있다. 건물의 외부는 1층을 경사지에 석조를 세워 배치하고 그 위로 원주를 세워 팔작지붕을 올린 모습으로, 2층 누상 주변에는 계자난간을 설치하고 마루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공포는 2익공 양식으로 초익공과 이익공 모두 수서로 장식하고 내부는 초각하여 운궁을 이루었으며, 내부 가구는 5량으로 마감하였다. 건물 내부에는 1995년에 노천월하(老天月下)스님이 증명하고, 주지 지묵항조(至?恒照) 화상이 조성한 '반야대범종(般若大梵鐘)'이 봉안되어 있다.

[관룡사 동종...]

[관룡사 원음각 뒤쪽...]

원음각은 인조 12년(1634년)에 처음건립, 영조 39년(1763년)에 중건했다고 상량문에 적혀있다. 바닥은 우물마루로 되어있고, 높이가 대웅전 앞마당과 같게 하였으며 이곳에는 불구(佛具)를 보관하거나 스님들의 설법장소로 쓰이고 있다 한다. 예전에는 중앙칸으로 출입을 하였었는데 지금은 가운데를 막고 스님들의 공부방으로 쓴단다.

[관룡사 약사전(보물제 146호)...]

대웅전 남쪽에 위치한 작은 전각으로 보물 제519호인 고려시대 석조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관룡사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353년(흘해왕 44)에 초창되어 1507년(중종 2)에 재창된 건물로 이후 1609년과 1821년 중수되었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된 소불당(小佛堂)의 조선초기 건물로, 신륵사 조사당(祖師堂)이나 송광사 약사전(松廣寺藥師殿)이 팔작지붕의 다포계 건축임에 비해, 주심포 계통의 맞배지붕 건물이라는 것이 특색이다. 가구식 기단 위에 자연석의 덤벙주초를 놓고 그 위로 원주를 올린 모습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공포는 기둥머리에 나온 창방(昌枋) 끝을 그대로 첨차로 만들어 짜 올린 주심포로, 4귀에 세운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고, 공포들 사이의 포벽에는 화반(花盤)을 배치하지 않았다. 특히 좌우 측면의 박공머리에 나온 첨차들은 모두가 주심포집 첨차의 형태를 따랐으나, 안쪽의 첨차와 외목도리(外目道理)를 받친 행공(行工)첨차는 다포집 계통의 원호(圓弧) 곡선의 첨차로 변한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즉 주심포집 건축에 후대의 다포집 양식을 적용시킨 예이다.

[관룡사 약사전 앞 삼층석탑...]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네모 반듯한 모양의 3층석탑이다. 암반을 이용하여 하층 기단 면석(面石)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새겼으며 옥개석(屋蓋石)과 탑신석은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하였고, 부분적으로 파손되기는 하였으나 조각 양식과 각 부의 수법을 살펴볼 때 신라시대 3층석탑의 형식을 따르고 있고, 규모가 약 2m 높이로 줄어들었으며 각 부의 양식이 간략해지고 섬약해져 그 건조 시기가 고려시대 전반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관룡사 대웅전...]

이 대웅전은 1965년 8월 해체보수공사때 중앙칸 마루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조선 태종(太宗) 원년(1401)에 창건, 임진왜란때 불타서 광해군(光海君) 9년(1617)에 중창하였고, 영조(英祖) 25년(1749)에 중수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다듬은돌 바른층쌓기의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拱包)는 내외2출목(內外二出目)으로, 기둥위와 기둥사이 평방 위에도 짜 올린 다포식이다. 초제공(初齊工)과 이제공(二齊工)의 살미첨차(山爾 遮) 끝은 앙서(仰舌)로 되어 있으나,
안쪽에는 교두형(翹頭形)으로 되어 있어 건실한 짜임새를 이루고 있다. 내부 바닥은 마루를 깔았고 천장은 우물천장을 이루며 중앙 후열에 세운 두 개의 고주(高柱)를 의지해 만든 불단 위에는 닫집을 달았다. 고 관룡사는 전한다. 그리고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없고 비로자나삼존불을 모시고 있다고 한다.

[관룡사 원음각현판과 안쪽 탱화...]

[요사채...]

[관룡사 명부전...]

대웅전 서편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건물이다. 『명부전칠성각상량문(冥府殿七星閣上梁文)』에 의하면 1652년 초창하여 1682년에 중창하였으며, 1753과 1912년에 각 3중창과 4중창을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명부전은 2000년 주지 정안 스님이 보수한 것으로, 건물은 화강암을 치석하여 장방형으로 만든 낮은 가구식 기단 위에 자리하고 있다. 가구식 기단 위는 삼화토로 다져 평지를 만들고, 그 위로 막돌초석을 얹어 원주를 세운 모습이며 삼면은 벽체로 마감하고 정면은 2ㆍ4분합 띠살문으로 단장하였다. 공포는 익공계 양식으로 정면은 2익공이고, 배면은 초익공으로 구성하였다. 익공형태는 초익공은 앙서형에 연꽃과 연봉을 초각하고, 이익공은 수서형으로 연봉을 초각하였다. 건물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였는데, 가구는 3량이고, 내부 천장은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

[외톨이 당간지주...]

[요사채...]

[관룡사 칠성각...]

대웅전 동쪽에 위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건물이다.『명부전칠성각상량문(冥府殿七星閣上梁文)』에 의하면, 1652년 건립되어 1912년까지 4중창된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소실되었다가 근래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명부전ㆍ대웅전ㆍ칠성각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견치석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자연석을 허튼층쌓기한 낮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두고 그 위로 원주를 세운 모습으로, 전면에 2분합의 띠살을 설치하고 삼면을 벽체로 마감한 구조이다.

원래 건물 삼면에는 벽면 내ㆍ외부에 작가와 시기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산수도와 감로탱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 그 모습은 사라지고 옛 부재인 화반만이 창방 위에 배치되어 있다. 이외 건물 외부에는 편액 1기와 주련 4기가 있으며, 공포는 익공양식으로 앙서형과 수서형으로 장식하였다.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불단을 만들어 칠성탱을 봉안하였는데, 가구는 3량이고 천장은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 특히 대들보는 자연상태의 만곡재를 씀으로서 목조건축의 미를 살리고 있다.

[관룡사 응진전...]

대웅전 좌측 언덕에 있는 건물로 『관룡사사적기(觀龍寺事蹟記)』에 의하면 1714년(숙종 40)에 16 중수되었다고 하며 전후의 연혁은 알 수 없다. 현재의 응진전은 1983년에 주지 신허스님과 화산스님이 나한전으로 건립한 것을 2000년대 보수한 것이다. 응진전은 견치석으로 쌓은 4벌대의 높은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그 위로 원주를 세워 맞배지붕을 받친 모습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외부는 삼면을 벽체로 형성하고 전면에 2분합의 띠살문을 단장한 모습으로, 정면 어칸에는 편액 1기와 주련 4기가 걸려 있으며,

건물 삼면에는 16나한도를 벽화로 그려 넣었다. 공포는 2익공 양식으로, 초익공과 이익공은 꽃새김으로 초각한 수서형이고 보머리는 봉두를 조각하여 달았다. 건물 내부는 우물마루를 깔고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였는데, 가구는 3량이고 내부천장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 불상은 근래 조성된 석조 아미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으며, 그 주위로 높이 26~31㎝의 소형 나한상 16구를 배치하였다. 불화로는 삼존상 뒤로 1990년 월하스님이 증명하고 금어 김룡환(金龍煥)이 조성한 영산회상탱을 봉안하였다.

[관룡사 원음각 (문화재자료 제 1호)...]

[마당에 기대있는 관룡사현판...]

[병풍바위의 아름다움...]

[종각과 천왕문...]

[관룡사 전경...]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 ] ...]

좌우 마주 보게 2주가 서 있는데, 일명 돌장승, 벅수라고도 하며 민속적인 어떤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이곳으로부터 관룡사의 경내를 표시하는 석표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자연석에 남녀상을 각각 새겼다. 고 서술되고 있으나 정확한 석장승의 이름이나 내용은 알 수 없다고 전한다. 민속자료 제 6호로 지정되어 있다. 얼굴을 보면 무척 해학적이다. 주먹코가 인상적이며 튀어나온 눈은 돌하르방같은 이미지를 남긴다. 흔하지 않은 석장승이기도 하지만 몸에는 아무글자도 쓰여있지 않은 것도 특징인 것 같다.

[우측 석장승...]

시대를 알 수 없는 한쌍의 돌장승으로 절입구에 세워져 있다. 남장승의 크기는 높이 224cm, 너비 64cm이고 여장승 높이는 235cm, 너비 52cm이다. 남장승은 화강석을 다듬어 상투같은 둥근 머리와 툭 튀어나온 왕방울 눈, 주먹코, 아래로 뚫린 콧구멍과 방방한 턱이 특징이다. 또한, 꼭다문 입사이로 송곳니 2개가 양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와 양각되어 있다. 여장승은 사다리꼴 기단석 위에 구멍을 파서 세운 것으로 몸통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굵어져 안정감을 준다. 징승의 두께는 앞면 너비보다 뒷면 너비가 좁게 되었으며, 두상의 길이가 90cm나 되어서 몸전체 길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장승은 사찰의 경계, 사찰 경내에서의 사냥 금지, 호법 등을 표시하기 위하여 세웠거나 풍수지리학상 허한 곳을 막아주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좌측 석장승과 예솔이...]

[좌측 석장승 ...]

[우측 석장승...]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관룡사를 찾았다. 이곳에서 관룡산을 경유 화왕산으로 오르는 코스를 위해 등산복을 입고 올라온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지금도 아쉬운 것은 용선대를 눈앞에 두고도 못오른 것이다. 항상 여행에는 아쉬움을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또 재차방문을 할 이유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차를 회수해 삼거리로 내려가 다시 좌측계곡을 올랐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많아 차량들이 진입하기가 힘들다.

물론 이럴 때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올라야 하는데 주차장이 만원이라 올라가라 한다. 한참을 좁은 길로 오르니 군데군데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드디어 철문으로 막아놓은 곳 앞에 주차를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만 차를 돌릴 수가 있기 때문에 이곳은 넓게 비워놓았다. 차량들이 소통을 위해 반쯤은 길 밖으로 나가게 주차를 해놓은 후 산행은 시작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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